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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아주 옛날 옛적이야기에요.
수십 년에 걸친 전쟁을 통해 대륙의 반을 통일시키고 제국을 이룬 욕심 많은 늙은 황제가 있었대요.
하지만 그의 욕심을 채우기엔 아직 이만큼이나 부족했나 봐요.
왜냐하면 그 많은 왕국으로도 모자라 제국 경계 밖에 있는
비옥한 땅과 부지런한 백성, 그리고 아름다운 여인이 많기로 소문난
올리스라는 소왕국에 연신 눈독을 들이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욕심 많은 황제는 이번엔 섣불리 욕심을 부릴 수 없었어요.
대륙 전쟁이 끝난 지 아직 십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기였고
게다가 무력으로 세워진 욕심 많은 못된 황제의 제국은 그저 거대한 땅덩이나 마찬가지였어요.
그 누구도 황제에게 진심으로 충성 맹세를 올리지 않았고요,
아직도 곳곳에선 반란의 움직임이 가득했기 때문이죠.
그까짓 작은 왕국이야 영토 확장이란 목적 아래 주변 왕국까지 모두 싹쓸이 해버릴 수 있었지만
휴, 올리스 왕국에게는 천만다행이게도 제국은 지금은 전혀 그럴 시기가 아니었답니다.
쉴 틈 없이 터져대는 내란에
모든 병력이 안으로 바짝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늙을수록 쓸데없는 것에 집착이 강해지는 법이라지요?
가장 쉬운 무력을 사용할 수 없다면
시간이 걸리지만 돌아가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이 늙은 여우 황제는 올리스 왕국의 선왕과 자신이 어릴 적 지기였음을 내세워
수시로 드나들며 호시탐탐 기회를 엿봤죠.
힘없는 불쌍한 왕국 민들의 가슴은 그럴 때마다 불안에 떨어야만 했어요.
마침 늙은 황제의 추잡한 잔꾀가 발동되었는데요,
그건 바로 이곳 왕국은 정통 후계만이 왕위를 물려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죠.
그러고 보니 몇몇 후궁에게서 본 왕자들은 있었지만 현 왕비가 낳은 아이는 없지 뭐에요?
뭐, 아이를 못 낳는다면 폐위를 시키고 새 왕비의 후계를 보면 그만이지만
국왕의 왕비 사랑으로 봐선 그건 그른 일이었답니다.
하필 그 약점을 노린 황제는 틈틈이 정통 후계를 강조하며 다른 수를 쓰지 못하게 못 박았고요,
만약 왕자가 태어난다 해도 피도 눈물도 없는 못 돼 먹은 늙은 황제에게는 다 속셈이 있었죠.
뭐, 운 좋게 공주가 태어난다면야 그게 바로 그가 바라던 바였고 말이에요.
아무 골치 썩을 일 없이 간단한 방법으로 왕국을 손아귀에 넣는 법.
그건 바로 왕국을 물려받을 공주와 혼인을 하는 것이었어요.
우우, 정말 무지 무지 나빴죠?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니 태어날지 아닐지도 모를 그 상황을 떠올리며
늙은 황제는 고개를 주억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죠.
그런데 정말 이게 어쩐 일일까요.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황제와 소왕국 모두를 긴장시키는 소식이 들려왔는데요,
소왕국 왕비가 잉태를 했다지 뭐에요.
전 같으면 그토록 소원하던 기쁨에 몇 날 며칠 왕국 내내 성대한 축제가 열렸을 테지만
어쩐지 조용한 왕국은 누군가를 두려워하는 듯 보였어요.
어느덧 시간은 흘렀고 드디어 아기가 태어날 계절이 찾아왔죠.
황제는 몸소 화려한 보석과 재물이 가득 담긴 마차를 10대나 끌고 와
태어날 아기에게 건넬 축하 인사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팡 - 파팡
곧이어 화려한 불꽃이 성 내 가득 터져 올랐고 기쁨의 나팔 소리가 웅장하게 울려 퍼졌어요.
[대지의 축복을 머금고 천상의 지혜를 선사받으신 공주님의 탄생을 경하 드리옵니다. 폐하]
하지만 축복의 인사를 건네받은 왕과 왕비는
기쁨 저편에서 올라오는 슬픔과 걱정에 눈물이 쓰기만 했어요.
