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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 1: 13. 남편없이 지내겠다고 - 룻 1: 14. 입 맞추되
룻 1: 13. 남편없이 지내겠다고 - 너희가 어찌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겠으며, 어찌 남편 없이 지내겠다고 결심하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하매 ( 너희가 어찌 그것을 인하여 그들의 자라기를 기다리겠느냐? 어찌 그것을 인하여 남편 두기를 멈추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인하여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
1] 너희가 어찌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겠으며,
(1) 성장을 보장할 수 없다.
우연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아이들이 아무런 병도 없이 성년이 될 때까지 자란다는 것도 어렵다. 현대는 의술이 발달하여 성장을 보장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 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2) 배우자 선택을 보장할 수 없다.
사람들은 자기 마음에 흡족한 자들을 연모한다. 당시는 부모의 결정에 순복하는 시대였지만 그것을 어떻게 보장한단 말인가. 하루에도 열두 번 변하는 게 사람의 마음인데 ......
* 창 38: 8-10 - 8 유다가 오난에게 이르되,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남편의 아우 된 본분을 행하여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 9 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그의 형에게 씨를 주지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매 10 그 일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
2] 어찌 남편 없이 지내겠다고 결심하겠느냐?
(1) 우연을 믿을 수 없다.
셀 수 없이 많은 불가능의 조건들을 다 헤쳐 냈을지라도 자녀들의 마음을 너희들에게 묶어둘 수 없다.
* 삿 14: 1-3 – 1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고 2 올라와서 자기 부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 이제 그를 맞이하여 내 아내로 삼게 하소서. 하매 3 그의 부모가 그에게 이르되, 네 형제들의 딸들 중에나 내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네가 할례 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맞으려 하느냐? 하니 삼손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 여자를 데려오소서. 하니라.
(2) 세월의 흐름을 막지 못한다.
모든 조건을 충족시켰을지라도 세월의 흐름을 막을 수 없고,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나오미는 경험하였다.
아들을 낳아 남편으로 준다 할지라도 자부들은 이미 늙어 나오미와 같은 형편이 계속될 것이다. 이제는 자부들의 조건 때문에 지금까지의 노력은 헛수고가 되고 만다.
3]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하매
나오미가 자부들을 설득시키기 위해 마지막으로 이 말을 사용한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녀가 며느리들을 설득시키는 마당에 여호와께서 자기를 치신 사실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색해 보인다.
그러나 오르바가 돌아간 후, 나오미가 룻을 설득할 때 "네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15절)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나오미는 자부들의 여호와 신앙을 확실히 확인하고자 했던 것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자신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풍습과 언어가 다른 나라로 간다는 것은 큰 모험이기 때문이다.
또 어릴 적부터 섬기던 신을 떠나 여호와 신앙 공동체인 이스라엘로 간다는 것은 단순한 애정이나 의지만으로는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나오미는 자신이 당한 고난과 슬픔의 원인을 하나님의 징계로 받아들였다. 만일 나오미가 자기의 가정에 닥친 고난을 하나님의 징계가 아니라 자연적인 일로 생각했다면, 유다 땅에 흉년이 그쳤다는 소문을 들었을지라도(6절) 돌아갈 마음을 먹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9가지 재앙을 당한 후에도 그 재앙의 원인을 바로 깨닫지 못했던 애굽 왕 바로와는 좋은 대조가 된다.
룻 1: 14. 입 맞추되 -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 시모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
1]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시어머니의 설득은 구구히 옳은 말이었다. 어느 것 하나 아니라고 변명할 수 없다.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듯 악순환의 연속임을 절감하였다. 그들은 이런 현실 앞에 대성통곡을 터트릴 수밖에 없다.
2]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 오르바의 선택
관습상 입맞춤의 포옹은 기쁜 상봉의 순간이나 아쉬운 이별의 순간에 주로 행하던 풍습이다.
* 창 31: 55 - (야곱과 라반) - 라반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 맞추며 그들에게 축복하고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더라.
* 창 33: 4 -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 맞추고 서로 우니라.
* 창 45: 15 - 요셉이 또 형들과 입 맞추며 안고 우니 형들이 그제야 요셉과 말하니라.
* 출 18: 7 - 모세가 나가서 그 장인을 맞아 절하고 그에게 입 맞추고 그들이 서로 문안하고 함께 장막에 들어가서
* 행 20: 37 -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여기서는 영원한 이별이 될지도 모를 그 아쉬움 때문에 입맞춤한 것이다.
오르바의 하나님
시어머니 나오미는 두 며느리들에게 자기를 떠나 달라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였다. 룻 1: 11에 나오미가 이르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나의 태중에 너희 남편될 아들들이 오히려 있느냐?
이 구절을 이해하려면 이스라엘의 계대 결혼의 풍습을 알아야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각 지파별로 분배한 땅이 있다. 이것을 기업이라고 한다. 아버지가 죽으면 아들이 이 기업을 상속받고 아들이 없으면 이 상속권을 행사할 수 없다.
