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정화, 보호 등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세례를 받을 때 물에 몸을 담그거나,
이마에 물을 흘려보냄으로써 다시 태어나고, 정화된다.
성당에 들어갈 때 신자들은 이마에 성수를 묻혀 성호를 그음으로써 죄를 씻고
가정을 축복하기 위해 집에 성수를 뿌리기도 한다.
빈 무덤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는 무덤에 묻혔다가 사흘만에 부활한다.
예수의 무덤은 죽음을 은유하지만, 부활을 예고하는 전조이기도 하다.
카라바지오 <수태고지>
순명
그리스도교 신앙인에게 권고되는 자세다.
하느님의 부르심이나 명령에 기쁨으로 따르는 것을 '순명'이라고 한다.
한 마디로 '주님의 뜻에 토달지 않겠습니다' 같은 건데,
대표적인 순명의 자세가 성모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이다.
예수 또한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서도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라고 기도했다.
이 부르심은 언제 어떻게 주어질지 모른다.
성경 속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던 인물들은 특별히 영웅적인 사람들은 아니었다.
오히려 흠결 있는 사람들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것에 순명함으로써 본인의 믿음을 증명한다.
루드비코 카라치, <연옥>
연옥
연옥은 (아마도) 프로테스탄트 쪽에서는 없고 가톨릭 교리에만 있는 개념이다.
죽은 사람의 영혼이 살아있는 동안 지은 죄를 씻고 천국으로 가기 위해 일시적으로 머무른다고 믿는 장소이다.
이곳은 '유예'의 공간이다. 미디어에서는 선과 악이 모호한 중간지대 같은 느낌으로 그려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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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1917>을 보기 전에 알아두면 좋은 것은
이 영화는 서양 고전 문학 형태 중 하나인 '지옥 여행기'를 차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독사에 물려 숨진 아내를 찾기 위해 명계로 걸어 들어간 '오르페우스' 신화
천국으로 가는 도중 온갖 어려움과 고난을 겪는 17세기 기독교 소설 <천로역정>
단테가 베르길리우스와 베아트리체의 인도를 받아 사후세계(지옥, 연옥, 천국)를 여행하는 서사시 <단테의 신곡>
이스라엘 민족이 신이 약속한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이집트를 탈출하여 40년 간 광야를 헤매게 되는 구약성경의 내용 등
서양 관객들에게는 '개인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길을 떠나 시련을 겪는다'는 플롯 자체가
아주 친숙하다는 점을 감안하고 감상한다면 이 작품이 왜 그토록 서구권의 찬사를 받았으며
동시에 왜 이 영화가 아닌 <기생충>이 작품상을 받았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본격적으로 <1917> 안에 숨어있는 메타포들을 찾아보도록 하자.
1. 어둠과 구덩이
<1917>에 등장하는 장소를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영국군 참호 - 독일군 지하 갱도 - 숲 - 강 건너 폐농가 / 강 건너 에쿠스트 마을 - 여인의 집 - 강물 - 숲 - 영국군 참호
이동진 평론가가 말한대로, 이 영화는 데칼코마니처럼 초반부와 후반부가 거울 구조를 띄고 있다.
<1917>은 한 마디로 정리하면
어둠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삶(생명)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나아가는 영화이다.
감독은 이것을 장소에 따른 색채와 명도 변화를 통해 확실하게 보여준다.
시작점에 있는 영국군 참호는 진흙투성이고, 암울하고, 어둡고, 지저분하다.
날은 흐리며, 해는 떨어지기 직전이다.
칠흙 같은 어둠 속에서 명령을 전달하는 장군과 임무를 받는 두 사람.
"저희만 가는 겁니까?"
"지옥으로 가나, 왕좌로 가나 혼자 가는 것이 가장 빠른 법이지."
여기서부터 지옥으로의 여행이 시작된다.
이들은 독일군 진영으로 향하기 위해 더러운 물로 가득찬 '구덩이'들을 지나가야 한다.
이들에게 성수 대신 위스키를 뿌리며 배웅하는 레슬리 중위의 대사.
"구덩이 조심해. 빠지면 못 나와." (스콧♥)
'구덩이'는 창세기에서 요셉이 형제들의 계략에 휘말려 빠졌던 '구덩이'를 떠올리게 한다.
요셉은 사막의 깊은 구덩이에 던져져 죽을 뻔하다가 미디안 상인들에게 발견되어 노예로 팔아넘겨졌다.
구덩이는 히브리어로 '감옥'이란 뜻과도 상통하기 때문에 '죽음의 위기'를 의미한다.
더러운 물구덩이들을 헤치며 지나가는 블레이크와 스코필드.
이들이 무인지대(No Man's Land)를 지나갈 때 흐르는 배경음악의 제목은 'gehena', 즉 '지옥'이다.
희망도, 생명도 없는 죽음의 땅.
그 너머에는 블레이크의 형을 포함한 1600명의 목숨이 있다.
블레이크는 형을 구하기 위해 조급히 떠나고,
그의 강력한 의지는 나서기를 주저하고 두려워하는 스코필드를 지옥으로 끌어들인다.
지옥의 입구에서, 철조망에 손바닥을 찔리는 스코필드.
2. 톰 블레이크
톰 블레이크. 사제가 되려했던 자. 길을 아는 자.
예수가 본격적으로 사목을 하기 전에, 세상에 먼저 나타난 자가 있었다.
'세례자 요한'은 사람들에게 곧 메시아가 올 것이라고 예언했으며
자신은 그분을 위해 길을 내는 사람일 뿐이라고 말했다.