[허허, 축하하오. 올리스의 공주이니 앞으로 굉장한 재색겸비를 갖추게 될 것이오.
이거 내게 황후가 없었다면 지금 당장 혼인을 약조했을 텐데, 어떻소? 그렇지 않소? 허허]
시커먼 뱀이 우글우글한 속내가 훤히 엿보이는데도
가벼운 농이라도 되는 냥 웃어넘기는 황제의 말에 올리스의 왕은 편치 않지만
비위를 맞추기 위해 어설프게나마 고개를 끄덕여 주었어요.
불안하긴 했지만 그에게는 그만큼이나 독한 황후가 곁에 있었으니까 감히 그럴 수 없다고, 괜한 기우였다고 넘겨버렸죠.
세월은 또 다시 솜 바람 마냥 스치듯 흘러 공주도 어느덧 12살이 되었답니다.
통통하게 오므려진 수줍은 꽃망울은 이제 곧 달콤한 향을 세상 한가득 퍼트리게 되겠죠.
그리 되면 잠시 잊었던 그 검고 매 마른 손이 매정하게도 그 여린 꽃가지를 토옥 꺾어 가게 될까요?
[올라... 라고 하옵니다]
[오오, 그래, 그래. 정말 아름답게 자랐구나]
이젠 팔순이 가까워 빛을 잃은 누런 눈동자가 잠시 생기를 찾아
올리스의 공주 올라를 빠르게 훑어 내려갔어요.
어떤 검은손이 12년 동안 소왕국을 흔들어 놓았는지 그 풍부하고 질 좋은 자원들은
그 어느 왕국과도 교역을 할 수 없었고 상인조차 왕국에 발을 들여놓으려 하지 않았답니다.
결국 올리스는 가난뱅이 왕국이 되어 모두가 굶주림에 허덕이게 되었어요.
그때 '짜잔' 하고 흑기사마냥 황제가 다시 얼굴을 들이밀고는 제안 하나를 했죠.
[내 옛 지기와의 정을 생각해 우리 제국과의 교역 물고를 터 줄 터이고,
현 왕국의 곱절에 달하는 토지를 내어 주겠네]
어울리지 않는 황제의 선심에 왕은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수많은 백성들을 떠올리면 눈이 번쩍 뜨이지 않을 수가 없었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만 해도 가엾은 왕의 백성 수십 명이 굶주림에 지쳐 생을 마쳤으니까 말이에요.
[단, 올라 공주를 내 황후로 맞이한다는 조그만 약조에 따른 성의로 말일세]
아뿔싸! 그러고 보니 2개월 전 제국의 황후가 독살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던가?
세상에, 이런 날벼락이 또 있을까요?
저 음험하고 추잡한 늙은 황제가 이제 겨우 12살이 된 자신의 어린 딸에게 감히 그런 되도 못한 말을...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어리지만 지혜로운 올라 공주는 왕국의 사정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 고운 입으로 스스로 황제에게 약조를 마친 공주는
바로 없는 짐을 꾸려 황제를 따라 제국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답니다.
제국의 화려한 성에서 지낸지 이제 한 달.
그것도 일주일 후면 팔순을 맞이하는 황제와 결혼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공주에게는 위안거리가 있었는데,
자신은 아직 여자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답니다.
제국 법으로도 혼인은 가능하나
신부의 초경이 있을 때까지 관계를 갖지 못하게 되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공주는 여느 때처럼 편치 못한 마음으로 아침을 맞이했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허리가 너무 묵직하고 머리가 무거웠죠.
그리고는 발견하게 되었답니다.
아주 약간이지만 자신의 손끝에 묻어난 검붉은 빛을...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공주는 멍할 새도 없이 서둘러 속옷을 벗어내버렸어요.
하녀들이 오기 전에 감춰야만 했어요.
손 안 가득 악스럽게 쥐어진 그것을 들고 창문을 열어젖혔어요.
다행히 높지 않은 위치라 단숨에 뛰어 내린 공주는
정신없이 자신의 방에서 가장 먼 곳으로만 내달렸어요.
푸르스름한 하늘은 아침을 열기 위해 곧 새하얀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고 공주의 두 볼은 달아올랐어요.
그 넓디넓은 성 안을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공주는 그만 휘청 발목을 겹질려 풀썩 넘어졌어요.
사라락-
그 감춰야만 할 '그것'을 놓쳐버린 채로.
