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10월을 보내는 마지막날에 나는 제주를 다시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 때의 방문목적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데 있어서 사전 시장조사를 하기 위한 목적의 방문 이었다.
서울에서 전화로 제주에서 미팅 약속을 잡았던 날 후배와 나는 출장장소를 엊바꿔 가게 될줄이야...
후배는 서울로, 나는 제주로 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후배는 갑자기 서울 매장에 문제가 있어서 담당자와 상의하기 위하여, 나는 후배가 경영하는 현지 공장과 시장조사를 위해 내려갔는데 서로의 출장 목적들이 달랐기에 나는 후배가 서울출장을 마치고 내려오는 월요일을 미팅날짜로 잡아서 다소 여유를 갖을 수가 있었다.
제주공항에 도착하여 나는 먼저 시장조사를 위해 제주 동문시장으로 곧바로 방향을 잡았었다. 공항버스를 이용하여 구제주를 향하여 20여분을 가다보면 중앙로가 있다. 이곳은 예전 90년 이전 까지는 제주시의 중심 변화가였지만 지금은 그 권위를 신제주에 빼앗겨선지 퇴근시간이 되어도 거리는 한산하다.
중앙로 지하상가를 벗어나 동문시장 쪽으로 걸어가는데 길 좌측에 당시 서울의 명동이라던 칠성로 들어가는 입구에 아직도 옛날의 모습이 남아있는 건물이 있어서 나는 들고 있던 핸드폰의 샤터를 누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주반점!
"아니, 아직도 아주반점이?"라면서...
아주반점은 중국집이다. 한 때 우수갯 소리로 얘기하던 청요리 집 인데 이곳은 정통 중국인이 운영했던 華商집이다.
내가 이 청요리집을 처음 갔었을 때가 초등 2학년 때이니까 지금부터 손가락을 꼽아보면 45년은 흘렀으리라.아버지가 어느 가을 조상묘 벌초를 마치고 어린 동생들 비롯하여 전 가족이 벌초를 다녀와 수고했다고 데리고 가셨던 중국집, 그곳이 바로 이 아주반점이다.
그 때에 어머니는 음식값이 비싸니 집에가서 저녁 해서 먹자고 했었지만 아버지의 고집에 어쩔 수 없이 어머니 마져 따라 들어서게 했던 중국집인데 나의 기억으로 그때에 우리 식구들이 먹었던 청요리는 짜장면과 야끼만두 즉 군만두였었는데 정말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아직까지 남아있다. 그 후 나는 친구들과 짜장내기 축구시합을 하고 나면 꼭 이 집에 가서 짜장을 먹곤했던 곳이다.
너무나 반가웠다. 여태 이 아주 반점이 남아있다니....
당시에 짱축(짜장내기 축구시합)을 할 때에 유독 이 집 만큼은 시계를 안 받아주었던 곳으로 유명했었다.
제주 동문시장!
동문이란 동쪽에 위치한 문이란 뜻인데 제주에도 조선시대 한양처럼 예전에는 성곽이 있었다. 제주시를 중심으로 외적에 대항하기 위하여 세워졌던 성곽인데 지금의 관덕정이 있는 제주 목관아를 중심으로 제주시를 둘러 싸 안고 있는 성이 있었다.
그 성의 동쪽문이 있는 곳에 1945년 해방 시기에 한라산에서 내려오는 물길을 여는 그때 남수각 일대에 재래시장이 세워진게 바로 동문시장이다. 나의 어린 시절 오늘날 최대의 백화점이요, 대형마트 역할을 한 전통 재래시장 동문시장엘 자주 다녔다. 이빨에 충치 먹어 치료를 받으러 갈적에도 이 시장 2층에 위치한 치과를 다녔었고, 새로운 영화가 들어와 제주시민을 유혹하던 극장도 이 동문시장 안에 있었으며, 출출할 때 배불리 먹을
수있게 했던 칼국수집도 이 동문 시장에 다 모여 있었다.
아직 늦은 시간은 아닌데 청과 시장 쪽은 벌써 인적이 끊긴것 같았다.
