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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실재아(得失在我)
얻고 잃음은 내가 하기 나름이라는 뜻으로, 내가 하는 일에 자신을 갖고서 남의 평판에 휩쓸리지 말라는 의미의 말이다.
得 : 얻을 득(彳/8)
失 : 잃을 실(大/2)
在 : 있을 재(土/3)
我 : 나 아(戈/3)
출전 : 연암집(燕巖集) 第3卷 공작관문고(孔雀館文稿) 자서(自序)
이 성어는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의 연암집 제3권 공작관문고(孔雀館文稿) 자서(自序)에 나오는 말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글이란 뜻을 그려내는 데 그칠 따름이다. 글제를 앞에 놓고 붓을 쥐고서 갑자기 옛말을 생각하거나, 억지로 경서(經書)의 뜻을 찾아내어 일부러 근엄한 척하고 글자마다 정중하게 하는 사람은, 비유하자면 화공(畫工)을 불러서 초상을 그리게 할 적에 용모를 가다듬고 그 앞에 나서는 것과 같다.
文以寫意則止而已矣. 彼臨題操毫, 忽思古語, 强覓經旨, 假意謹嚴, 逐字矜莊者, 譬如招工寫眞, 更容貌而前也.
시선을 움직이지 않고 옷은 주름살 하나 없이 펴서 평상시의 태도를 잃어 버린다면, 아무리 훌륭한 화공이라도 그 참 모습을 그려내기 어려울 것이다. 글을 짓는 사람도 어찌 이와 다를 것이 있겠는가.
目視不轉, 衣紋如拭, 失其常度, 雖良畵史, 難得其眞. 爲文者亦何異於是哉.
말이란 거창할 필요가 없으며, 도(道)는 털끝만한 차이로도 나뉘는 법이니, 말로써 도를 표현할 수 있다면 부서진 기와나 벽돌인들 어찌 버리겠는가.
語不必大, 道分毫釐, 所可道也, 瓦礫何棄.
그러므로 도올(檮杌)은 사악한 짐승이지만 초(楚) 나라의 국사(國史)는 그 이름을 취하였고, 몽둥이로 사람을 때려죽이고 몰래 매장하는 것은 극악한 도적이지만 사마천(司馬遷)과 반고(班固)는 이에 대한 기록을 남겼으니, 글을 짓는 사람은 오직 그 참을 그릴 따름이다.
故檮杌惡獸, 楚史取名, 椎埋劇盜, 遷固是叙, 爲文者惟其眞而已矣.
이로써 보자면 글이 잘되고 못되고는 내게 달려 있고 비방과 칭찬은 남에게 달려 있는 것이니(得失在我, 毁譽在人), 비유하자면 귀가 울리고 코를 고는 것과 같다.
以是觀之, 得失在我, 毁譽在人, 譬如耳鳴而鼻鼾.
한 아이가 뜰에서 놀다가 제 귀가 갑자기 울리자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기뻐하며, 가만히 이웃집 아이더러 말하기를, '너 이 소리 좀 들어 봐라. 내 귀에서 앵앵 하며 피리 불고 생황 부는 소리가 나는데 별같이 동글동글하다' 하였다.
小兒嬉庭, 其耳忽鳴, 啞然而喜, 潛謂鄰兒曰; 爾聽此聲, 我耳其嚶, 奏鞸吹笙, 其團如星.
이웃집 아이가 귀를 기울여 맞대어 보았으나 끝내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자, 안타깝게 소리치며 남이 몰라주는 것을 한스럽게 여겼다.
鄰兒傾耳相接, 竟無所聽, 閔然叫號, 恨人之不知也.
일찍이 어떤 촌사람과 동숙한 적이 있는데, 그 사람의 코 고는 소리가 우람하여 마치 토하는 것도 같고, 휘파람 부는 것도 같고, 한탄하는 것도 같고, 숨을 크게 내쉬는 것도 같고, 후후 불을 부는 것도 같고, 솥의 물이 끓는 것도 같고, 빈 수레가 덜커덩거리며 구르는 것도 같았으며, 들이쉴 땐 톱질하는 소리가 나고, 내뿜을 때는 돼지처럼 씩씩대었다.
