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규가 현재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시즌을 끝낸다면 1990년 2군이 생긴 이후 가장 높은 타율로 타격왕이 된다.(사진 김수홍)
LG 트윈스 2군에는 이병규(25)가 있다. LG의 간판 스타로 활약하다 일본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건스에 입단한 ‘적토마’ 이병규(34)와 동명이인이다. 주위에서는 그를 ‘작은 이병규’로 부른다. 그러나 프로 3년째인 무명 선수일 뿐이다.
1군 출전이라고 해 봐야 20경기밖에 되지 않는다. 이름이 쉽게 알려질 수 있어 좋긴 하지만 주니치의 이병규만큼 야구를 잘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부담스럽기도 하다. “이병규 선배만큼 뛰어난 선수가 되겠다”는 게 그의 목표다.
이병규는 올해 의미 있는 도전을 하고 있다. 2군 역대 최고 타율을 기록할 페이스다.
지난 6월 SPORTS2.0이 집계한 2군 통산 기록에 따르면 1990년 2군 리그가 출범한 이후 규정 타석을 채운 가운데 4할의 타율로 시즌을 마친 선수는 3명뿐이다.
1999년 LG 정현택이 4할1푼8리, 롯데 이동욱이 4할1푼5리였고 2006년 상무의 이영수(KIA)가 4할1리를 기록했다.
8월 14일 현재 이병규의 타율은 4할4푼8리다. 2군 리그 전체 1위다. 장타율도 북부리그에서 가장 높은 7할8푼5리다. 12홈런 50타점 13도루는 북부리그 5위, 6위, 7위다.
남은 경기에서 타율을 크게 까먹지 않는 한 2군 리그 시즌 최고 타율 기록을 세울 수 있다. 인터뷰 전까지 LG 2군 코칭스태프도, 이병규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이병규는 “욕심이 생긴다. 꼭 기록을 달성하겠다”며 미소를 지었다. 김영직 LG 2군 감독은 “기록이 걸려 있다면 더욱 많은 출전 기회를 줘야 할 것 같다”고 거들었다.
그렇다고 이병규가 철저한 무명은 아니다. 우연한 기회에 유명세도 한 번 탔다. 7월 30일 구리구장에서 열린 쿠바대표팀과 연습 경기에서 1회말 노르헤 루이스 베라에게 2점 홈런, 9회말 페드로 루이스 라소에게 1점 홈런을 빼앗으며 주목을 받았다.
LG 2군은 이병규의 끝내기 홈런에 힘입어 5-4로 이겼다. 쿠바 투수들이 경기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등판했기 때문에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며 이병규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김용수 투수 코치가 구종을 노리라고 해서 9회말 3구에 체인지업을 때린 게 적중했다.”
두 번의 좌절
이병규는 대구 율하초등학교 5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다. 리틀 야구단에서 뛰고 있는 친구가 야구를 해 보라고 했다. 유니폼이 멋있어 보여 거절하지 않았다.
6학년이 되자 학교 야구부 박부근 감독이 “정식으로 야구를 해 볼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이병규가 “예”라고 대답하는 순간 그의 야구 인생이 시작됐다.
좌투좌타인 이병규는 경상중, 경북고를 거치면서 투수 겸 외야수로 활약했다. 타격이 좋은데다 왼손 투수로 수준급 투구를 펼쳐 팀에 많은 도움이 됐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맞춰 잡는 제구력 위주의 투수였다. 알루미늄 방망이를 쓰던 때여서 제구에신경을 써야 했다.
고교 3학년이던 2001년 구속은 시속 130km대 후반까지 나왔다. 아주 빠른 공은 아니었지만 흔치 않은 왼손 투수여서 낮은 평가를 받을 이유가 없었다. 내심 프로구단의 지명을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주위에서는 야구를 잘한다고 했지만 정작 지명이 되지 않자 고민이 깊어 졌다. 그래도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야구였기 때문에 프로행을 뒤로 미루고 대학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이병규를 찾는 대학이 몇 군데 있었다. 고교 시절 연습 경기를 자주 하면서 익숙했던 한양대에 호감을 느끼고 진학했다.
