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시와 늪(시와늪문인협회, 시와늪문학관)

칠석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에 도착했던 닐 암스트롱(Armstrong, Neil Alden)과 에드윈 올드린 주니어(Edwin Eugene Aldrin, Jr)가 달 표면에 첫발을 내딛던 순간(한국시간 1969년 7월 21일) 까까머리 훈련병*이었던 내게는 공들여 쌓았던 상상의 세계 한 구석이 순식간에 맥없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당혹스러운 심정이었다. 그때까지 달나라 계수나무 아래에는 토끼가 절구에 곡식을 찧는다는 믿음이 고스란히 뇌리에 각인되어 있었다. 그 아름다운 상상과 꿈이 한낱 허상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과학의 발달로 순식간에 무참하게 박살난 꼴이었다.   어린 시절 여름날 저녁이면 어머니 무릎을 베고 잠들기 전에 수없이 되풀이해서 들었던 달나라의 토끼 얘기를 비롯하여 견우와 직녀의 칠석 얘기는 상상의 나래를 무한정으로 머나먼 우주로 이끌어 주던 길라잡이이었으며 닿을 수 없었던 하늘나라를 동경하게 부추기던 강력한 촉진제였다. 지난 시절을 회상하며 칠석이 코앞에 다가온 지금 꿈의 여행을 나선다.   음력 7월 7일은 칠석(七夕)으로 견우와 직녀의 애틋한 사랑의 전설을 간직한 사연 때문인지 하늘과 땅을 아우르는 아름다운 풍속이 전해진다. 누구나 잘 아는 바와 같이 견우(견우성은 독수리자리의 알타이르(altair))와 직녀(직녀성은 거문고자리의 베가(vega))에 대한 전설은 이렇다. 하늘나라 은하수 건너편에 살던 목동인 견우는 심성이 착하고 부지런한 젊은이로 알려져 옥황상제가 자기 손녀와 혼인을 시켰다. 그런데 사랑에 빠진 채 견우와 직녀는 생업이었던 농사일과 베를 짜는 길쌈을 게을리 해서 천계가 혼란스러워지고 백성들은 천재와 기근으로 허덕이게 만드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혐의를 부정할 수 없는 벼랑 끝으로 몰렸다. 이에 골머리를 앓던 옥황상제는 죗값을 묻기 위해 강력한 징벌로 두 사람을 은하수 양 끝에 멀리 떨어져 살도록 엄명했다.   지엄한 황제의 명 때문에 두 사람은 묘수를 찾을 길이 없었다. 이 애처로운 사연을 알게 된 지상의 까마귀와 까치가 칠석날 밤에 하늘로 올라가서 다리를 만들었는데, 이를 오작교(烏鵲橋)라고 불렀다. 이렇게 까마귀와 까치가 만든 다리를 통해 견우와 직녀가 일 년에 한 번 만났다가 다시 헤어졌다. 이 때문일까. 칠석 무렵이면 모든 까마귀와 까치는 하늘나라로 오작교 만들러 올라갔기 때문에 지상에는 늙고 병들어 하늘까지 날지 못하는 무리만 남았다고 한다. 오작교를 놓던 멀쩡한 그들도 얼마나 고되고 힘이 들었던지 칠석이 지나면 모든 까마귀와 까치의 머리가 벗겨졌다는 얘기이다. 오작교를 놓기 위해 무거운 돌을 머리에 이고 다녔기 때문이다. 애끓는 연인들의 가슴시린 만남을 문학적으로 아름답게 나타낸 표현일까. 칠석 전후에 내리는 비를 ‘수레를 씻은 물’이 내리는 비라는 뜻으로 세차우(洗車雨)라고 호칭된다. 이는 견우와 직녀가 타고 갈 수레를 씻은 물이 지상에 비로 내린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고 당일 비가 내리면 ‘기쁨의 눈물’이고, 이튿날 내리면 헤어지면서 흘리는 ‘슬픔의 눈물’로서, ‘눈물이 흘러 지상으로 내린 비’라는 뜻에서 쇄루우(灑淚雨)라고 부르기도 한다.   