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제가 타사이트에서 쓴 글인데 농구를 좋아하는 분들과 공유하고 싶어 다시 글을 이곳에 올렸습니다.아래 마침 포인트드롭존을 황성인이 구사했냐 신기성이 구사했냐 하는 논란도 잠재우고 싶고요.
다음은 1996년 중국 상해에서 벌어졌던 22세 이하 아시아 남자농구선수권대회 한국과 중국의 결승전 경기입니다.이 대회는 명칭이 후에 영맨대회로 바뀝니다.
이 경기는 2회대회 결승전이었는데 1회대회때는 중국이 불참했고 한국이 대만에 져서 준우승했는데,이 때 경기장소는 홍콩으로 대만은 심판의 편파판정을 등에 업고 한국에 승리합니다.
이 경기는 중국의 안방에서 남자 한국대표팀이 중국을 이기고 우승한 유일한 대회로 꼭 기억해두시기 바랍니다.
여자는 국가대표팀이 84년 상해 ABC때와 90년 북경 아시안게임에서 2번 중국을 이기고 중국의 안방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한국은 박한 총감독,최부영,최희암 코치 체제였으며,중국은 왕페이 감독,장빈 코치였습니다.
한국은 최부영 감독이 수비코치,최희암 감독이 공격코치로서 역할을 분담하였습니다.
한국의 스타팅 멤버는 신기성,강혁,양희승,김성철,서장훈
중국의 스타팅 멤버는 쥐웨이송,러우옌동,리난,왕셍(200),멍크바티어 입니다.
한국의 벤치멤버는 김택훈,추승균,조상현,윤영필,조우현,이은호,황성인 입니다.
전희철은 73년생으로 1살 많아 뽑을 수 없었고,현주엽은 부상으로 선발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서장훈과 멍크바티어가 점볼을 해서 한국이 볼을 따냅니다.
한국의 코칭 스탭은 준결승전까지 김택훈을 스타팅으로 기용했으나 김택훈이 준결승 사우디전에서 부상을 당해 누구를 그 자리에 기용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끝에 공격보다는 수비쪽에 치중하기 위해 강혁을 스타팅으로 기용합니다.
강혁은 대학와서 부쩍 키가 큰 선수이고 발이 빠른 선수라고 합니다.
서장훈의 3점라인 안쪽에서의 중거리슛으로 2:0으로 앞서 갑니다.
몇 분 지나서 한국은 강혁을 조우현으로,중국은 쥐웨이송에서 진리펑으로 선수를 교체합니다.
진리펑(189)이 중국의 포인트 가드인데,골밑에서 이 날 현란한 발놀림을 보여주었고,자기 득점도 어느정도 올리는 선수로서 저는 이 진리펑이 중국성인 대표팀의 포인트 가드자리를 맡을 것으로 예상했으나,성인대표팀에는 선발되지 못합니다.
진리펑은 1995년 한국이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렸던 만18세이하 청소년대회 중국과의 결승전도 중국의 포인트 가드로 뛰었다고 훗날 김성철 선수가 증언해 주기도 했습니다.
이날 중국팀에 96년 아틀란타 올림픽 대표팀에 소속되어 있는 선수는 3명으로 리난(196),왕즈즈,멍크바티어 등 3명이었습니다.왕즈즈는 준준결승전에서 발목을 다쳐 전반전에 기용이 안됩니다.
한국은 초반 8:7로 앞서 갔으나 이후 슛율이 저조해지면서 8:11로 끌려갑니다.
서장훈의 중거리슛으로 10:11이 됩니다.
중국의 파워포워드 왕셍(200)은 한국 골밑 근처에서 현란한 발놀림으로 레이업을 성공시킵니다.
왕셍도 중국의 성인대표팀에 선발될 것으로 저는 예상했으나 현재 선발이 안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파워포워드로 뛰기에는 신장이 200로 작아서 그런 것으로 추측됩니다.
한국의 베스트 5중 주목할 선수는 김성철(196)로 고등학교때는 센타였는데 대학에 와서 포워드로 전향했다고 합니다.1995년 마닐라 18세 이하 우승당시 주전입니다.
중국은 러우옌동에서 유윤카이(192)로 선수를 교체합니다.유윤카이도 이 날 외곽슛을 잘 적중시키는데 신장이 192밖에 안되어서 그런지 이 선수도 성인 대표팀에는 선발되지 못합니다.
유윤카이(192)는 과거 중국대표팀의 우칭롱이 연상되는 비슷한 스타일의 농구를 구사하는 선수였습니다.
