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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23일 오늘의 역사
2023년 바둑 거장 권갑용 9단 별세
프로기사 권갑용 9단이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66세. 1975년 입단한 고인은 2021년 국내 99번째 입신(入神·9단의 별칭)에 올랐다. 장녀 권효진(41) 7단이 95년 입단하면서 국내 1호 부녀(父女) 프로기사 활동해왔다.
권9단은 ‘한국의 기타니(木谷実)’로 불릴 만큼 뛰어난 바둑 인재들을 키워낸 지도자로도 유명하다. 1982년 바둑학원으로 출발해 권갑용 바둑도장, 키바바둑 등에서 평생을 후학 양성에 힘써왔다. 1989년 박승문을 첫 프로기사로 배출한 이후 이세돌(은퇴)ㆍ원성진ㆍ최철한ㆍ백홍석ㆍ강동윤ㆍ김지석ㆍ박정환ㆍ윤영선 등 8명의 남녀 세계 챔피언과 이영구ㆍ윤준상ㆍ천스위안 등 50명이 넘는 프로기사를 키워냈다.
1993년 바둑문화상 특별공로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2004년 제4회 돌씨앗배 프로시니어기전 3위에 입상했다.
2023년 파키스탄 전국 대규모 정전사태 발생
경제난으로 인해 연료 수입과 발전소 가동 등 전력 수급에 불안을 겪고 있는 파키스탄에서 전국적인 규모의 정전이 발생했다. 파키스탄 에너지부는 이날 오전 7시 34분쯤 국가전력망의 주파수가 떨어지면서 전력 시스템에 광범위한 고장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날 사고로 이슬라마바드, 카라치, 라호르, 퀘타 등 주요 도시에선 대규모 정전이 발생했다. 특히 파키스탄 최대 도시인 카라치에선 전력망의 약 90%가 타격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파키스탄에서는 지난해 10월에도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대규모 정전이 발생했다. 당시 정전은 원자력 발전소 가동 중단 등 혼란을 겪고 나서야 12시간만에 복구됐다.
2022년 차준환 남자 피겨 싱글 4대륙선수권 금메달 쾌거 ‘韓 남자싱글 최초’
남자 피겨스케이팅 간판 차준환(고려대)이 한국 남자 싱글 선수로는 최초로 국제빙상경기연맹(ISU) 4대륙선수권대회 금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뤘다.
차준환은 에스토니아 탈린의 톤디라바 아이스 홀에서 열린 2022 국제빙상경기연맹(ISU) 4대륙선수권대회 남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기술점수(TES) 86.48점, 예술점수(PCS) 88.78점, 감점(Deduction) 1점을 받아 174.26점을 기록했다.
전날 쇼트프로그램에서 완벽한 연기를 펼치며 개인 최고기록인 98.96점으로 1위에 오른 차준환은 프리스케이팅 점수를 합한 총점에서 273.22점을 획득, 일본의 도모노 가즈키(268.99점)를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이날 기록은 자신의 총점 최고점(265.43점)을 7.79점이나 끌어올린 것이다.
이로써 차준환은 남자 싱글 선수로는 최초로 4대륙 대회서 금메달을 따내는 새 역사를 썼다. 이 대회서 메달을 획득한 것도 차준환이 최초다. 2009년 김연아의 금메달을 시작으로 2020년 유영(은메달), 이번 대회 이해인(은메달), 김예림(동메달) 등 여자싱글에서만 메달이 나왔다.
2016년 32년만의 제주도 폭설로 공항 마비
당시 12㎝ 눈이 내려 1984년 1월(13.9㎝) 이후 신(新)적설량으로는 32년 만에 가장 많은 눈이 쌓였다. 당시 윈드시어(순간돌풍) 경보·대설경보가 공항에 발효된 데 이어 순간 초속 15m의 강한 돌풍이 몰아치는 최악의 기상조건에서 활주로 눈을 치우는 것은 무의미했다.
폭설로 인해 당일 오후 5시 50분부터 제주국제공항의 항공기 운항이 전면 중단됐다. 관광객 등 2만여명이 제주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비행기를 타려 대기하던 승객 대부분은 공항을 빠져나왔지만, 1천여명은 항공기 운항이 재개될 때 항공권을 먼저 구하려 공항에 남았다.
사람들은 공항 대합실 바닥에 종이상자 또는 신문지를 펴서 깔아 쪽잠을 자거나 이마저도 구하지 못하면 공항 의자 또는 바닥에 쪼그리고 누워 잠을 청했다.
