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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2일 목요일 말씀묵상 ♣
성경:베드로후서1:1-3(신384P)
제목:은혜와 평강의 복음
1.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2.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할렐루야! 3월에도 말씀을 묵상하시고 승리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사순절 절기에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고 말씀을 묵상하시기를 소원합니다.사순절 제2일째입니다.
오늘부터는 베드로후서의 말씀을 묵상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충만히 받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제목}***“은혜와 평강의 복음 ”
베드로전서를 쓰는 베드로는 백발이 성성한 노 사도입니다.
그러니 눈이 어둡고 손이 흔들려서 붓을 잡고 글을 쓰기가 어려웠나 봅니다. 그래서 신실한 형제 실루아노를 통해 글을 쓰게 하고, 편지를 전해 준 것 같습니다.
실루아노가 누구입니까? 바로 실라입니다. 빌립보 감옥에서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찬송 부를 때 감옥 문이 열린 기적이 있었는데, 그 실라가 바로 실루아노입니다.
실루아노에 대해서는 고린도후서에도 데살로니가후서에도 나오는데, 바울이나 베드로 뒤에서 그들을 돕는 모습으로 나타나 신실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그 이름이 보석같이 빛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앞서서도 일을 잘 해야 하지만, 실루아노처럼 뒤에서 협력하는 일도 잘 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편지를 마감하면서 실루아노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이 은혜에 굳게 서라”(12절)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사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1. 말씀에 굳게 서라.
2. 교회 생활에 굳게 서라.
3. 그리스도안에 굳게 서라.
은혜를 받으면 인생을 새롭게 창조하는 존재가 됩니다.
따라서 모든 일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받아 들이십시오.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진다는 비밀을 깨닫고 항상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이런 은혜받는 비결은 다른 것이 없습니다.
“말씀에 굳게 서라”.“교회에 굳게 서라”. “주님 안에 굳게 서자”
이렇게 사는 것이 바로 은혜로 사는 길이요, 성공과 행복으로 가는 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 위에 굳게 서서 날마다 주님을 전하시는 증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은혜와 평강의 복음(벧후 1:1-3)
베드로 후서는 기원후 약 66년경에 베드로사도가 기록했습니다.
베드로전서를 쓸 때도 베드로사도는 눈이 어둡고 손이 흔들려서 자기가 직접 쓰지 못해서 옆에 있던 실루아노라는 사람에게 자기가 받은 그 말씀을 대신 쓰도록 했습니다. 그러니 이 베드로후서를 쓸 때는 베드로의 몸이 더 없이 약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 전서를 쓸 때만 해도 로마에서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일어나기는 했지만 아직 까지 그렇게 본격적인 박해가 시작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베드로 후서를 쓸 때에는 기독교에 엄청난 박해가 가해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이 당시에 로마황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네로 황제였는데 네로황제의 집권 말기였습니다.
이 사람이 집권 말기 때 정신 이상이 되었다는 것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까?
자기가 로마에 불을 지르고는 기독교인들에게 누명을 씌우고 기독교인들을 얼마나 심하게 박해를 했는지 모릅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박해가 심해지던 바로 그 때에 로마제국의 수도에 머물러 있으면서 성령의 감동을 받고 이 편지를 썼습니다.
물론 베드로는 조금 있다가 자신이 순교하게 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지만 자기가 순교하게 될 것이라는 그 사실에 대해서 별로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남아 있는 성도들을 생각할 때 베드로의 마음은 별로 편하지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당시 교회는 두 가지 어려운 문제에 부딪쳐 있었습니다.
한 가지는 로마에서 시작된 이 박해가 로마제국의 수도에서 그치지 않고 로마제국의 전역으로 퍼져나간다는 사실이고 또 한 가지 문제는 교회안에서 활동하던 거짓 교사들의 문제였습니다.