甞與鄕人宿, 鼾息磊磊, 如哇如嘯, 如嘆如噓, 如吹火, 如鼎之沸, 如空車之頓轍, 引者鋸吼, 噴者豕豞.
그러다가 남이 일깨워 주자 발끈 성을 내며 '난 그런 일이 없소' 하였다.
被人提醒, 勃然而怒曰; 我無是矣.
아, 자기만이 홀로 아는 사람은 남이 몰라줄까 봐 항상 근심하고, 자기가 깨닫지 못한 사람은 남이 먼저 깨닫는 것을 싫어하나니, 어찌 코와 귀에만 이런 병이 있겠는가? 문장에도 있는데 더욱 심할 따름이다.
嗟乎己所獨知者, 常患人之不知, 己所未悟者, 惡人先覺, 豈獨鼻耳有是病哉? 文章亦有甚焉耳.
귀가 울리는 것은 병인데도 남이 몰라줄까 봐 걱정하는데, 하물며 병이 아닌 것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耳鳴病也, 閔人之不知, 况其不病者乎.
코 고는 것은 병이 아닌데도 남이 일깨워 주면 성내는데, 하물며 병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鼻鼾非病也, 怒人之提醒, 况其病者乎.
그러므로 이 책을 보는 사람이 부서진 기와나 벽돌도 버리지 않는다면, 화공의 선염법(渲染法)으로 극악한 도적의 돌출한 귀밑털을 그려낼 수 있을 것이요, 남의 귀 울리는 소리를 들으려 말고 나의 코 고는 소리를 깨닫는다면 거의 작자의 뜻에 가까울 것이다.
故覽斯卷者, 不棄瓦礫, 則畵史之渲墨, 可得劇盜之突髩; 毋聽耳鳴醒我鼻鼾, 則庶乎作者之意也.
아무도 모르고 나만 고통을 느끼는 병, 이명증
조선 후기 청나라를 기행하며 조선의 개혁을 꿈꿨던 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를 남겼고, 그 외에도 많은 소설과 수필을 저술했다. 특히, 그가 쓴 공작관문고(孔雀館文庫) 자서(自序)에서는 나만 알고 너는 모르는 병을 이명이라고 하며 득실재아(得失在我)라고 표현했다. 직역하면 ‘얻음과 잃음이 나에게 달려 있다’는 의미이고, 의역하자면 병임에도 남이 알아주지 않으니 앓는 사람만 근심스러울 뿐이라는 뜻이다.
반면, 너만 알고 나만 모르는 코골이는 비한(鼻한)이라고 하며, 이는 훼예재인(毁譽在人)이라고 설명했다. 훼예재인은 ‘헐뜯고 칭찬하는 것은 남에게 달려 있다’는 뜻이다. 즉, 이명은 귀에서 소리가 울리는 질환으로 자신은 알지만 다른 사람은 모르는 증상이고, 코골이는 다른 사람은 알지만 자신은 모르는 증상을 의미한다. 이러한 두 가지 증상을 절묘하고 재치 있게 표현한 것 같다.
조선 후기 문신인 연암 박지원의 글을 지금 읽어도 그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느껴지지만, 실제로 이명을 앓고 있는 환자의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명의 의학적 정의는 ‘외부에서 소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소리를 느끼는 현상’으로, 즉 ‘나만 들리는 소리’라는 의미다.