한국은 서장훈이 멍크바티어를 제치고 골밑 득점을 올려 15:17로 따라갑니다.
당시 이 게임은 위성중계가 안되고 녹화방송을 며칠이 지나서 MBC에서 해 주었는데 MBC의 이도윤 PD선생님이 제가 간절하게 부탁드리니 해 주셔서 여기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개인적으로는 이도윤 PD선생님을 잘 모릅니다.
당시 녹화중계는 방열 경원대 교수님,박한 총감독님,최부영 감독님이 해설을 해주셨습니다.
당시 박한 감독님의 말씀은 중국은 분업화가 잘되는 팀이고 그것이 중국의 장점이라고 하셨습니다.
전반 5분경이 지나자 한국은 신기성을 황성인으로 중국은 왕셍(200)을 천자오빈(210)으로 교체합니다.
황성인은 이 때부터 선수교체없이 경기가 끝날 때까지 한국의 포인트 가드로서 쭉 뜁니다.
그러니까 중국은 멍크바티어(210).천자오빈(210)의 더블포스트 체제입니다.
서장훈이 이 두선수를 상대로 오늘 파울 관리를 잘하면서 두 선수를 압도합니다.이 경기를 보면서 저는 멍크바티어는 서장훈의 상대가 안된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한국은 점수가 뒤져가자 비장의 수비무기를 꺼냅니다.
포인트 드롭존입니다.중국전에 대비해 만들어낸 비장의 카드라고 합니다.
포인트 드롭존이란 포인트 가드인 황성인이 골라인을 따라 다니며 볼과 센타라인을 부지런히 왔다갔다하면서 센타쪽까지 깊숙한 지역까지 수비를 하는 것으로 황성인처럼 빠르고 센스가 있는 선수가 중책을 맡아야 합니다.
이 수비를 구사할 수 밖에 없었던 또 한가지 이유는 서장훈이 파울트러블에 일찌감치 걸려 서장훈의 수비부담을 줄여주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 날 황성인은 코칭스탭의 특명을 잘 수행합니다.이 때 양쪽 윙인 조우현,양희승의 움직임도 중요합니다.
한국은 양희승의 속공과 바스켓굿 보너스 원 샷의 성공으로 22:25로 따라 갑니다.
이 날 양희승은 100M주파기록 12초의 빠른 발로 속공을 몇 개 성공시킵니다.
양희승은 이 날 중국선수들에게 집중마크를 당해 득점이 준결승전까지의 평균득점 보다 못한 득점을 올리는데 그러나 중국은 양희승은 잘 수비하나,조우현이 한국의 슈터라는 사실을 모르고 수비를 게을리 하다가 후반전에 호되게 당합니다.
중국의 멍크바티어의 득점시 서장훈의 파울로 서장훈은 파울이 많아집니다.
서장훈의 이 때 파울이 몇개였는지 확실치 않으나 서장훈이 4파울에 먼저 걸리고 그 다음 멍크바티어가 4파울에 걸려 두 선수는 개인적으로도 시소게임을 합니다.
중국은 전반전내내 대인방어를 구사합니다.전반전은 중국이 31:34로 앞선가운데 마칩니다.
한국은 이 날 맨투맨,원 드리 원,포인트 드롭존 등 3개의 수비를 구사합니다.
후반전도 한국이 점볼을 따내고 공격권을 먼저 차지합니다.
중국은 이 날 미숙한 플레이를 보여주는데 키 큰 멍크바티어를 로포스트에서 움직이게 하지 않고,하이포스트에서 움직에게 하는데 이것은 한국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한국의 코칭스탭은 멍크바티어가 로포스트에서 움직이면 어떻게 하나 하고 걱정을 했는데 한국이 걱정하는 반대로 중국측에서 나오니 한국측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중국의 코칭스탭은 현역에서 막 은퇴한 왕페이,장빈으로 구성했는데 아마추어적인 감각으로 팀을 지휘한 것도 한국이 승리한 한가지 이유가 됩니다.
조우현의 가로채기에 이은 레이업슛으로 한국은 38:37로 역전에 성공하고 이 때부터 한번도 역전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김성철의 3점슛으로 41:37로 앞서 갑니다.
중국은 이 중요한 위기에서 패스미스도 저지릅니다.
황성인이 3점슛을 실패하자 서장훈은 공격리바운드를 잡고 득점을 올립니다.
자신보다 3센티미터 큰 멍크바티어와 천자오빈 틈에서 최선을 다해 점프해서 리바운드를 잡아낸 서장훈!
