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언덕 위 항구를 바라보는 요새
여수의 바다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바다의 모습과는 좀 다르다.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 대신, 바다 위로 불쑥불쑥 튀어나와 있는 수많은 섬이 있다. 앞뒤로 겹친 섬들의 실루엣이 여수 시내 뒤편 산자락들과 맥락을 같이하여, 마치 섬과 산이 함께 바다를 살포시 끌어안은 것 같은 형상이다. 그 사이로 돌산도와 육지를 잇는 돌산대교와 거북선대교가 있고, 그 위로 해상케이블카가 하늘을 가로지른다. 항구 도시 여수의 풍경은 다채로운 곡선으로 가득 차 있다.
포트앤포트 수영장에서 바라본 여수 시내의 모습
포트앤포트 너머로 보이는 여수의 바다와 섬들
포트앤포트의 여러 건물들이 겹쳐 하나의 성벽처럼 보이는 모습
이러한 여수의 도심과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돌산도의 꼭대기에 우뚝 솟은 건축물이 있다. 비정형의 노출콘크리트 건물들이 성벽처럼 이어져 있어서 요새와 항구라는 뜻의 포트앤포트(Fort&Port)라고 이름 붙인 숙박시설이다. 포트앤포트는 국내외에서 많은 상을 받은 곽희수 건축가의 새로운 작품으로, 비슷한 듯 다른 3채의 건물로 이뤄져 있고 각 건물 객실에는 각기 다른 여수의 풍경을 담았다.
여수 하늘을 마주 보는 스카이포트
본관 역할을 하는 스카이포트의 정면
콘크리트의 선과 면이 교차하고 있는 스카이포트의 입면
포트앤포트의 중심에 높게 솟은 건물은 ‘스카이포트’로, 로비와 카페, 레스토랑과 인피니티 풀 등 모든 편의시설이 모여 있다. 체크인이 이곳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스카이포트의 외관이 포트앤포트의 첫인상이자 대표 이미지가 된다.
돌출된 발코니를 활용해 콘크리트 패턴을 만들어 낸 모습
스카이포트의 외관은 콘크리트로 그린 선과 면의 만남이다. 콘크리트의 굵직한 선이 주차장의 담장부터 시작해 건물의 1층과 연결되고, 건물의 층과 층을 감싸며 상승한다. 땅에서 이어진 선들이 눈길을 사로잡아 선을 따라 눈을 움직이다 보면 결국 스카이포트에 도착하고 외관을 전체적으로 감상하게 한다. 또한 층과 층 사이에 ㄷ 혹은 ㅁ 모양으로 돌출된 부분이 있는데, 이는 객실에서 보는 풍경을 기대하게 만든다. 도심의 건물에서 볼 수 있는 창문과 벽의 일정한 반복과는 다르게, 스카이포트에서는 각 객실의 발코니를 적극 활용하여 독창적인 콘크리트 패턴을 그려냈다.
스카이포트의 최상층에 자리한 인피니티풀
여수 도심의 풍경 옆으로 자리한 인피니트풀 선베드
스카이포트의 최상층에는 여수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인피니티풀이 있다. 인피니티풀을 앉힌 위치가 건축적으로 조금 특이한데, 건축가는 포트앤포트가 자리 잡은 땅의 형상을 영리하고 전략적으로 이용했다.
일반적으로 수영장은 물의 무게로 인해 건물에 큰 부담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수영장들은 하중을 처리하기 쉬운 지하에 있었다. 그러나 수면의 끝이 보이지 않는 인피니티풀이 유행하며 수영장을 옥상에 설계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이런 배치는 하중이 커지기 때문에 더 크고 튼튼한 구조를 구축해야만 한다.
건물 옆으로 지형을 활용하여 인피니티풀이 위치한다
건물과 이어진 인피니티풀의 모습은 노아의 방주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건물 옆에 건물만큼이나 높은 언덕이 있다면, 그래서 수영장을 건물 바로 옆 언덕에 올리면 어떨까. 건축가의 영리함이 이럴 때 빛을 발한다. 스카이포트는 인피니티풀을 언덕 위에 올려 하중을 덜어내고 건물이 팔을 뻗어 언덕에 걸쳐놓은 것처럼 만들어 전체 건물을 효율적인 구조로 설계했다. 상층부에서 좌우로 훌쩍 길어진 건물은 마치 산 위에 올라탄 노아의 방주처럼 보이기도 한다. 스카이포트 상층부에 넓어진 공간에서는 레스토랑과 인피니티풀, 반대편에 있는 거대한 스크린을 더해 수영뿐 아니라 공연이나 파티 등의 다양한 이벤트가 가능하다.
영화, 공연, 파티 등의 용도로 활용되는 인피니티풀
깊숙한 골짜기 속 하이엔드빌라
하이엔드빌라는 스카이포트 뒷면, 별도의 동선으로 이어진다
스카이포트 건물에서 하이엔드빌라로 이어지는 길
하이엔드빌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갈 수 있다
언덕 위 눈에 띄게 높은 스카이포트와 대비되게, 다른 두 건물은 쉽게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특히 하이엔드빌라는 스카이포트의 1층보다도 더 아래에 있다. 차를 다시 타고 내리막길을 내려가거나, 아니면 스카이포트 뒤편의 통로를 통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야 한다.