흙투성이가 된 얇은 잠옷을 털 새도 없이 곧바로 일어서려던 공주의 위로 그림자가 하나 졌어요.
화들짝 놀란 공주의 손이 미처 닿기도 전에 그 그림자의 손은 먼저 '그것'을 주워들었어요.
[...]
자신의 두려움이 선명하게 묻어난 수치스러운 '그것' 을 들여다보고 있는 투명한 녹색 눈동자를 본 순간 공주는 숨이 턱 막혀 버렸어요.
제국의 황제와 같은 녹색의 눈동자를 가진 이라면
굳이 확인을 해보지 않아도 그가 누구라는 걸 증명해주는 셈이었으니까요.
천천히 옷 조각에서 시선을 뗀 그는 망연자실하여 주저앉아버린 공주 앞에 무릎을 굽혀 앉았어요.
그리곤 작은 단검을 빼 직접 땅을 파기 시작했죠.
그리곤 그는 그럴 필요 없을 정도만치 깊게 파인 땅 속으로 그것을 영원히 묻어버렸답니다.
그제야 화들짝 정신을 차린 공주가 입을 떼려 했지만
그는 어린 공주의 꼭 쥐어진 두 손등을 따뜻하게 잡아주었을 뿐이었어요.
한참 후에야 공주는 알 수 있었어요.
지금 자신의 왼쪽 가슴이 무서우리만치 거세게 뛰고 있다는 것을.
기다리지도 않은 그 날은 참 빠르게도 다가왔어요.
천장까지 닿을 커다랗고 화려한 거울 속에는
온갖 종류의 휘황찬란한 보석으로 꾸며진 드레스와 장신구,
그리고 황후의 상징인 다이아몬드 티아라를 쓴 올라 공주가 있었어요.
번쩍 번쩍 빛나는 그 보석들의 매혹에도 공주의 얼굴은 매우 어두웠답니다.
누구라도 그랬을 거에요. 게다가 공주의 마음속엔 이미 누군가가 들어와 버렸으니까요.
가엾은 공주의 바람과는 달리도 신부의 입장을 알리는 종소리는 맑게만 울려 퍼졌어요.
늙은 황제의 손을 마주잡은 공주, 아니 이제 황후가 된 올라는
제국 민들을 향해 지어지지 않는 미소를 보여주었고 곧 제국의 황자들과 신하들의 인사를 받았지요.
생기 없던 공주의 눈동자도 그때만큼은 누군가를 열심히 찾아 헤맸어요.
그리고 거기 있었죠.
2황자의 신분이자 전대 황후의 적통인 ‘로이 알레엄 바르스’로서.
절대로 사랑해선 안 될 존재로 그는 거기에서 그렇게 올라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답니다.
***
[곧 로이 황자님께서 16세가 되시는 군요]
별 뜻 없는 하녀의 말에 올라는 가슴이 철컹 내려앉아 버렸어요.
16살의 생일.
그날은 곧 성인식과 함께 황자비를 간택하는 날이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아직 캄캄한 새벽인데도 성 안은 굉장히 소란스럽고 위기감이 잔뜩 가슴을 압박해왔지요.
다시 한 번 대륙 통일을 꿈꾸던 노망난 황제에게 하늘이 뒤늦은 천벌을 내린 걸까요?
애타게 올라의 손을 찾아 부여잡은 황제는 헐떡이면서도
마지막 유언을 자신의 어린 황후에게 남겨주었어요.
가는 숨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 그의 입으로 올라는 가만히 자신의 귀를 대었어요.
[조슈아 알레엄 바르스를 다음 황제로....명하노라]
털썩 -
[황제 폐하!!]
.
.
.
[다음 황제는 로이 알레엄 바르스로 황제폐하의 마지막 명을 전하노라]
아무 뜻도 없었어요.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른 지도 몰랐죠.
어린 황후는 정치적 계략 따위엔 관심조차 없었으니까요.
그저 그가 사랑하는 한 남자의 이름을 아주 당당하게 한번 외쳐보고 싶었을 뿐이었죠.
모두들 어리둥절했어요. 로이 역시 당황한 눈치였고 1황자인 조슈아는 이를 악다물었어요.
덕분에 슬플 새도 없이 2황자의 황위 대관식과 결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버렸죠.
새로운 황제가 된 루이의 옆에는 이제 이웃나라 공주가 함께했어요.