기상 악화가 계속 이어지면서 제주를 벗어나지 못한 체류객은 8만9천여명으로 불어났고, 공항 인근 숙박시설과 식당·찜질방·사우나 등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공항에 남은 내·외국인 관광객들의 숙식 문제가 발등의 불이 됐다.
도로가 얼어붙고 항공기·선박 운항이 중단되면서 물품 보급이 어려워지자 공항 안팎에 있는 편의점의 삼각김밥 등 신선식품과 과자가 바닥났다.
항공기 운항 중단 사태는 25일 오후 2시 47분 이스타항공 ZE236편이 승객 149명을 태우고 출발하면서 일단락됐다. 폭설로 활주로가 폐쇄된 지 44시간 만이었다.
2016년 중국 네이멍구 건허시 진허진 –48℃
2015년 압둘라 사우디아라비아 국왕 사망
2015년 제주 32년 만의 폭설, 25일까지 3일간 제주공항 활주로 폐쇄 8만 여 명 발묶임
2013년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결의안 2087호 채택
2009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중국 왕자루이 접견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2009년 1월 23일 방북 중인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접견했으며, 왕 부장은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친서를 전달했다.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이 제기된 지난해 9월 이후 외빈(外賓)을 만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의 마지막 외빈 접견은 지난해 6월 17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부주석의 방북 때였다. 이날 공개된 10여장의 사진에서 김 위원장은 왕 부장과 웃으며 악수하는 등 비교적 건강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우리 정보 당국자는 "이전에 비해 김 위원장의 정수리 부분에 머리가 많이 빠져 있고 왼손이 부은 것처럼 보이는 등 완전하게 정상 상태는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성공적인 6자회담을 위한 중국의 협조를 부탁했으며 후진타오 주석은 친서에서 김 위원장의 중국방문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김 위원장의 연내 방중(訪中)이 성사될지 주목된다.
일각에서는 "올해가 북·중 수교 60주년이기 때문에 김 위원장과 후 주석이 각각 베이징(北京)과 평양을 교차 방문하는 문제에 관한 언급이 오갔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김 위원장이 이날 221일 만에 '공식 무대'에 선 것은 그동안 대내외에 여전히 남아 있던 건강 관련 의심을 해소시키려는 의도가 담겨 있는 듯하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북한은 왕 부장을 초청했을 때부터 김 위원장의 건재를 과시하겠다는 이벤트적 성격을 염두에 뒀을 것"이라며 "또 오바마(Obama) 미 행정부 출범이라는 타이밍도 고려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지난해 8월 중순 뇌혈관계 질환으로 쓰러졌던 것으로 알려진 후 외부 세계가 궁금해하던 그의 현 건강상태에 관해 비록 외관이긴 하지만 상당한 정보를 제공한 셈이다.
2009년 세계 D램 반도체 업계 5위 독일의 키몬다 파산
세계 D램 반도체 업계 5위권인 독일의 키몬다가 2009년 1월 23일 파산을 선언했다.
경영난을 겪고 있는 키몬다는 지난달 독일 작센 주정부와 모회사 인피니온 테크놀로지, 포르투갈 은행 등으로부터 3억2천500만유로(한화 약 5천900억원)을 지원받아 가까스로 퇴출을 모면했으나 결국 파산을 피하지 못했다.
2008년 팔레스타인인 수천 명 가자지구서 이집트 국경 넘음
2007년 서울중앙지법 인혁당재건위 사건으로 사형된 8명에 대해 무죄 판결
2001년 벨기에-북한 국교 수립
2001년 한국화가 운보 김기창 별세
1913년 서울에서 태어난 운보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장티푸스로 청각을 잃었지만 불굴의 의지와 자기혁신으로 ‘청록산수’ ‘바보산수’ 등 한국화의 독보적 경지를 개척하며 20세기 한국의 대표적 화가로 활동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청각을 잃은 운보의 고통은 육체적인 것에 그치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에 활동했던 데 따른 친일시비, 6·25가 갈라놓은 형제간 이산 등 우리 현대사의 아픔 그것이었다. 이런 역경을 때론 특유의 바보스럽고 천진한 웃음으로, 때론 야생마 같은 광기로 털어버리며, 자기보다 어려운 이에 대한 사랑과 예술로 승화시킨 것이 운보 생애의 위대함이었다.
