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날들을 되집어보면서 남은인생 앞날또한 어찌 살다 갈것인가-?
조용히 생각해 봄니다. 강원도 금성면 방축리 225번지에서 태여난 3살때 영월로 왔다.
22살 2월에 황석구따라 육군에 자원 입대한뒤엔 영월은 잊고 살앗읍니다. 그이후에 미국으로 가서
50대말...58세 때부터 거의 매년 영월의 고향친구들을 찾아갔읍니다.
그동안의 삶의 우여곡절이야 이루 말할수없는 많은 사연이 있엇지만,,,,,
천신만고 끝에 생활의 여유도 생기게되다보니 그리운 고향이 눈앞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사실 내가 기억하고 생각할수 있는것이라곤, 어릴적 영흥리 동내...그리고 봉래국민학교...
영월중학교...영월공고...3년동안 석항에 살아본게 다 라고봄니다.
아주어릴땐 봉래국민학교 정문앞을 중심으로 올라가고 내려가면 창목이네집 주변이였다.
아버님이 마차끌든 김남석. 지영섭,창목이,창수,철용이,영옥이,광옥이 위로올라와서
창배,명자,옥현,명희,옥자,기평,옥환,진천,영옥,진태...등이였든것 갔다. 능말올라가는 서원이끝이고
내려가면 축강뚝이 마지막이였다. 중학교때는 경찰서 앞으로 이사와 돈영이,수일이,필황이
정자,인자,옥춘, 옥자, 송광룡 이랑 새로운 친구들이였다. 고등학교때는 그래도 새로운 친구들 먼곳에서 온
새로운 친구들을 많이 사귀였지요. 주명호,성태현,이갑보,강길남,조중기,차재복,문상룡,임개식
엄광호...신삼선, 특히 명호와는 친하게 많은 추억을 갖고있다.
고3학년때 석항(아버님이 대한중석 서항하역소장) 어쩔수없이 석항으로가 기차 통학을 했다.
그당시 춘천에 있는 김용기와 알기시작해서 졸업후 석항에서 건들거릴땐 친한 친구 였지요.
강근열이도 친한친구였다. 근열이 부친이 중국집 식당을 했고 근열이 여동생이 얌전하고 예뿌장
해서 가끔 눈에 띄이기는했지요.ㅎㅎㅎㅎ
마차에서 온친구 흥월리 친구들과는 생각나는 추억이없어서 아쉽다.....
동창생-같은 학교나 스승 밑에서 공부한관계
친구 -아름다운 추억을 갖고 친하게 지내는 벗
우정 -친구사이의 정
이러고보면, 우정이 제일로 생각하고 싶읍니다. 추억을 갖고있어도 몾보고 소식없다보니 아름답던 추억도
빛이바래저 잊어지고 기억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앞으로 고향을 갈지 아주 몾갈지는 모르나...영월의 남은 친구들 이랑,다른곳에 살고있는
창목,인자,정자,영옥,..남매로 인연맺은 옥춘이...양료원에서 기억상실증으로 지내고있지만...
모두 행복하게 잘 지내기 바라는 마음이다. 갈때마다 거의 7~800백만원씩의 경비를 쓰면서 꼭-?
갸야되는가- 몸도 쇠약해지고..다녀와 아직도 정상이 아니다. 가장 기뿐건 그나마 영월의 친구들
그리고 보고싶엇든 어릴적 친구들 보고온겆만도 얼마나 기뿐일인가요.
미제는 마음만 앞설뿐 행동이 옜날갖지않타. 금전을 떠나서 몸이 마음을 따를수 없다는걸 알게되네....
갈수록 허약해지는데....1년후엔 어찌될지 장담을 몾할 내가되고보니 우울하다.
가차운 미국 주변이나 슬슬 돌아다닐수 밖에는.. 유람선이나 타야될 나이라고 생각해보니 이또한 서글프다.
입만 열면 죽어가는소리 푸념에다가 내가생각해도 이거 우울증 으로 바뀐다면 큰일아닙니까.
내속마음을 사랑하는 우정의 벗들에게 터놓고나니 쉬원합니다. 어디 말할곳이 있어야지요.....
이렇게 속 마음을 터놓을곳을 만들어준 광옥이에게 고마운 마음 또한 전한다.
첫댓글 여우도 죽을 때 태어난 굴을 향해 머리를 두고 죽는데..
항차 사람이 어찌 태어난 고향을 잊을 수 있겠는가..
