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다해 5월31일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제1독서 스바니야 예언서 3,14-18
복음 루카 복음 1,39-56
◈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성령 부자 되는 법
2019년 다해 5월31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성령 부자 되는 법>
복음: 루카 1,39-56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밭에서 일을 하시며 막걸리를 받아오라고
시키셨습니다. 저는 막걸리를 받아오며 홀짝홀짝 마시고 그러다 취해
넘어져 주전자에 막걸리를 조금밖에 남기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화내실 것 같아서 매우 불안한 마음으로 돌아오던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가 화를 내셨는지, 아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걱정으로 누군가를
만나러 가야만 했던 그 기억은 생생합니다. 누군가가 기뻐할 것을
가지지 못했다면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나에게 기쁨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는 오늘 엘리사벳을 방문하여 당신이 모신 성령님을
전해주십니다. 그리고 엘리사벳과 그 태중의 아기가 성령으로 기뻐하는
것을 보자 당신도 기쁨에 넘쳐 찬미를 드립니다. 사람은 남을 기쁘게
해 줄 때 가장 기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사랑의 본성이신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가져가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을 좋아하니 돈을 가져가면 좋겠지만,
우리에게는 성령님이 가장 소중한 선물입니다.
그런데 돈과 성령님과는 공동점이 많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돈을
모으는 것처럼 성령님을 고이 간직할 줄 알아야합니다. 그래야 이웃도
기쁘게 하고 나도 기쁠 수 있습니다.
스노우폭스 김승호 회장은 빈손으로 미국으로 건너간 사람 중에 가장
성공한 한국인 사업가 중 한 명으로 꼽힙니다. 그의 매장은 국내 10곳,
전 세계 1400여개로 연간 4,000억의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한 강연에서 돈의 속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4가지로 말했습니다.
이 돈의 속성을 잘 이해하면 성령의 은혜를 잘 간직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돈은 인격체입니다. 돈에도 생명이 있습니다. 돈을 소중히 여기고
합당하게 대우해주면 돈도 그 사람을 좋아합니다. 또 옳은 곳에 쓰면
다른 친구들을 데려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돈을 지나치게 집착하는 사람은 돈도 그 사랑에 지쳐 도망가게
됩니다. 또 돈을 너무 무시하는 사람은 돈도 그 사람을 무시해 가지
않습니다. 아낄 때는 아끼고 보낼 때는 흔쾌히 보내주는 사람이라면
돈도 그 사람에게 다시 오고 싶어 합니다.
성령님도 인격체이십니다. 성령의 은혜는 자신만 가지고 있으려고 해도
말라버리고, 아무에게나 무의미하게 전해주려 하다가는 무시 받는 것이
싫으셔서 그 사람을 떠납니다.
오늘 성모 마리아께서 성령을 꼭 필요로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
그에게 전해주려 긴 여행을 하신 것처럼 우리 또한 꼭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성령님을 전해주려는 마음이 있어야 우리 자신도 성령으로
가득 찰 수 있습니다.
2. 돈은 중력과 같습니다. 중력은 무게가 무거울수록 더 강하게
끌어당깁니다. 무게감이 크면 클수록 다른 돈을 끌어당기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돈에는 중력의 힘이 작용하기에 1,2,3,4,5,6,7,8의
순서대로 늘어나는 게 아니라 1,2,4,8 ... 이런 식으로 순식간에
불어나게 됩니다.
성모 마리아는 당신이 모신 성령을 통하여 당신 관계를
확장시키셨습니다. 요셉에게만 있지 않고 엘리사벳과 그 태중의 미래의
세례자 요한에게까지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렇게 큰 가족이
형성됩니다. 예수님도 사도들과 제자들을 바탕으로 커다란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혼자 성령으로 충만한 것보다 성령으로 여럿이 뭉칠 때 성령의 힘은 더
강력해집니다. 성령은 우리를 개인적인 기도생활에만 머물지 않고 친교
공동체를 통해 더 확산됩니다. 성령 강림 때 성령께서 120명이 모인
가운데 내려오셨습니다. 함께 모인 곳이 더 뜨겁고 더 뜨거운 곳에
성령께서 더 많이 내리십니다.
