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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무리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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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신학 질문코너 신국원 교수님의 글을 보다가 잘 모르겠어서 질문을 드립니다 ㅠ
korn 추천 0 조회 244 11.09.06 11:35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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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09.21 00:27

    첫댓글 잘 아시는 분이 대답해 주시리라 생각하고 기다렸지만, 그런 분이 없어서 미안한 마음으로 제가 간단하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선 형상과 질료라는 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 됩니다. 형상을 '현실태'라고 하기도 하고, 질료를 '가능태'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가능태는 어떤 것으로 나타나서 꼴을 이룹니다. 예를 들면 씨앗이 가능태라면, 그것이 심겨져서 자라서 나무가 된다면, 이 나무는 형상 즉 현실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이 나무를 베어서 집을 지었다면, 나무는 집의 가능태이고 집은 형상 곧 현실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리스토멜레스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이런 식으로 현실태로 나타나게 된 근거를 가지고 있다

  • 11.09.21 00:40

    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는 이런 식으로 세상의 모든 것이 이어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마지막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가능태가 되지 않는 순수 현실태(순수형상)에 도달한다고 생각했고, 그 순수형상이 신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하여서 이 세상은 신에게서 나왔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인 셈입니다. 결국 형상과 질료라는 것은 이 세상에 대한 궁극적인 답을 찾아보려는 노력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생각은 플라톤의 이데아의 세계와 현실 세계라는 이원론적인 세계관을 비판하려는 관점이었지만, 결국 신이라는 것을 상정하게 되었기 때문에 플리톤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 11.09.21 01:00

    비판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이 서양 철학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양철학은 여기서 뿌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창조-타락-구속은 흔히 성경에서 나온 기독교 세계관이라고 불립니다. 성경에서 이것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창조주 하나님을 믿으며, 그리고 인간이 타락하여 죄의 상태에 빠졌으며, 여기에 구속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서 구원의 길을 여셨으며 결국 완전한 새로운 세계를 다시 창조하여 내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세상의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해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셋째, 은총과 자연은 로마 천주교의 세계이해의 바탕이 되고 있다고

  • 11.09.21 01:14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시각을 가졌기 때문에 로마 천주교 신학자들은 은총을 통해서도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지만, 자연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주장합니다. 여기에는 인간의 이성의 가능성이 굉장이 큰 것으로 여겨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스콜라 철학자들 즉 안셈, 보나벤투라, 둔스 스코투스, 아퀴나스 같은 사람들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이런 체계를 위해서 노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신존재 증명이 나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넷째, 르네상스에서 싹튼 자연과 자유의 정신은 현대 과학적인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유라는 것은 신에게서 인간의 자유를 의미한다고 생각할 수 있고, 자연

  • 11.09.21 01:25

    이라는 것은 신은 경험적으로 알 수 없는 대상이니 결국 중요하게 되고 또는 절대적인 것이 된 것은 자연 즉 물질의 세계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니 인간과 자연 세계가 주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신의 세계에서 인간과 자연 중심의 세계관이 태동하게 되었고, 그리고 이것은 다얗한 철학적인 분류가 나타나는 터전이 되고, 현대 과확의 기초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학적인 사고를 한다는 현대인들과 현대의 모든 학문이 이것에 기초하고 있으며, 신학도 이것에 아주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철학을 전곧한 사람이 아닙니다. 상식적으로 접하면서 이해한 것을 적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 11.09.21 01:32

    설명이 반드시 옳다고 장담도 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질문에 대하여 대답해 주는 분이 없어서 질문하신 분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겨서 써 보았습니다. 원래 무식한 사람이 용감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글을 쓰는 것은 바보가 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질문하신 분이 더 많이 공부를 하셔서 앞으로 더 좋은 글을 써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그 때까지 저 같은 사람이 살아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배울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죽을 때까지 배우다가 가는 사람이 기독교인이 아니겠습니까?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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