그런데 대학 1학년 때 왼손이 아팠다. 통증을 견딜 수 없었다. 투수를 포기해야 했다. 이병규는 “원래부터 투수를 할 생각은 없었다. 팀 사정으로 계속 등판했다. 차라리 잘 된 일이었다”고 말했다.
3학년 때인 2004년 한양대 야구부는 한 차례 풍파를 겪었다. 4월 춘계리그 이후 선수들이 무단 이탈을 하며 코칭스태프와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한양대는 코칭스태프를 전원 해임하고 7월 8일 천보성 전 LG 감독을 사령탑으로 영입했다. 천감독은 1997년부터 3년 동안 LG에서 212승4무212패를 거뒀다. 프로 감독이 대학 감독으로 간 첫 번째 사례다.
이병규가 빛을 보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다. 천감독은 이병규의 타격 재능을 높이 샀다. “아주 부드러운 스윙을 했다. 참 좋은 타자인 것 같았다.” 천감독의 이병규에 대한 첫인상이다.
천감독은 이병규를 중심 타선에 기용했다. 3학년 때 3번, 4학년 때 4번을 쳤다. 수비 위치는 1루였다.
천감독은 이병규에게 “근력을 좀 더 키우라”고 조언했다. 그때부터 웨이트트레이닝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천감독은 “상체 근육이 발달하는 게 눈에 띌 정도였다. 부산 수정산에 있는 동의대 야구장에서 연습경기를 했을 때 산 중턱까지 타구를 날려 다들 깜짝 놀란 적이 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대학 졸업을 앞둔 2006년에도 1, 2차 지명 선수 명단에 이병규의 이름은 없었다. 천감독은 상무 야구단에 가서 군 문제를 해결할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이병규의 생각은 달랐다. 일단 프로에서 승부를 걸어보고 싶었다.
이병규는 자신의 실력이면 신고선수로 어디든 갈 수 있다고 확신했다. 마침 연고 구단인 삼성 라이온즈가 관심을 보였다. “테스트를 받으러 오라”는 얘기도 들었다. 다시 천감독과 진로 문제를 상의했다.
상무 입단을 권유했던 천감독은 “LG로 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졸업을 앞둔 이병규는 LG와 연습경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이병규가 7월 30일 구리구장에서 열린 쿠바대표팀과의 연습 경기에서 9회말 끝내기 솔로홈런을 때린 뒤 이동욱 코치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사진 제공=LG 트윈스)
이때 이병규는 선수 숫자가 모자란 LG 선수단의 유니폼을 입고 연습경기를 뛰었다. 당시 이광환 2군 감독(우리 히어로즈 감독)은 이병규의 경기를 보더니 코칭스태프에게 “무조건 데리고 있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병규는 “입단도 하기 전에 LG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 그때 내가 생각해도 참 잘 맞았다. 그게 입단의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병규는 2006년 LG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팀은 어디든 상관없었다. 다시 야구를 하게 된 게 그저 기뻤다.
LG 유지홍 스카우트팀장은 “타격 재능이 뛰어나 눈여겨보고 있던 선수다. 아마도 1루수여서 지명을 받지 못한 것 같다. 1루는 거포들의 자리가 아닌가. (이)병규의 작은 체격도 감점 요인이 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병규는 프로야구 선수치고는 작은 178cm, 77kg이다.
신고선수의 영입에는 스카우트팀의 의견이 많이 반영된다. 그러나 이병규의 경우는 달랐다. 유팀장은 “가끔 현장에서 더 원하는 선수가 있다.
이병규의 영입은 현장의 의견이 많이 반영된 경우다.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무엇보다 야구를 하고자 하는 의지가 매우 강하다”고 말했다.
전화위복
2006년 2군 선수로 프로선수의 첫발을 내디뎠다. 2군의 이병규는 무서운 타자였다. 53경기에 출전해 3할2푼9리의 타율에 6홈런 26타점을 올렸다.
