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일(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사랑 안에 머물기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이 가장 큰 계명이다. 나의 이웃사랑은 나의 하느님 사랑의 표현이다. 이웃사랑은 그를 좋아함이라기보다는 그에게 잘해주고, 도와주고, 약점과 결점을 덮어주고, 그와 함께 있어 불편함을 견딤이다. 그리고 너무 어려워서 불가능해 보이는 것, 그를 용서함이다.
예수님이 직접 가르쳐주신 주님의 기도는 사람이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다. 그래서 그것은 온통 청원이다. 그중에 청원이 아닌 게 하나 있는데, ‘나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겠다는 결심이 그것이다. 기도문에는 이웃을 용서함이 하느님께 용서받기 위한 조건처럼 되어 있는데 이게 만일 사실이라면 우리 가운데 용서받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우리는 율법을 완벽하게 지켜서가 아니라 무한한 사랑과 자비를 베푸시는 하느님을 믿어서 구원된다. 그런데 이 믿음이란 게 용서보다 더 어려운 거 같다. 용서함이 어렵기는 해도 불가능한 건 아니다. 반면에 하느님의 그런 사랑과 자비는 이 세상에서 경험할 수 없어서 믿음이 쉬워 보여도 막상 내 믿음을 들여다보면 믿지 않고 믿지 못하고 있다. ‘정말 그럴까? 아니면 어떻게 하지?’ 하면서 말이다.
더 많은 지식이나 경험이 아니라 더 넓은 이해와 더 큰 인내를 갖기를 바란다. 때론 하느님 사랑이 추상적이고 허공을 껴안는 거 같고, 기만적인 자기만족인 것 같다. 그런데 이웃사랑은 현실이고 사실이다. 그것은 온몸을 뜨겁게 한다, 좋아서 그리고 싫어서. 사랑은 순종이다. 유언이 내 삶의 변하지 않는 한 지침이 되는 거처럼 말이다. 십자고상의 축 처진 예수님 몸은 당신의 완전한 하느님 사랑이고 하느님의 변하지 않는 사랑의 증거다. 예수님은 우리가 바로 그 사랑 안에 머물기를 바라신다. 있는 힘을 다해 사랑의 계명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잘 지키지 못해도 낙담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다시 시작한다. 그렇게 하느님 안에서 산다.
예수님, 외로운 사람끼리 서로 기대며 삽니다. 기대고 또 어깨를 빌려줍니다. 이는 제가 영원히 살 곳이 따로 있고, 지금 이미 그곳에 살고 있음을 알게 해줍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엄마가 없는 사람들, 엄마의 품과 끝없는 지지를 구하는 이들에게 진정한 엄마가 되어주소서. 아멘.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