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9) - 두 젊은 여자가 누워 있다.
좁은 공간, 2층 침대 위와 아래에 있다. 나는 건너 편 아래 침상을 차지 했다. 며칠 전 같은 방에서, 하루 밤을 지낸 Room mate 였는데, 소리없이 일찍 나가서 수인사도 못하였었다, 다시 재회하다니 가슴 속에서 꽃이 피어난다.
스페인 여자이고, 한 사람은 27세 약사, 다른 사람은 소아과 의사로 26세이다."Lady first, please" 라고 먼저 화장실(샤워장 겸용) 사용을 권했더니, 주저없이 다녀 온다.
큰 타월만으로만 온 몸을 덮고, 싱그러운 향내를 퍼트리며 , 또 다음은 샴프 향을 심하게 내며, 후각을 자극한다.물기가 마르지 않은 청순한 몸으로 침상으로 기어 들어간다.
잠시 서로 이 얘기,저 얘기 나누고 있는데, 주인장이 10시라고 소등하라고 한다. 알베르게에서는 10시에 무조건 소등하고 취침해야 된다고.
손을 뻗으면 닿을듯한 지근 거리에 젊은 여자와 같이 누워있다니, 가슴은 벅차고, 싱승생승한 야릇한 기분이 든다.
30여년 전에 가 보았던 오스트리아 다뉴뷰 강변에 있는 나체촌이 떠오른다. 할아버지,할머니, 엄마, 아빠, 애들, 온 가족이 다같이 , 또 회사 상사와 동료도, 그리고 남녀 친구 들도 옷 하나 걸치지 않고, 벌거벗은 체로 태연스럽게 햇살 아래 뛰어 놀며 즐기는 장면.
독일 프랑크프르트에서는 남녀노소 구분없이 벌거벗고 사우나를 즐기는 모습에 놀라서, 목욕도 포기한 체, 주변에 포진한 늘씬한 나체 구경에 탐닉하던 추태(?)가 기억된다.
그때는 문화적 충격이 심하여 혼란스러웠었다. 무식한 무리라고도 보이기도 하고, 자연을 추구하는 새 물결로도 보이기도 하고 , 좌우지간 동방예의지국의 전통과 체통과는 별세계의 그림이었다.
호스텔이나 도미터리(Domitory)에서 남녀가 혼숙하는 것에 익숙한 두 처녀는 사근사근한 숨소리를 내며 수면에 취하는데, 나는 영 잠이 안 오고, 몸을 뒤척이다가, 옆방 간이 테이블 에 가서, 핸폰을 보고,카톡도 하는데, 주인장이 나타나서
불을 꺼야 된다고 한다.
순례자의 규칙을 지켜야 한다고 은근한 경고를 날린다. 잠도 안 오고, 뒤척이다가 밤을 넘긴다.
오늘은 산토도밍고에서 벨로라도(Belorado) 까지 24km로 해발 600~800~800 미터 고지를 걷는 평탄한 길이며, 5시간 반이 소요된다. 기온도 10도 내외로 온화한 편이다.
큰 숲도 안 보이고, 주변에는 나무들도 없다 쉼터도 없다. 24km를 걷는 동안 풀과 포도 밭 뿐이다.
정적인 자연의 구도 아래 점과 점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순례자만의 이동이 감지된다.
구경할 대상이 없는 대평원을 한없이 걸으니, 잡념도 없이 나의 인생을 관조하는데 집중된다.
"토끼와 거북이" 우화가 실감된다. 빨리 빨리 속도 내어 앞서 가는 사람도 있고, 천천히 쉬지 않고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며 가는 순례자가 있다.
빨리 달리던 사람은 지쳐서 오래 쉬어야 하고, 천천히 달리는 경우는 적은 쉼을 하고 , 결국은 도착점에 비슷하게 골인한다.
속도가 늦더라도 생각의 깊이는 더 심오하게 하는 여유가 있는 거북이의 끈기가 더 가치가 있을 수 있을듯 하다.
그래서 한국 문화의 빨리빨리를 비난하는 슬랭이 표출되는 때도 있다 "Fast & Fuck" 반면 늦은 거북이는 "Slow but Sure" 로 대변도 된다.
상황에 따라 속도의 강약이 필요하겠지만,거북이의 여유와 꾸준함도 존경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긴 Race를 해야하는 인생역정에서는...
인구 2,000명의 작은 소도시인 벨로라도. 중세 건축물의 잔재가 흩어져 있다.
해발 800미터가 되니, 아침.저녁 온도 차가 심하여 진다. 햇살도 더 뜨거워지고.
오후 3시경 도착하여, 작은 마을같은 동내를 돌아본다. 가게마다 개점 휴업이다. 물도 사고, 과일도 구매하려고 30분을 흝어 보아도 못 찿겠다.
아,그러고 보니 시에스타(낮잠자는시간)인가 보다.열대 지방도 아닌데,스페인은 일하는 시간이 특이하다.
오전10시에 시작해서 2시까지 일하고, 점심과 식후 낮잠으로 3시간 지나고.,5시부터 8시까지 일한단다.
그러니, 저녁은 9시에 시작하여, 밤 늦은 시간까지 만찬을 하게 된다.
땅도 넓고, 자연 자원도 풍부한 데, 휴일과 휴식을 실컷 즐기는 풍토가 경쟁에서 후퇴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지 않을까 우려도 된다. 알젠틴도 마찬가지이고.
자원없고, 힘들고 고달픈 환경을 만들어서, 악착같이, 죽기 살기로 생존본능을 키울 수 밖에 없었던 우리나라가 처한 위치가 더 다행으로 느껴진다.
순례자가 겪은 고통과 체험을 실감하기 위하여 , 여럿이 묵어 가는 알베르게 (피난소 또는 대피소) 를 주로 이용했는데, 전화와 카톡, 업무를 진행하기 어려워서, 오늘 부터는 품격있는 독방에 기거하여야 겠다.
시작이 반이라고 한다. 9일간 210km를 걸었으니, 순례길의 1/4은 좀 넘었나 보다.
Roommate 인 스페인 여인 27세 약사와 26세 소아과의사
첫댓글 손빨래라도하고 주무셔야되겠네...ㅋㅋ
좋은 즐거운 생각은 생활의 활력소래요.ㅎㅎ~~~이나이에 힘든여정,,쉼이 꼭 필요해요..독방 옮긴것 탁월한 선택입니다..계속 갑시다!!
걍, 좋은 꿈이나 꾸시지요..
사진으로 보는 지루한 보행길을 20여 키로 걷는 다는 것이 얼마나 힘겨울까 생각해 봅니다. 계속 화이팅!!!
그간 10일간 쉼없이 달려왔고 앞으로 잔여 한달을 이렇게 계속하면 Real 40's 젊은이로 재탄생이 확실합니다.
미리 축하합니다.. 홧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