이 거짓교사들은 세계 각국의 교회로 가만히 들어와서는 사람들에게 다른 복음을 가르치는데 이들이 가르치는 내용을 보며는 “이제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살아갈 때 도덕이라는 것이 필요 없다” 그렇게 주장을 한다는 겁니다.
이런 주장을 가리켜서 “도덕무용론”이라 그렇게 부르는데, 이런 사람들이 성도들을 유혹하니까 많은 성도들이 그만 이 사람들의 가르침에 빠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밖으로는 박해 때문에 위협을 받았고, 안으로 볼 때는 또 바로 이런 거짓 교사들 때문에 흔들리게 되는 이중적인 어려움을 겪은 겁니다.
그런데 이 중에서 교회로 볼 때 더 힘든 문제는 박해가 아니고 거짓 교훈의 문제였습니다.
박해는 아무리 심해져도 성도들이 갈수록 담대하게 이겨내었는데 그런 담대한 성도들도 이 거짓교훈에 한 번 빠졌다 하면 여지없이 그 신앙이 무너지는 겁니다.
정결하게 살아가던 자세를 잃어버립니다.
박해에 맞서서 담대하게 신앙을 지키던 모습을 잃어버립니다.
복음의 증인이 되어서 살아가던 모습을 잃어버립니다.
믿음을 잃고 그 중요성을 잊어버립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면서 주어진 환경이 좀 힘들게 되었다고 그게 가장 힘든 문제가 아닙니다.
가장 큰 문제는 주님 안에서 바른 믿음의 기초를 잃어버리는 것! 이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 사도를 통해 이 편지를 쓰게 하신 가장 중요한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베드로사도를 통해서 성도들을 격려하기도 하고 바른 길을 가르쳐 줘야 되겠다. 하는 그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어떤 분들은 이 베드로후서가 기록된 것이 2000년이나 되었는데 그 때의 사정하고 지금 우리가 처한 사정하고 너무 다르지 않는가?
그 때 그 상황에 주어진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물론 2000년 전하고 지금은 너무나 다릅니다.
돈을 벌고 활동하는 경제 구조가 다릅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정치제도도 다릅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문화도 다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시대, 우리에게는 박해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외적인 환경에 있어서는 너무나 다르게 변했다고 하겠지만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그 근본적인 성향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2000년 전에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전쟁을 했습니까? 좀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 수많은 사람들이 싸우다가 죽었습니다.
그 후로 2000년을 지내오면서 사람들은 쉬지 않고 싸웠습니다.
너무, 너무 많이 싸워 가지고 1,2차 대전이 끝나고 나서는 싸우는 것이 지쳐서 이제 좀 그만 싸우자고, 평화롭게 살자고, 좀 발전된 인간의 모습을 보이자 그랬습니다.
그런데 지금 또 어떻습니까?
또 싸움니다.
여러분! 싸우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은 2000년이 아니라 20000년이 지나도 고쳐지지 않습니다.
마찬가집니다. 세월이 아무리 흐르고,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인간이 가진 궁극적인 문제는 여전히 변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베드로후서 1:1-3은 오늘 우리에게 바로 그 사실을 가르쳐 주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또 무엇이 필요한가를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1. 먼저 이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바는 믿음의 근본이 뚜렷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절 말씀을 보면 베드로가 자기 자신을 소개하는데 두 단어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종이라고 하였고 두 번째는 사도라고 했습니다.
1). 종이라는 말은 자신이 자기 주관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고 주인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니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할 때 이것은 “나는 주님을 위해서 일 하는 사람이고, 주님의 명령을 따라서만 움직이는 사람이다” 하는 것을 고백하는 말입니다.
이 말은 단순히 입에 붙은 그런 관례적인 인사가 아니고 정말로 베드로 자기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고백적인 말입니다.
①. 베드로는 주님의 종이었기 때문에 일생동안 사역하면서 주님이 전해주신 그 복음만을 전했고, 그 복음만을 가르쳤습니다.