우리 귀는 귓바퀴에서 모아진 외부의 소리를 귓구멍을 통해 고막에 전달하고, 고막이 진동하면, 이 진동은 달팽이관으로 들어가게 된다. 달팽이관에 있는 림프액이 진동하면서, 내부의 청각세포들이 반응하게 된다. 이러한 소리 진동을 음역대별로 전기신호로 변환하여 뇌로 전달하고, 뇌에 도달하면 우리는 이 소리를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기전에 이상이 생길 경우 이명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인 이명의 경우 한쪽 혹은 양쪽 귀에서 고주파 소음, 벌레우는 소리 등의 다양한 소리가 2주 이상 지속이 되는 경우가 많으며 심할 경우 청력이 떨어지고, 어지럼증을 동반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조용한 곳에 있거나 밤에 더 심해지는 경우가 많아서 불면증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으며, 편두통이나 귀 내부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한의학에서는 이명을 실증과 허증으로 나눈다. 실증은 주로 풍열, 간담화, 어혈 등으로 생기고, 허증은 간신휴손과 비위기허로 발생한다고 본다. 간신휴손은 귀와 연관되어 있는 장부인 신장의 기능이 떨어져서 생기며, 신장의 기능을 보강하면 이명이 개선될 수 있다.
간담의 화가 원인인 경우는 대개 스트레스와 관련이 많아서 이명에서 중저음보다는 고음의 소리가 더 많이 들린다. 이럴 때는 수면장애, 불안감, 열감, 두통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 어혈성 이명은 혈액 순환이 정체되어 나타나며, 외상으로 인한 이명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경우 주로 매미 소리나 금속성 소리가 들리는 경향이 있다.
한방에서는 이명이 귀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신적인 신체 불균형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본다. 그래서 오장육부의 불균형과 기혈순환을 개선하는 방법으로 치료할 수 있다. 인체의 면역력을 높이고 혈액 순환을 도와주는 한약 치료와 귀의 경락을 자극해 순환을 돕는 침 치료, 뜸 치료, 약침 치료, 추나요법 등을 통해 근본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이명은 나만의 고통이기에 남이 알아주지 않으니 그 고통이 더욱 배가된다. 이 소음은 나의 일상과 정신을 갉아먹고, 나를 고립시키는 원인이 된다. 그러므로 이 증상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한다. 나의 건강과 행복은 나의 손에 달려 있다. 이명으로 인한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도움을 받고, 나의 상태를 이해하며 치료에 나서야 한다. 나의 목소리를 듣고, 나의 고통을 인정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더 이상 혼자서 싸우지 말고, 치료의 길로 나아가자.
이명(耳鳴), 코골이(鼻鼾)
옛날 동구 밖에 있는 조그마한 연못에 개구쟁이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물장구를 치고 자맥질을 하며 왁자지껄 즐겁게 떠들며 놀고 있었다. 갑자기 한 아이가 놀라면서 "귀에서 소리가 난다"고 소리쳤다. 그리고는 옆에 있는 아이에게 "너, 이 소리 들어 봐! 내 귀속에서 앵앵거리지?"하며 말했다.
옆에 있던 아이가 귀를 맞닿게 기울여 보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아이는 "피리소리, 생황소리, 나발소리가 들리잖아! 그것도 못 들어!"하고 소리쳤다. 그리곤 자기는 신기한 이명(耳鳴) 소리를 다 듣는데, 남이 알아주지 않음을 속상해하며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선비가 모처럼 고향에서 친구를 만나 한 방에 자게 되었다. 그 친구는 옹알이 하듯이, 휘파람 불 듯이, 푹푹 한숨을 쉬듯이, 탄식하듯이 잠꼬대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빈 수레가 갑자기 방향을 바꾼 듯이 '드르렁! 드르렁!'하고 코골이를 했다. 장작불을 때듯이, 가마솥에 물을 펄펄 끓이듯이, 톱을 켜듯이 숨을 빨아들이고, 돼지 멱따듯이 숨을 내쉬며 코골이를 하는 것이었다. 옆에서 함께 자던 선비가 흔들어 깨웠다. 그러자 그 친구는 "이 사람아, 나는 평소 잠잘 때 코를 골지 않는다네"하고 발끈 화를 내었다.
