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통카드의 원조, 마패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교통수단인 자동차, 기차 등을 이용하기 위해 돈을 지불하고 각각의 승차표를 구입해왔으나 현금이 카드로 대체되는 것과 궤를 같이하여 교통운임 역시 교통카드나 T-money 등으로 불리는 수단으로 통합되는 추세이다.
카드 한 장 달랑 들고 나가도 전 세계 어느 곳으로나 갈 수 있는 것이 더 이상 영화 속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이 똑똑한 시스템은 최근 지하철이나 버스와 같이 다른 종류의 교통수단을 갈아탈 때 출발지에서 도착지점까지의 총 이동거리에 대한 운임만을 계산함으로써 환승으로 인한 중복지불의 부담까지 덜어주고 있다.
해마다 교통시스템의 놀라운 진화는 그 방향과 한계를 가늠하기조차 힘들 정도이다.
과거로 돌아가서 역의 이용자들을 보자. 지금의 교통 환승 시스템에 탄복을 하지만 최단시간에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는 도로망과 환승역, 역마를 갖춘 「 역제 」는 이미 삼국시대부터 시작되었다.
중앙정부에서 지방으로 파견된 관리나 왕족들은 마패라는 일종의 환승용 교통카드를 들고 가는 역마다 내밀어 새 말을 갈아탈 수 있었다. 말 징발권인 마패에는 말의 수가 한 마리에서 열 마리까지 다양하였다고 하며 기록에는 왕이 십마패, 영의정이 칠마패를 사용한다고 하나 실제 남아있는 것 중에서 가장 많은 말의 수는 오마패의 다섯 마리이다.
참고로 조선시대 기세가 하늘을 찔렀던 암행어사들도 주로 이마패에서 삼마패를 발급 받아 다녔다고 한다. 이렇게 관리들만 사용할 수 있었던 마패를 훔치거나 복제해서 역마를 이용하려 했던 자는 극형에 가까운 벌을 받았다고 하니 지금 무임승차를 하다 적발될 경우 운임의 30배를 벌금으로 부과하는 처벌이 애교스러울 정도이다.
신분에 따라 역마에 접근할 수 있었던 계층이 확연했던 옛날에 비해 지금은 교통수단의 이용 자체에 대해 별다른 제한을 두지 않으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겨우 700여개의 마패로 전국의 역제를 이용했던 조선시대와 달리 현대의 마패인 이 교통카드는 어린이부터 거의 모든 국민이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 개인의 부(富) 」라는 또 다른 변수가 존재하긴 하지만 가끔은 오마패 쯤에 해당하는 티켓을 구입해 최고급 열차 KTX를 타는 것도 어렵지 않은 일이다.
놋쇠를 틀에 넣고 부어 만든 지름 9㎝ 내외의 이 원형 패가 역시 오늘 날의 교통카드 못지않은 다양한 기능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우리가 암행어사의 전유물처럼 여기는 마패는 고전소설에서 『 암행어사 출두야 』라는 고함과 함께 등장하곤 하는데 그 때 육모방망이를 들고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이들이 역졸이다.
마패는 역에서 말 뿐 아니라 인력인 역졸까지 동원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문서에 도장 대신 마패를 찍었던 것으로 보아 관리라는 신분과 공적인 효력을 증명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 교통카드가 단순한 기능에서 점차 신분증, 신용카드 등 다중기능이 결합되는 양상을 보이는 것도 결코 갑자기 등장한 아이디어는 아닌 것이다.
마사박물관 학예사 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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