OPS(출루율+장타율)는 0.971이나 됐다. 1군에 두 번이나 올라가면서 정식선수가 됐지만 기회는 많지 않았다. 7경기에서 8타수 1안타를 기록한 게 전부였다.
시즌이 끝나갈 무렵 또 다른 시련이 이병규에게 닥쳐왔다. 그해 9월 좌익수로 뛰면서 중견수와의 충돌을 피하는 과정에서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됐다.
지명을 앞뒀을 때보다 더 큰 불안감이 엄습해 왔지만 수술을 받고 재활을 시작했다. LG 구단의 재활 시스템은 정평이 나 있다. 이병규는 “정해진 과정대로 재활 훈련을 하니 상태가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상처가 아물자 이병규는 조심스레 걷기 시작했다. 걷기가 익숙해지자 조금씩 뛰었다. 그러나 방향을 되돌리는 건 너무나도 힘들었다. 어김없이 무릎에 무리가 왔다.
한참이 지난 뒤에야 구간 왕복 달리기를 할 수 있었다. 균형 잡기 운동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이병규는 “예전 기량을 회복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재활을 하면서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었다”고 말했다. 2007년 전반기는 대부분 그렇게 보냈다.
2007년 후반기부터는 비교적 좋은 일만 이어졌다. 십자인대 파열로 군 복무가 면제됐다. 재활을 하면서도 꾸준히 근력을 강화해 상체가 발달하면서 힘이 더 좋아지기도 했다. 무뎌진 타격 감각을 회복하는 게 유일한 과제였다.
2008년 들어 1군이 있는 스프링캠프에 가지 못하고 진주의 2군 캠프에 간 것도 행운이었다. 진주 캠프에는 선수들이 얼마 없어 개인 훈련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다.
이병규는 그곳에서 체력 훈련을 하면서 스윙을 하루에 수백 번 했다. 처음에는 방망이와 따로 놀던 공이 중심에 맞기 시작했다.
지난해 2군 사령탑을 맡은 김영직 감독은 2006년 타격 코치 시절부터 이병규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김감독은 “타격을 할 때 집중력이 돋보인다. 배트 스피드나 순발력도 매우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지난 겨울 LG 2군 코칭스태프는 안치용(29)과 이병규를 집중적으로 육성했다. 김감독은 “훈련량이 다른 선수의 두 배가 넘었다”고 말했다.
이정훈 외야 코치도 이병규를 보는 순간 뛰어난 타격 재능을 가졌다고 느꼈다. “2006년 어느 날이었다. 이병규가 시속 143km짜리 직구를 걷어 올려 우중간 펜스를 넘기는 빨랫줄 같은 타구를 때려 냈다. 그때 ‘저 녀석은 무조건 된다’고 느꼈다. 야구를 한 사람들은 한눈에 그걸 알아볼 수 있다. 좀 더 악착같이 훈련을 해 1군에 남을 수 있는 선수가 됐으면 한다.”
이병규는 허문회 타격 코치와도 호흡이 잘 맞았다. 허코치는 “마음이 열려 있는 선수여서 지도하기 편했다. 타격 재능을 최대한 살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잘 하고 싶다는 의지도 강했다”고 말했다.
이병규는 허코치의 지도를 받으면서 약점을 줄이고 더욱 좋은 스윙을 하는 타자가 됐다. 허코치는 이병규의 빠른 배트 스피드를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지도했다.
허코치는 “스윙을 많이 하다 보니 날카로운 타격이 가능해졌다”고 분석했다. 이병규는 허코치에 대해 “선수 스스로 목표를 세우게 하는 편안한 지도자다. 마음이 잘 통해서 좋다”고 말했다.
문제는 수비
시즌이 시작되자 LG 2군에서 야심 차게 키웠던 안치용은 1군에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병규도 비록 2군이지만 4할 타율을 기록하며 선전했다. 2군을 맡고 있는 공병곤 운영팀 차장은 종종 이병규에게 “1군 타격왕을 해 보라”며 덕담을 건넸다.
4할대 타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경기마다 안타를 치는 방법밖에 없다. 한 개로는 안 된다. 이병규는 “아무리 못 쳐도 한 경기에 한 개씩은 쳤다. 두세 개도 자주 쳤다”고 말했다.