이 이야기는 연암 박지원의 '공작관문고 자서(孔雀館文庫 自序)'의 글이다. 연암 박지원은 나만 알고 너만 모르는 이명(耳鳴)을 '득실재아(得失在我)'라 하였다. 득실재아는 '얻음과 잃음은 나에게 달려 있다.'는 뜻이다. 이명은 병인데도 남이 알아주지 않으니 앓는 사람만 근심스러울 뿐이다.
그리고 연암 박지원은 너만 알고 나만 모르는 코골이 비한(鼻鼾)을 '훼예재인(毁譽在人)'이라 하였다. 훼예재인은 '헐뜯고 칭찬하는 것은 남에게 달려 있다'는 뜻이다. 코골이는 병이 아닌데도 남이 흔들어 깨우니 버럭 화를 낸다.
사람들은 자기 혼자 아는 것을 남이 알아주지 않음에 언제나 속상해한다. 또 자기가 깨닫지 못한 것을 남이 먼저 깨닫게 되는 것을 억수로 싫어한다. 다만 이명(耳鳴)과 비한(鼻鼾)의 경우를 그렇게 비유한 것이지, 어린아이는 이명이고 어른은 비한이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며칠 전 '말똥구슬'외 다섯 권의 우리고전을 샀다. '말똥구슬'은 백탑동인의 한 사람인 유금(柳琴)의 '낭환집'(螂丸集)을 번역한 시집이다. 백탑동인(白塔同人)은 정조 임금 무렵 서울의 원각사지에 있던 10층 석탑(흰 대리석 탑)을 중심으로 모여 살았던 실학자들을 말한다. 연암 박지원을 중심으로 홍대용,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유금, 이서구 등이 양반과 서얼 구분 없이 모여서 자연스레 모임이 결성된 시파(詩派)이다.
백탑동인의 중심인물인 박지원은 유금의 시집 '말똥구슬' 서문에서 '말똥구리는 자기가 굴리는 말똥을 사랑하므로 용의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는다네. 따라서 용도 자기에게 여의주가 있다고 해서 말똥을 굴리는 말똥구리를 비웃지 않는 법일세'라고 적었다. 이 말은 이덕무의 '선귤당농소(蟬橘堂濃笑)'에 나오는 글이다.
이덕무는 젊은 시절 스스로를 '결선형귤(潔蟬馨橘)'이라 했다. '깨끗한 매미, 향기로운 귤'이라 는 뜻이다. 이덕무는 선귤처럼 '온갖 서적 많이 정밀하게 읽어 입으로 말하겠다'고 다짐했다. 선귤당농소에는 연암 박지원이 그린 '그물 말리는 어촌 풍경(어촌쇄방도)'에 화제를 쓰기도 했다는 시도 있다. 연암 박지원은 그림도 잘 그렸던듯하다. 어떻든 연암 박지원은 조선 최고의 글쓰기 문장가이다. 그는 '글을 짓는 사람은 오직 진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린아이들이 잠자리 잡는 모습을 보면 진실한 글을 쓰는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 나뭇가지에 앉은 잠자리를 잡기 위하여 어린아이는 일단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른 후 앞무릎을 살짝 굽히고 뒤에 둔 무릎은 힘을 뺀다. 그리고 손가락을 집게 모양으로 만들어 살며시 잠자리의 뒤쪽으로 가져간다. 조심조심 다가서는 순간 '아~' 잠자리는 날아가 버린다.
어린아이는 또다시 시작한다. 이번엔 집게손가락을 곧게 펴서 잠자리의 눈동자 쪽에서 빙빙 회전을 한다. '아뿔싸' 잠자리는 휘잉 날아가 버린다. 어린아이는 속도 엄청 상하지만 부끄럽기도 하다. 이 순간이 바로 진실함이다. 이명과 코골이는 절실함에서 나오는 진실이기도 하다.
