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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 1: 7.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 룻 1: 9. 남편의 집에서 ( 상 )
룻 1: 7.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 있던 곳에서 나오고, 두 며느리도 그와 함께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가다가 ( 있던 곳을 떠나고, 두 자부도 그와 함께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행하다가 )
1] 있던 곳에서 나오고
나오미는 두 자부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고 있던 곳을 떠났다. 두 자부도 함께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행하게 된다.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육신에 매여 종노릇 하는 혈육에 속한 여인이었다. 유다 땅에 참된 양식의 풍성함을 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들은 두 여인은 어머니와 함께 일어나 있던 곳(죽은 세상)을 떠나 유다 땅(새 생명의 세상)으로 가려고 새로운 길을 행하게 되었다.
2] 두 며느리도 그와 함께하여
며느리(자부)와 동행 - 두 자부(子婦)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시어머니를 단순히 배웅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시모와 함께 시모의 고향으로 갈 결심으로 같이 동행했던 것 같다. 이로 보아 평소 나오미와 두 자부 사이의 관계는 퍽 애정이 깊었던 것 같다. 특별히 나오미의 신앙이 두 자부에게 영향을 끼친 듯하다.
3]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가다가
길을 행하는 도중 나오미는 며느리들에게 한두 번 돌아갈 것을 권면했겠지만, 두 며느리는 그런데도 계속 따라온 것 같다. 마침내는 모압에서부터 낯익은 유다의 고향 땅으로 통하는 대로(大路)에 이르자, 나오미는 젊은 두 자부의 장래를 위해서 그들의 고향으로 돌려보낼 결심을 굳힌 것 같다.
(1) 모압 땅에서의 출발은 순조로웠다.
고향 소식에 귀향을 결정하고 길을 나설 때까지는 다른 생각이 없었다.
(2) 나오미의 모압 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단란했던 가정이 모압으로 이주한 이후 남편과 두 아들의 죽음은 나오미의 가슴속을 떠나지 않았다.
(3) 자신의 귀향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나오미는 자신의 고향이므로 귀향 이후로의 삶에 대하여 염려하지 않았다.
(4) 두 자부들의 삶에 대하여 확신하지 못했다.
의지할 것 없는 자부들, 아직은 젊은지라 앞날을 예견하기에는 나오미의 신앙이 성숙되지 못한 것 같다.
(5) 자부들의 이주는 고난의 시작이 될 것으로 보았다.
자신의 모압 생활을 통하여 자부들의 유대 생활을 통하여 겪게 될 아픔을 추스르기에 마음의 고통이 심했다. 신앙의 세계도 이와 같은 현상임을 깨달을 수 있다.
본향을 찾아가자
예전에는 「문맹」이 문제였다. 요즈음은 「컴맹」이 문제요 스마트 폰맹이 문제다. 그런데 더 문제인 것은 「성맹」이다.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함부로 살아간다.
하나님은 범죄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고 탄식했다.
* 호 4: 6 -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성경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더해준다. 무식한 사람은 용감하고 미련하다. 하나님에 대하여 무식한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미련하게 사는데 참 용감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바로 믿는다.
하나님을 떠나서 모압으로 간 엘리멜렉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모든 것을 잃었다. 이제 남은 것은 늙은 나오미 자신과 연약한 두 이방인 며느리 뿐이다. 그런데 이들에게 들려 온 소식은 하나님의 땅, 이스라엘에 풍년이 들어 양식이 풍부하다는 참으로 좋은 소식이다.
모압이 살기 좋다고 하여 찾아왔더니 결과는 모두 잃어버렸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다시 풍년이 들어 풍성해졌다.
* 시 23 : 1 -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나님의 계신 곳에 영원한 풍성함이 있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 언제고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준비하고 계신다. 하나님을 떠났던 사람들이 이제는 다시 하나님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되었다. 나오미는 두 자부 룻과 오르바와 함께 이스라엘로 가고 있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 - 「나오미」 「오르바」 「룻」 -이들은 모두 함께 하나님을 찾아가고 있으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서로 달랐다.
우리 교회 성도들의 하나님을 찾아가는 신앙의 형태를 보면 가지 각색이다. 부지런한 사람, 땀 흘리는 사람, 그러나 잠자는 사람, 마지 못해 끌려가는 사람, 쉬는 사람, 아예 멀리 도망가 버린 사람. 등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따라 신앙생활의 형태가 달라진다.