겉으로 보면 3점슛을 5개 퍼부은 조우현이 1등공신일지 몰라도 이런 서장훈의 플레이가 보이지 않는 승리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멍크바티어가 2점을 올리자 한국은 조우현이 첫번째 3점포를 작렬시킵니다.(46:43)
양희승은 전반처럼 중국의 패스를 가로채서 드라이브인 레이업을 성공시키는데 이 날 양희승의 스피드는 대단했습니다.
양희승은 중국의 패스를 가로채자마자 질풍같이 중국의 코트로 달려가서 드라이브인 레이업슛을 성공시킨 것입니다.
2005년 ABC대회 중국전 한국팀의 2번으로 기용해야 할 선수입니다.
속공과 외곽슛이 전부 다되는 선수입니다.
조우현의 3점슛이 또 작렬합니다.(50:43)
조우현은 95년 18세이하 마닐라 아시아 청소년 대회때 중국과의 결승전에서 맹활약해서 MVP상을 수상했는데 이 날도 날아 다녔습니다.
중앙대 입학때는 제2의 허재로도 관심을 모은 선수였고,중국킬러입니다.
또 조우현의 3점포가 터집니다.(53:43)
조우현은 중국 수비수가 볼 때는 따라 가지 않아도 될 거리라고 생각하고 거리를 두어 수비를 하면 여지없이 외곽슛을 작렬시킨 것입니다.양궁농구가 아니고 수비수가 붙지 않으니 던졌는데 다 성공시킨 것입니다.
한국벤치는 예선전과 준준결승,준결승에서 조우현을 거의 기용하지 않았는데 이래서 중국측에 노출이 안되었고 양희승만 따라 다니다가 중국수비는 볼일을 다 본 셈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날 김성철도 좋은 모습을 보여 주었는데 196센티미터에 몸무게 80kg으로 다소 마르다는 느낌을 주었는데 방열 교수님은 196정도되면 92kg정도가 적당하다는 조언도 해 주셨습니다.
김성철은 이날의 활약으로 1997년 부산 동아시안게임 성인국가대표에 뽑히게 됩니다.
서장훈은 4파울에 걸려서도 공수리바운드를 잘 잡아내 주었는데,점수가 앞선팀이 공격 리바운드를 잡아낸다는 것은 2점의 효과가 아니고 4점의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시간을 흘려 보낼 수도 있고....
중국은 후반내내 한국의 포인트 드롭존 수비를 깨지 못하고 고전했으며,한국은 이 수비가 잘되므로 계속 포인트 드롭존을 구사했습니다.
그리고 중국은 4파울에 걸린 서장훈에게 계속 몸싸움을 벌여 5파울 아웃을 시키지 못합니다.
한국팀이 연습기간이 짧았음에도 좋은 경기를 할 수있었던 것은 한국에서 대학대회가 많았고,농구대잔치에서 실업의 형들과 부딪히면서 기량을 연마한 덕택이라고 방열,박한 두 분께서 평가해 주셨습니다.
대학과 실업이 맞붙는 농구대잔치 시절로 돌아가기를 바랍니다.그 때가 지금보다 더 재미있었는데...
중국은 후반 7분여를 남기고 발목부상중인 왕즈즈(212)를 투입합니다.
왕즈즈는 이 날 신장에 비해 상당히 마른 모습을 보여 주었는데 완전성장이 안되어서 그런가 봅니다.
이 날 중국은 현 성인대표팀의 주 득점원인 리난(196)도 거의 풀로 뛰며 좋은 모습을 보여 주었으나 현재의 모습과 활약보다는 다소 미흡했습니다.현재 리난의 신장은 198이지만 당시는 196이었습니다.
조우현의 3점으로 65:51로 한국은 달아납니다.
중국도 유윤카이(192)의 3점슛으로 응수합니다.
러우옌동(190)의 3점이 다시 터져 65:57로 따라옵니다.
점수가 뒤져가는 중국이 외곽슛이 강한 한국에게 이 때부터 지역방어를 썼는데 이것은 이해가 가지않는 대목입니다.
오히려 더 전면 강압수비를 써야 하는데 방열,박한,최부영 3명의 해설위원께서도 이 대목은 이해가 안간다고 이구동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중국은 왕즈즈가 발목부상중임에도 7분남겨 놓고 나와 좋은 플레이를 보여 주었는데 이렇게 맹활약하는 왕즈즈를 왜 일찌기 기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왕즈즈는 근성이 없는 선수라고 제 개인적으로 평가합니다.