3. 일정하게 들어오는 작은 돈은 일시적으로 들어오는 큰 돈보다 더
힘이 셉니다. 예컨대 매달 100만원씩 버는 사람은 어쩌다 한 번에
1000만원씩 버는 사람보다 힘이 세다는 것입니다. 일정하게 돈이
들어오지 않으면 이를 관리하고 모을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해지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받기 위해 피정과 같은 것을 즐기면서 일상에서는 규칙적인
기도생활을 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성령의 충만함으로 살기 어렵습니다.
성령을 쉽게 잃게 됩니다. 돈도 그렇듯이 성령도 매일 꾸준한 기도를
통해 모시는 사람에게 더 큰 은총을 주십니다. 성모님께서 엘리사벳에게
성령을 주실 수 있으셨던 이유가 한 번에 성령을 모신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기도를 꾸준히 하시는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4. 고생해서 번 돈은 공짜 돈보다 힘이 셉니다. 현재 보여 지는 가치가
동일한 돈일지라도 돈이 벌어지는 과정에 따라서 그 돈의 무게가 전혀
달라집니다. 갑자기 복권당첨이나 땅값이 올라 큰 부자가 되더라도
꾸준히 모은 적금하고는 전혀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생하지 않고 번 돈은 가볍게 날아가 버리고 그냥
흩어져버립니다.
성령은 하느님의 피입니다. 하느님의 피를 얻기 위해 인간도 합당한
고생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는 것이 곧 기도와
같습니다. 그렇게 밤새 고생해서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TV를 끄고 집보다는 성당에서 기도한다면 같은 시간 기도하더라도
더 충만한 성령님을 모시게 될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을 모신 사람은 남과 머무르며 남을 기쁘게 할 때
더 행복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남을 기쁘게 하는
방법으로 당신이 모신 성령님을 전해주셨습니다. 우리 또한 기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성령의 부자가 될 줄 알아야합니다. 그러면
동시에 기쁨의 부자가 될 것입니다. 성령의 부자가 되는 능력을
키웁시다.
- 수원 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
◈ [수원]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조욱현 토마스 신부 강론
2019년 다해 5월31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복음: 루카 1,39-56: 주님의 어머니께서 나를 찾아 주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
오늘 축일은 가브리엘 대천사로부터 주님의 잉태소식을 들은 마리아가
예루살렘 남쪽 유다 지방에 사는 친척 엘리사벳을 방문한 것을
기념하는 것이다. 엘리사벳은 노년에 이르도록 자식이 없었다. 그런데
그 나이에도 아이를 가진지가 여섯 달이나 되었다는 말씀을 천사에게서
듣고 “길을 떠나, 서둘러”(39절) 엘리사벳의 집으로 바삐 가시는
모습이다.
당신이 장차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실 분이었지만, 당신은 언제나
‘주님의 종’으로 겸손하게 행동하시는 모습이 우리를 감동시키고 있다.
요즈음 매스컴에 회자되는 그러한 여인들의 모습이 아니다.
친척 엘리사벳의 임신 소식을 들은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39절) 가는 모습을 우리는 주의 깊게 바라보아야 한다. 마리아가
하느님의 아들을 이 세상에 낳아주고, 하느님의 어머니가 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웃을 향한 사랑의 실천에서 비롯되었다고
많은 영성가들은 말하고 있다.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잉태소식을 듣고,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였기
때문만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인 마리아는 거기에 그냥
머물지 않고 이웃에게로 향했다는 그 사실이, 그것도 걸음을 서둘러
이웃에게로 향했다는 사실이 마리아를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게 했다는
것이다.
마리아의 이 모습은 바로 우리 신앙인들에게 큰 모범을 주시고 계신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고, 또 그 복음을 받아들이면서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났다. 우리는 이렇게 신앙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오늘 마리아를
통하여 배워야 하며, 그대로 실천해야 한다.
