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소양호 청평사길 & 다산길 5구간 트레킹 #3
14:38 청평사 불교문화 유산 안내소
14:40 공주와 상사뱀의 전설을 형상화한 조형물
공주와 상사뱀의 설화 조형물
청평사에는 당나라 공주와 관련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중국 당나라 태종의 딸 평양공주를 사랑한 청년이 있었다.
태종이 청년을 죽이자 청년은 상사뱀으로 환생하여 공주의 몸에 붙어서 살았다.
당나라 궁궐에서는 상사뱀을 떼어 내려고 여러 치료 방법을 찾아보았지만 효험이 없었다.
공주는 궁궐을 나와 방랑을 하다가 한국의 청평사에 이르게 되었다.
공주굴에서 하룻밤을 자고 공주탕에서 몸을 깨끗이 씻은 공주는 스님의 웃인 가사를 만들어 올렸다.
그 공덕으로 상사뱀은 공주와 인연을 끊고 해탈하였다.
이에 공주는 당나라의 황제에게 이 사실을 알려서 청평사를 고쳐 짓고 탑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이 때 세운 탑을 공주탑이라고 하고 공주가 목욕한 곳을 공주탕이라고 하며 상사뱀이 윤회를 벗어난 곳을 회전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14:42 향토음식점 주차장 0.7km 이정표
14:44 거북바위
거북바위에 신규선이란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1915년 청평사를 정비하고 청평사의 역사적인 청평사지(淸平寺誌)를 편찬토록 한 사람이다.
거북바위는 자연암석으로 예전부터 거북이가 물을 바라보면 청평사가 크게 융성할 것이라는 전설을 가지고 있었다.
거북이가 바라보는 곳에 1973년 소양댐에 의해 소양호가 만들어지는 우연이 생겼다.
구송폭포 및 청평사 고려선원 안내도(명승 제70호)
청평사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에 시문과 설화가 어우러진 곳이다.
고려시대 이자현은 37년간 청평사에 머물면서 청평사 주변 계곡에 암자와 정자, 연못 등을 조성하였는데
이렇게 조성된 고려선원은 자연과 인문학적 의미가 매우 크다.
구승폭포를 비롯한 많은 폭포들이 계곡을 수놓고 있으며, 자연 그대로 보존된 선동(仙洞)과
서천 계곡 이들을 에워싼 부용봉이 바위들이 청평사 주변을 장식하고 있다.
또한 고려초기에 건립된 삼층석탑, 이자현이 조성한 영지, 한국 서예사에 빛나는 문수기원비와 시장경비, 사찰 주변의 노란 매화 군락지,
조선시대 스님들의 사리를 안치한 부도, 비를 기원하던 기우단 터, 하늘에 제사 지내던 천단과 제석단 터,
공주설화 유래가 전해지는 회전문 등은 고려선원의 풍부한 인문자원이다.
작은 구송폭포인 쌍폭
아래 폭포는 쌍폭, 위 폭포는 구송폭포라고 부른다.
옛 문헌에 따르면 이 두 개의 폭포를 일컬어 ‘이단폭포’ ‘형제폭포’ ‘쌍폭’ 등으로 불렀다.
다산 정약용은 위 폭포를 ‘구송정폭포’ 아래 폭포를 경운대폭포로 불렀다고 한다.
14:46 구송폭포 및 공주굴
구송폭포는 주변에 소나무가 아홉 그루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폭포 위쪽에 사람이 쉴 수 있는 구송대(九松臺)가 있다.
구송폭포는 환경의 변화에 따라 아홉가지 폭포소리를 낸다고 하여 구성폭포(九聲暴布)라고도 한다.
이 폭포에서는 일년 내내 많은 양의 물이 쏟아져 내린다. 특히 폭포의 양쪽에 수직으로 펼쳐진 절벽은 단정한 선비처럼 아름답다.
삼악산 등선폭포, 강촌 문배마을 구곡폭포와 함께 춘천의 3대 폭포로 꼽힌다.