전래하는 모든 속절(俗節)은 나름대로 고유한 풍습을 지니고 있다. 여기서 칠석에 행해지던 주요한 몇 가지를 만난다.   우리 조상들은 칠석을 큰 명절로 여겨 그에 걸 맞는 행사를 주관했던 것 같다. 고려 공민왕 시절에는 왕이 직접 견우성과 직녀성에 제를 지내는 한편 문무백관에게 녹을 내렸다는 기록이 보인다. 그런가하면 조선시대는 궁중에서 잔치를 베풀고 선비들에게 ‘절일제(節日製)*’라는 과거를 시행하여 유생들의 사기를 북돋기도 했다. ‘길쌈을 잘하게 해달라고 기원하던 습속’이다. 옛날 중국의 한나라 때부터 유래했다는 ‘걸교(乞巧)와 유사한 습속’이다. 한나라 시절 칠석날 밤이 되면 궁이나 가정의 부녀자들이 바느질감과 과일을 마당에 차려 놓고 바느질 솜씨가 뛰어나게 나아지도록 해 달라던 기원을 ‘걸교’라고 했다. 이 풍습이 당대에 이르러 여러 주변국에 전파됐다는 전언이다. ‘걸교’라는 습속이 나름대로 변형되면서 우리의 칠석에 대표적인 풍속 중에 하나로 자리 잡았다는 설이 보인다. 그 내용은 이렇다. 칠석날 새벽에 마당에 한 해 살이 과일인 오이나 참외 등을 차리거나,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 놓고 길쌈을 잘할 수 있는 재주를 달라고 빌었다. 이 같은 기원은 직녀성이 길쌈을 관장하는 신이거나 그에 버금가는 절대적인 존재라는 믿음에서 비롯되었지 싶다.   ‘포쇄(曝曬)와 포의(曝衣)와 칠석 물맞이’ 습속이다. 먼저 ‘포쇄’는 장마 동안 눅눅해지거나 곰팡이가 핀 책을 볕에 말리는 지혜로운 행동이다. 그리고 ‘포의’는 여름 내내 옷장이나 방안 구석에 보관하던 옷을 좋은 햇볕에 내 말림으로써 습기 때문에 썩거나 좀이 슬지 않도록 하는 볕을 쪼이던 습속이다. 그런가하면 ‘칠석 물맞이’는 칠석날을 맞이하여 이름난 약수터나 경관이 빼어난 폭포를 찾아가 목욕하던 습속을 말하며, 이날 내리는 빗물을 정갈하게 받아 두었다가 목욕을 하면 피부병이나 땀띠에 좋다는 속설을 곧이곧대로 믿고 그대로 따르기도 했다.   ‘시암제’와 ‘칠성제’가 있었다. 우선 호남지방에서 개별 가정이나 마을 공동 우물을 깨끗이 퍼내고 청결하게 청소를 한 다음에 시루떡을 우물 옆에 차려놓고 지내던 제사를 ‘시암제’라고 했다. 그런가하면 제주도에서 칠석날 밤에 제상을 차려놓고 명과 복을 기원하는 풍습이 전래하는데, 이를 ‘칠성제’라고 불렀다.   칠석의 절식(節食)으로는 밀국수와 밀전병이 대표적으로, 이를 먹으며 집안의 평안을 기원했다. 예로부터 밀가루 음식은 찬바람이 일기 시작하면 밀 냄새가 난다며, 밀가루 음식의 제 맛을 음미하여 먹을 수 있는 마지막 시기가 칠석이라고 진단했다.   우리의 풍습에 따른 명절이 많다. 하지만 남녀의 절절한 사랑을 바탕으로 하는 날은 유일하다. 사랑이나 인륜보다 물질적인 충족 여부가 결혼의 전제조건이 된 오늘의 관점에서 견우와 직녀 사이 순수한 사랑의 참뜻을 되새겨 봄은 결코 과거로의 퇴행이 아니리라고 단언한다.   =========   * 나는 친구들이 모두 군 복무를 마쳤을 무렵에 뒤늦게 입대하여(1969년 6월 1일), 인간이 달에 첫발을 내딛던 역사적인 날 충청북도 증평에 자리한 육군의 향토사단(37사단) 신병교육대에서 교육 중이던 훈련병이었다.   * 절일제(節日製) : 조선 시대 성균관과 지방의 유생을 대상으로 명절인 인일절(人日節 : 1월 7일)ㆍ상사절(上巳節 : 3월 3일)ㆍ칠석절(七夕節 : 7월 7일)ㆍ중양절(重陽節 : 9월 9일)에 실시한 과거. 의정부, 육조 등의 당상관이 성균관에서 제술(製述)로서 인재를 뽑았다.   2011년 8월 1일 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