▶️ 得(얻을 득)은 ❶회의문자로 두인변(彳; 걷다, 자축거리다)部와 貝(패; 화폐)와 寸(촌; 손)의 합자이다. 돈이나 물품을 손에 넣어 갖고 있는 일의 의미로, 옛 모양은 貝(패)와 又(우), 手(수)를 합(合)한 자형(字形)이다. ❷회의문자로 得자는 ‘얻다’나 ‘손에 넣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得자는 彳(조금 걸을 척)자와 貝(조개 패)자, 寸(마디 촌)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갑골문에 나온 得자를 보면 마노 조개를 쥐고 있는 모습만이 그려져 있었다. 마노 조개는 동남아 일부 지역에서 만 볼 수 있었기 때문에 한때 중국에서는 화폐로 쓰였었다. 그래서 갑골문에서의 得자는 화폐를 손에 쥐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재물을 획득했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금문에서는 여기에 彳자가 더해지면서 지금의 得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得(득)은 (1)소득(所得)이나 이득(利得) (2)정토에 왕생(往生)하여, 열반(涅槃)의 증과(證果)를 얻음 (3)풍수지리의 혈(穴), 또는 내명당(內明堂) 안에서 흐르는 물 등의 뜻으로 ①얻다 ②손에 넣다 ③만족하다 ④고맙게 여기다 ⑤깨닫다 ⑥알다 ⑦분명해지다 ⑧적합하다 ⑨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도달하다 ⑩이루어지다 ⑪만나다 ⑫탐하다, 탐내다 ⑬사로잡다 ⑭덕(德), 덕행(德行) ⑮이득(利得), 이익(利益)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얻을 획(獲),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잃을 상(喪), 잃을 실(失), 덜 손(損), 떨어질 락(落)이 있다. 용례로는 쓸 만한 사람을 얻음을 득인(得人),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꼭 알맞음을 득중(得中), 아들을 낳음을 득남(得男), 딸을 낳음을 득녀(得女), 얻음과 잃음을 득실(得失), 뜻을 이루어 자랑함을 득의(得意), 투표에서 표를 얻음을 득표(得票), 이익을 얻음을 득리(得利), 풍악이나 노래 등의 곡조가 썩 아름다운 지경에 이름을 득음(得音), 어떠한 시험이나 경기 등에서 점수를 얻음 또는 그 점수를 득점(得點), 목적을 달성함을 득달(得達), 참여할 수 있게 됨을 득참(得參), 아들을 낳음을 득남(得男), 도를 깨달음을 득도(得道), 바라던 것이 뜻대로 됨 또는 뜻을 이룸을 득지(得志), 수입이 되는 이익을 소득(所得), 남의 말이나 행동을 잘 알아차려 이해함을 납득(納得), 얻어 내거나 얻어 가짐을 획득(獲得), 여러 모로 설명하여 상대방이 납득할 수 있도록 잘 알아듣게 함을 설득(說得), 어떤 자격을 취하여 얻음을 취득(取得), 이익을 얻음을 이득(利得), 깊이 생각하여 이치를 깨달아 알아내는 것을 터득(攄得), 물건을 주워서 얻음을 습득(拾得), 사람으로써 알아야 할 것을 배운 후에는 잊지 않도록 노력하여야 함을 이르는 말을 득능막망(得能莫忘), 뜻한 것을 이루어 뽐내는 기색이 가득함을 일컫는 말을 득의만만(得意滿滿), 농나라를 얻고 나니 촉나라를 갖고 싶다는 뜻으로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득롱망촉(得隴望蜀), 얻은 도끼나 잃은 도끼나 매일반이라는 뜻으로 얻고 잃음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득부실부(得斧失斧), 얻은 것으로는 그 잃은 것을 메워 채우지 못한다는 뜻으로 손해가 됨을 일컫는 말을 득불보실(得不補失), 한 가지 일을 알면 다른 열 가지 일을 잊어버린다는 뜻으로 기억력이 좋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득일망십(得一忘十),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을 잊는다는 뜻으로 바라던 바를 이루고 나면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썼던 사물을 잊어버림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득어망전(得魚忘筌), 득실이 상반한다는 뜻으로 이로움과 해로움이 서로 마찬가지임을 일컫는 말을 득실상반(得失相半), 바라던 일이 이루어져서 우쭐거리며 뽐냄을 일컫는 말을 득의양양(得意揚揚), 뜻한 바를 이루어서 기쁜 표정이 얼굴에 가득 참을 일컫는 말을 득의만면(得意滿面), 좋은 때를 얻으면 태만함이 없이 근면하여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말을 득시무태(得時無怠), 바라던 일이 뜻대로 이루어질 좋은 기회를 일컫는 말을 득의지추(得意之秋), 부모의 뜻에 들고 부모의 뜻에 순종함을 일컫는 말을 득친순친(得親順親), 그 뜻을 펼 수가 있음 또는 그 뜻을 펴게 됨을 이르는 말을 득신기정(得伸其情), 사람으로써 알아야 할 것을 배운 후에는 잊지 않도록 노력하여야 함을 이르는 말을 득능막망(得能莫忘) 등에 쓰인다.