공주굴
평양공주는 오랫동안 상사뱀의 극락왕생을 빌며 이곳에서 머무르다 석탑을 세우고 돌아갔다고 한다.
14:52 청평사 고려선원
세향원 터(細香院址)
세향원은 서향원(瑞香院)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조선 후기의무신이었던 엄황(嚴愰, 1589-1653)이 편찬한 <춘천지(春川誌)>에는
"서향원의 옛터는 영지의 서쪽 골짜기에 있는데 김시습이 살던 곳"이라고 적고 있다.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이 청평사에 운둔하며 이곳에서 세향원을 짓고 살았던 것이다.
세향다원 (洗香茶院)
진략공 이자현이 수행 생활을 하던 공간으로 고려 예종의 장인인 이자현이 벼슬을 버리고 청평사로 들어와 은거를 하였고
바로 이곳 세향원에서 불교적 수행과 더불어 학문 연구에 몰두했다고 전해진다.
14:54 진락공 이자현 부도
진락공 이자현 부도 (眞樂公 李資玄 浮屠)
이자현(李資玄)(1061~1125): 고려의 학자로, 호는 식암(息庵), 청평거사(淸平居士)이다.
고려 문종 때의 권세가 문하시중 이자연(李子淵)의 손자다. 또한 인예왕후, 인경현비, 인절현비의 조카이다.
1089년 (선종 6) 과거에 급제하여 대악서승(大樂署丞)이 되었으나 관직을 버리고 춘천의 청평산(淸平山)에 들어가
아버지가 세웠던 보현원을 문수원이라 개칭하고 중수하였으며, 이곳에서 나물밥과 베옷으로 생활하며 수도하였다.
이자현은 문벌과 배경이 있었으나 관직에는 욕심이 없었으며, 문수원에 들어가 평생을 수도생활로 일관하였으며 사후 이자현에게 진락(眞樂)의 시호가 내려졌다.
문화관광 해설사의 집
춘천 청평사 고려선원 안내도
14:57 영지 명문(影池 銘文) 바위
이 바위의 윗면에 한문으로 지은 시가 새겨져 있다.
이 시는 스님이 깨우침을 얻고 나서 지은 시라는 뜻의 오도송(悟道頌)이라고 알려져 있다.
심생종종생 心生種種生 : 마음이 일어나면 모든 것이 생겨나고
심멸종종멸 心滅種種滅 : 마음이 사라지면 모든 것이 사라지네.
여시구멸이 如是俱滅已 : 이와 같이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나면
처처안락국 處處安樂國 : 곳곳이 모두 극락세계로구나.
청평식암(淸平息菴)이라는 각자(刻字)가 발견되어 기록상에 나타나 있는 영지 명문바위
14:58 영지(影池)
부용봉을 비추는 잔잔한 이자현의 연못 ‘영지’는 김시습 등 후대 문인들의 글 속 배경이 되기도 했다.
맑은 날이면 부용봉까지 비추는 청평사의 '영지'. '청평거사' 이자현이 조성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 연못은 고려시대 이자현이 조성한 것으로 조선 초기 김시습의 한시에도 언급되어 있다.
영지는 전체적으로 직사각형 연못으로 부용봉에 있던 견성암이 연못에 비친다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지금도 연못 물결이 일지 않으면 부용봉이 물속에 그림자처럼 비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예전엔 장마가 지거나 가뭄이 들어도 물이 줄지 않았다고 한다.
가장 오래된 고려정원 영지(影池)
일본이 자랑하는 교토(京都) 사이호사(西芳寺)의 고산수식(枯山水式) 정원보다 200년이나 앞선 정원이라고 한다.
영지는 네모난 연못으로 관직을 버리고 청평사에 숨은 이자현(1061-1125년)이 개울물을 끌어들여 만든 인공연못이다.
날씨가 맑으면 오봉산의 그림자가 비친다고 하여 영지로 불린다.
매월당 김시습이 청평사 영지를 보고 지은 '청평산 세향원 남쪽 창에 쓰다'란 한시를 남겼다.
오봉산 그림자는 안 보이고 소나무 그림자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