②. 베드로는 주님의 종이기 때문에 일생동안 사역하면서 주님이 원하시는 그 사역만을 행했습니다.
그런데 이 당시 각 교회에 거짓교사들을 보면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①. 이들은 주님의 복음을 변형시켰습니다. 바꾸었습니다.
②. 이 사람들은 스스로 교사라고 자처하였지만 자신들이 주님의 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③. 달콤하고 새로운 복음을 발견한 것처럼 말했습니다. 획기적인 것을 가르치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④.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그 복음을 가리켜서는 구습이라고 말했습니다.
⑤. 그러나 이 사람들은 그런 다른 복음을 전하면서 사실은 자기들의 이익을 챙기고 있었습니다.
⑥. 이 사람들이야 말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200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여러분! 베드로가 이 편지를 쓰고 난 뒤 2000년이 지난 지금도 복음의 그 내용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수 많은 사상과 철학이 일어났다 사라지고 바뀌었지만 이 복음의 내용만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요.
왜 그렇습니까? 수 많은 경건한 신학자들이 말씀의 증거자들이 새로운 복음을 만들려고 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종이 되어서 주님이 전하여 주신 그 복음을 지키려고 노력해 왔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왜요? 바로 그 복음에 생명의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에는 여러 가지 복음이 있을 수 없습니다.
복음은 오직 하나만 있을 뿐입니다.
어느 시대 어느 민족에게나 복음은 동일했고, 또 동일할 것입니다.
우리는 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었고 주님이 그런 우리를 위하여 대신 십자가를 지셨기에 오늘 우리가 그 은혜로 구원을 얻었다는 이 한 가지 사실이 복음의 근본입니다.
이 사실에 대해서 진정한 신앙의 고백이 있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이 사실을 믿고 모이는 무리가 바로 교회입니다.
아무리 구제활동을 많이 해도 이 고백이 없고, 이 고백이 중심이 되지 못하면 그것은 교회라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선교를 해도 이 복음의 내용을 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참된 선교라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여러 활동보다 먼저 있어야 하는 핵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 핵심이 무엇입니까? 주님이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하는 바로 그 복음에 대한 고백입니다.
그 복음에 대한 고백을 심령에 새기고 있는 사람은 주님 앞에서 절대로 낙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여러 업적을 남겼다 할지라도 그 믿음의 고백이 심령에 새겨져 있지 안았다면 죽정이 처럼 다 날려가 버리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이 날 구원하셨다고 하는 그 신앙의 고백을 늘 우리의 심령에 새기고 사시기 바랍니다.
그 복음에 대한 고백이 우리를 진실로 견고하게 만드는 근본이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둘째로는 참된 권위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다시 1절을 보면 베드로는 자기 자신을 “사도”라고 소개했습니다.
사도라는 직분은 오늘날에는 없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교회에 바른 신앙의 기초를 놓기 위해서 특별히 한시적으로 세워진 직분입니다. 그만큼 구분된 직분입니다.
여기서 베드로는 자신의 사도적인 권위를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사도니까 날 좀 대접해 달라”하는 그런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는 박해가 가장 심했을 때 박해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로마에 남아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앞서서 고난을 감당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베드로도 자신의 사도됨을 강조합니다. 그것은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위에 바로 세우고, 믿음의 기초를 놓기 위해서 필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거짓된 교사들이 “나도 교사라”고 주장하면서 계속해서 교회 안에서 엉뚱한 교리를 가르치면 무엇으로 그것을 제지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교회에는 참된 권위가 있어야 합니다.
목사는 목사로서의 권위, 장로는 장로로서의 권위, 교사는 교사로서의 권위. 이런 것이 있어야 교회는 견고해지게 됩니다. 가장이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가질 때 가정이 견고해 지게 됩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안에서 마땅히 가져야 하는 권위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런 권위는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이 권위를 받았다고 하는 사명감 안에서 세워집니다.
