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퇴직한 뒤 갯바람이 부는 서해안 산골마을에서 아흔 살 넘은 늙은 엄니와 둘이서 살았다.
아흔여섯 살이 나던 해, 저녁밥을 넘기지 못하고 켁켁거리는 엄니를 119소방대 응급차를 불러서 서울아산병원으로 갔다. 중환자실을 거쳐 지방 아산병원으로 내려갔고, 시립노인요양병원으로 전전긍긍하면서 엄니의 말년을 함께 보냈다.
퇴직하여 백수가 된 나였기에 지방 아산병원 보호자대기실에서 밤낮을 대기하면서 지냈다.
병원 구내식당에서 밥 사 먹고, 구내식당에서 조리원 아주머니가 남은 밥을 몰래 나눠주시면 얻어먹었다. 양말, 팬티 등은 화장실에서 몰래 빨아서 대기실 안에 널면서 지냈다.
엄니는 오래 전에 뇌사하여 무반응. 그런데도 하나 뿐인 늙은 아들은 그 엄니를 잠깐씩 면회하려고 24시간 대기했다.
면회시간이라야 하루 네 차례, 30분간. 엄니 뇌는 아무런 미동도 없고, 숨만 가늘게 내쉬었다. 그 상태라도 잠깐이라도 내려다보는 게 늙은 아들의 마지막 남은 행복이며, 기회이며, 희망이었다. 소생할 가망성이 0%인데도 그 엄니 곁을 떠나지 못했다.
그 엄니를 수십 년 전에 폐암으로 죽은 아비의 곁에 합장하고는 나는 그참 시골을 떠나서 서울로 올라와서 처자식과 함께 산다.
서울에서는 할 일이 없어서 인터넷 카페에 들어와서 글을 읽는다.
내 나이가 조금은 많기에 5060대 카페에서는 얼굴을 내비치기는 뭐해서 그냥 숨어서 활동하는데 100개 쯤의 그 많은 방 가운데 '삶의 이야기'방을 가장 좋아한다.
회원들의 이야기가 진실하고 솔직하고 아름답고, 때로는 가슴을 저미고 애닳아하는 것들이 들어 있기에.
신이 나고 즐거운 이야기도 있지만 더러는 속이 상하고 마음 아픈 것들이 있다.
'삶의 이야기'방이 빛나는 이유는 삶이 힘들어도 다시 일어선다는 희망이 있기에 그렇다.
자신만의 글을 쓰는 분들이 많다.
그 가운데도 '하늘아래 첫 동네'에서 살았던 베리꽃님은 아홉 살 종지기이었다. 사방이 소위 세 평 반인 산골 마을에서 가난하게 살면서도 늘 밝게 꿈을 지닌 소녀로 자랐다.
'태백시 통리초등학교' 를 다녔던 산골 이야기가 이 카페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또 한 분. 충남 논산시에서 반려견을 더욱 예쁘게 다듬어 주는 수정..님이다. 지아비를 잃어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아픔이 있었다. 예쁜 강아지를 사겠다고 흥정한 뒤에 강아지를 차에 실고는, 돈 주는 척하다가는 차를 타고 내뺐다는 어떤 노인 신사에 대한 속상한 내용도 있었다. 그런데도 힘차게 일어나서, 늘 밝게 노래 부르며 산다는 이야기를 올려준다. 분위기 살리는 메이커, 마이크 체질이다.
또 한 분 더 있다. '내 안의 나는 무지 예쁘다'라는 책을 낸 운선님. 초등학교 2학년이 학력 전부인 아이. 아홉 살이 마지막 학교공부인 부엌데기 계집아이가 용케도 견디고 커서, 버티고 꿋꿋하게 살아갔다는 이야기를 쓴 분이다. 지금은 강원도 바닷가 쪽에서 갯바람 많이 쐬면서 생선비린내 나는 이야기를 많이 쓸 궁량을 하실 것 같다.
이 세 분들의 이야기가 우리 모두한테 잔잔한 감동을 준다.
모두가 어려움을 억척스럽고, 떳떳하게, 슬기롭게 이겨내는 이야기를 올리기에 나는 '삶방'이 정말로 좋다.
글들이 살아서 꿈틀거리며, 감동과 희망을 주기에 더욱 그렇다.
이들 이외에도 글 올려주는 회원들의 글솜씨가 무척이나 대단하다.
더우기 글 잘 읽었다고 댓글 예쁘게 달아주는 회원들도 고마웁다.
나는 서해안 작은 산골마을에서 사는 촌늙은이다.
갯바람 살랑 불어 넘어오는 곳, 고향의 앞산과 앞뜰은 모조리 깎여서 일반산업단지로 조성되고 있다.
고향 땅이 예전에는 농공단지로, 서해안고속도로로 잘려나가더니 지난해부터는 또 남쪽 산과 구렛논들이 깡그리 사라지고, 날마다 중장비의 굉음이 들리고, 뿌이연한 흙먼지만 온 천지를 가린다.