1997년 부산동아시안 게임때도 한국에 게임하러 왔다가 감기로 중국으로 돌아가 버린 전례도 있습니다.
중국은 65:59로 따라 붙을 즈음 뼈아픈 패스미스를 저지릅니다.
또 다시 조우현의 3점슛으로 68:59로 한국이 달아나고
중국은 유윤카이의 3점슛으로 응수합니다.(68:62)
서장훈의 2점 중거리슛으로 70:62
또 다시 유윤카이의 3점슛으로 70:65
후반 종료 2분이 남았습니다.
이 때 중국수비에 묶여 있던 양희승의 3점포가 작렬합니다.(73:65)
양희승으로는 이 날 첫 3점슛인데 이것이 승부처에서 터진것입니다
중국은 종료 2분을 남겨놓고 계속 지역방어를 고집하는데 정말 이해가 안되었습니다.
더 강압수비를 해도 이길까 말까 한데......
양희승의 자유투 2개로 75:65로 달아나고 결국 한국은 중국의 안방 상해에서 79:71로 중국을 격파하고 우승의 금자탑을 세웁니다.
이날 한국은 자유투 17개 중 16개를 성공시켜 94%의 성공율을 보여 주어 프리드로도 승리의 한요인이 되었습니다.
이 날 한국의 유학생들로 보이는 응원단이 만화가 주제가 마징가 제트를 열심히 목청높여 부른 것이 기억에 남으며 중국 관중은 이 날 한국관중이 응원의 소리를 높일 때 마다 야유를 퍼붓는 매너꽝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날 활약한 선수중에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벌어졌던 1995년 18세이하 청소년 선수권대회 중국과의 결승전에서 주전으로 활약한 선수가 많았는데 황성인,조우현,김성철이 그들입니다.
이들이 22세이하 대표팀에서도 손발을 맞춰 우승을 일궈낸 것입니다.
개인상수상현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도자상:박한 감독
득점상:양희승
베스트 5상:서장훈
포인트 가드상:신기성
이 날 승리의 원인은 조우현의 중장거리슛,코칭스탭의 포인트드롭존이란 수비를 잘 이행해준 황성인,리바운드 등 궂은 일을 도맡았던 김성철,멍크바티어와 천자오빈 등 두 210의 장신을 상대로 리바운드 잘 잡아주고(공격리바운드도 적극적으로 참여함) 4파울에 걸렸음에도 파울관리를 잘한 서장훈 등이 승리의 주역입니다.
저역시 주변인님 말씀대로 90년대 성인국가대표팀에서 문경은 뿐만 아니라 김영만,양희승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과거의 한 국가대표팀 감독님과도 대화해 보았는데 김영만을 문경은 대신 중국전에서 기용했어야 하지 않았냐고 질문드리니 김영만은 문경은보다 슛거리가 짧다고 생각해서 문경은을 기용했다고 하시더군요.
저도 김영만팬입니다만 문경은 대신 기용되었던 경기에서도 후웨이동 상대로 아무것도 못했죠.김영만의 수비도 자기보다 신장이 큰 후웨이동을 전혀 막지 못했고 공격에서도 국내선 가장 다양한 공격옵션을 갖췄다는 김영만이었지만 후웨이동한테 봉쇄를 당했구요.(하긴 후웨이동을 자유자재로 농락한건 허재뿐이었으니...)어차피 공격-수비가 전혀 안되는 상황이라면 차리리 슛거리가 길고 폭발력을 갖춘 문경은이 낫다고 생각한 모양인듯...김영만이나 문경은이나 중국 포워드진에게 똑같이 압도당한다고 봤을때 3점슛이라도 확실한 문경은이 메리트가 있는 모양이었죠.
마이클 요르단님 글 잘 읽었습니다.99년 ABC때 김영만과 후웨이동이 맞붙었는데 그 때 김영만은 심각한 무릎부상중이었습니다.그래서 대표팀에 합류하기 힘들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였고 교체멤버로 정재근까지 거론되었습니다.김영만이 몸이 정상적이었을때 후웨이동과 대결해 보았으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태클은 아닙니다.
