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 (7) - 어제 저녁 일이 맴돈다.
Logrono라는 유서 깊은 중세 도시이며 제법 큼직한 인구 15만명의 고전 풍치가 가득한 곳이다. 저녁 석양도 구경하면서, 동네 그럴듯한 식당 탐색을 한다.
커피와 샌드위치 파는 데는 곳곳에 눈에 들어 오는데, 레스토랑이 안보여서, 헤메다가 한 곳을 발견한다.
스페인이나 남미 사람은 늦은 시간, 8시나 9시에 저녁을 하는 경우가 흔하나, 식당 간판에는 7시에 시작한다고 되어 있어 조심스럽게 문을 들어선다. 시계는 7시15분전이다.
예쁜 종업원이 다가선다.
대뜸 시작 전이니까, 7시에 시작하니 나가라고 한다. "좀 기다려 주세요" 하면 될텐데, 8시간 걸어서 녹초가 되었는데,15분 이상을 배회하자니 서글퍼진다.
그때 저 만치에서 켬퓨터를 하던 중년 신사가 그냥 들어 오라고 손짓을 한다.아마 주인이었던 모양.정확히 시간을 준수하고자 하는 종업원과 손님 위주로 서비스하려는 주인과의 충돌이 일어나는 분위기였는데,서로 다른 인식차이를 보는 순간이다.
주인에게 미안하고 고마움도 표할겸 최고 비싼 메뉴를 선택한다.한편으로는 19억 이슬람 신도가 오늘 부터 금식을 하는데 나 몰라라고 좋은 음식을 즐기려는 죄의식이 동한다.
자세히 주변 내부를 둘러보니, 금관같은 상장 또는 Certificate 이 벽에 여러장 붙어 있다. 고급 바게트, 큰 유리병에 가득한 생수,에피타이져, 소시지 볶음, 돼지갈비와감자, 케익과 아이스크림 6 단계로 가져오는데, 한국 정식 식사와 유사한 것 같은 느낌도 든다.
텅빈 위장이 가득해 질 때까지 포식한다.스페인 음식이 다양한 맛갈이 있는지 처음 느꼈다.금식 첫날, 호화 성찬을 즐겼다.
즐거운 마음으로 결재를 하였는데,놀랍게도 25유로다.(한국돈35,000원 수준)
그러고 보니 순례길에서는 돈 쓸 기회가 없다.조식에 빵과 우유,오전 내내 실컷 걷다가,겨우 발견되는 바(Bar)에서 점심 (샌드위치나 바케트빵)과 커피 그리고 다 걷고 난 후에 근처에서 적당한 저녁을 하면 하루 20유로면 충분하다.
옆에 대학생도 한국보다도돈 쓰는 게 적게든다고..
돈이 부족하여, 먹고 싶은 것을 못 먹으며 아쉬운 하는것보다, 두둑한 돈을 갖고도 생색내며 쓸 수가 없는 경우가 더 섭한 마음도 든다.
생존에 필요한 세 끼를 채우는 것 말고는 가야 할 곳도, 써야 할 곳도 없는 순례길.몸 한덩어리 유지하는 최소한의 지폐나 카드면 충분하다.
두둑한 재산을 남기고 , 쓰지도 못하고 우리 인생을 마감할 때 , 공허함 같다고나 할까?
어제 28km, 8시간을 걷고, 오늘은 좀더 긴 30 km,8시간 반을 걸어야 한다.로그로녀(Logrono)에서 나헤라(Najesa)까지 해발400-600-500미터를 넘나 들어야 한다.
일기예보를 보니, 아침7시는 영상2도 낮에는 17도까지 오른다. 옷가지 선택하는데, 고민을 한다.
낮에는 햇살이 뜨겁다. 높은 고지(서울 청계산 정도의 고도)로 쏟아지는 직사 광선, 공해가 없는 곳이라서 인지 ,태양에서 퍼붓는 소나기 햇빛이 너무 강렬하다.늦은 봄인데, 여름 한 때라면 강도가 훨씬 세겠지.
햇살을 피할 방법이 없다.어제와 마찬가지로 중간에 쉴곳도 없고, 앉을 곳도 없고, 그늘도 없다. 오로지 아직 새 순도 안 올라온 몸통 가지만 널려있는 포도 밭만 있다.
끈임없는 농로, 밭길,자갈길로 이루워지는 지겨운 행로다. 6~7 km 단위로 작은 마을이 보일 뿐이다. 카페도 없거나, 있어도 낮에는 영업을 안한다. 마실 것도 ,먹을 것도 미리 배낭에 넣어 와야한다
순례길은 고행을 하는 곳이니 쉼터를 의도적으로 안 만든 것 같다.(화장실도 없고, 흔한 구멍가게도 없고,간이 의자도 없다)
어제와 오늘 약 60km를 걷고, 또 걷고. 걷고 또 걷고를 무수히 반복한다.체력도 소진되어 가고,로보트가 기계적으로 뻗어나가듯 발 길만 내뻗는다. 고통의 연속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최고 해발 1100미터를 고점으로 800~900미터, 낮게는 4~500미터를 통과하는 산과 계곡의 길이므로, 여름에는 강렬한 햇살을 견디어 내야 하고.겨울에는 추위와 싸워야 하는 것 이외에도 바람과 태풍, 호우,장마도 수시로 조우해야 하고,변화무쌍한 기후를 맞닥들여야 한다.
옛날 2,000년 전에 선지자, 야곱이 전도하던 길을 걸어 보니, 그 고통의 깊이가 어렴풋이 느껴진다.
우리는 고텍스 신발에 방수, 방풍 옷을걸치고, 가벼운 최신 섬유 배낭에,고단백 식품도 , 선그라스도,장갑도 중무장하고, 잘 안내가 된 길 표시판을 따르기만 하는데도 어려운데.
야곱이 어부 생활을 접고,이 800 km 광야의 길을 전도하였다고 하니,상상이 안된다. 제대로 방수,방풍도 안된 의상,신발도 짚신이나 가죽(?)신발, 배낭도 없이 긴 주머니 보따리, 길도 없고, 마을 정보도 없고,식량도 제대로 준비 하기 힘들었을 것 같고,혹독한 추위와 무더위,그리고 광야에서의 쉽지않은 노숙을 견디었을텐데,
숭고한 신앙심과 사명감을 갖고 순례의 역경을 극복한 데 대하여 경탄의 물결이 마음 속에 넘쳐난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사소한 어려움과 야곱의 행로를 그려보다가, 나헤라(Najera) 마을에 도착한다.
인구 8,000명의 소도시인데,옛날 Navarre 주의 주도이기도 했다.공교롭게 라마단이 시작하는 이 시점에 맞추어, 옛날 이슬람교가 지배했던 지역으로 입성하게 되었다.
나헤라는 '돌의 도시'라는 아랍어이며, 800여년 동안, 이스람 정부의 최첨단 지역으로서, 북쪽의 기독교와 전선을 형성하다가, 서기 1350년경 부터 라틴 캐토릭도시가 되었으며, 당시 유태인들이 많이 모여 살던 거리이기도 하다.
라마단을 맞은 시점에서, 이슬람이 지배하던 도시로 들어 와서, 감회가 야릇하여 진다.
첫댓글 계속 힘 내십시요.
마치시면 묶어서 책으로 내어도 좋을 글과 사진 감사합니다
영양있게 잘드시면서 무리되지않게 힘내세요..
체력 안배 잘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