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사랑이 가득한 하피첩 사랑의 향기가 수수만년 전해진다
사랑의 향기는
‘사랑한다
아름답다
사람의 도리 다하라
사람이 되어라’
사랑의 향기 수수만년 전해진다
천리 만리 떨어져 지내지만 사랑의 향기는 아름답다
아내는 남편을 위하고
남편은 아내와 가족을 위하는 사랑은 한이 없다
아내의 다홍치마를 어르만지며
노을빛 치마에 아내 사랑, 자식 사랑의 글을 쓰면서
눈물로 사랑의 글을 쓰다
사랑을 붉은 치마폭으로 싼다
사랑하는 아내를 그리며 자녀에게
먼저 어머니를 잘 섬겨라
孝(孝弟慈), 깊이 생각하여 헤아린다.
아버지[父]는 의(義)롭고, 어머니[母]는 자애[慈]로우며,
형(兄)은 우애[友]하고, 동[弟]은 공손[恭]하며, 자식은 효도[孝]해야 한다),(孝弟慈)
다른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지 않는다(浩然之氣).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는다(光風霽月).
오직 나라와 백성을 위해 옳은 것을 추구한다.(唯是是求)
仁義 옳고, 바른 길을 가르친다(삶의 大道)
인간의 도리인 부부애, 자녀애를 절절히 적어 가르쳤다
다산은 치마의 한 조각을 남겨 '매화'와 '새'를 그려서 족자를
만들어서 시집을 가는 딸에게 주었다.
이것이 매조도(梅鳥圖)다.
'부지런함(勤)과 검소함(儉) 두 글자는 좋은 밭이나 기름진 땅보다 나은 것이니
한 평생을 써도 닳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의 치마에 사랑을 담아 쓴 글씨,
세상에서 이보다 더 값진 보물이 있을까?
사랑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
삶은 오직 사랑뿐이다
알면 보인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고,
보이면 생각하고,
생각하면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행동한다.
환한 미소를 짓는다
서로 사랑하라 Love each other
하피첩(霞帔帖)은 조선 후기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이
귀양지인 전남 강진에서 쓴 글씨첩이다.
노을 하(霞), 치마 피 帔, 문서 첩(帖)
"하피첩(霞帔帖)"은 노을빛 치마로 만든 소책자'이다.
부인 홍씨가 시집 올 때 입은 다홍치마를 가직하고 있다가
1801년(신유박해) 역적 죄인이 되어 멸문 가문이 될 지경이었다
귀양살이 10년(1810)이 지나 사랑하는 남편이 보고 싶고
남편이 글쓰기를 좋아하기에 비단 치마, 다홍치마가 글쓰기에 좋은 재료이기에사랑하는 남편에게 보관하던 다홍치마를 보내었다
아내 홍씨가 보낸 온 다홍치마를 소중하게 사용처를 찾다가
아들에게 가르침의 글을 첩으로 만든 것이 하피첩이다
하피첩은 1810년(순조 10년) 음력 7월과 9월 무렵이다.
하피(霞帔)란 중국 당나라 시대부터 신부가 입던 예복이다.
조선 시대에는 비(妃)·빈(嬪)이 입는 법복(法服)이기도 했다.
하피첩이라는 이름은 첩(帖)을 만들 때 사용한 홍씨의 치마를 비유한 것으로,
직역하면 ‘노을빛 치마로 만든 첩(帖)’이란 뜻이다.
하피(霞帔)는 옛날 예복의 하나다.
'붉은 노을빛 치마'를 말한다.
다산은 치마의 한 조각을 남겨 '매화'와 '새'를 그려서 족자를
만들어서 시집을 가는 딸에게 주었다.
이것이 매조도(梅鳥圖)다.
'부지런함(勤)과 검소함(儉) 두 글자는 좋은 밭이나 기름진 땅보다 나은 것이니
한 평생을 써도 닳지 않을 것이다.'라고 어머니의 치마에 사랑을 담아 쓴 글씨,
세상에서 이보다 더 값진 보물이 있을까?
하피첩은 본래 정약용의 후손들이 보관하다 한국전쟁 당시 분실되어 행방을 알 수 없었다.
이후 하피첩은 계속 민간 소유로 있었다.
2005년에 수원의 어느 모텔 주인이 파지를 마당에 내다 놓았는데,
폐품을 모으는 할머니가 지나가다가 파지를 달라고 했다.
모텔 주인은 할머니 수레에 있던 이상한 책에 눈이 갔고,
그는 책과 파지를 맞 바꿨다.