그보다도 4살이 많으니 자신보다는 8살이나 많은 셈이었어요.
그래서 그랬던 걸까요? 아님 여인의 직감이었을까요.
올라는 새 황후로부터 뭔지 모를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어요.
아니요, 사실을 말하자면요. 올라의 죄책감이었을지도 몰라요.
그러던 어느 날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던 올라의 궁으로 고양이 한 마리가 찾아왔어요.
흰 바탕에 검은 반점이 귀여운 그 고양이는 바로 로이 황제가 어릴 적부터 지극히 아낀다던 로로였어요.
[어마, 로로 여긴 어떻게 왔니, 가여워라. 길을 잃은 거니?]
쓸쓸한 외톨이 올라는 로로의 보드라운 털에 볼을 부비며 자신의 품으로 안아들었죠.
지금은 너무 늦었으니 내일 아침 로이에게 데려다 주겠노라 다짐하며 말이에요.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대 황후의 침실이었지만 올라에겐 세상에서 가장 삭막하고 외로운 곳이었어요.
하지만 그날 밤만은 그렇게 포근할 수가 없었답니다.
그가 사랑하는 로로와 함께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말이에요.
하지만 다음날 아침 올라가 눈을 비비고 일어났을 땐 로로는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어요.
왠지 모를 서운함이 들었지만 로로는 그냥 고양이었을 뿐인 걸요.
외로운 올라의 마음 따위 전혀 알 길이 없었을 거에요.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지 로로는 성이 모두 잠 속으로 빠지자 다시 올라의 정원을 찾았어요.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웃음기 없던 올라는 이제 해가 지면 로로를 기다리는 즐거움에 작은 행복이 생겼어요.
촉촉한 정원의 바닥에 앉아 따뜻한 우유 한잔을 사이좋게 나눠 마시며
올라는 그렇게 매일 밤 로로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로로, 정말 네가 부러워. 차라리 내가 너였다면 그에게 마음껏 사랑받을 수 있을 텐데]
[냐옹-]
쓸쓸한 올라의 눈빛에 위로라도 보내는 것인지 로로는 연신 올라의 손등 위로 얼굴을 부비적댔어요.
[로로, 이제 그만 자러... 앗, 로로!]
하품을 참으며 여느 때처럼 로로를 안아들려 했지만
웬일인지 로로는 자신이 왔던 곳으로 폴짝 뛰어 가버렸어요.
그리곤 잠시 후 그에 품에 안겨 다시 돌아왔죠.
[아, 이 녀석. 매일 밤 어딜 그렇게 돌아다니나 했더니...]
어색한 미소를 지은 로이는 이제 18살이 되어
완연한 아름다움을 갖춘 아버지의 황후를 씁쓸하게 바라보았어요.
[바, 밤이 늦었습니다. 저는 그만...]
올라는 붉은 볼을 감추기 위해 서둘러 뒤를 돌았지만
굳은 다짐을 한 듯 로이는 그런 올라의 손목을 붙잡아버렸어요.
[제가 이곳의 황제입니다. 나의 뜻대로 못할 것이 도대체 무어란 말입니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당신은 제국의 태황후도 나의 어머니도 아닙니다.
그냥 내 가슴을 아프게 하는 가련한 여인일 뿐입니다]
지금 로이에게 안겨있는 올라의 뺨을 타고 흐르는 이 뜨거운 눈물은 기쁨도, 슬픔도 될 수 없었지요.
그저 평생을 품어야 할 아릿한 통증의 시작일 뿐이었어요.
그 후 깊은 밤이 되면 아주 짧지만 그의 여자가 될 수 있었어요.
그 순간만은 그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치만큼 아름답고 애틋한 사랑이었지만
아침이 밝아오면 곧 깨달을 수 있었어요.
자신이 지금 얼마나 추잡한지...
매일 아침 올라를 비추는 그 깨끗하고 환한 태양은 마치 올라를 비난하듯
추잡함을 낱낱이 발가벗겨 고통을 주는 것만 같았어요.
하지만 절대 그 찰나의 유혹을 뿌리칠 순 없었어요.
***
[우웁-]
[태황후마마, 속이 편찮으십니까?]
[어젯밤 마신 우유가 탈이 났나보오]
안색이 파리해진 올라는 급하게 시중들던 하녀들을 물리치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썼어요.
