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목소리가 보여 / 임미리
사람들은 짓궂다. 타인의 아픔이 곧 자신의 즐거움이다. 세상이 각박해져서가 아니라 원초적으로 그렇게 길들여진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한다. 가끔씩 사는 일이 코미디 같다. 사람들은 이 코미디를 보면서 즐거워한다. 나는 코미디나 개그 프로는 거의 안 본다. 물론 내 생각이 단편적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코미디나 개그의 주인공이 자신이라고 생각하면 자신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몰입도가 떨어지고 웃고 넘어갈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입장에서 보면 놀림감의 대상이 된다.
자아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 초등학교 저학년에게 놀림감이 된다는 것은 큰 상처다. 치유하기 어려운 문제다. 자존감이 상처 입은 까닭이다. 내 학창 시절이 그랬고, 어른이 되어서도 그곳에서 빠져나오기는 어려웠기에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이 자신이 없다. 그런데 얼마 전 티브이를 보다가 나도 같이 웃었다.
노래실력을 숨긴 미스터리 싱어 그룹에서 얼굴과 몇 가지 단서만으로 실력자인지 음치인지를 가리는 “너의 목소리가 보여”란 예능 프로그램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실력자를 찾으면 실력자라서 웃고, 음치를 찾으면 음치라서 웃었다. 결국은 프로그램 속의 음치가 노래 부르는 모습 때문에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토끼가 입을 맞춘다는 가난한 산골짜기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산골에 살았고, 라디오도 없었으며, 누군가 노래하는 것을 들어보지도 못했다.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고 홍역에 걸려 오랫동안 학교에 가지 못하고 결석을 했다. 어느 정도 몸이 나아서 학교에 갔지만 초등학교 1학년 때 배워야 할 무용이나 노래는 배우지 못하고 2학년으로 올라갔다
.
2학년 수업시간이었다. 담임선생님께서 애국가를 외워오라고 숙제를 내주었다. 숙제를 내주었으니까 나는 열심히 애국가를 외워서 학교에 갔다. 숙제 한 사람 앞으로 나와서 숙제를 하라고 했다. 나는 가사를 외운 데로 내 방식대로 애국가를 낭송했다. 선생님을 비롯하여 반 친구들이 웃으면서 난리가 났다. 선생님은 애국가를 노래로 부르라는 말씀이었는데 나는 내 방식으로 숙제를 했으니,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얼마나 창피하고 쥐구멍에라도 들어가 숨고 싶었는지 모른다. 음악시간이면 친구들이 놀렸고 자존감에 상처입은 나는 사람들 앞에 나가서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되었다.
중학교,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음악시간은 나에게 힘들었다. 음악 선생님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을 했다.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태도를 취했다. 그래서 음악과는 거리가 멀게 살아왔다. 나는 노래를 못 부른다고 단정을 하고 살았다.
어린 시절 친척들이 모이면 방안에 모여 앉아 노래를 시키곤 했다. 하지만 역시 나는 노래가 되어 나오지 않았다. 가족들과 노래방에 가도 유독 나만 노래를 못 불렀다. 부모님도 잘 하시고 동생들도 잘하고 문제는 나였다. 그래서 그런 시간이 싫었다. 아이들도 엄마가 노래를 못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이들은 엄마를 닮지 않고 음치가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노래방 문화에 길들여진 한국에 살면서 그곳을 피하는 방법은 없었다. 그럴 때마다 마지못해서 친구들이나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노래를 부르는 척만 했다. 친구는 좋아하는 노래를 골라서 천 번만 연습해보라고 그러면 잘할 수 있다고 나에게 희망을 주었지만 나는 알고 있다. 잘 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는 것을, 들으면 그대로 전달이 되어야 하는데 듣는 것과 듣고 내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전혀 다르다. 박자도 맞지 않고, 음도 맞지 않다. 그래서 늘 뒤로 숨어버리는 생활을 했다. 앞에 나서는 일에 자신이 없었다. 모든 일에 소극적이고 자신감이 없었다.
잘 듣고 따라서 해 보려고 했다. 가사를 외우지 못해서 안되나 하고 가사도 외워보고 녹음해서 들어도 보고 했지만, 노력하려고 하는 마음보다 포기가 더 빨랐다. 나는 알고 있다. 제대로 들어야 밖으로 목소리가 밖으로 나올 수 있는데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가 나온다는 것을. 나는 말을 하는데 사람들은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웬만해선 사람들은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을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참고, 되도록 말하지 않고, 지냈던 것 같다. 자신감이 없어 주눅 든 생활을 참 오래 했던 것 같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꺼려서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다. 가끔씩 애국가가 흘러나오면 가슴 벅차오르고 뭔가 애국자라도 된 것 같지만, 초등학교 때 일이 떠올라 혼자서 얼굴이 붉어지고 움츠려 든다.
“너의 목소리가 보여”의 프로그램을 만든 의도가 있겠지만, 음치를 맞추는 일이 즐겁고 재미있는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오는 사람들은 실력자도 있고 음치도 있다. 그들이 정말로 상처받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음치의 노랫소리에 사람들의 짓궂은 웃음소리가 들리고 반대로 실력자들의 노랫소리에 감탄해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나도 웃음이 나왔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해진다.
음치여도 상관없다고, 살면서 그런 일은 작은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이겨냈으니까 이 프로그램에 나왔을 것이다. 그래도 그들이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주눅 들지 않고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