나는 이곳에서 핸드폰 밧데리가 다 되어 갖고있던 스페어 밧데리를 갈아 끼웠는데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전화가 볼통 되었다. 앞으로 몇일간 제주에 있으면서 전화 받을 때가, 전화걸어야할 곳이 많은데 나의 핸드폰이 맛이 간것이다. 스마트폰 구입한지 2년도 안됐는데...
나는 밧데리를 뺏다 끼었다 수 차례 반복을 했었지만 모든게 불통이다. 이를 어찌해야하나...
청과 시장을 벗어나 수산시장쪽으로 들어서니 가게앞 수족관에는 이런 고기들이 바닷속을 유영하는 양 지느러미를 퍼득이며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에서는 이 고기를 다금바리라고 판매 할런지 모르겠다.
다금바리는 제주에서 나는 고급 횟감 어종이다. 내가 오래 전 제주에 영업차 어느 공공기관 대표를 만나 접대할 일이 있어서 용두암 근처에 있는 일식집에서 이 다금바리를 주문했더니 그 가격이 만만치가 안 했다. 그때의 가격이 1K에 20만원이나 했었으니 횟감으로서 최고의 어종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사진에서 보이는 이 고기는 다금바리는 아니다. 다금바리과에 속하는 능성어로써 양식이 되어 지금은 그리 귀하지 않는 어종이니 다금바리라는 말에 현혹 되지 않기를 바란다.제주의 정통 다금바리는 이런 보랏빛을 띄는 어종이 아니고 노란 황토빛깔을 내는 어종이니....
동문시장안에는 제주의 청정해역에서 나는 신선한 해물들이 많다. 나는 제주를 방문할 때마다 이곳 동문시장에 들려 제주 옥돔이나, 고등어, 갈치들을 구매한다. 어려서 부터 먹어왔던 수산물이어서 나는 서울생활을 하면서 제주산만을 고집했다. 우리 해역에서 잡히는 고기는 요리하면 비슷한 맛을 내지만 그 중에 수입산을 국내산이라 판매하여 구입하여 조리를 해보면 차이를 느낀다. 어린날 내가 살던 동네에선 새벽에 리어카나 자전거 뒷쪽 짐 싣는곳에 고등어나 갈치를 싣고 다니며" 고등어 사려~~~어", "갈치 사려~~~어"하던 생선장수 아저씨의 새벽길여는 소리에 깨어나곤 했었는데 이제는 제주에서 이런 생선장수는 볼 수 없을것이다. 이곳 동문시장이 있어서...
나는 우리나라 어디를 가서도 이런 소라를 본적이 없다. 제주의 소라는 독특하다. 살점을 둘러싼 껍질은 이렇게 뿔이 달려있다. 제주 소라만의 특징이다. 나의 외가는 어촌이다. 제주시에서 승용차로 30여분 가다보면 한림이란 곳을 가기 전 귀덕이라는 어촌이 있다. 그 당시에 시외버스로 포장이 안된 일주도로를 흙먼지 날리며 달리면 1시간 이상은 걸렸던 거리였는데 지금은 제주시에서 그리 떨어져 있는곳이 아니다. 그때에 그 어촌마을에는 잠녀(해녀)들이 많았었다.한 겨울에도 갯가 공동목욕탕 주변에 모닷불을 지피며 그녀들은 물질을 하곤 했었는데 이 소라를 채취하여 일본에 수출하기 위하여 잠녀들은 겨울 바다를 드나 들었었다. 지금처럼 찬기운을 막아주는 고무 잠수복도 없이 그저 광목으로된 해녀복을 입고서...
