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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 1: 9. 남편의 집에서 ( 하 ) - 룻 1: 12. 아들을 낳는다 하더라도
나오미의 하나님
나오미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율법의 하나님」이었다. 그의 신앙은 율법적인 신앙으로 하나님의 법이다. 이 법을 어기면 죽어야 한다. 율법에 의하면 모든 인간은 죽어야 하고 늘 죄인을 고발하여 율법주의 신앙은 늘 두려운 하나님만을 섬기게 한다.
(1) 율법적인 신앙은 죄의 짐에 시달린다.
나오미는 모압에서 10년동안 하나님을 떠나 살 때에 그는 늘 무거운 죄책감에 눌려 지냈다. 20절을 보면 그는 고향에 돌아가 반기는 사람들에게 자기를 더 이상 「나오미」라고 부르지 말고 「마라」라고 불러달라고 하였다. 괴로운 죄책감의 삶을 살았다는 고백이다. 늘 과거의 죄에 대하여 잊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사람입니다.
* 요일 1; 9 -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하나님은 지난 날의 모든 죄는 그리스도 예수에게 담당시키셨다. 예수 이름으로 회개한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셨다. 새롭게 된 성도들의 과거를 비난하는 사람도 율법적인 사람이다. 간음하다가 잡힌 여인을 고소하는 바리새인들에 대한 주님의 반응은 무엇입니까?
(2) 율법적인 신앙은 징벌에 시달린다.
나오미는 모압에서 10년동안 하나님을 떠나 살 때에 그는 늘 무거운 죄책감에 눌려지냈다. 이러다가 무서운 하나님께 매를 맞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과연 무서운 하나님의 징계로 남편을 잃고 남은 두 아들과 가산을 다 잃었다.
14절에서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
「심청전」에서 심청이가 임당수 깊은 바닷물에 제물로 팔려서 던져진 이유는 용왕님께 정기적으로 제물을 상납하지 않으면 진노하셔서 바다에 풍랑을 일으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모 교회에 다니는 집사님이 저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주일 성수를 하고 십일조, 새벽기도, 하루에 성경 5장씩 읽기를 꼭하지요.” 대단히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래서 저는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고 물었더니 「매맞을까봐」 한다고 말했다. 열심을 내다가 중단하는 분들은 대개 이런 신앙을 가지고 있다.
매 맞을까봐 신앙생활 하시는 분, 겉보기에 신앙이 좋은 것 같으나 사실은 하나님이 누구신지도 모르는 초보적 유아기적인 신앙 상태입니다.
(3) 율법적인 신앙은 의무감에 시달린다.
이런 분들의 신앙생활은 무거운 짐이요, 힘든 고역이다. 나오미의 이름의 의미는 「희락」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녀의 삶은 희락은 커녕 괴로움과 고역이었다.
예수님은 이렇게 우리를 신앙의 초청을 하셨다.
* 마 11: 28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참 기독교 신앙은 쉼의 신앙이요 즐거운 신앙이다. 신앙생활은 영적인 결혼 생활이다. 오늘 당신은 즐거운 마음으로 주님께 예배드립니까? 아니면 의무감 때문에 억지로 합니까? 이런 분들은 될 수 있는 데로 책임을 맞지 않고 구경하는 신자로 전락하게 된다.
(4) 율법적인 신앙은 무관심에 시달린다.
나오미는 두 자부 룻과 오르바를 함께 데리고 이스라엘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그런데 중도에서 나오미는 생각을 바꾸었다. (8절) 왜 나오미는 하나님을 향하여 떠나는 복된 길에 자부들의 동행을 만류했을까?
유대인들은 율법적인 하나님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유대인들만이 하나님의 선택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아브라함의 혈통인 자기들만이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생각하고 전혀 전도할 필요가 없다.
영혼들을 사랑하기보다는 정죄하는 데 익숙한 사람으로 나오미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율법에 의하면 이방인을 멀리하라고 했기에 나오미는 모압에서 얻은 두 며느리들을 이스라엘로 데려가는 것을 포기했다.