룻 1: 8.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 나오미가 두 자부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각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와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
1]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1) 어머니
* 창 17: 16 -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2) 집
* 창 7: 1 -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3) 어미의 집
나오미에게 있어 이 말은 결코 쉽게 나올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두 며느리조차 떠나버리면 나오미는 의지할 데 없는 늙은 과부이기 때문이다. 노년에 의지할 데가 전혀 없는 과부처럼 비참한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자기들의 고향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따라서 이 말 속에는 나오미 자신에게는 더 이상 소망이 없으니, 고향 집으로 돌아가서 다시 가정을 가지고 평안히 살아가라는 의미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향후 닥칠 모든 고통을 나오미 자신이 혼자 짊어지겠다는 자부(子婦)들에 대한 애틋한 사랑도 담겨 있다.
(4) 어미의 집의 영적 의미
세상을 창조하시고 만물을 다스리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집.
* 시 23: 6 -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2]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선대'(善待)에 해당하는 '헤세드'(히)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향한 언약적인 사랑을 나타낼 때 주로 사용되었다.
* 출 15: 13 - 주의 인자하심으로 주께서 구속하신 백성을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거룩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
* 출 20: 6 -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1) 죽은 자들를 선대한 것 같이
룻과 오르바의 신혼 초의 모습을 살펴 볼 수 있다. 그들은 평온한 생활을 영위했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시어머니가 자부에게 이런 말로 평가를 내린 것으로 보아서 가름할 수 있다.
(2) 나를 선대한 것 같이
그들은 남편의 사후에도 예전과 같은 효를 실천한 자부들이였다. 나오미의 고백이 이를 증명한다.
(3) 여호와가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하나님의 성호(聖號)중 언약의 하나님을 나타내는 '여호와'가 사용되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나오미는 며느리들이 비록 자기 곁을 떠나 그들의 고향 땅에 갈지라도 모압 '그모스'를 섬기지 않고, 여호와만 섬기며 그분의 축복 가운데 거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던 것 같다.
즉 나오미는 이별의 순간에도 여호와만이 축복의 근원이시며 참되시고 유일한 신이심을 주지(主旨)시켜 주었다. 이것은 비록 나오미가 언약의 땅은 떠났지만 언약의 하나님은 잊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동시에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는 비단 이스라엘 뿐 아니라 이방의 모든 국가도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룻 1: 9. 남편의 집에서 -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 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 여호와께서 너희로 각각 남편의 집에서 평안함을 얻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
1] 여호와께서
본 장에서 하나님의 성호가 '여호와'(Jehovah)로 가장 많이 사용된 점에 유의하자. 성경에는 하나님의 성호가 여러 가지로 사용되었다. 그것은 각 문맥에서 특징 지워지는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을 적절히 묘사하기 위해서였다. 나오미가 '여호와'라는 성호를 사용한 용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언약의 하나님을 상기시킬 때(6, 8, 9절)
6절에는 여호와께서 당신 백성 곧 언약의 백성 이스라엘을 찾아가셨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그리고 8절과 9절에서는 비록 이방 여인이지만 언약 백성 가운데 포함된 자들에게 언약에 신실하신 여호와께서 복주시기를 바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2) 언약을 파기한 백성에 대하여 징계할 때(13, 17, 21절)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인들은 언약을 맺는 과정에서 짐승을 잡아 각을 뜨고 피를 사방에 뿌린다. 그것은 그 언약을 범한 자도 반드시 그같이 될 것이라는 표식이었다. 이러한 경우에 반드시 '여호와'라는 성호가 사용되었다.
* 신 4: 27, 31, 40 - 27 여호와께서 너희를 여러 민족 중에 흩으실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쫓아 보내실 그 여러 민족 중에 너희의 남은 수가 많지 못할 것이며 31 네 하나님 여호와는 자비하신 하나님이심이라. 그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너를 멸하지 아니하시며,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아니하시리라. 40 오늘 내가 네게 명령하는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받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한 없이 오래 살리라.
* 호 1: 9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이름을 로암미(내 백성이 아니라)라 하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 암 3: 2 - 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에 너희만을 알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하셨나니
본 장에는 '전능자'(솨다이)란 말이 여호와란 말과 연관되어 동의어처럼 사용되었다(20-21절). 그런데 '솨다이'라는 하나님의 성호는 족장 시대 이후부터 '여호와'의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 시 68: 14 - 전능하신 이가 왕들을 그 중에서 흩으실 때에는 살몬에 눈이 날림 같도다.