이 소라는 다른 지역의 소라와는 다르게 전복 맛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지금은 전복소라라 하는지 모르지만 이 소라를 잡으면 잠녀들이 채집한 소라들을 모아 즉석에서 커다란 가마솥에서 이 소라들을 삶아 달팽이 똥처럼 나 있는 나선형의 내장을 제거하고 살점들만 일본에 수출을 하였었다. 그때에 나는 이런 작업을 하는 현장에 나가면 삶은 소라를 많이 얻어 먹을 수가 있었는데 어찌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때 몸에 두드러기가 나 한 겨울인데도 몸을 북북 긁던 기억이 있다.나는 제주 고향집에 가면 이 동문시장에 들려 이 뿔소라를 사다가 일부는 전복죽마냥 죽을 끓여먹고 일부는 이 소라를 얇게 져며 초고추장에 찍어 소주한잔을 하곤 했었는데 지금 사진을 보니 이 뿔소라의 맛이 간절하다.
냉장고가 없었던 옛날에 다른 곳에서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제주의 생선 보관방법은 다 이렇게 생선의 내장을 제거하고 굵은 왕소금을 팍팍뿌려 질그릇 항아리에 차곡차곡 보관했다가 흰눈이 펑펑내리던 한 겨울에 하나 둘 꺼내 연탄불에 석쇠를 얹혀 구워서 먹어거나 살랑대는 바람에 생선 그물망에 이런 생선들을 집어넣어 쇠파리들 안 달라붙게 건조시켜 처마밑에 걸어두었다가 구워 먹곤 했었다. 사진에서 왼편 비닐에 쌓인게 옥돔이고 참조기 위의 고기가 제주 고등어다. 요즘에는 제주보다 찬 해역에서 잡힌 노르웨이 산 고등어가 우리의 식탁을 자리잡지만 나는 이 제주산 고등어가 제일 맛있는것 같다.
제주 동문시장을 1시간 여 돌아보고 신제주에 있는 동생집에 가기 전 어린 시절 내가 살았던 동네에 가보고 싶었다.
제주말로는 '과양' 표준어로는 광양이라 불렀는데 지금도 이곳을 왜 '과양'이라 불렀는지 모른다. 광양이라하면 光陽인지 廣陽인지 한자로는 모르지만 우리가 이곳으로 이사온것은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전 1966년이었으니 까막득한 시절이었다. 당시에 이곳은 건물이라곤 지금 시청으로쓰던 건물이 도청이었을 때 였었는데 당시에 도청앞에는 너른 벌이있어서 이곳을 광양벌이라 불렀었다.
이 광양벌에 위치한 나의 국민학교 교가에는 "밝은빛 빛나는 광양일세"라는 것으로 보아서는 아마도 빛이있는 곳이라는 뜻일 것이리라. 내가 초등시절부터 대학4년까지, 아니 나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살았던 이 광양벌은 지금은 엄청 변해 있었다. 이곳에서 제주대학까지는 한 20여Km 떨어져 있지만 지금 나의 살던 이곳은 '대학가'라 명칭이 변해있었다. 지금의 제주시청이 있는 이곳은 그 옛날은 제주시에서 변두리 였었다. 그러나 지금은 파릇한 젊은이들이 북적거리는 젊은이들의 거리로 바뀌어있고, 술집,카페, PC방, 호프집 모든 유흥음식점들로 들어차 있어서 이제는 내가 살던 그때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나는 늦은 저녁시간이어서 근처 식당으로 가 저녁을 먹으려는데 길가에 파란눈의 외국인이 가게앞에서 열심히 무언가 구워내는 모습이 신기하여 나는 이곳에서 저녁을 해결하기로 했다.
"어서 오세요"
파란눈의 외국인은 능숙한 한국말로 나를 반긴다.
"여기 음식 무엇이 있어요?"
"프랑스 음식해요. 또 술은 프랑스 산 포도주가 있고요."
나는 사진 속에 보이는 음식을 시키려다 음식을 잘못 선택해 후회 하느니 그래도 익숙해 있는 맥주 두 병에 안주를 시켜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했다.
"아니, 한국에 언제왔는데 한국말이 능숙해요?"
"네, 한 10년은 넘었을걸요?"
"그런데 외국인이 이곳에서 장사할 수가 있나요?"
"그럼요 장사한지 이제 6년은 됐어요."
"메뉴를 보니 프랑스 음식들이 많은걸 보니 혹시 프랑스인?""