즉 신앙을 갖고 사는 우리는 이제 마리아와 같이 즉시 이웃에게로
‘걸음을 서둘러’ 다가가야 하는 것이다. 이때에 우리도 마리아와 같이
사랑이신 하느님을 이웃에게 낳아주는 또 하나의 마리아가 되는 것이다.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을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시고 세상의
구원을 위해 낳아 주셨다. 그 아들의 탄생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나신”(요한 1,13) 분이시라고
복음은 전하고 있다. 이것이 동정잉태의 의미이다. 왜냐하면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가 1,37).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난 것도 이와 같다. 우리도 바로 하느님에게서 위로부터 다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태어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완숙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의 자녀라는 새로운 조건에서 성장해야 한다. 여기서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 속에 살아있어야 한다. 즉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은 자신의 태도가 사랑(1요한 4,7), 즉 형제들을 향한 사랑으로
(참조: 3,1) 특징지어져야 하며, 자신의 인격을 걸고 자신을 변화시켜야
한다. 자신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삶이 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나를 변화시키는 삶은 바로 실천적인 신앙생활을 통하여 사랑으로
귀결되는 새로운 정의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 이 삶을 우리는
마리아에게서 배워야 하는 것이다. 그분은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써
그리스도를 낳아주셨고, 이제 우리도 사랑의 실천을 통하여 나 자신의
변화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전해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계속 하느님의 자녀들이 태어나게 하는 중간 역할을 우리가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1,45) 복되신
마리아는 주님을 찬미하는 마리아의 노래를 부른다. 우리 모두 지금
이 자리에서 마리아의 노래를 부르면서 하느님을 찬미하도록 해보자.
우리 역시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을 때,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삶을 통하여 언제나 감사드릴 수 있는 삶이
되도록 하자.
“마리아는 석 달가량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56절) 마리아의 봉사는 바로 세례자 요한이 태어날
때까지의 봉사였다. 엘리사벳의 산후 조리까지 도와주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참으로 위대한 사람은 사랑을 많이 가진 자일 것이다. 참으로
높은 사람은 자신을 작게 보고 모든 귀한 영예를 허무와 같은 것으로
보는 자일 것이다. 마리아의 방문이 이 같은 느낌을 갖게 해 준다.
만왕의 왕이신 분을 가지신 분이 엘리사벳을 찾아가 봉사하다니!
놀라운 겸손과 사랑의 신비를 보는 것 같다.
오늘 5월의 마지막 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을 지내면서 성모님께
우리의 사랑을 드리는 이 시간에는 우리 모두가 성모님을 본받아 이웃
사랑과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정으로 진정 이웃을 사랑하고 봉사하려는
덕을 배우고 또 그렇게 하도록 결심하는 시간이 되어야 하겠다. 우선
우리가 마리아와 같이 되는 우리 자신의 근본적인 변화를 성모님께
도와주시기를 청하자.
- 수원 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 -
◈ [서울]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2019년 다해 5월31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주일 새벽 미사에 복사를 서는 아이들에게 집이 어디인지 물었습니다.
뜻밖에도 한 아이는 집이 동탄이라고 합니다. 집이 이사하여서 평일에는
복사하러 올 수 없고, 주말에는 할머니 집에 와서 자고 복사를 한다고
합니다. 왜 동탄에서 서울로 오는지 물었습니다. 아이의 대답이 제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동탄으로 가면 성당이 낯설고, 복사를 서지 않으면
신앙이 식을 것 같아서 힘이 들지만, 주말에 서울로 온다고 합니다.
아이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대견했습니다. 신앙은 많이 아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은 지식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순수한 마음에서 시작합니다.
임치백 요셉 성인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에게 옥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교리를 받을 시간이 많지 않아서 십계명도 잘 몰랐습니다.
신문하는 관원이 십계명을 외워보라고 했지만 외울 수 없었습니다.