▶️ 失(잃을 실, 놓을 일)은 ❶형성문자이나 상형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뜻을 나타내는 재방변(扌=手; 손)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乙(을, 실)로 이루어졌다. 손에서 물건이 떨어져 나가다의 뜻이 전(轉)하여 잃다의 뜻이다. 또는 손발을 움직여 춤추다가 감각을 잃어버린 멍한 상태를 본뜬 글자라고도 한다. ❷상형문자로 失자는 ‘잃다’나 ‘달아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失자는 夫(지아비 부)자에 획이 하나 그어져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失자는 夫자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失자의 금문을 보면 手(손 수)자 옆에 획이 하나 그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손에서 무언가가 떨어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니 失자는 손에서 물건을 떨어트려 잃어버렸다는 의미에서 ‘잃다’라는 뜻을 갖게 된 글자이다. 그래서 失(실, 일)은 노름판에서 잃은 돈의 뜻으로 ①잃다, 잃어버리다 ②달아나다, 도망치다 ③남기다, 빠뜨리다 ④잘못 보다, 오인하다 ⑤틀어지다 ⑥가다, 떠나다 ⑦잘못하다, 그르치다 ⑧어긋나다 ⑨마음을 상하다 ⑩바꾸다 ⑪잘못, 허물 ⑫지나침 그리고 놓을 일의 경우는 ⓐ놓다(일) ⓑ놓아주다, 풀어놓다(일) ⓒ달아나다, 벗어나다(일) ⓓ즐기다, 좋아하다(일)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잃을 상(喪), 패할 패(敗),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얻을 득(得)이다. 용례로는 잘못하여 그르침을 실수(失手), 조치를 잘못함을 실조(失措), 자격을 잃음을 실격(失格), 희망을 잃어버림을 실망(失望), 시력을 잃음을 실명(失明), 일에 성공하지 못하고 망함을 실패(失敗), 효력을 잃음 실효(失效), 생업을 잃음을 실업(失業), 주의를 잘 하지 못하여 불을 냄을 실화(失火), 처지나 지위를 잃음을 실각(失脚), 언행이 예의에서 벗어남을 실례(失禮), 본 정신을 잃음을 실신(失神), 축나서 없어짐을 손실(損失), 종래 가지고 있던 기억이나 자격 등을 잃어버림을 상실(喪失), 조심을 하지 않거나 부주의로 저지른 잘못이나 실수를 과실(過失), 얻음과 잃음 또는 이익과 손해를 득실(得失), 불에 타 없어짐을 소실(燒失), 어디로 사라져 잃어버림을 소실(消失), 물건을 잃어버림을 분실(紛失), 떠내려가서 없어짐을 유실(流失), 말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실마치구(失馬治廐), 잃은 도끼나 얻은 도끼나 한가지라는 실부득부동(失斧得斧同), 정신에 이상이 생길 정도로 슬피 통곡함을 실성통곡(失性痛哭), 물건을 아무렇게나 써 버림을 실어공중(失於空中), 헛된 말로 말을 잃어버리고 터놓고 말을 하지 않아 사람을 잃는다는 실언실인(失言失人),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실우치구(失牛治廐) 등에 쓰인다.