"예, 맞아요 프랑스사람 이예요."
"그렇군요. 나는 가끔 제주오면 이곳을 들렸었는데 처음봐요. 제주가 좋은가요?"
"네, 좋으니까 이렇게 오래 있는거겠죠?
"손님은 많아요?"
"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요. 그리고 프랑스 음식 먹으러 오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찾아 오고요"
이 친구는 이제 제주 사람이 다 되어 있었다. 들고 나가는 손님들을 향해 제주 사투리로 인사하고 단골손님인지 서로간의 안부도 물어보며 그렇게 그는 제주 속에 녹아 들어가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때에 "요거 한잔 드셔보세요."라며 그는 자그마한 와인잔에 포도주를 건내준다. 나는 그저 프랑스산 와인이겠지하고 한모금 들이마시니 술이 따뜻했다. 지금은 시간이 흘러 그 술이름을 뭐라했는지 모르지만 독특하였다.
한 시간 여 맥주를 마시며 이런 저 얘기끝에" 내가 뭐라고 불러야 하나요?"라며 이름을 물었더니 그의 이름은 NAbil이라 하였고 1975년 생이란다.75년생이면 한국나이로 이제 41세인데 그는 이렇게 100여년전 신축년에 프랑스함대를 몰고와 '이재수 난' 때 프랑스 선교사를 살해했다는 댓가로 보상을 요구하던 조상들의 뒤를 이어 이렇게 제주에 뿌리를 박고 살고있었다.
예전 우리집이있던 골목이다. 옛기억을 찾아 더듬거려 가 보았던 옛집은 구조가 변경되어 '유엔아이'라는 커피숖으로 바뀌어 있었고 그 옆 여관 건물 역시 음식점이 되 있었지만 옛날의 추억을 되찾는데는 그리 문제시 되지는 안 했었다. 여름날 저녁이면 각자 집에서 저녁들 먹고 "누구야! 놀자 "하며 이 친구 저 친구 불러내어 목말 타기며 총 싸움을 하다 늦은 밤이 되서야 꾸역꾸역 제집찾아 들어갔던 곳 들인데 이제는 그 친구들 다 어디가고 수 십년 묵은 옛집들만 남아 있었다.
동생 집에서 하룻밤 묵고 제주시청 근처에 핸드폰 제조사A/S센타가 있다해서 수리를 의뢰하렸더니 메인 키판이 고장나서 키판을 갈아야 한다고 직원이 말을 건냄에 비용이 만만치가 않으니 새로운 것으로 장만 하라 한다.
옛날의 일반폰은 5년이든 10년이든 아무 고장이 없어서 그리 오래 썼건만 이놈이 스마트폰은 2년도 안돼 고장이다. 나는 화가 난김에 핸드폰 매장으로 달려가 신형 핸드폰을 새로 장만을 하고 말았다. 그것도 야간 사진촬영을 앗싸하게 조명에 구애받음없이 찍을 수있는 스마트 폰으로....
"에구, 지난 번 핸드폰 할부가 6개월이나 남아있는데 내 서울가서 반드시 따지리라."하고 올라왔건만 고장난 핸드폰 지금 책상서랍에 고이 놔두며 제조사에 전화 한번 안 하고 벼르고 있다.
사진은 예전 제주도청이 신제주로 청사를 옮기며 지금은 제주시청사로 쓰고 있는 건물이다. 그 옛날 이 제주도청 청사 뒷쪽 쓰레기 소각장엘 가면 제법 쓸만한 학용품 문구들 건질수가 있었는데....
핸드폰 매장에서 신품 스마트폰을 장만하고 나는 진짜 오랜만에 서귀포를 방문하려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발길을 옮겼다.물론 지난 해 제주에 왔을 때 표선을 가기 위하여 잠시 스쳐 가기는 했었지만 이번 방문은 한 이삼일 있으면서 그곳 시장 현황도 봐야할 것 같아 이처럼 오래 서귀포에 머무른적이 없어서 무척 기대가 된다.(계속)
오늘도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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