물건은 새 물건이 좋고 사람은 오래 된 사람이 좋다 네.
그래서 칭구도 초딩 칭구를 죽마고우라 해서 죽을 때까지 잊지 못 하는 게아닌가?
나는 고향인 녹전에서 태어나 초등 동창인 조중기, 박태순, 유경춘 넷이서
영월 중학교를 다녔는데 벌써 두 사람은 타계하고 브라질로 이민간 박태순과
둘이 남았구만..언급했듯이 승웅과는 아버님 따라 잠시 석항에 머물 때 친분을 가졌고
짧지만 그때의 추억이 가장 오래 기억되고 있다네.
나는 목상땀시 석항 다방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는데 그때 만난 칭구가 하준찬, 이강봉
김철수..등인데 나중에 안 일이지만 승웅이는 다방레지는 몽땅 아도를 쳤더구만!ㅎ
나도 군입대 관계로 그 좋은 목상을 접었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추억이 새롭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하준찬이는 국토 건설대에 차출돼서 죽을 고생을 했다네.
승웅이도 군대를 안 갔으면 하준찬이와 같은 입장이 됐을 게 뻔 했을 걸세.ㅎ
그렇게 생각하면 죽은 황석구가 오늘의 승웅이를 탄생시킨 생명의 은인이라고 봐야제?
당시 석항 파출소에 최순경이라고 있었는데 나도 군대를 안 갔으면 하준찬이와 같은 신세가 되었을지도 모를거야?
당시 국토 개발대 차출은 기준도 없고 무조건 배당 된 인원을 채워야 하니까 손가락 질만 받으면 끝장이지!
하준찬이 형이 하준남이지 지금 영월사는데 어렵지
상세히도 알고있구만, 드래곤.
조중기가 녹전 국민하교 동창인지 첨 알앗네요.
좀 생각이 엉뚱한 면이 있는 친구였지요. 체격도좋코....약간 싸이코 같은 말을
가끔씩해서...이해하기가 쫌 그랫었지요.
석항에 최순경...뚱뚱하고 다리 절룩거리든 최순경....기억하고 말고지.
석구 아니였다면 드래곤 말처럼 골로는 안갔을지언정 탄광촌에서 잡초처런 살다가 갔겠지...
으이구...끔찍 스럽다.등골이 다 서늘합니다.ㅎㅎㅎ. 드래곤 말한마디에 죽다가 살아난 맛을
느껴보네요. 석구형, 고맙읍니다.
다방래지는 그렇치....순경들이랑 사업하든 사람들이랑 다방래지들이 나만 찾으니 꽤 미웟겠지...
한세월좋앗다. 김철수는불행했지..
@벽암 준찬이 형이 키도 크고 잘생겼는데....어찌다 그렇케 됫는가....
세상일이라는게 참 마음데로 안되다보니 안타까운 일일세...영월가면 한번 찾아가봐야겠네.
simon의 어린시절 영흥리친구 봉래학교친구들
중학교 공고친구들 참많이 기억하네
누구나 어린시절친구 생각이 굴뚝같지요
늘 고마운 생각으로 많은돈을 투자하여 찾아주는 고향이
simon에게 그렇게 가치가 있는건가 그렇게 마지해주었는가
늘 고맙고 반가운친구 simon
늘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벽암. 말한마디에 천량의 빚도 가려준다는데...벽암의 따뜻한 말한마디로
도리여 큰 보람을 얻는다네. 도리여 네가 항상 고맙게 생각합니다.
사는도안이나마 그마음 항상 변함없기를 바람니다.
학교다닐때는 공부끝나면 벽암은 마차 분덕제넘어 집으로가기 바뿌다보니 어디
함깨 같이 놀러다닐 기회 없엇지요.
늦게나마 지금다시만나 말뿐인 동창이아니라 따뜻한 우정을 쌍아가는 벗이기에
마음 뿌듯합니다. 건강조심하기 바란다.
창배는 중학교동창이고요.고등학교는 평창을 나오고 현재는 춘천에거주하고 잇고요.유 진태는 2013년 4월경 강릉에서 작고하였으며 국민학교는 우리동창임.
김창배 초등학교는 마차서도다녔지 저아버지가 운전수지 마차광업소 다니셨는데 우리 옆집에서 살았지 평창에서 공무원하다 도로 올라갔지
엄병무- 이제 몸은 많이 회복 됐지요 ? 드래곤이 술끊듯이 병무도 술은 딱 끊엇으리라고 본다.
