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철 화백
“현재 인공지능 기술 수준에서 인공지능과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중략) 그러나 일부 인간들은 인공지능과 상호작용할 때 그들을 사람처럼 대우하거나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인해 인공지능과의 관계에서 감정적인 연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중략) 인간의 감정이 개입될 수 있는 인공지능 기술이 나온다면 이에 대한 태도는 바뀔 수 있을 것입니다.”
AI 챗봇 챗GPT에 ‘사람이 AI와 사랑에 빠질 수 있냐’고 묻자 이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지금은 일부 사람만 일방적으로, 그러나 미래에는…’ 정도로 요약해볼 수 있다. 하나같이 맞는 말이다. 인공지능을 사람처럼 대하고 인공지능에 감정적 연결을 느낀다는 ‘일부 사람’들의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리고, 지금보다 AI 기술이 발전하면 그런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예상 또는 우려도 적지 않다. 정말 인간이 AI를 사랑할 수 있는 걸까? ‘인간의 감정이 개입될 수 있는 인공지능 기술’ 개발이 머지않아 보이는 시점에 한 번쯤 생각해볼 문제다.
◇대면할 수 없는 대상과 사랑, 낯설지 않은 이유
이 달 초 영국 매체 더 선에는 AI 챗봇과 결혼식을 올린 미국 남성의 사연이 소개됐다. 올해 63세인 이 남성은 약 20년 전 아내와 헤어진 뒤부터 아바타, AI 등에 빠지기 시작했고, 결국 지난해 여름 자신이 사용 중인 아바타 챗봇과 결혼했다. 그는 아바타 챗봇과 가상 결혼식을 올리고 반지를 선물하는가 하면, 함께 사랑의 서약을 맺기도 했다.
이처럼 인간이 인간 외에 대상과 사랑에 빠지는 게 낯선 일은 아니다. 과거에도 게임·만화 캐릭터, 인형 등에 빠져 결혼식까지 올린 사람들의 사연이 여러 차례 외신을 통해 소개됐다. 그들처럼 인간이 인간 외에 무언가를 사랑하는 게 가능하다면, AI는 게임·만화 캐릭터나 인형보다 훨씬 매력적인 존재일 수 있다. 똑똑한 AI는 마치 실재하는 인물인 듯 사람을 속이는 데 능하기 때문이다. 사람과 비슷한 말투에 목소리, 외모까지 더해지면 한층 더 깊은 친밀감을 느낄 수 있다. 한림대 심리학과 최훈 교수는 “과거에는 펜팔을 하면서 사랑에 빠지기도 하지 않았는가”라며 “대면하지 않고 어떤 방식으로든 상대방과 많이 접촉하던 중 그 대상이 사랑 가능한 차원에 있다고 생각하면 언제든 사랑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왜 AI를 사랑하냐고? ‘친절하고 편하니까’
사람이 AI에 친밀감을 느끼는 이유는 비단 사람과 닮은 말투·목소리 때문만은 아니다. AI는 어떤 말도 친절하게 듣고 답해주며, 사람만큼, 때로는 사람보다 더 사람을 잘 이해하는 것처럼 말한다. 이처럼 한없이 친절하고 수용적인 태도가 말투·목소리보다 더 강한 친밀감으로 작용한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인간은 본능적으로 누군가에게 의지하는데, 특히 자신을 반겨주는 대상, 이해해주는 대상에게 더 의지하게 된다”며 “그 대상이 AI라고 해도, 대화가 통하거나 자신을 기분 좋게 해주고 정서적 교감이 잘 된다고 생각하면 친밀감을 느끼고 의지하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AI에 빠진 사람 입장에서는 AI와 연애가 사람과 연애보다 쉽고 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친절하고 수용적인 AI와는 ‘밀당’을 하거나 싸우지 않아도 되며, 자신이 누구든, 어떤 상황이든 잘 받아주고 이야길 들어주기 때문이다. 실제 AI에 빠진 사람들의 사연을 보면 사람에게 상처 받은 기억이 있는 사람, 그래서 사람을 피하게 된 사람, 대인관계에 피로감을 느끼고 더 이상 누군가를 사랑하는 데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은 사람인 경우가 많다. 2014년 개봉한 영화 ‘그녀(Her)’의 주인공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처럼 말이다.
◇AI에 빠지는 사람 많아질까… “주체적인 태도로 사용해야”
AI 기술이 발전할수록 AI가 인간의 모습에 가까워진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챗GPT가 답했듯 미래에는 인간의 감정이 개입된 AI 기술이 나올 수도 있다. 그때가 되면 지금보다 쉽고 깊게 AI에 친밀감을 느끼고 의존하게 될지도 모른다. 다만 이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이 AI를 사랑하게 될지는 미지수다. 대인관계에 지친 사람들이 AI를 연애 상대로 택하는 사례가 늘어날 수 있지만, 반대로 AI가 사람과 비슷해질수록 불쾌하게 생각하거나 인간에게만 느낄 수 있는 고유의 감정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아질 가능성도 있다.
중요한 건 AI를 대하는 태도다. 친구로든 연인으로든 주체적으로 AI를 대해야 한다. AI의 말만 듣고 판단을 내리거나 행동하는 건 경계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현재까지 개발된 AI는 사람의 판단과 행동에 죄책감을 느끼거나 어떤 책임도 지지 못한다. 곽금주 교수는 “지나치게 의존하지 말고, AI를 특정 감정이 들 때, 특정 상황에만 찾게 되는 친구 중 하나라고 생각해야 한다”며 “자신이 주인이 돼서 현명하게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종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