운보는 1930년 이당 김은호 문하에 든 지 6개월 만에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 입상하며 천재성을 인정받은 이래 ‘청록산수’와 1980년대 말 봉걸레로 그린 초대형 추상화 ‘심상예술’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새로운 작품세계를 보여왔다. 운보의 이 같은 예술적 성취의 뒤안에는 역시 탁월한 한국화가였던 부인 박래현(1976년 작고)의 동지애적 내조가 있었다. 또한 운보는 30만 청각 장애인들에게 희망의 빛이었고, 대부였다. 그는 1980년 한국농아복지회를 설립, 목공 도예 등 기술을 가르치고 취업을 알선했으며 해외에서 열리는 청각장애인스포츠대회 등에 참가비를 부담하기도 했다.
1998년 일본, 현행 한일어업협정의 종료를 결정, 이를 한국정부에 공식통보
1997년 한보그룹, 한보철강 부도
한보철강이 23일 5조원의 금융부채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부도를 내고 쓰러졌다.
이날 한보그룹 주력회사중 하나인 (주)한보도 자금부족으로 부도를 냄으로써 앞으로 한보그룹 22개 계열사의 연쇄부도가 예상되며, 최종적으로는 그룹이 해체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제일은행 신광식(신광식)행장은 23일 밤 “한보그룹 정태수(정태수)총회장이 채권은행단의 경영권 포기 요구를 거부함에 따라 한보철강을 부도처리했다” 며 “금융기관 공동관리단을 구성, 법정관리 신청을 하겠다” 고 밝혔다.
신행장은 또 “한보철강 당진제철소가 전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 포항제철에 위탁해 공장을 완공시킨뒤 제3자 인수를 추진할 방침” 이라고 말했다. 정총회장은 이날 오후 은행단의 경영권 이양요구에 대해 거부의사를 밝혔다가 한보철강이 23일밤 전격 부도처리되자 경영권을 이양할 의사가 있다는 수정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제일 산업 조흥 외환 등 채권은행단은 “정회장의 의사가 분명치않다” 며 수정제안을 거부했다. 한보철강은 이날 보람은행 삼성동지점에 돌아온 15억원짜리 어음과 제일은행 섬유센터지점에 돌아온 79억원짜리 어음을 결제하지 못해 최종부도 처리됐다.
1996년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 등 5.18관련자 8명 기소
1996년 아프리카 잠비아주재 북한대사관 현성일 3등서기관 망명신청
1991년 노재봉 제22대 국무총리 취임
1989년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 사망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가 1989년 1월 23일 급성폐렴에 걸려 84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피카소, 미로와 함께 스페인이 낳은 현대 회화의 3거장으로 꼽히는 달리는 ‘금세기의 천재화가’ ‘가공스러운 예술가’ ‘살아있는 패러독스’ 등으로 불릴만큼 예술과 인생에서 빛나는 업적과 수많은 일화를 남겼다.
9세 때부터 유화를 그리기 시작, 15세때 ‘아틀리에의 자화상’이라는 유명작품을 남긴 달리는 1935년까지 새로운 미술운동인 초현실주의에 참가, 대표적 작가로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대표작으로 시계가 축 늘어진 ‘기억의 고집’ ‘갈라리나’ 초상 등이 있다.
그 밖에 보석 디자인에서도 독보적 영역을 개척한 달리는 ‘알달루시아의 개’란 루이스 브누엘 감독의 영화시나리오를 쓰고 제작을 하기도 했다.
1989년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경제협력논의를 위해 방북(-2월 2일)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북한의 정치국 서기이며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인 허담의 초청으로 1989년 1월 23일 국내 경제인으로는 최초로 중국을 경유, 북한을 방문했다.
정 회장은 방북기간중 "남북한이 금강산을 공동개발하고 시베리아 개발을 위한 조사작업을 함께 벌이기로 합의했다"고 귀국 전날인 1일 일본에서 이같이 밝혔다. 또 "원산의 명사십리로부터 통천의 시중호 및 총석정, 금란지구를 개방대상지로 확정, 남북한이 공동 개발키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고향 통천을 방문해 50여 년 만에 60여 명의 친척들을 만나 회포를 풀었다. 정회장은 2월 1일 일본 오사카에서 1박한 후 2일 귀국했다.