관원은 십계명도 모르면 신자가 아니라고 하면서 풀어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임치백 요셉 성인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은 배워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식이라면 법을 몰라도
부모에게 당연히 효도하는 것입니다. 제가 교리를 잘 몰라서 십계명을
모르지만, 하느님께 효도하는 것은 신자라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기에 저는 하느님께 효도하려고 합니다.” 관원은 임치백 요셉
성인의 말을 듣고 더 심하게 고문하였고, 임치백 요셉 성인은
순교하였습니다. 신앙은 율법을 많이 아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은 삶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성모님께서 엘리사벳을 방문한 것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의 구원사업을 위해서 미리 길을 준비한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을 구세주의 어머니께서 방문하신 것입니다. 좋은 기운이 함께
만나니, 아름다운 노래가 들려옵니다. 엘리사벳의 고백은 우리가 늘
바치는 ‘성모송’의 기원이 됩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하시니 태중에 아들 또한 기뻐 뛰노나이다.’
엘리사벳의 환영을 받은 성모님은 참된 신앙인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해
주는 ‘마리아의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권세 있는 자를 자리에서
내치시고, 미천한 이를 끌어 올리시는 분, 부유한 자를 빈손으로
보내시고, 가난한 이의 배를 불리시는 분께서 나를 복되다 하시나이다.’
행복이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느님의 말씀이 내 안에서 드러나고, 내 삶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느님을 닮았고, 하느님께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엘리사벳과 마리아는 그래서 행복한
것입니다. 행복해지고 싶으신가요? 그럼 욕망의 불꽃에서
멀어지십시오.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무르십시오. 그러면 이미
행복한 사람입니다.
엘리사벳은 성모님께 축복의 인사를 드렸고, 성모님은 하느님의 은총을
찬미하는 노래를 부른 것처럼 우리들의 만남이 이렇게 축복과 은총으로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5월 마지막 날입니다. 나를 통해서 세상
사람들이 하느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도록 충실하게 지내면
좋겠습니다. 나를 통해서 지친 사람들이 위로를 받고, 절망 중인 이웃들이
희망을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나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수도회]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요한 1, 45)
|한상우 바오로 신부 강론
2019년 다해 5월31일. 금.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요한 1, 45)
어디에서 행복이 오는지를 알게됩니다.
온갖 행복은 주님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오늘의 의미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함께 나누어야 할 말씀의 사랑입니다.
말씀 위에 믿음을 세우십니다.
말씀을 만나 희망으로 가득찬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행복입니다.
가장 행복한 순간은 하느님 사랑을 나눌 때입니다.
말씀으로 이루어지는 우리의 삶임을 깨닫게됩니다.
말씀안에서는 지나갈 모든 길이 행복이 됩니다.
우리의 삶이란 말씀으로 다시 시작되는 여행과 같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깨우는 행복한 만남처럼
행복한 나눔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말씀과 함께 합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수도회] 마리아는 자신의 존재 전체, 삶 전체를 다 바쳐
마니피캇을 노래했습니다!
2019년 다해 5월31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방문 축일
마리아는 자신의 존재 전체, 삶 전체를 다 바쳐 마니피캇을
노래했습니다!
나자렛의 마리아와 아인카림의 엘리사벳이 서로 상봉하는 장면은
참으로 기이하면서도 동시에 감동적입니다. 인간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 참으로 기구하고 비극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먼길을
걸어 찾아온 여인은 10대 미혼모입니다. 맞이한 여인은 놀랍게도
노산(老産) 중의 노산을 앞둔 호호백발 할머니입니다.
그러나 두 여인은 서로 상봉하자마자 기쁨 충만한 찬가를 주고받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두 여인의 뱃속에 든 아기들도 서로 인사를 주고
받습니다. 더 이상 불행할 수 없는 만남인 듯 한데, 분위기는 축제
분위기입니다. 비결은 활기차고 충만한 성령의 현존 때문입니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 마리아가 위대한 예언자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을 방문합니다. 엘리사벳은 이스라엘의 옛 백성 전체를
대변한다면 마리아는 하느님의 새 백성 전체를 대변합니다. 이로서
인류의 두 위대한 어머니가 만나게 된 것입니다.