그리고는 하피첩이 다시 등장한 것은 2006년 혹시나 하고 KBS' 진품명품'에 내어 놓았다.
김영복 감정위원은 그 책을 보는 순간 덜덜 떨렸다. 라고 했다.
"진품명품" 현장에서 감정가 1억원을 매겼고,
떠돌던 이 보물은 2015년 9월 서울 옥션 경매에서 7억 5,000만 원에
국립민속박물관에 낙찰되어 팔렸다.
국립민속박물관은 하피첩의 전문 내용을 한글로 번역해
2016년 초 전시 형태로 공개할 것이라 밝혔다.
하피첩은 손상 부분을 복원한 뒤 보존처리 과정을 거쳐 보관중이다.
다산 부부의 애절했던 사랑을 담고서 세상을 떠돌아다니던 하피첩은
국립 민속박물관에 자리를 잡았다.
정약용의 위대함은 이루 말할수 없지만 아내의 노을빛 치마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는 200년의 세월을 넘어 지금도 우리들 가슴을 잔잔히 적신다.
다산의 18년의 귀양살이,
전라도의 땅끝 강진이라는 바닷가 고을에서 모진 고통을 겪으며 세월을 보낸 다산 정약용. 고향에 두고 온 두 아들(학연, 학유)에게 수많은 편지를 통해 삶의 지혜를 가르쳐주었다.
역적죄인 유배 사는 아버지 때문에 집안은 폐족이 되어 출셋길이 막힌 불행한 가족이었다. 희망을 잃고 절망에 빠져 하마터면 좌절할 수도 있는 아들들,
그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용기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온 정성을 다해
편지를 통한 가르침을 계속하였다.
하피첩은
다산 선생이 집안과 아들의 가르침의 책이다
“우리 집안이 언젠가 폐족을 면하는 길은 책을 읽고 독서하는 것밖에 없다.
짐승과 사람이 다른 점은 사람은 책을 읽을 줄 알고
짐승은 책을 읽을 줄 모른다.”
“짐승이 안 되려면 책 읽어야”
“그리고 아버지가 벼슬을 했어도 재산이 없어 물려 줄 것이 없는데
야박하다고 서운해 하지 마라.
내가 너희들에게 유산으로 부적 두 글자를 물려줄테니 항상 지니고 다녀라.
그것은 바로 근검(勤儉)이다.”
선비의 고결한 절개와 지조와 기개로 大義 삶을 추구 하였다.
하피첩은
유배지에서도 자녀교육에 힘을 썼다
자녀들에게 어머니를 잘 섬겨라고 하였다
강진 유배 시절 정약용이 아내가 글쓰기를 좋아하는 남편(다산)에게
시집 올 때 가져온 붉은색 비단 치마(다홍치마)는 글씨쓰기 편하기에 다홍치마를 보내왔다
두 아들(학인, 학유)에게 썼던 편지를 묶어 만든‘하피첩’.
선비의 마음가짐, 베푸는 삶의 가치 등을 전하는 내용이다. 보물 제 1683-2호.
다산은 서첩 4권을 만들었고, 하피첩 가훈를 써 양주집으로 보냈다
자손들의 독서를 강조하였다
보낸 치맛감에 종이를 붙여 만든 것이 하피첩이다,
배움의 주요함을 아르키는 글로
아들인 정학연과 정학유에게 보내는 편지글 등이 담겨있다.
1810년 강진으로 귀양 가 있던 정약용에게 부인 홍씨(洪氏)가 시집올 때 입었던
붉은 치마(紅裙) 한 벌을 보냈다.
정약용이 귀양을 떠난 지 십 년 정도 지났을 무렵이다.
정약용은 부인이 보낸 빛바랜 치마를 마름질해 네 첩의 서첩을 만들었다.
그중 현재 남아있는 것은 세 첩으로 첩의 순서는 알 수 없다.
남아있는 세 첩 가운데 두 첩의 서문에는 각각
‘1810년 수추(首秋)’와 ‘1810년 국추(菊秋)’라고 적혀 있다.
수추란 ‘가을의 첫머리’라는 뜻으로 음력 7월을 말하며,
국추란 ‘국화꽃이 피는 가을’이란 뜻으로 음력 9월을 일컫는다.
표지는 다소 손상됐으나 본문 글씨 등 전반적인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한 첩의 표지는 푸른색으로 박쥐문과 구름문1) 이 장식돼 있으며,
나머지 두 첩의 표지는 미색 종이에 장황(裝潢) 처리가 되어있다.
장황은 서화(書畫)에 종이나 비단을 발라 꾸미는 표구(表具)를 말한다.