2006년 이영민 타격상 수상자인 히어로즈의 전동수는 ‘저 형은 왜 저렇게 잘 칠까’하고 늘 궁금해 했다고 한다.
이병규는 “안타를 못 치면 경기 상황을 복기하며 연구했다. 투수들의 구종에 따른 투구폼의 변화도 나름대로 정리했다. 노력한 만큼 효과를 보면 더욱 자신감이 솟아올랐다”고 말했다.
2군에서 정상 궤도에 오른 타격에 비해 수비는 아직 미흡하다. 김감독은 이병규가 외야 수비에 적응할 수 있도록 붙박이 좌익수로 기용하고 있다. 덕분에 이정훈 외야 코치가 바빠졌다.
이코치는 “수비가 안 되면 반쪽짜리 선수가 될 수밖에 없다. 병규에게 좋은 타자가 아니라 좋은 야구 선수가 되라고 얘기한다. 공수주를 갖춘 선수가 진정한 야구 선수라고 늘 강조한다”고 말했다.
이코치는 매일 이병규에게 30개 이상의 펑고를 친다. 이코치는 “펑고는 죽어 있는 볼이다. 기본적인 수비 감각만 익힐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래도 외야수 경험이 많지 않은 이병규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이코치는 “전보다 수비가 많이 나아졌다. 10점 만점에 7점은 줄 수 있는 수준이다. 발이 아주 빠른 편은 아니지만 노력하면 스피드도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병규의 문제는 내야 수비가 불안하다는 것이다. 스스로도 그 사실을 잘 안다.(사진 김수홍)
이병규는 5월 10일에 이어 7월 19일 다시 1군으로 올라왔다. 그러나 김재박 감독은 이병규에 대해 큰 믿음을 갖고 있지 않다.
김감독은 수비를 우선하는 성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김감독은 올 시즌 불안한 내야 수비에 대해 여러 번 불만을 드러낸 적이 있다.
김감독은 “병규가 2군에서 잘했다고는 하는데 1군 투수들을 상대로 어떤 타격을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무엇보다 수비가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이병규 스스로도 수비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병규는 “타격만 잘 한다는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다. 도루도 가능하고 수비도 외야 전 포지션을 뛸 수 있는 선수가 되겠다. 노력하면 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1루에는 로베르토 페타지니와 최동수가 있고 외야에는 박용택, 안치용, 이대형 등이 버티고 있다. 백업 요원인 김광삼, 손인호, 김준호도 넘기 힘든 벽이다.
이병규는 1군에 올라가도 기회가 많지 않고 아직 더 준비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이병규는 5월에 20일, 7월에 10일 동안 1군에 있었다.
이병규는 2군행 통보를 받을 때마다 빨리 잊으려고 노력했다. 이병규는 “내 실력이 딱 그 정도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1군에 갔다 오면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병규는 “타석에서 한기주(21,KIA 타이거즈)의 공을 봤는데 소문대로 빠르긴 빨랐다. 하지만 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덤비면 충분히 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허문회 코치는 이병규가 1, 2군을 넘나들 때마다 “야구는 다 똑같다”며 다독였다.
김영직 감독은 이병규를 두산 베어스 외야수 김현수(20)와 비교했다. 김감독은 “올해 김현수가 아주 잘하고 있다. 병규도 김현수에 못지않게 타격에 재능이 있다. 언젠가 1군에서 성공할 수 있는 자질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수는 이병규와 같은 해인 2006년 신고선수로 프로야구에 입문했다.
올해 김현수는 1군 타격왕을 노릴 정도의 타자로 거듭났다. 베이징올림픽 휴식기 전까지 3할4푼4리의 타율에 5홈런 58타점 12도루의 뛰어난 활약을 했다.
쟁쟁한 스타들이 모인 올림픽대표팀에서도 김현수의 타격은 빛났다. 이병규도 김현수처럼 되지 말란 법이 없다.