그리곤 슬며시 볼록해진 배를 쓰다듬었어요.
[아, 이를 어쩌면 좋단 말입니까... 흑... 로이... 흐윽]
[아니, 그 무슨 말이냐. 태황후마마께서 어디로 사라진단 말이냐.
대체 제국에서 제일 높고 귀하신 그 분을 너희가 어디까지 우롱해야 직성이 풀린단 말이더냐!!]
[그렇게 열 올리실 필요 없사옵니다. 태황후는 아직 어리십니다. 찬찬히 찾다보면...]
[태황후전하이니라! 그분을 낮추지 말거라! 내 직접 찾아 나설 터이니 그 누구도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말라!]
[황제 폐하!!]
모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로이는 직접 자신의 연인이자 제국의 태황후인 올라를 찾아 헤맸답니다.
하지만 도대체 어디로 숨어버렸는지 머리카락 하나 찾을 수 없었어요.
그렇게 1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났지만 황제는 제 정신으로 정사를 논 할 수 없었죠.
1황자였던 조슈아가 무섭게 그 틈을 파고 들어왔지만
로이는 올라를 찾는 일 외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엔가 낮부터 술에 잔뜩 취해 잠이 들었던 황제는 늦은 밤,
잠에서 깨어났고 곧 자신의 고양이 로로가 창문 밖으로 소리 없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았답니다.
아뿔싸, 로로!
정신이 번쩍 든 로이는 터질 듯 뛰는 심장을 느끼며 서둘러 로로를 뒤쫓았어요.
분명 로로가 가는 그 곳엔, 분명 그곳엔...
[로로! 이곳에 오면 안 된다고 했잖니]
다정하게 로로를 품에 안아 올린 그리운 목소리는
그가 그토록 애타게 찾아 헤매던 바로 그녀였지요.
그리고 그녀의 등에 업힌 녹색 눈의 갓난아기를 본 순간 그는 올라가 왜 그래야만 했는지도 알 수 있었답니다.
[돌아가지 않겠소]
황제를 버리고 제국을 잊겠다는 로이의 굳은 의지로도 둘은 결코 행복할 수 없었어요.
조슈아가 세 가족이 되어 있는 그들을 찾아내 버렸거든요.
슬픈 결말이 찾아와버렸어요.
아버지의 여자를 탐한 죄와 조슈아의 갖은 수치스러운 계략에 빠져든 로이는 무능력한 황제로 낙인찍혀 황제의 자리에서
쫓겨났음을 물론이고 후일을 도모하지 못하도록 어느 밤엔가 쓸쓸한 감옥 바닥에서 암살을 당했어요.
올라 역시 난잡한 악녀가 되어 수많은 비난과 함께 제국에서 가장 높은 태황후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막에 내버려진 채 죽음을 기다려야 했답니다.
사람들은 말했어요.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갔기에 당연한 벌을 받은 거라고.
결코 옳은 일이 아니었다고...
하지만 너무도 안타깝고 가엾은 황제와 어린 태황후에게 이젠 부디 평안하라고 -
아, 둘의 아이는 바다로 흐르는 거친 강물에 바구니에 담긴 채 죽음의 신을 향해 흘러갔어요.
다만, 아기의 바구니 위로 고양이 한 마리가 뛰어 올라갔는데요.
그 고양이의 울음이 얼마나 애달픈지 강가 위로 바람이 불 때면 어김없이 그 고양이의 슬픈 울음소리가 들려온대요.
많은 시간이 흐르면 세월의 신이 꼬아놓은 이 두사람의 엉킨 실타래를 누군가 끈질기게 풀어줄 날이 올까요?
수천번의 환생 속에서 이 둘은 단 한 번이라도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아삭바삭입니다. 아주 오래전에 썼던 글을 다시 다듬어 올려봤어요^^ 이번 글은 단편이지만
앞으로 연재할 글의 '프롤로그' 쯤으로 두려고요. 물론 연결되지는 않지만 이 글을 기본으로 "누군가 끈질기게 풀어준 실타래"
로써 새로운 내용의 현대판 고양이를 만나다를 연재할 생각입니다. 제목은 미정이에요^^ 이 글이 조금이나마 재밌으셨다면
앞으로 이어질 연재도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첫댓글 ㅠㅠ 잘쓰셨어요ㅠ
가을님 같은 분이 계셔서 글을 쓸 수 있는 힘이 생기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