요한이 말하였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요한 1장 23절
블레이크는 스코필드보다 앞서 걷는다.
그는 마치 세례자 요한처럼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았던 사람'이었다.
블레이크는 독일군 참호무덤에 깔린 스코필드를 구해주고,
일시적으로 눈이 먼 그를 빛으로 인도한 다음
자신의 물을 나누어 준다.
무릎 꿇은 예수에게 물로 세례를 주고 있는 세례자 요한.
기운을 차린 두 사람은 작은 냇가를 건너 농가로 진입한다.
수많은 문화권에서 '강을 건너는' 행위는 저승세계로 진입함을 뜻한다.
세례자 요한은 당시 유대 왕국의 통치자 헤로데에게 목이 잘려 죽는다.
블레이크 역시 독일군 파일럿의 칼에 찔려 죽어간다.
"제발 길을 안다고 말해줘."
"알아."
"내 어머니에게 편지를 써줘."
"그럴게."
길을 알았던 자의 사명은 남아있는 자에게로 옮겨진다.
예수는 세례자 요한이 죽은 뒤부터 본격적인 사목 활동을 시작했다.
3. 순명신의 부르심은 특별한 순간에 오는 것이 아니다.
"왜 하필 나였어?"
"그냥, 네가 제일 가까이 있었으니까. 너인줄도 몰랐어."
블레이크는 돌아가고 싶으면 돌아가라고 권한다.
그러나 스코필드는 돌아가지 않는다.
우연히 손을 잡은 그 순간, 사명이 부여된다.
스코필드는 그것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는 순명한 댓가로
손바닥에 철조망의 가시가 박히는 부상을 입는다.
손바닥의 상처.
그것은 가시관을 쓴 예수의 성흔과 닮아있다.
4. 물
물은 영화의 초반부, 중반부, 후반부에서 각각 의미가 달라진다.
또한 고여있는 물이냐, 흘러가는 물이냐,
격렬하게 파도치는 물이냐에 따라서도 의미가 달라진다.
초반부 '고여있는' 물은 '죽음'이다.
병균이 들끓고 옥토를 진흙탕으로 만드는 물.
중반부 등장하는 두 개의 '흐르는 물'은
앞서 말했듯 그 건너에 죽음이 도사리고 있음을 암시한다.
냇물을 건넌 후 농가에서 사망한 블레이크.
끊긴 다리를 건넌 후 총격을 받고 죽음에 위기에 처한 스코필드.
그러나 물은 '정화'하는 물이자,
'생명'을 살리는 물이며,
'협력자'로서의 물이기도 하다.
스코필드는 지하 갱도의 폭발에서 살아나온 후
물로 눈을 덮은 흙을 씻어냄으로써 다시 앞을 보게 되었으며,
블레이크가 건네준 물을 마시고 기운을 낸다.
또한 에쿠스트 마을에서 총을 빗맞고 기절한 그는
얼굴에 떨어지는 이슬 때문에 정신을 차린다.
후반부 스코필드를 크루아지유 숲으로 인도한 것은
마치 파도처럼 세찬 강물이었다.
세찬 강물은 거룩한 변화를 일으킨다.
강물 속에서 스코필드는 모든 군장(=죽음)을 벗어던진다.
그의 몸에 달라붙어 있던 진흙도, 피도, 포격으로 인한 그을음도 속절없이 씻겨나간다.
강물에서 올라온 그는 죽음의 흔적과 위협으로부터 완전히 정화된다.
초반부 지저분했던 얼굴과
후반부 깨끗하다못해 빛이 나고 있는 듯한
얼굴의 대비
5. 무덤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요한 20장 1절
예수는 돌로 만들어진 무덤에 사흘간 묻혀 있다가 부활했다.
그렇기 때문에 돌무덤은 1차적으로 죽음을 의미하지만, 부활의 전조이기도 한다.
<1917>에서 무덤은 각 군영의 참호, 지하 갱도, 에쿠스트 여인의 집 등으로 은유된다.
무덤과 같은 갱도 속으로 들어가는 스코필드와 블레이크.
부비트랩으로 인한 폭발이 일어나고,
스코필드는 '돌에 묻힌다.'
블레이크가 '돌을 치워' 그를 살려낸다.
두 번째 무덤은 반지하 같은 곳에 위치한 에쿠스트 여인의 집이다.
마을이 통째로 폐허가 되었지만, 스코필드는 이 무덤에서 '새생명'을 발견한다.
새생명이 있다면 삶은 재건될 수 있다. 희망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러나 에쿠스트 여인의 집은 여전히 무덤이다.
스코필드는 이 무덤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
6. 연옥
총에 빗맞고 기절했다가 깨어난 스코필드 앞에 펼쳐지는 생경한 풍경.
빛과 어둠이 혼존한다.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다.
천국도 지옥도 아니고
이승도 저승도 아닌 이 곳에서
스코필드는 잠시 혼란해 한다.
저 사람은 누구지? 아군인가? 적군인가?
연옥은 선택의 공간이다.
지옥으로 갈지 천국으로 갈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만약
멀리서 다가오는 군인이 스코필드에게 총을 쏘지 않았더라면?
독일군 바우머가 동료에게 소리를 치지 않았더라면?
그가 에쿠스트 여인의 집에 그대로 머물렀더라면?
수많은 선택과 가능성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머물러야 할지
인간의 마음으로 선택할 수 없을 때
그때 신이 개입한다.
2에 계속
첫댓글 내 인생 최고의 영화.. 크으
와 해석 흥미돋이다 글 고마워!!
너무 내용 좋아... 고마워여시
와.....
와 미친 대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