성령으로 가득찬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보자 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위대한 하느님의 구원 업적의 서막을 찬양하는 동시에, 마리아의
놀라운 믿음을 칭송하고 축복합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루카 복음 1장 42~45절)
엘리사벳의 노래를 통해 우리는 마리아가 어떤 분이신지 명확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여인들 가운데 가장 복되신 분.’ ‘주님의 어머니.’
‘믿으신 분.’
여기서 우리가 꼭 눈여겨 볼 점 한 가지! 마리아는 믿는 모든 이들의
전형으로 등장합니다. 복음사가들이 마리아에게 최상의 칭호를 부여한
이유는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으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하느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엘리사벳의 노래에 이어 마리아께서도 응답의 노래를 부르십니다.
신약 성서 내 여러 찬가 중에 가장 아름답고 의미있는 찬가로 손꼽히는
마리아의 노래는 라틴어로 ‘찬미하다.’(Magnificare)라는 동사의 3인칭
Magnificat으로 시작되기 때문에 ‘마니피캇이라고 부릅니다.
마니피캇은 하느님을 향한 마리아의 찬미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행하신 놀라운 위업(偉業)을 노래하는
동시에, 인류의 구원을 위한 역사(役事)하심, 그분이 약속이 반드시
성취될 것임을 보증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이런 의미에서 마니피캇은
종말론적 찬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반부는 개인적 차원의 감사의 찬미가입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 부족한 자신을 선택해 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찬가입니다.
후반부는 공동체적 차원의 감사의 찬미가입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보살펴주시는 하느님께 대한 감사와,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예수님의 탄생을 통해 이루어진 데 대한 감사의 찬가입니다.
마니피캇에서 마리아는 새로운 하느님 백성이 이제 막 체험하게 될
종말론적 대사건의 해설가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니피캇은 마리아의 노래이기도 하지만 오늘 우리 각자의 노래이기도
합니다. 마리아께서는 당신 홀로 감사의 찬가를 부르기보다는, 우리
모두 함께 찬미가를 부를 것을 기대하십니다.
매일 저녁 기도 때 마다 마니피캇을 노래하는 모든 수도자와 사제,
그리스도인들은 마리아의 마음으로 하느님의 인류 구원 업적을 큰
목소리로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부족하고 보잘 것 없는 우리를 새로운
당신의 백성으로 선택해주신 하느님의 자비에 크게 감사하며, 이
노래에 동참해야 할 것입니다.
마리아는 그냥 적당히 마니피캇을 노래하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전체, 삶 전체, 몸과 마음, 정신 전체를 다 바쳐 노래했습니다. 불가능이
없으신 전지전능하신 구원자 하느님, 이스라엘을 대표한 마리아
자신에게 큰 자비를 베푸신 사랑의 하느님께 큰 감사를 드리며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인류 구원 사업을 위한 결정적인 도구로 마리아를
선택하신 이유를 생각해봅니다. 권세 있는 자, 부유한 자, 교만한 자,
능력있는 자가 아니라, 비천한 자, 단순한 자, 스스로 보잘 것 없는
하느님의 피조물임을 잊지 않는 겸손한 자여서 선택하셨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SDB)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 [기타] 5월31일 덕을 세우는 성도
오늘은 ‘덕을 세우는 성도’라는 내용으로 은혜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로마서 15장 2절 말씀에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란 세상 사람과 달리 거룩함을 찾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이기적인 생각이 가진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총체적인 기준은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이웃에 대하여 남다른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즉, 그 이웃을 기쁘게 하고 그 이웃에게 힘이 되어주는 것, 그래서 모든
이들에게 덕이 되고 주변을 평화롭게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이와 반대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자기밖에 모르지요. 물론 새 신자들은 당연히 자기중심적일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 자기 것만 챙기고 남이야 두 번
세 번째라는 식으로 배타적인 모습을 보이면 믿음 사람에 대한 소문이
좋지 않게 날 뿐 아니라 평판이 좋지 않습니다.
이제부터 우리의 성도들은 이웃을 기쁘게 하고 이웃에게 힘이 되어주고
주변 사람에게 덕이 되는 행동을 하는 그리고 가까이 가고 싶은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 인천 부평 사랑밭 교회 권태일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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