그러므로 만일 형이 아들이 없이 죽으며 그 동생이 형수와 동침하여 아들을 낳게 하여 형의 기업을 상속받게 하는 일을 하였다. 이것을 「계대 결혼」이라고 한다.
* 신 25: 5 – 형제들이 함께 사는데 그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 가지 말 것이요. 그의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나오미가 두 자부에게 돌아가라는 이유중에 두번째 이유다. (12-13절) 나는 늙었으니 아들을 얻을 수도 없고 설사 아들을 얻었다 해도 그 아이가 언제 자라서 너희의 기업을 이을 아들을 낳게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와 동행해 보았자 땅 한 평 없이 알거지로 고생만 할 테니 일찍이 마음 고쳐먹고 모압에 남아 새 남편 얻어 행복하게 살라는 이유다.
오르바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무 율법의 하나님」이다. 그녀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도 경외심도 없다. 오직 하나님을 좇으면 재물의 복을 받고 만사가 잘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였다. 그녀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 바가 아니고 오직 내게 복만 준다면 따르겠다는 마음이다. 쉽게 말하면 도깨비 신앙이다. 빌어줄테니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오라 뚝딱」 하는 식이다.
교회에 처음 나오시는 분들은 각기 신앙의 동기를 가지고 있다. 병을 고치기 위한 분, 장사가 잘되기를 원하시는 분, 자녀들이 복되기를 원하시는 분, 인격의 수양을 위한 분, 그러나 이것이 신앙의 목적이 되면 실망한다.
우리가 교회를 출석하는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1) 무 율법적인 신앙은 계명을 지키지 않는다.
현대인에게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신앙 형태이다. 십계명은 율법이니 예수 믿는 성도는 율법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는 행위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율법은 필요하다. 다만 그 행위로 구원을 얻는 것을 금한다.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인 10계명을 지키므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며 인격의 성화를 이루어 가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 교훈과 책망이 없이 자기 멋대로 자란 아이가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다.
온전한 주일 성수, 온전한 십일조, 주초의 금지, 세속적인 문화를 멀리하는 것은 구별된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을 존경하고 사랑한다면 당연히 지켜야 할 규례다.
부모의 매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란 아이는 부모를 소홀히 하고 마음을 아프게 한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진노의 하나님이다. 당신을 간섭하시고 온전하게 하시는 하나님이다.
(2) 무 율법적인 신앙은 재물을 섬긴다.
교회는 다니지만, 하나님을 소홀히 여기는 사람들의 기본 심리는 자기 유익이다. 특히 물질의 유익이다. 흔히 교회는 돈이 없으면 다니지 못한다고 비난한다. 예수님도 이점을 경고하셨다.
* 마 6: 24 -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예수님은 재물을 「맘몬」이란 말로서 신으로 표현했다. 무 율법주의자들에겐 돈이란 하나님보다 큰 신이다. 세상 사람들은 돈 신의 충실한 신도들이다. 돈이 오라하면 오고 가라하면 가고 죽으라 하면 죽는다.
돈을 부립시다! 오라 하면 오고 가라 하면 가는 권세를 가집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최고로 섬길 때 그런 권세가 나온다. ( 따라서 십일조는 돈을 부리는 권세를 얻는다. ) 오르바가 나오미를 쫓던 목적은 이스라엘 엘리멜렉 가문의 재산이었다.
(3) 무 율법적인 신앙은 중도에 탈락할 수 있다.
하나님에 대한 애정도 경외심도 없고 오직 자기 유익만을 구하던 오르바는 기꺼이 나오미와 함께 가던 길을 돌아섰다.
오르바는 여전히 섬기던 모압의 우상 신에게도 돌아갔다. (15) 결코 뒤 돌아서지 마십시오. 중간에 돌아선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다.
* 히 10: 39 -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3]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 룻의 선택
여기서 '붙좇다'에 해당하는 '다바크'(히)는 '굳게 결합하다'(cleave). 또는 '붙들고 늘어지다'(cling)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성경에서 주로 사용된 '다바크'란 동사의 용례를 살펴보면, 남녀의 결혼 관계나, 하나님과 성도의 관계에서 주로 사용되었다.
* 창 2: 24 -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 시 63: 8 -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
뿐만아니라 이 동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주권적인 구속의 은총에 대한 응답으로서, 그의 언약 백성들에게 충성을 요구하실 때 사용되었다.
* 신 10: 20 -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에게 의지하고 그의 이름으로 맹세하라.
이를 통해 볼 때 '다바크'란 말은 뗄 수 없는 친밀한 관계에 사용되었으며, 은총에 대한 충성을 다짐할 때도 언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룻이 그의 시어머니를 좇아간 것은 북받치는 애정과 충실한 마음으로 결코 이별하지 않겠다는 굳은 각오에 의해서였다. 아울러 나오미로부터 영향 받았을 여호와 신앙에 대한 확실한 믿음에 의해서였다(Driver, Briggs).