창배는 영월중하교 좀 다녔는데...그때 김태랑이랑 친하게 지냈지요. 진태는 아주어릴때 6,25사변 일어나기전까지
마루보시 일본자동차회사옆(옜날 군청옆) 살때 장준영씨아들 기평,진천이,진태,영옥이,최옥자,김옥환이, 서명자.어릴때 친구란다.
아- 죽엇구만, 말없이 얌전항 친구였는데.....
@벽암 창배가 마차서 국민학교도 다녔구만, 아버님이 마차탄광에 근무했는건 몰랏네
평창살앗다는건 풍문으로 들엇지만 벽암 옆집에 살앗다는 처음 들어보네요. 참으로 아득한 옜이야기 입니다.
효조 까마귀에 향수에 여우 까지 거론된 터에 승웅이 심정 깊이 읽고 남네 너무 고향 생각에 심취 되지 말고 그렁 저렁 편히 사세나 이제 살아야10년 내지는 20년이
아니겠는가 마음편히 살다가 오라면 가는길이 있음에 큰 걱정 말고 살아 보세나,,,,,,모쪼록 건강 관리 잘하면서 즐거운 날만 만드러보세나,,,,
묵직한 말로 항상 형같은 위로의 말에 고마울뿐입니다.
10년은 좀 타당성이 있을듯 싶으나...20년은 불가능 할것같읍니다.
상호형도 건강관리 잘하기 바람니다.
승웅이 글, 댓글 꼼꼼히 살펴보았네
요번 고국나들이로 많이 피곤했을텐데
그리고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도 적어 아쉬움이 많았고 미안했는데
오히려 울 친구들을 고맙게 생각하니 송구스럽기 그지없구만,
그나마 승웅이가 그리던 옛 동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음으로 조금은 위안이 되었으리라
그리고 또 잊을 건 잊어야지...이세상은 싫은사람도 좋은사람도 함께 가야하는 비좁은 길인데 어쩌나
그래도 승웅이는 미국에 사는거이 큰 축복일세 ㅎㅎ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 잊혀질테고 그리워질테니
세월이 약이 아니겠나 그래서 피리도 세월을 사랑한다네 ㅎ 이젠 세월 타령할나이도 아니긴하지...
넘 먼 길을 왔기에...
젊을때는 길도넓엇는데...이제는 좁아지고 그길또한 언제 끊어질지도 몰라 불안한 심정으로
한발작 또한발작씩 걸어가고있는 마음일세...
그렇치요. 세월이 약이지요. 싫코 좋튼간에 자연히 잊어지지요. 알고있읍니다.
아무쪼록 카페에서 만나 넉두리도 하고 그리운 친구 불러보기도 하고 그러세
뭐니뭐니 해도 울 카페는 승웅이가 있어 그나마 댓글도 달고 우정을 나누고 있음이 큰 보람이 아니겠나
생각나는 데로 자판을 두둘기다 보면 오해의 요지도 있을 수 있겠으나 고의나 악의가 아니라면 통크게 이해하고 넘어감세 모두들...
오늘은 현충일이라 군바리뽀대로 참석합니다. 사진도 올리것슴다. 남은 세상 웃으며 살읍시다.
까패는 우리들 인생의 마지막 흔적이지요. 야초를 보면 알지요.
우리들도 이세상 끝이나는 그날까지 무언가 이세상에 나의 흔적을 남겨 놓을것이라곤 이 까패외는
없다고 봄니다. 좋은일이든 나뿐일이든간에, 나뿐것은 잊고 좋은일들은 서로 즐기며 살다가야지요.
이번고국 방문 여정이 너무타이트하여 여독에
시달리시는건 아닌지요? 허기사 시장만한바퀴
돌고와도 피로감에 늘어지는 나인데 승웅님은
아주양호하신 편입니다 건강잘다스리시여 다음
기회 만들어 봐야죠?ㅎㅎ 주신선물 잘받았습니다
챙겨주신마음 많이고맙습니다 보답으로 밥한끼
살 기회있길 바랍니다.
연가님 오늘 처음으로 삼성게럭시4로
답글올림니다
스마트폰 없이는 여러모로 곤란해서 늦게야
시작한지 20여일됏네요. 카카오톡이랑.
왓샵 모두 개통 했읍니다.
컴도 오늘에야 하나로 통일 시켰지요
I was very happy and excited about
smartphone. I will do message with
you. Thank my friend, bye by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