1983년 충남 대호 방조제 완공
1982년 유창순 제15대 국무총리 취임
1982년 프랑스, 소련 천연가스 수입 계약
1982년 한국여자탁구팀 서독오픈탁구대회 여자부 단체 우승
1981년 낭만적 경향의 미국 작곡가 바버 사망
1980년 한국국민당 창당(총재 김종철)
1975년 국방부, 북한에서 대남비방방송을 재개했다고 발표
1974년 구미공단에 대화재
1973년 미국-북베트남 휴전 협정 가조인
1971년 속초발 서울행 KAL기 납북 모면
1969년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을 분식의 날로 결정
1968년 미국 정보함 ‘푸에블로’호, 북한에 피랍
북한에 의해 나포됐던 미군 군함 ‘푸에블로’호.
1968년 1월 23일 동해안 공해상에서 미 해군 소속 정보 수집함 푸에블로 (Pueblo) 호가 북한군에 의해 나포됐다.
김신조 등 북한 무장 비정규군이 청와대를 습격(1·21 사태)한 지 이틀 뒤의 일이었다.
이날 푸에블로호는 동경 127°54′, 북위 39°25′ 공해상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중 1시 45분께 무장한 4척의 북한 초계정과 미그기 2대의 위협하에 원산항으로 강제 납치됐다.
이 배에는 함장을 비롯해 6명의 해군 장교와 수병 75명, 그리고 민간인 2명 등 총83명이 승선하고 있었다.
납치된 푸에블로호는 경화물선을 개조한 해군 정보 수집 보조함으로 중량 906t, 길이 54m, 너비 10m, 시속 12.2노트에 구경 50mm 기관포 2문을 갖춘 비무장 함정이었다. 미 해군 함정이 공해상에서 납치되기는 미 해군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사건 다음날인 24일 미국 측은 11시 판문점에서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를 열어 1·21 사태와 함께 이 사건을 신랄히 규탄했다. 그러나 북한측은 영해침범임을 주장하며 맞섰다. 이후 미국은 별다른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27일 폴란드에서 북한과의 간접 접촉을 시도한 데 이어 판문점에서 직접 비밀 협상에 돌입했다.
2월 2일 세 번째 비밀 협상에서 미국이 영해 침입을 시인하고 사과하는 조건으로 승무원 송환을 합의하였으나, 북한측은 이들의 몸값을 요구하였다.
결국 이 사건은 사건 발생 11개월 만인 1968년 12월 23일 28차례에 걸친 비밀 협상 끝에 푸에블로호 선체와 장비는 북한측에 몰수되고, 82명의 생존 승무원과 시체 1구가 판문점을 통해 귀환하는 것으로 마감됐다.
1964년 미국 통신위성 텔레비B=I호에 의한 미국, 일본간 텔레비전 중계실험에 성공
1962년 혁명재판소, 부정축재등에 관련된 백인엽에 무기징역 선고
1962년 혁명검찰, 국사독직피고 유태하에 15년과 추징금 구형
1960년 자크 피카르, 챌린저 해연 도달
1960년 1월 23일 오전 8시 23분, 자크 피카르가 미 해군대위 도널드 월시와 함께 트리에스테 2호를 타고 잠수하기 시작해 오후 1시 6분에 챌린저 해연을 정복하고 오후 4시 56분에 수면위로 떠올랐다.
당시에 알려진 세계에서 가장 깊은 바다를 최초로 정복한 것이다. 챌린저 해연(11˚22′N 142˚36′E 부근)은 괌섬 남쪽 350km 떨어진 마리아나 해구에 위치한 해연으로 1만 893m 였다.
자크 피카르의 아버지인 오귀스트 피카르가 발명한 잠수정 트리에스테 2호는 현대식 잠수정처럼 자체 동력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모선에 예인돼 부력 조절만으로 하강과 상승만 가능한 잠수정이었지만 바다 속에서 무려 1,100기압을 이겨내는 잠수정이었다.
벨기에 물리학자인 오귀스트 피카르는 1931년 5월 27일 기구를 타고 인류 최초로 1만 5,781m 상공 성층권을 정복한 기구 탐험가였다. 1953년 기구 탐험의 경험을 바탕으로 잠수정 트리에스테호를 만든 오귀스트 피카르는 아들 자크 피카르와 잠수 기록을 세우기 시작했으나 경쟁자들이 속속 나타나기 시작하자 아들과 함께 챌린저 해연을 정복했다.