* 스 10: 10 – 제사장 에스라가 일어나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범죄하여 이방 여자를 아내로 삼아 이스라엘의 죄를 더하게 하였으니
오랜 세월 동안 함께 하며 정든 착한 며느리들과 살고 싶은 마음이 어찌 없겠습니까마는, 진노의 하나님이 율법으로 이방인을 금하셨는데 두 자부들을 데리고 이스라엘로 돌아가면 또 어떤 벌을 받게 될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애써 며느리들을 떼놓고 가려는 것이다.
당신의 곁에 있는 이방인들에게 무관심한 것은 커다란 죄다. 혹시 마음속으로 “저런 사람은 가망 없다고 스스로 포기하지는 않습니까?” 그가 복음을 거절할 것이라고 미리 생각하고 스스로 선을 긋고 이 사람은 불가능하다고 포기하는 행위는 큰 죄를 범하는 것이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딤후 4: 2) 그리스도인의 좌우명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윤리적으로 경우 바르고 예의 있게 양심적으로 살아야 할 이유는 그들의 영혼을 얻기 위함이다. 나오미처럼 포기하지 맙시다. 하나님은 모든 영혼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분이다.
* 요 6: 40 -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룻 1: 10.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 나오미에게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하는지라. ( 나오미에게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
1] 나오미에게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두 자부들은 신혼 생활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였다. 비록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되었지만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여호와는 다시 상처를 치료하시고 복 주심을 믿게 되었다.
* 창 28: 15 -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하나님을 배반하고 고향을 등진 나오미지만 다시 회복시켜 주시는 은총을 감사하며 자신의 참 행복을 찾아 어머니와 동행하는 것이 옳은 길임을 자부들은 고백하게 되었다.
* 암 3: 3 -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으며
2]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두 자부들은 이스라엘이 참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고 그의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면 자기들도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다고 고백한다.
* 신 27: 9-10 - 9 모세와 레위 제사장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아 잠잠하여 들으라. 오늘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백성이 되었으니 10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 명령과 규례를 행할지니라.
* 히 11: 25 -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 벧전 2: 10 -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3] 돌아가겠나이다. 하는지라.
본 절은 문맥상 이상한 표현이다. 오르바와 룻은 모압 출신으로 모압에서 자라 그곳에서 결혼했다.(4절)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겠다.'(go)는 말을 하지 않고 '돌아가겠다.'(return)고 주장했다. 이것은 다음 몇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1) 단순 의미
단순히 나오미가 돌아가는 길을 자기들이 동행한다는 의미에서 '돌아가겠다.'고 표현했을 가능성이 있다.
(2) 공동체적 의미
자신들의 출신은 다르나 함께 돌아간다는 공동체적 입장에서 그렇게 말했을 가능성이 있다.
(3) 영적 의미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자신들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므로 영적 본향인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겠다는 굳은 신앙의 결단이다. 그들이 시모 나오미의 간곡한 권면에도 불구하고 나오미와 헤어지기 싫어했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세 번째 해석이 더 타당한 것 같다. 분명히 그들은 나오미와 함께 살면서 여호와의 은혜를 체험하고, 그와 함께 이스라엘로 돌아갈 당위성을 강조했던 것이다.
룻 1: 11. 남편 될 아들들이(고엘) - 나오미가 이르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내 태중에 너희의 남편 될 아들들이 아직 있느냐? ( 나오미가 가로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나의 태중에 너희 남편될 아들들이 오히려 있느냐? )
1] 나오미가 이르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자부들의 고백을 들은 나오미는 자부들의 마음 씀씀이에 탄복하였다. 타지(객지)에서의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동행하겠다는 효심에 감격하였다.
그러나 자신은 이제 죽을 날이 멀지않았으나 자부들은 창창하여 숱한 나날을 한숨 속에 보내야 함을 경험한 나오미로서는 돌아가도록 재차 권고하였다.
2]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나오미의 형편으로는 자부들에게 행복을 안겨줄 만한 조건들이 없었다. 고향의 친척과 친지들로부터 받을 수모를 생각할 때 더욱 가슴이 쓰라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자부들의 동행은 더 큰 아픔으로 다가왔다.