북편 산자락이 겨우 남아 있는 촌구석에서 텃밭농사 짓는 체를 하다가 지금은 서울 송파구 잠실로 올라왔기에, 퇴직한 백수건달이기에 날마다가 일요일, 휴일, 공휴일, 쉬는 날이기에 요즘 무척이나 그렇다.
오늘도 '성당 다녀올게요'라면서 늙은 아내는 아파트 바깥으로 나갔기에 나는 또 '집 지키미'가 되어서, 이렇게 컴 자판기로 글 하나 적어봤다.
'삶의 이야기'방이 좋다라는 내용이 조금 길어졌지요?
그래도 어쩐대요. 좋은 걸 어쩌냐구요!
2017. 11. 14. 화요일. 곰내가...
첫댓글 곰내님의 나이가 어때셔요
삶방 자주 들러 주셔요~
요즘 삶방이 썰렁하다는
불평도 있고 하니~~~
조그만 거라도 할 일을 하나
찾아 보심도 좋을 듯 함다
2016년 12월 연말에 뵈었던 노을이야기님.
댓글 고맙습니다.
어머니의 밭에서 이제 서울로 오셨군요.
시골에서의 삶은 어떠셨는지.
또 무엇을 심어 수확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올 가을이 저희 어머니가
이 땅에 소풍을 마치신 지 30년이 되었습니다.
조금은 울적한 맘으로 지냈는데 덕분에 추억여행을 떠나게 되어 행복합니다.
곰내님의 귀한 글.
자주 뵙고 싶습니다.
베리꽃님글을너무잘쓰셔요 ? 저도고향 이 충북괴산군 깡촌
@짱구용인 담수호에 물이 가득 찼군요.
물 비린내 나고... 생활용수로 활용하겠지요. 사진 좋네요.
@곰내 내고향괴산 입니다
곰내님 반갑습니다.
공개 싸이트에서
다른사람 입장도. 배려가 되어야
하므로 가능한. 이니셜이나.
익명을 사용하심이. 바람직하니
앞으로 참고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예.
늘 주의, 참고하겠습니다.
즐감합니다 곰내님
댓글 고맙습니다.
어머님의 애틋한 가슴아린듯한
순간이 아!!! 이분은 요즘 보기드문 효자이셔요
어머님게 하신많큼 자식들에게
효받길 바래봅니디ㅡ
님
자주 이방 내왕으로 아기자기한
맛갈스런 얘기꺼리 게시판에
환하게 등불주시어요
만인이 본 받을 오목조목 글
감사드립니디ㅡ
아니어요. 치매기 진행 중인 엄니한테 구박 많이 받은 못난 아들이지요.
댓글이 더 예쁩니다.
겨울이도
삶의이야기방이
넘
좋습니다~~^^
맞습니다. 삶의 이야기 방에는 늘 웃음도 있고, 즐거움도 있고, 때로는 가슴이 아려서 눈물이 나기도 하지요.
모두가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 함께 보듬고 사는 곳이니까요. 마음의 숲이지요.
댓글 고맙습니다.
진솔한 삶의 이야기가 최고지요.
그러고보니 수정님이 요즘 통 안보이시네요.
그렇군요. 왜 안 보일까요.
솔직담백한글이, 정감어립니다....
항상건강하시옵고, 좋은글 자주 보게해주소서~~!
예. 댓글 고맙습니다.
저또한 삶의 이야기 방에들어와서 글읽는게 참좋습니다
픽션 논 픽션이 많아서 독서하는느낌으로 들어옵니다
바쁘게 지내다 보니 자주 들어오진 못합니다만~
고운밤되시어요~^^
예. 고맙습니다.
그러믄요. 삶의 이야기 방이 정말로 아기자기하고, 정다웁지요.
댓글 고맙습니다.
익명으로 하시고 될수록 칭찬은 아무도 모르게 쪽지로 전해주세용~
곰내님 늘 공부하시는 자세로
노년의 지루한 공백을 메꾸어 나가시고
어디서나 활기차게 사물을 대하시니
이 순간이 오래 가시길 바랍니다
예.
그런데 카페에서의 닉은 거의 다 익명이 아니던가요?
제 닉은 곰내. 이것으로서는 제가 누구인지 모르지요. 제 이름이 전혀 아니기에.
운선도 그렇지요.
운선이 본명은 아니겠지요. 이 .. 이름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듯이 말입니다.
저도 우연히 알고는 '내 안의 나는 무지 예쁘다'에 이름을 써서 기억하지요.
예, 쪽지글 전하겠습니다.
님은 도서관에서 늘 공부한다고 글 쓰시기에 존경합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곰내님글 또한 좋습니다.
그런데 대체 베리꽃님과는 어떤관계이길래
저리 내막을 잘 아실까? 하는 호기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