이런 권위는 내가 이 사명을 감당하겠다는 책임 속에서 세워집니다.그리고 특별히 이런 권위는 서로 서로가 세워줘야 세워집니다.
서로가 서로의 권위를 세워주지 않으면 아무 권위도 세워지지 않습니다.
내 가정을 향한 내 교회를 향한 그리고 내 직업에 대한 사명을 가지시고 노력하시고 서로 세워주셔서 진정한 권위를 회복할 수 있기 바랍니다.
3. 마지막 세 번째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을 더욱 알아가야 한다는 겁니다.
2절을 보면 베드로 사도는 성도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축원하고 있습니다.
이 은혜와 평강이라는 말은 신약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들 중에 해당합니다.
“은혜”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선물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평강”이라는 말은 우리 내면으로부터 솟아나는 기쁨과 평화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런 은혜와 평강이 우리에게 어떻게 주어집니까?
본문을 보니까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주어진다고 했습니다.
이 서신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은 성도들에게 쓴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성도들에게 또 다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이 “안다”는 것은 한 번 믿어서 알게 된 그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앎을 말하는 겁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만나서 인사를 하고 나면 그 사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우리에게 “당신은 그 사람을 아느냐?” 물어보면 “안다”고 대답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사람에 대하여 얼마만큼 아느냐? 그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오랫동안 만나온 사람, 오랫동안 같이 살아온 사람도 그 사람에 대해서 모르는 부분이 더 많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고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분량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우리는 더 알아가야 합니다. 성경을 읽고 연구함으로서 알아갈 뿐 아니라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교제함으로써 알아가야 하고,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는 것과 함께 하시는 것을 체험함으로서 알아가야 하고...그렇게 계속해서 알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참 진리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우리 속에 평강과 은혜가 더 풍성해 진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알게 될 수록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얻는다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됨으로써 우리가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간다는 말씀입니다.
베드로 자신이 그랬습니다.
풍랑이 이는 바다에서 그랬고
예수님이 붙들려 가시던 밤에도 그랬고, 베드로는 항상 불안해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베드로는 담대해 졌습니다.
지금 베드로는 자신이 순교하게 될 것을 알면서도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담대해 졌습니다. 주님이 언제 어디서나 함께 하신다는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주님에 대해서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던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때때로 불안합니까?
우리가 왜 때때로 근심합니까?
아직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닙니까?
그리고 아직 주님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닙니까?
여러분! 우리가 왜 주님을 닮아가지 못합니까?
이것 역시 우리가 주님을 많이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닙니까?
여러분! 주님을 알아가기 위하여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은혜와 평강이 돈이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대한 어떤 지식이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 다. 주님을 더욱 알아갈 때 넘쳐 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주님을 알아가기에 힘쓰고 계십니까?
우리가 주님을 섬긴다 하면서 주님을 알아가기에 힘쓰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저 한 명의 종교인이 되어질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더욱 알아갈 때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도 주님이 주시는 그 은혜와 평강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결 론}***
여러분!2000년 전의 시대나 지금 이 시대나 사람이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궁극적인 문제는 다 같습니다.
오늘 이 본문은 2000년 전에 살아가던 성도들에게만 전해주신 말씀이 아니라 오늘 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주시는 말씀입니다.
1. 믿음의 근본이 우리 심령에 늘 뚜렷하게 새겨진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2. 주님안에서 참된 권위를 회복해 가시기 바랍니다.
3. 그리고 날마다 주님을 더욱 알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주님의 그 복음은 오늘 우리에게 구원의 복음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삶 속에서 은혜와 평강의 복음이 되어질 것입니다.
주님의 그 복음으로 인하여 여러분의 삶 속에 진실로 은혜와 평강이 더욱 넘쳐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묵상:베드로후서1:1-3절입니다. 오늘부터 묵상하시게 될 베드로후서의 말씀을 묵상하시고 말씀을 지켜 행하시기를 소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벧후1:1-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