아래 글에서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기분이 많이 안좋으셨나보네요..;; 중국을 이긴 경기가 쓰신 글의 포커스이긴 하지만, 이외에 결승에서 진 사실이나, 상대가 영맨 대표라는 것 또한 사실이죠. 논란이라 말씀하시기에 한말씀 드리자면, 결승은 잘 기억이 안나지만(결승에서 포인트 드롭존을 오래 사용하진 않은 것으로 기억합니다.), 준결승에서는 황성인이 스타팅으로 나와, 황성인에서 신기성으로 교체되며 포인트 드롭존을 사용했습니다. 서장훈 선수가 부진한 상황에서 상당히 득을 봤고요. 경기가 아닌 대회 전체라면 신기성 선수가 포인트 드롭존에 더 어울렸다고 생각합니다.(포인트 가드 상이 신기성이었군요.;;)
첫댓글 전 전부터 양희승을 백업으로라도 기용해야된다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죠. 속공+외곽.. 어느정도 장신. 뭐 .. 지금은 나이도 있어서 조금 힘들겠지만 말이죠. 조우현은 그때와 지금의 모습이 차이가 있는것 같습니다.
조우현은 확실히 기억은 나진 않지만 제2의 허재 소리를 들을만햇죠 단순히 외각만 던지던 선수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슬래셔 기질이 출중한 선수였죠. 어느 국제대횐지는 몰라도 그 대회에서 상대팀 감독들이 상당히 견제한 선수가 조우현으로 알고있습니다.
황성인 조우현 김성철.. 공교롭게도 세 선수다 전자랜드 소속이네요.. ㅠㅠ
저역시 주변인님 말씀대로 90년대 성인국가대표팀에서 문경은 뿐만 아니라 김영만,양희승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과거의 한 국가대표팀 감독님과도 대화해 보았는데 김영만을 문경은 대신 중국전에서 기용했어야 하지 않았냐고 질문드리니 김영만은 문경은보다 슛거리가 짧다고 생각해서 문경은을 기용했다고 하시더군요.
저도 김영만팬입니다만 문경은 대신 기용되었던 경기에서도 후웨이동 상대로 아무것도 못했죠.김영만의 수비도 자기보다 신장이 큰 후웨이동을 전혀 막지 못했고 공격에서도 국내선 가장 다양한 공격옵션을 갖췄다는 김영만이었지만 후웨이동한테 봉쇄를 당했구요.(하긴 후웨이동을 자유자재로 농락한건 허재뿐이었으니...)어차피 공격-수비가 전혀 안되는 상황이라면 차리리 슛거리가 길고 폭발력을 갖춘 문경은이 낫다고 생각한 모양인듯...김영만이나 문경은이나 중국 포워드진에게 똑같이 압도당한다고 봤을때 3점슛이라도 확실한 문경은이 메리트가 있는 모양이었죠.
마이클 요르단님 글 잘 읽었습니다.99년 ABC때 김영만과 후웨이동이 맞붙었는데 그 때 김영만은 심각한 무릎부상중이었습니다.그래서 대표팀에 합류하기 힘들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였고 교체멤버로 정재근까지 거론되었습니다.김영만이 몸이 정상적이었을때 후웨이동과 대결해 보았으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태클은 아닙니다.
지금 생각해도 95학번 선수들 굉장했었습니다...
한경기를 다 본거 같군요. 잘 봤습니다. 그때만큼 잘하는 선수도 있지만 제 기량을 펼치지 못하는 선수도 있군요. 용병만 없어도 한몫했을 선수도 있고, 국내선수들고 더 호흡이 잘맞는 선수도 있나봅니다. 아무튼 아쉬움은 조금 남는군요.
양희승 선수는 쓸때가 많은 선수인데..아직 양희승선수보다 더 큰 슛터가 안 나왔단건만 해도 좋은 선수란걸 알수있죠...조우현 선수는 고교때 엄청난 선수였단건 익히 들었죠...고교 랭킹에서 따로 취급할정도로..
아래 글에서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기분이 많이 안좋으셨나보네요..;; 중국을 이긴 경기가 쓰신 글의 포커스이긴 하지만, 이외에 결승에서 진 사실이나, 상대가 영맨 대표라는 것 또한 사실이죠. 논란이라 말씀하시기에 한말씀 드리자면, 결승은 잘 기억이 안나지만(결승에서 포인트 드롭존을 오래 사용하진 않은 것으로 기억합니다.), 준결승에서는 황성인이 스타팅으로 나와, 황성인에서 신기성으로 교체되며 포인트 드롭존을 사용했습니다. 서장훈 선수가 부진한 상황에서 상당히 득을 봤고요. 경기가 아닌 대회 전체라면 신기성 선수가 포인트 드롭존에 더 어울렸다고 생각합니다.(포인트 가드 상이 신기성이었군요.;;)
기분이 좋지 않기는요.별 말씀을... 준결승은 한국에서 녹화중계가 안 되었는데 현지에서 보셨나 보네요.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