바다 방향에서 바라본 하이엔드빌라의 다양한 테라스들
하이엔드빌라는 여러 개의 콘크리트 박스가 겹쳐 있는 모양이다
골짜기처럼 콘크리트박스 사이로 동선이 이어지고, 그 뒤로 여수 시내가 보인다
보물 상자를 땅속 깊이 묻어놓은 느낌이다. 절벽 끝에 마을을 만든다면 이런 모습일까. 단단한 콘크리트 박스들을 어슷하게 쌓고 뭉쳐 3층 건물로 만들었다. 객실로 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는데, 묵직한 콘크리트 벽들이 액자와 같은 역할을 하며 여수 시내와 바다를 그림처럼 보여준다. 하이엔드빌라는 언뜻 땅속에 묻힌 것처럼 보이지만, 내리막의 산자락을 이용해 건축했기 때문에 3개 층 모두 바다를 향해 열려 있다.
거실과 주방은 계단을 활용해 구분했다
침실과 거실을 높낮이로 구분하고 있다
하이엔드빌라의 객실들은 높은 층고를 이용하여 벽을 지우고 높낮이로 공간을 구분했다. 한 객실은 침실과 거실을 분리하기 위해 반 층 정도 높이를 다르게 만들었고, 또 다른 객실은 주방과 거실의 높이를 다르게 했다. 다양한 높낮이를 가진 객실은 영역을 구분하면서도 탁 트인 시야를 확보하고, 넓은 면적을 지루하지 않게 한다.
스위밍스파에 몸을 담그면 여수 바다의 풍경을 즐길 수 있다
넓은 면적과 커다란 스위밍스파로 쾌적하게 즐길 수 있는 테라스
하이엔드빌라는 욕조를 외부 테라스에 설치했다. 욕조라고 해도 길이 5.3미터의 스위밍스파는 작은 수영장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산자락 아래로 여수의 도심과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스위밍스파에서 가족이나 연인 혹은 친구와 함께 한가롭고 여유로운 휴식을 만끽할 수 있다.
바다와 영화를 함께 바라보는 마리스
스카이포트 정면 주차장 옆으로, 잘 보이지 않지만 아래로 내려가는 외부 계단이 있다. 숨겨져 있는 건물, 마리스로 통하는 입구다. 계단을 한 층 정도 내려가면 출입문이 나오고, 출입문을 나오면 아담한 테라스로 진입하게 된다.
복층 구조인 마리스의 객실들은 위층에 침실, 아래층에 거실과 주방 그리고 화장실이 있다. 하이엔드빌라와 마찬가지로, 마치 지하로 내려간 것처럼 느껴지지만 출입문을 열면 반기는 것은 푸릇푸릇한 돌산도의 풍경이다. 객실 아래층, 위층 모두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테라스를 가지고 있고, 두 개 층의 테라스는 서로 다른 역할을 한다. 상층 테라스는 객실로 진입하기 전 투숙객을 환영하는 마당의 역할을 하고, 하층 테라스는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며 머무는 정원이 된다.
콘크리트 벽이 쳐져 있는 마리스의 테라스. 콘크리트 벽은 빔 프로젝트의 스크린이 된다
외부로 활짝 열려 있는 하이엔드빌라의 테라스와는 다르게, 마리스의 거실과 연결된 테라스는 아늑한 느낌이 강하다. 가운데 구멍이 뚫린 벽돌로 난간을 대신하고, 테라스 중간에는 콘크리트 벽을 높게 쌓았다. 처음엔 풍경을 가리는 콘크리트 벽이 의아했지만, 저녁이 되어 그 용도를 깨달을 수 있었다. 마리스의 천장에는 빔프로젝터가 설치되어 있어 유리창 너머로 TV와 연결된 빔이 스위밍스파 앞 콘크리트 벽에 쏘아지고, 테라스는 그 자체로 작은 영화관이 된다. 저녁을 먹으며 혹은 커다란 스위밍스파에 몸을 뉘고 영화를 감상하는 것은 여수의 풍경을 내려다보는 것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여수에서의 온전한 하루를 지켜주는 곳
포트앤포트의 세 건물이 보이는 항공 사진. 각기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서로의 풍경을 해치지 않는다
중세시대 요새는 전쟁 시 적군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해 높은 산 위에 자리 잡았고, 적의 진입을 막기 위해 높은 벽을 쌓았다. 포트앤포트는 마치 현대에 등장한 콘크리트 요새처럼 여수의 풍경을 한눈에 감상하게 한다. 또한 도심에서 노출되는 소음과 공해를 차단하고 여유롭고 평온한 하루를 온전히 지켜준다.
※ 포트앤포트
- 주소 : 전라남도 여수시 백초길 28-52
- 문의 : 010-8840-6777
- 홈페이지 : http://fortnport.com/
글, 사진 : 김선아(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23년 10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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