이병규의 첫 번째 과제는 2군에서 4할 타율을 기록하는 것이다. 이병규는 “늘 하던 대로 훈련하다 보면 내 능력을 보여 줄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다. 어디에서든지 ‘야구를 잘한다’는 평가를 듣고 싶다.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LG 허문회 2군 타격 코치가 보는 이병규
2005년부터 2006년까지 춘천고 타격 코치로 있을 때 한양대에서 뛰고 있는 (이)병규를 처음 봤다. 전부터 병규에 대한 이야기를 듣긴 했다. 아마추어 선수치고는 실력이 괜찮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2005년 1월쯤 한양대와 춘천고가 연습 경기를 했는데 그때 병규가 잘 쳤다. 경기를 몇 번 안 했는데도 기억에 남을 정도로 좋은 타격을 했다. ‘잘못된 소문이 아니었구나’ 싶었다.
지난해 김영직 2군 감독이 불러 LG 트윈스 2군 타격 코치로 일하게 됐고 LG 유니폼을 입은 병규를 다시 만났다. 재능이 있는 선수를 지도하게 돼 기분이 좋았다. 장점을 잘 살려 꼭 1군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 주고 싶었다.
타격은 타이밍을 잡는 게 중요하다. 병규는 스윙 자체가 좋은 타이밍에서 나온다. 배트 스피드도 빠르고 공도 침착하게 본다. 타격의 기본기가 갖춰져 있다. 웨이트트레이닝을 꾸준히 해 힘도 붙었다.
물론 약점이 없는 타자는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라인 드라이브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홈런이 되야 할 타구가 펜스 앞에서 잡힌다. 수비수가 잡기 쉬운 타구가 많다.
병규의 경우 타구가 45도의 각도를 유지하는 게 좋다고 판단하고 있다. 배트 끝도 더욱 날카롭게 돌아갈 필요가 있다. 그러면 싱커와 체인지업 공략에 좀 더 유리하다.
병규는 코칭스태프의 이야기를 귀담아듣는다. 스스로 문제점을 파악하면서 점점 좋은 타자로 성장하고 있다. 지도자들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 선수는 성공하기 어렵다.
주변에서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타격 코치가 특정 선수를 지도할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다. 김영직 감독은 병규를 꾸준히 주전 외야수로 내보내 경기 감각을 키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정훈 1루 및 외야 코치와 이동욱 수비 코치는 병규가 타격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많은 훈련량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강한 체력이 기본이다. 김진회, 김병훈 트레이너가 병규에게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걸로 안다.
병규는 훈련량이 많은 편이다. 다른 선수가 연습 배팅으로 한 박스 때릴 때 병규는 다섯 박스 이상을 때린다. 한 박스에 대략 200~250개의 공이 들어간다.
병규는 올해 2군 성적을 인정받아 1군에 두 번 다녀왔다. 2군으로 내려올 때 다른 선수들과 달리 흥분하지 않고 다시 착실히 훈련했다.
야구는 어디서 하나 다 똑같다고 격려했다. 병규는 계속 실력을 쌓으면 언젠가 1군에서 빛을 볼 선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병규의 성장을 돕는 데 짧은 시간이나마 고교 지도자를 했던 게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당시 김용달 타격 코치에게 많은 조언을 들었는데 스스로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병규와 같은 재능 있는 타자를 지도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첫댓글 치용신도 성공했는데 작은 병규선수 화이팅~!!!! 신고선수 신화!
큰 병규선수가 게으른 천재라는 평가를 받았다면 작은 병규선수는 정말 노력파라는 생각이 드네요ㅋㅋ 포지션이 3루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말 우리에게 이병규선수가 폭발해준다면!! 우리도 타선은 정말좋은데
아.. 기사보는데 눈물날려고 하네요.. 이병규 선수 꼭 1군에서 좋은 모습 보여주셔서, LG의 또다른 영웅으로 탄생하시길 빕니다..
기회를 많이줘야지 ...김감독 ...이병규 괜찮은타자 같다....기회 좀 많이 주자 이번시즌 어짜피 끝난거나 다름없으니 시험삼아 신인들에게 기회를 많이 주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