정약용은 아내 홍씨가 보낸 치마로 만든 하피첩에 아들들을 위한 글을 적었다.
하피첩 서문에는
‘아내가 보내준 낡은 치마 다섯 폭을 잘라 작은 첩을 만들고,
경계하는 말을 써서 두 아이에게 준다’는 글이 적혀 있다.
선비에게 필요한 마음가짐이나 삶의 태도 등 아들들에게 교훈을 줄 만한 내용이다.
하피첩은 행서(行書)와 행초서(行草書)2) 등 여러 문체로 쓰여있어
정약용의 전형적인 행초서풍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한 첩은 전서(篆書)와 예서(隸書)가 실려있는 서첩으로 매우 귀중하다
다산 선생
"우리 집안이 언젠가 폐족을 면하는 길은 책을 읽고 독서하는 것밖에 없다.
짐승과 사람이 다른 점은 사람은 책을 읽을 줄 알고
짐승은 책을 읽을 줄 모른다."
"그리고 아버지가 벼슬을 했어도 재산이 없어 물려 줄 것이 없는데
야박하다고 서운해 하지 마라.
내가 너희들에게 유산으로 부적 두 글자를 물려줄테니 항상 지니고 다녀라.
그것은 바로 근검(勤儉)이다.”
다산은 家誡(가훈)을 하피첩으로 가르쳤다.
孝(孝弟慈), 깊이 생각하여 헤아린다.
아버지[父]는 의(義)롭고, 어머니[母]는 자애[慈]로우며,
형(兄)은 우애[友]하고, 동[弟]은 공손[恭]하며, 자식은 효도[孝]해야 한다),(孝弟慈)
다른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지 않는다(浩然之氣).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는다(光風霽月).
오직 나라와 백성을 위해 옳은 것을 추구한다.(唯是是求)
仁義 옳고, 바른 길을 가르친다(삶의 大道)
어짊이 사람의 마음이고(仁人心也)
올바름이 사람의 길이다(義人路也)
五敎이다(경천, 공경, 조화, 의로움, 책임 원리)
①하늘을 경외(敬畏)하며 살아간다는 敬天愛人 ‘경천의 원리’
②타인을 사랑하고 공경한다는 ‘사랑과 공경의 원리’
③타인과의 관계 및 조화를 잘 한다는 ‘관계 및 조화의 원리’
④덕망과 의로운 삶을 살아가는 ‘덕성과 의로움의 원리’
⑤자기에게 성실하고 타인에게 책임을 다한다는 ‘자기성실과 책임의 원리’
1818년 유배에 풀려나 고향 고양에 수오재(守吾齋 나를 지키는 것)를 지어
시류에 흔들리지 않도록 남은여생 18년을 마음을 다스리며 살았다
선인의 가르침을 실천하였다
“인간 사어라도 천청은 약뢰하고(人間私語天聽若雷)
암실 기심이라도 신목은 여전이니라(暗室欺心神目如電).
사람끼리 사사로이 하는 말이라도 하늘의 귀에는 천둥처럼 크게 들리고,
어두운 방안에서 자기의 마음을 속일지라도
신의 눈에는 번개불과 같이 밝게 보이느니라.”
말조심하고, 마음을 속이지 말고, 맑은 눈으로 세상살이를 바르게 하라
다산은 마음을 살피고 독서를 강조하여 고향 고양에 수오재(守吾齋)를 지어
‘나를 지키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게 하였다.
사람답게 사는 사람의 길을 가라
날마다 배우고 익히는 일에 힘써라(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 공자)
논어는 배우기(學)로 시작하여
남의 말을 알아 듣는 지언(知言)으로
앎이 삶이 되게 智行하는 것으로 끝난다
사람 사는 것은 배움이고(學), 남의 말을 알아 듣고, 바르게 행동 하는 것이다(知言)
삶이란 배우고(學), 익히며(習), 배웠으면 남의 말을 알아 듣고(知言),
바르게 행동하는 것이다(眞善美)
삶은 참되고 진실하고(眞 기뻐),
선하고 인자하게 살면(善 예뻐),
사랑으로, 아름다워 지는 것이다(美 미뻐)
사는 것은 기쁘고(悅, 說 기뻐), 즐겁고(樂 부끄럼이 없는 예뻐),
사랑으로(愛 예뻐), 아름다워 지는 것이다(美 미뻐)
다산은 배움(學)을 가장 소중히 여겨
아랫대의 이름의 돌림자를 學으로 하여 이름을 지었다
(학연, 학유, 학초,학무, 학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