룻의 하나님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에 오르바는 중도에 탈락해 버렸으나 그러나 룻은 달랐다. 룻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사랑의 하나님, 복음의 하나님이다. 징계하셨으나 싸매주시는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룻의 신앙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발견하게 된다.
룻기는 구약의 복음서요, 구약에 나타난 「기독론」이다. 룻은 율법적인 신앙인인 시어머니 나오미을 붙좇으므로 말미암아 복음의 하나님을 만났다. 그렇습니다. 두려운 하나님을 알았으면 사랑의 하나님도 알아야 한다.
(1) 복음 신앙은 죄를 용서받는다.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하찮은 이방 며느리와 돌아오는 죄인 된 나오미의 마음은 참으로 처연했다. 그러나 그가 이스라엘 하나님의 땅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하나님께 돌아가는 나오미를 룻은 붙좇았다. 가던 방향을 바꾸어 하나님께 돌아가는 사람은 용서받는다.
「회개」란 가던 길을 멈추고 방향을 180도 바꾸어 하나님의 방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한 해가 다 가고 있다. 그 동안 가던 길을 살펴보라. 하나님을 향한 룻의 길이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등진 엘리멜렉의 길이었습니까? 방향을 바꾸십시오. 삶의 방향을 완전히 하나님을 향하여 180도로 바꾸기를 바란다.
하나님께 돌아갈 때, 붙좇은 이방 여인 룻을 통하여 폐망한 「엘리멜렉」의 가문을 다시 일으키셨다. 룻을 통하여 엘리멜렉의 끊어진 가문을 살릴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가문으로 인도하셨다. 죄인 된 집안이 의인된 집안이 되었다.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는 자에게 용서하시고 의인되게 하시는 하나님이다.
* 롬 3: 28-29 – 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29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 보혈의 피 공로로 과거의 모든 죄가 용서받음을 믿고 있습니까?
(2) 복음 신앙은 기쁨과 위로를 받는다.
룻은 모압에서 시아버지를 여의고 남편을 잃고 홀로된 시어미를 모시고 슬픔과 고통의 세월을 살았으나 하나님의 품에 안겨 그리스도의 조상인 오벳을 잉태하므로 기쁨과 위로를 받았다. 나오미는 상실했던 기업을 이을 아들이 태어났다고 기쁨으로 하나님께 찬양했다.
* 룻 4: 14 –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빌 4: 4) 여러분은 예수님을 영접하므로 하늘의 기업을 받을 수 있음에 기뻐합니까? 감격의 예수님, 구원의 기쁨, 감격을 날마다 새롭게 하는 분들은 세상 죄악의 권세를 이길 수 있다.
구원에 대한 감격과 기쁨과 환희가 넘치는 신앙인들이 교회에 대한 예배 생활, 헌신, 봉사, 전도에 대하여 적극적인 사람이 된다.
(3) 복음 신앙은 존귀와 영광을 받는다.
룻은 멸시받던 모압 여인이었지만 나오미를 붙좇아 하나님의 땅으로 들어갔고 엄청난 축복, 다윗 왕의 증조모가 될 수 있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들어갈 수 있었다. (마 1: 5). 영광스러운 여인이 되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는 이 세상에서 천대와 멸시를 받더라고 하나님이 존귀와 영광으로 관을 씌워 주신다.
오늘의 고난이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음을 인정하십니까?
(4) 복음 신앙은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한다.
나오미는 두려움과 진노의 하나님을 섬긴 신자라면 룻은 은혜와 감사와 사랑으로 하나님을 섬긴 신자다. 나오미는 진노와 두려움과 괴로움으로 하나님을 섬겼지만, 룻은 사랑과 감사를 통하여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나오미를 붙좇아 달려간 것처럼 하나님께 적극적인 사랑의 헌신자가 되었다. 나오미도 룻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통하여 그의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점차적으로 새로워져 갔다. 여러분의 모든 신앙생활은 사랑하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우리는 에베소서의 말씀을 통하여 에베소서의 주제인 「아름다운 교회」를 배울 수 있다. 아름다운 교회의 성도들은 엡 1: 3에 「신령한 복으로 시작하여 엡 6: 24의 「은혜가 있을 지어다」로 살아가게 된다. 여러분들의 삶이 신령한 복으로 시작하여 충만한 은혜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6: 24절을 마음 판에 새겨 놓아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시기를 바란다. 진정한 사랑은 변함없는 사랑이다. 변덕스러운 사랑은 피곤하다. 예수님도 피곤하시고 목사도 피곤하고 옆사람도 피곤하다. 주님 사랑해요, 사랑해요, 정말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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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이 즐거워야 행복해 진다고 합니다.
마음이 즐거우면 모든것이 긍정적으로 보이게 되므로
얼굴엔 늘 미소를 짓게되고 밝고 유쾌하게 된답니다.
얼굴에 환한 웃음과 함께 오늘도 멋지게 시작하시고요.
항상 웃음이 있는 그런 행복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