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혁명, 목숨을 건 최후의 혈전에서
어떤 의병장 못지않게 제 몫을 해낸 청소년들의 이야기
우리 역사 속에는 시대의 전환을 맞을 때마다 앞장선 영웅들, 그리고 그 곁에서 함께 싸우고 이름 없이 죽어 간 수많은 이가 있다. 그중에서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당당히 싸운 청소년들이 있다. 이러한 청소년들의 삶에 주목한 안오일 작가가 동학혁명 마지막 혈전이라 할 수 있는 장흥 석대들 전투를 배경으로, 청소년 역사소설 《녹두밭의 은하수》를 출간했다.
1894년 전봉준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동학혁명은 전라도 고부 군수 조병갑의 착취와 동학교도 탄압에 대한 불만이 도화선이 되어 일어났다. 이는 조선 봉건사회의 억압적인 구조에 맞선 농민운동으로 확대되었으나 청나라와 일본 군대가 들어와 진압하면서 실패에 이르고 말았다. 그리고 이후 일본 세력이 우리나라에 더 깊이 침투하게 되었다.
이토록 아픈 역사 속에서 고통을 겪고, 갈등하고, 결국 온몸을 던져 헌신한 용감한 소년 소녀들의 이야기. 《녹두밭의 은하수》에서 담아낸 이들의 이야기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성장시키고 더 좋은 세상을 꿈꾸게 하는 힘이 되어 줄 것이다.
“파도가 일고 바람이 분다고 겁먹지 마라.
절대로 피하지 마라. 거스르려고도 하지 마라.
가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절실함이 있다면
파도와 바람이 방향을 잡아 줄 것이다.” _196~197쪽
《녹두밭의 은하수》에는 소꿉친구 네 명이 나온다. 뱃사공 탄은 아버지를 대신해 일하며 작가의 꿈을 키우는 열네 살 소년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여의고, 석대들 전투를 앞두고 아버지마저 농민군으로 떠나면서 할머니와 어린 동생 준과 함께 힘겹게 살아간다. 탄과 가장 친한 친구이며 무예가 뛰어난 설홍은 동학 접주인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아 ‘절대 부끄럽게 살지 않겠다’며 남장을 하고 농민군으로 간다. 이윽고 설홍은 어린 나이에도 탁월한 실력을 인정받아 접주가 되어 농민군을 이끌게 된다. 손재주가 좋고 셈이 빠른 진구는, 석대들 전투 이후 탄의 아버지와 설홍의 소식을 알아보기 위해 친구들과 형을 만나러 간다. 진구의 형이 보부상이자 농민군 쪽 중간 연락책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구와 만나기도 전에 진구의 형은 토벌대에 발각되고, 소년들은 진구의 형을 묻어주고 돌아온다. 돌아온 소년 중 집이 약방인 희성은 숙부를 따라 부상당한 농민군을 치료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 곁을 떠난 아버지와 친구들을 원망하면서도 걱정하던 탄은 점점 더 그들을 이해하고 그리워하고, 마침내 자신이 어떠한 삶을 살 것인지 결단하는데…….
거친 땅에서도 단단하게 잘 자라는 녹두를 보며, 녹두밭보다 척박한 ‘녹두밭 윗머리’ 같은 험한 세상을 잘 헤쳐 나가자고 다짐하던 아이들. 소설 《녹두밭의 은하수》에는 더 좋은 세상을 위해 자기 삶을 내어 준 아름다운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녹두밭 너머 흐르는 은하수처럼 반짝인다.
지은이 소개
안오일
"나의 글이 자기만의 숲을 만들어 가는 이들에게 작은 풀 한 포기 되어 준다면 좋겠다."
지은 책으로 시집 《화려한 반란》, 청소년시집 《그래도 괜찮아》, 《나는 나다》, 동시집 《사랑하니까》, 설화동시집 《꼼짝 마, 소도둑!》이 있고, 장편동화 《막난 할미와 로봇곰 덜덜》, 《우리들의 오월 뉴스》, 《이대로가 아닌 이대로》, 《욱대로가 아닌 이대로》, 《으라차차 길고양이 나가신다!》 등이 있다.
책 속으로
“넌 이제 어린애가 아니다.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잘 보아라. 잘 보면 네가 무엇을 해야 할지 보일 게다. 절대 부끄러운 삶을 살지 말아라.”
“네, 아버지……!”
설홍은 눈물을 닦아 내며 굳게 다짐했다.
“도대체 누가 누구더러 혹세무민이라 하는 건지……. 이 나쁜 놈들. 사람들을 속이고 홀려 세상을 어지럽히는 게 진짜 누구인지 보여 줘야 하는데…….”
아버지는 더 이상 어찌하지 못하고 이대로 가야 하는 게 화가 나고 분통이 터지는지 벌게진 눈에 힘을 주었다. 그러다가 이내 힘이 스르르 풀리면서 잡고 있던 설홍의 손을 놓았다. _54쪽
“우리 어머니가 그랬어. 지금 세상이 꼭 녹두밭 윗머리 같다고.”
“녹두밭 윗머리?”
“녹두가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는데 그런 땅보다 위니 얼마나 척박하겠어. 지금 우리가 그렇게 힘들게 살고 있다는 거야.”
설홍의 말끝에 탄은 생각했다. 그렇지, 살기 힘들지. 그런데 살기 힘든 건 우리 백성들뿐이잖아. 우린 종일 일해도 만날 끼니 걱정을 해야 하고, 양반들은 일하지 않아도 잘만 먹고살고. 그러고 보면 세상이 살기 어려운 게 아니라 불공평하고 더러운 거네. _58쪽
아, 이 얼굴들……. 자기 앞에 선 얼굴들은 아버지의 얼굴이고,숙부의 얼굴이고, 친구의 얼굴이고, 이웃의 얼굴이었다. 슬픈 일과 기쁜 일을 함께 나누며 명절 때면 음식을 나눠 먹고, 농악을 울리며 걸판지게 놀던 친숙한 얼굴들이었다. 설홍은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최선을 다하리라 다짐했다. 어머니와 친구들을 두고 떠나온 전쟁터다. 여기 선 사람들의 목숨을 내걸고 하는 싸움이다. 온 힘을 다해 싸워야 한다. _90~91쪽
“혹여 가까운 분이 농민군으로 갔는가?”
탄은 대답하지 않았다.
“저 색을 좀 보게. 정말 아름답지 않나?”
사내는 거무스레하게 변해 가는 하늘을 보며 말했다. 탄은 사내를 쳐다보았다. 그림자 색이 뭐가 아름답다는 건지 이해되지 않았다. 탄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삿갓 남자는 웃으면서 말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다 자기 색깔을 내뱉고 스며들어 하나의 색을 내고 있지 않나. 지금 농민군들은 각자의 삶을 내놓고 서로의 상처를 끌어안으며 하나가 되어 가는 것이네.” _133~34쪽
“결국 이렇게 실패하고 말 걸 아까운 목숨들만 잃었어.”
형에 이어 설홍의 죽음까지 보게 된 진구가 잔뜩 속상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게 말하지 마. 그건 죽은 사람들을 모욕하는 거야.”
희성은 진구를 똑바로 쳐다보며 이야기했다. 얼굴은 눈물범벅이지만 눈빛은 강렬했다.
“비록 지긴 했어도 우리가 바라는 새 세상은 좀 더 가까이 다가왔어. 농민들 봉기가 없었다면 벼슬아치들의 포악은 더 심했을 거야. 그러니까 헛된 죽음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마.” _176~17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