1948년 소련군, 유엔한국임시위원단 북한입경 거부
1944년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크 뭉크 사망
1938년 일제, 중일전쟁 전략물자 조달 위해 국가동원령 선포
1931년 러시아 발레리나 사망
1928년 일본, 소련 어업조약 조인
1917년 이기동 등 동경노동동지회 결성
1913년 청년터키당, 쿠데타 일으킴
1904년 한국, 러일전쟁에 엄정 중립선언
1903년 박문원 신설
1903년 미국-콜롬비아 파나마운하조약 조인
1898년 몽타주 개념 발전시킨 소련 영화감독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 출생
1897년 각종 잡세를 인지로 시행하게 함
1875년 영국 작가 킹슬러 사망
1851년 개화파 김옥균 충남 공주에서 태어남
1843년 독일 소설가 푸케 사망
1837년 `피아노를 위한 야상곡`을 만든 아일랜드의 피아니스트 필드 사망
1832년 프랑스 화가 마네 출생
1863년 ‘낙선전(落選展)’에 전시된 한 화가의 그림이 파리 화단을 뒤흔들놓았다. 에두아르 마네가 그린 ‘풀밭위의 식사’였다. 검은 정장의 두 신사와 나부(裸婦)가 등장하는 가운데 밝음과 어두움을 대담하게 대비한 이 작품은 훗날 미술사가들의 격찬과 달리 당시의 비평가들로부터는 호된 비난을 받았다. 파리 시민들도 부도덕하다며 손가락질했다. 격론에 휘말린 덕에 마네의 이름은 곧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고, 모네, 피사로, 시슬레 등 훗날 인상파그룹을 형성하는 청년화가들은 낡은 예술관에 반기를 든 그에게 몰려들었다. 때문에 마네는 인상파 전시회에 한 번도 참가한 적은 없었지만 인상주의의 선구자로 활동하게 됐다.
청년화가들은 1874년에 제1회 인상파 전시회를 열었다. 마네 또한 이들처럼 빛의 효과와 순간적인 인상에 충실했지만, 정작 마네는 전시회 참가를 거부하고 이들과 동일시되는 것도 꺼렸다. 마네가 좇은 길은 프랑스의 국전(國展)인 살롱전이었다. 끊임없이 살롱전의 문을 두드렸고 그때마다 낙선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마네는 살롱전에 정식으로 출품해 기존 화단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었는지는 몰라도 살롱전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마네를 '명예욕에 불타는 더러운 부르주아'라고 비아냥 댔다.
“그림은 화폭 위에 색채를 재배치하는 것”이라며 실제 보이는 것을 자신의 색감으로 재해석하고 “내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겠다”며 인위적인 그림을 거부한 마네는 파리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숨진 파리지앵이었다. 파리는 그의 예술의 모태였다. 1832년 1월 23일에 태어나 1883년 4월 30일에 숨졌다.
1783년 프랑스 작가 스탕달 출생
1678년 상평통보 주조
상평통보는 조선 숙종 때에 유통되기 시작하여 조선말기까지 200여 년 동안 장기간에 걸쳐 통용된 명목화폐로 조선시대 유일의 법화(法貨)이다. 숙종 4년(1678년) 영의정 허적(許積)의 제의로 호조나 상평청(常平廳) 등을 통하여 1678년 1월 23일 상평통보를 주조하였다.
상평통보는 구리·주석의 합금으로 크기가 다른 3종류가 있었으며, 가운데에는 정사각형의 구멍을 뚫고 앞면에는 구멍을 둘러싸고 상하좌우에 상평통보라고 찍었고, 뒷면에는 구멍을 중심으로 위에는 주조한 관청을 표시하는 약자를 새기고, 아래 또는 좌우측에는 돈의 가치를 표시하였다.
상업의 발달에 따라 17세기 말 이후 전국적으로 보급, 유통되었으며, 상품 매매, 품삯 , 세금, 소작료 등을 지불하는 데 사용되었다. 당시 화폐가치는 1문이 2돈 5푼, 100문이 1냥, 10냥이 1관이었다.
그러나 순조 때 들어서는 각 관청의 재정궁핍을 타개할 목적으로 여러 관청에 주전을 허용하게 되고 민간인에 의한 도급제까지 나타나는 등 주전행정이 문란해져 혼란을 겪게 되었다. 결국 1894년(고종 31) 발행이 중단된 후 화폐정리사업 추진과정에서 회수, 폐기됐다.
1604년 휴정(서산대사) 입적
1556년 중국 센시 대지진으로 85만명 사망
662(고구려 보장왕 21) 연개소문이 사수에서 당 나라 군대 크게 무찌름
BC27 옥타비아누스 로마 제정 확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