3] 내 태중에 너희의 남편 될 아들들이 아직 있느냐? - 계대 결혼
본 절은 나오미가 신 25: 5-6의 '계대결혼'(繼代結婚, Levirate Marriage)의 규례를 고려하여 한 말이다. 즉 남편이 죽고 자식이 없을 때, 그 미망인은 남편의 형제와 결혼하여 남편의 대(代)를 이을 수 있다는 율법의 계대 결혼법(繼代結婚法)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 신 25: 5-10 – 5 형제들이 함께 사는데 그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 가지 말 것이요. 그의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6 그 여인이 낳은 첫 아들이 그 죽은 형제의 이름을 잇게 하여 그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7 그러나 그 사람이 만일 그 형제의 아내 맞이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면 그 형제의 아내는 그 성문으로 장로들에게로 나아가서 말하기를, 내 남편의 형제가 그의 형제의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 잇기를 싫어하여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내게 행하지 아니하나이다. 할 것이요. 8 그 성읍 장로들은 그를 불러다가 말할 것이며, 그가 이미 정한 뜻대로 말하기를, 내가 그 여자를 맞이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노라. 하면 9 그의 형제의 아내가 장로들 앞에서 그에게 나아가서 그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그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이르기를 그의 형제의 집을 세우기를 즐겨 아니하는 자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고 10 이스라엘 중에서 그의 이름을 신 벗김 받은 자의 집이라 부를 것이니라.
따라서 죽은 아들들을 대신하여 대(代)를 이어줄 자식이 이제는 없다는 뜻이다. 근본적인 의미는 자기가 매우 절망적인 상태에 빠진 과부인 것을 보여주는 데 그 의미를 지닌다.
룻 1: 12. 아들을 낳는다 하더라도 - 내 딸들아. 되돌아 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 아들들을 낳는다. 하더라도 ( 내 딸들아. 돌이켜 너희 길로 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찌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서 아들들을 생산한다. 하자. )
1] 내 딸들아, 되돌아 가라.
나오미는 자부들의 동행을 적극 만류한다. 육적 삶에 대한 눈으로 보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애 가운데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능력보다는 자기의 노력에 의존하였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 받았지만 지금까지 고난 가운데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자부들을 '어미의 집'이나 '남편의 집'으로 돌려보내려고 했다.
2] 나는 늙었으니
계대 결혼에 대한 풍습을 알았지만 그 풍습까지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역사 한다는 사실을 체험하지 못했다.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에서 여호와를 따르는 관습을 답습할 뿐이다.
나오미는 자신을 바라볼 때 이미 늙어버린 몸을 보았다. 마치 사래와 같은 상태였다.
* 창 16: 3 -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굽 사람 하갈을 데려다가 그 남편 아브람에게 첩으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 지 십 년 후였더라.
* 창 17: 17 -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 창 18: 10-12 – 10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11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3]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나오미는 몸의 늙음과 기업을 이어줄 근족을 찾지 못했다. 많은 재산을 가진 것도 아니요, 나이가 젊어 매력을 발산하는 자태도 없었다. 남자들이 자신을 흠모할 만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따라서 남편을 둔다는 생각은 꿈에도 상상할 수 없는 처지였다. 이것은 여호와가 목자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함이다.
* 시 23: 1-6 –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4]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나오미의 모든 악조건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헌신적으로 봉사해줄 남편이 나타나서 지금까지 말한 모든 조건을 충족시켜 준다고 하여도 내게서 소망을 찾을 수 없다. 만에 하나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한다면 이것은 너희들을 속이는 결과다.
나오미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능치 못한 일이 없음을 깨닫지 못한 믿음의 미성숙에서 나온 말이다.
* 행 4: 12 -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 막 9: 23 -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5]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 아들들을 낳는다 하더라도
나오미의 불가능을 제쳐두고 남편을 얻게 되었다고 하자. 자녀를 낳는 일이 사람의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그것도 하나가 아닌 둘 이상을 낳아야 한다. 이런 일도 베들레헴에 도착하여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귀향하는 길목에서 오늘 밤에 당장 남편을 두어도 자녀를 낳을 때까지는 여러 날을 기다려야 한다. 아니 이 밤에 자녀를 낳았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 막 9: 23 -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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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나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려는 마음은 마음속에 평안과 안식을 준답니다.
진실한 말 한마디로 믿음과 행복을 줄수 있다면 마음의 문을 열어 진실한 목소리로 행복을 주고 싶습니다.
건강하게 사랑과 행복으로 편안한 삶에 만사형통 하시고 즐겁게 아름다운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