* 시 91: 1 -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 겔 1: 24 - 생물들이 갈 때에 내가 그 날개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 소리와도 같으며 전능자의 음성과도 같으며 떠드는 소리 곧 군대의 소리와도 같더니 그 생물이 설 때에 그 날개를 내렸더라.
* 겔 10: 5 - 그룹들의 날개 소리는 바깥뜰까지 들리는데 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음성 같더라.
그 이유는 언약을 실행하시는 전능하신 분이시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내용들을 종합해 볼 때 '여호와'라는 성호는 당신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을 이루어 가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2]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남편의 영적 의미
(1) 자녀 생산자
* 렘 29: 6 - 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너희 아들이 아내를 맞이하며 너희 딸이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낳게 하여 너희가 거기에서 번성하고 줄어들지 아니하게 하라.
(2) 교회의 머리
* 엡 5: 23 -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3) 여호와 하나님은 남편
* 사 54: 5 - 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
* 렘 3: 14 -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라. 내가 너희를 성읍에서 하나와 족속 중에서 둘을 택하여 너희를 시온으로 데려오겠고
(4) 바울의 중매
* 고후 11: 2 -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전통적으로 과부는 고아와 나그네와 함께 가장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이었다. 왜냐하면 이들을 보호해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율법으로 그들을 보호하라고 명령하셨다.
* 출 22: 22-23 - 22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23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을지라.
특별히 과부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그들의 짐을 덜어 줄 것을 가르치셨다.
* 신 14: 29 -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24: 19-20. 27: 19)
그럼에도 과부들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학대와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다.
* 사 1: 23 - 네 고관들은 패역하여 도둑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예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지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하지 아니하는 도다.
* 겔 22: 7 - 그들이 네 가운데서 부모를 업신여겼으며 네 가운데서 나그네를 학대하였으며 네 가운데서 고아와 과부를 해하였도다.
* 말 3: 5 -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점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꾼의 삯에 대하여 억울하게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며 나를 경외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언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나오미는 이러한 사회 형편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며느리들이 자기와 함께 가는 것을 극구 막고자 했다. 대신 두 며느리가 아직 젊기 때문에, 재혼(再婚)을 하여 행복한 가정을 가지라고 권유했다. 왜냐하면 그 길만이 과부가 사회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3]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 평안함
이 말에 해당하는 '메누하'(히)는 '안식처', '안식', '안정의 상태'를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메누하'는 고통과 환난 가운데서 안식처(安息處)를 찾아 평안을 얻는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따라서 이 말은 기거하는 집은 있으나, 보호해 줄 남편이 없어 진정한 안식 없이 슬픔과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는 과부의 고통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오미는 며느리들에게 재혼하여 남편의 보호를 받으며, 안식을 누리라고 권면했다.
4] 그들에게 입 맞추매
당시에는 이별할 때 입을 맞추는 풍습이 있었다. 헤어짐의 아픔과 아쉬움을 나타내는 방법이다. 이제 작별하게 되면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또 죽음이 찾아와 영원한 이별이 될지도 모른다. 10년 동안의 석별의 정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 삼하 19: 39 - 백성이 다 요단을 건너매 왕도 건너가서 왕이 바르실래에게 입을 맞추고 그에게 복을 비니 그가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
* 행 20: 37 -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5]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목 놓아 울었다'란 의미이다. 어려운 처지에서 10년 동안 동고동락했던 시모 나오미가 강력히 이별을 권하자, 두 자부가 그동안 참았던 울음을 일시에 터뜨리는 장면이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들의 장래 행복을 위하여 자신의 외로움을 떨치고 극구 보내려 하고, 며느리들은 홀로 남게 될 시모의 장래를 걱정하면서 함께 가겠다고 한다.
서로 껴안고 목 놓아 우는 장면은 처량하기도 하거니와 반면 아름다운 고부(姑婦)의 관계를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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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이 즐거워야 행복해 진다고 합니다.
마음이 즐거우면 모든것이 긍정적으로 보이게 되므로
얼굴엔 늘 미소를 짓게되고 밝고 유쾌하게 된답니다.
얼굴에 환한 웃음과 함께 오늘도 멋지게 시작하시고요.
항상 웃음이 있는 그런 행복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