▶️ 在(있을 재)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흙 토(土; 흙)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재(자; 才의 변형; 풀의 싹 모양)의 뜻이 합(合)하여 있다를 뜻한다. 흙으로 막아서 그치게 하다, 멈추어 있다, 살아 있다, 존재하다의 뜻이 있다. ❷회의문자로 在자는 ‘있다’, ‘존재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在자는 土(흙 토)자와 才(재주 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才(재주 재)자는 새싹이 새로 돋아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이전에는 才자가 ‘존재하다’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후에 才자가 ‘재주’와 관련된 뜻으로 쓰이게 되면서 금문에서는 여기에 土자를 더한 ‘존재하다’라는 뜻을 대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在(재)는 (1)돈이나 물건 따위의 쓰고 난 나머지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있다, 존재하다 ②찾다 ③보다, 살피다 ④안부를 묻다 ⑤제멋대로 하다 ⑥곳, 장소(場所) ⑦겨우, 가까스로 ⑧~에, 처소(處所)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있을 존(存), 있을 유(有)이다. 용례로는 학적이나 호적이나 병적 등에 적혀 있음을 재적(在籍), 창고에 쌓아둔 물건을 재고(在庫), 전부터 있어 내려옴을 재래(在來), 임금의 자리에 있음 또는 그 동안을 재위(在位), 직무에 있음 또는 그 자리에 있는 동안을 재임(在任), 직장에 근무하고 있음을 재직(在職), 학교에 다니는 중임을 재학(在學), 외국에 있음을 재외(在外), 집에 있음 또는 집에 있으면서 중처럼 도를 닦음을 재가(在家), 초야에 파묻혀 있음을 재야(在野), 고향에 있음을 재향(在鄕), 어떤 자리에 있는 물건을 재물(在物), 어느 직장에 근무하는 일을 재근(在勤), 한동안 머물러 있음을 재류(在留), 세상에 살아 있음을 재세(在世), 지금 이때를 현재(現在), 현존하여 있음 또는 있는 그것을 존재(存在), 속에 숨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음을 잠재(潛在),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있는 곳 또는 있는 바를 소재(所在), 현실에 존재함 또는 그것을 실재(實在), 한 곳에 머물러 있는 것 또는 직무 상으로 파견되어 그곳에 머물러 있는 것을 주재(駐在), 어떤 사물이나 범위의 안에 있음을 내재(內在), 여기저기 흩어져 있음을 산재(散在), 남아 있음을 잔재(殘在), 건강하게 잘 있음을 건재(健在), 이것과 저것의 사이에 끼어 있음을 개재(介在), 나타나 있음을 현재(顯在), 이 한번으로 담판을 짓는다는 뜻으로 단 한 번의 거사로 흥하거나 망하거나 끝장을 냄을 일컫는 말을 재차일거(在此一擧), 집에 있으면서 독서함을 이르는 말을 재가독서(在家讀書), 바삐 돌아 다니느라고 집에 있는 날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재가무일(在家無日), 어떠한 일에서 벗어나기 어려움을 이르는 말을 재소난면(在所難免), 자기가 소속된 바에 따라 처신을 하게 마련이라는 말을 재소자처(在所自處), 사람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음을 일컫는 말을 인명재각(人命在刻), 새가 높이 날 때는 바람은 그 밑에 있다는 뜻으로 높은 곳에 오름을 이르는 말을 풍사재하(風斯在下), 뜻이 천리에 있다는 뜻으로 뜻이 웅대함을 이르는 말을 지재천리(志在千里) 등에 쓰인다.
▶️ 我(나 아)는 ❶회의문자로 手(수)와 창 과(戈; 창, 무기)部를 합(合)한 글자라고 생각하였으나 옛 모양은 톱니 모양의 날이 붙은 무기(武器)인 듯하다. 나중에 발음(發音)이 같으므로 나, 자기의 뜻으로 쓰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我자는 ‘나’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我자는 톱니 모양의 날이 달린 창을 그린 것이다. 이것은 서유기(西遊記)에서 저팔계가 가지고 다니던 삼지창과도 같다. 我자는 이렇게 삼지창을 그린 것이지만 일찍이 ‘나’를 뜻하는 1인칭 대명사로 쓰이고 있다. 갑골문이 만들어졌던 은상(殷商) 시기에도 我자를 ‘나’라는 뜻으로 사용한 것을 보면 본래의 의미는 일찌감치 쓰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我자가 왜 ‘나’를 뜻하게 됐는지에 대한 명확한 해석은 없다. 다만 서로 같은 무기를 들고 싸웠다는 의미에서 ‘나’나 ‘우리’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는 추측만이 있을 뿐이다. 한자에는 余(나 여)나 吾(나 오), 朕(나 짐)자처럼 본래는 ‘나’와는 관계없던 글자들이 시기에 따라 자신을 뜻하는 글자로 쓰였었기 때문에 我자도 그러한 예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我(아)는 ①나 ②우리 ③외고집(자기의 생각을 굽히지 아니하는 일) ④나의 ⑤아집을 부리다 ⑥굶주리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나 오(吾),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저 피(彼)이다. 용례로는 소아에 집착함을 아집(我執), 나의 뜻을 아의(我意), 우리 나라를 아국(我國), 우리 여러 사람이나 우리들을 아등(我等), 우리 나라를 아방(我邦), 자기 의견에만 집착하는 잘못된 견해를 아견(我見), 우리 편 군대나 운동 경기 등에서 우리 편을 아군(我軍), 자기를 자랑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번뇌를 아만(我慢), 나에게 애착하는 번뇌를 아애(我愛), 자기의 이익을 아리(我利), 참 나가 있는 것으로 아는 잘못된 생각을 아상(我想), 자기 혼자만의 욕심을 아욕(我慾),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이나 관념을 자아(自我), 육체적인 나를 소아(小我), 남과 구별된 개인로서의 자아를 개아(個我), 저편과 우리편 또는 남과 자기를 피아(彼我), 스스로를 잊고 있음을 몰아(沒我), 어떤 사물에 마음을 빼앗겨 자기 자신을 잊음을 망아(忘我), 바깥 사물과 나를 물아(物我), 나 밖의 모든 것을 비아(非我), 자기의 존재를 인정하는 자아를 실아(實我), 자기의 이익만을 생각하여 행동함을 위아(爲我), 오직 내가 제일이라는 유아(唯我), 남이 자기를 따름을 응아(應我), 다른 사람과 자기를 인아(人我), 자기 논에만 물을 끌어 넣는다는 뜻으로 자기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행동함을 아전인수(我田引水), 내가 부를 노래를 사돈이 부른다는 속담의 한역으로 책망을 들을 사람이 도리어 큰소리를 침을 이르는 말을 아가사창(我歌査唱), 자신도 돌보지 못하는 형편이라는 뜻으로 후손이나 남을 걱정할 여력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아궁불열(我躬不閱), 이 세상에 나보다 존귀한 사람은 없다는 말을 유아독존(唯我獨尊), 자신의 존재를 완전히 잊고 흠뻑 취함을 무아도취(無我陶醉),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상을 자아주의(自我主義), 남 잡이가 제 잡이로 남을 해하려 하다가 도리어 자기가 해를 입는 다는 뜻의 속담을 착타착아(捉他捉我), 상대방인 저쪽은 그르고 나는 올바름을 피곡아직(彼曲我直), 자기의 생각이나 행위에 대하여 스스로 하는 비판을 자아비판(自我批判)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