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따를 자 없는...달변가...
파격적인...문학평론가...
문학 출판사의 주간이자 대학교수....당대의 문장가...
그리고 88 올림픽을 통해 전세계에 우리 문화를 과시한 초대 문화부장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지성...자연인<이어령>을 수식하는 말은 이외에도 수없이 다양하다.
서울대 문과 학생시절, 교수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며 이미 여러 강연회에 불려 다니던 그가
한국일보에 우상화된 기성문단에 대한 도전을 선언한 평론 우상의 파괴를 발표하여 문단에
등장하면서 파란을 일으킨 때의 그의 나이는 고작 24세였다.
그러던 그는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를 일간지에 발표하면서 처음으로 한국 문화를 제대로 분석해 냈다고 평가를 받음으로 독보적인 위상마저 획득했다. 그리고 40대에는 <축소 지향의 일본인>을 일본에서 출간하여 미국을 비롯해서 세계에 소개되기도 했을 뿐아니라 지금까지 문학, 어학, 풍속학, 문화분석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에서는 그 누구에게도 이렇다 할 도전을 받아본 적이 없는 석학 중의 석학이다
그는 자신이 곧 문화코드로 작용할 정도의 영향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연줄을 만들고 남을 지배하는 것을 혐오했다.
그래서 그는 값싼 패거리주의에 빠지지 않은 유일한 지식인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그를 좋아했고 그의 책을 즐겨 보았다......그러나 그는 철저한 무신론자였다.
더구나 기독교자체는 물론, 성경에 대해서도 언제나 정내미 떨어질 정도의 비판을 서슴치 않았던 그였다.
그는 말하기를...." 문화적인 현상으로서 기독교를 인정하지만 신앙의 대상으로는 미신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기독교를 내 신앙으로 받아드리기에는 양심이 허락지 않는다 " 라고 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러던 그가....온누리교회의 하용조목사에게 세례를 받은 것은 5 년전 2007년도의 일이다
사실, 이어령박사가 개신교 교회에서 세례를 받게 되었다는 자체는...
기독교인이건 비기독교인이건 그를 아는 사람들에겐 믿을 수 없는 충격적사건이였다.
그가 아무리 전직 장관이지만 공인이 세례받게 된 것을 신문(동아일보)에서 이례적으로 보도했다는 사실이 그 것을 뒷받침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철저한 무신론자 이어령박사가 어찌하여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게 되었을까?
" 절대고독 속에서 절대자를 느꼈다" 라는 말은 기자들의 성화에 대해 준비한 즉석 멘트에 불과한 것이고...
사실은 간증이 될만한 뒷배경의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2007년 그 당시...이어령 교수에게는
48세가 된 아주 총명한 딸, <이민아>가 있었다.
어쨌던, 이혼이라는 아픈 과거의 상처를 갖인 딸 이민아는 예수를 믿은지 석달도 안돼서 갑상선암에 걸렸다.
수술을 했지만 4년 뒤에 재발을 해서 다시 또 수술을 했다. 그리고 3년 뒤에 다시 수술을 했지만 또 다시 재발하여 투병 중이였는데 설상가상으로 그녀의 둘째 아들이 유치원에서 자폐증으로 판정을 받았다.
그 사실은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것보다 더 큰 충격이였다.
그래서 그녀는 검사직과 변호사직이나 할 것 없이
모든 일을 다 사직하고, 오직 자폐증의 아들을 치료하는 일에만 몰두했다.
하와이에 자폐증 전문학교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아들을 위해서 아예 그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러나 자폐증치료 전문학교의 교장이 이 아이를 상담을 해보고서는 너무 중증이어서 그 학교의 평균적인 아이들 수준과는 너무나 차이가 크기때문에 받아드릴 수 없다고 거절을 하는 것이였다.
그 말을 들은 이민아는 한 사람의 어머니로서 목사인 그 학교의 교장을 붙들고는 잃어버린 한 영혼을 구해달라고 하면서...그렇게도 자존심 강한 그녀가 바닥에 업드려서 대성통곡을 하며 간청을 했다.
결국, 받아드려졌지만 그래도 그 녀는 자폐증아들로 인해 거의 10년간을 하루도 울지 않고 잔 날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눈에 이상이 생기고 결국은 망막이 망가져버려서 시각을 거의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 녀는 미국의 유명하다는 안과는 거의 모두 다녀 봤지만 회복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친정아버지인 이어령박사가 모처럼 하와이에 딸을 보러 가게 되었는데 그 때에 자기 딸이 눈이 안 보여서 설거지를 못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어령 박사는 이민아에게 미국 사람들은 손이 커서 눈수술은 잘 못할테니까 손재간이 좋은 한국에 가서 한국의사에게 수술을 받자고 설득한 끝에 자신의 고명딸인 그 녀를 데리고 한국으로 데려오게 되었다.
이민아는 15년이라는 긴 세월을 하나님과 눈물로 씨름해 왔고 마침내 살아계신 하나님의 기적을 맛보았다.
그 후 그녀는 자기 자신에게 펼쳐진 기적의 사실을 누구에게라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온누리교회의 어느 새벽기도시간에 32살 때부터 15년간 겪었던 일과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신 일들을 울면서 교인들에게 조목조목 간증을 함으로 해서 그 날 온누리교회의 새벽예배는 온통 울음바다가 되었다.
뿐만아니라, 그 자리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아버지 이어령 박사가 전혀 뜻밖에 성령의 감동을 받아 변화된 것이다.
그는 말하기를...“내가 가장 사랑하는 딸을 아버지인 내가 못 해 준 것을 해 주신 하나님이 얼마나 굉장합니까?
내가 못 해주는 것을 해 주신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십니까.? 이제 나도 신앙을 가지겠습니다.” 라고 고백하였고 그렇게 해서 이어령박사는 때마침 온누리교회가 주관하는 일본집회에서 세례를 받게 된 것이다.
철저한 무신론자였던 이어령박사...
문화적인 현상으로서 기독교를 인정하지만 신앙의 대상으로는 미신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기독교를 내 신앙으로 받아드리기에는 양심이 허락지 않는다고...당당하게 말했던 이시대의 최고의 지성인인 그였다.
그러나 마침내, 사랑하는 딸을 위해서 이 아버지가 못한 것을 해 주신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시냐고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한 이어령박사.... 그는 이제 성경의 하나님과 예수를 구원의 주로 믿는 신앙인이 된 것이다.
첫댓글 " 絶對 孤獨 속에서 絶對者 를 느꼈다". " 내가 가장 사랑하는 딸을 아버지인 내가 못 해준것을 해 주신 하나님은 얼마나 괭장 하십니까 ?."
이어령 박사와 그분의 딸 민아 씨의 信仰 實話. 정말로 놀랍고 感動的 이며 아름답습니다. 다른분들께도 전달 코저 합니다
이글을 써 옮겨주신분은 分明히 基督敎人 이 겠지요 !.宣敎에 도움이될 좋은 글 감사합니다.하나님의 祝福 많 받으시고 幸福하세요.
人生이라는 게 .무언가 ? . .젊을 때는 . .누구나 . .잘난 . . 척하고 . .똑똑한 . . 척하고 . . 무엇이든
다 . .아는 것 . .같이 . . 錯覺들을 . .하면서 . .살지만 . . 歲月이 . .흘러 . . 自己의 . .한계를 . . 알고.
..
人間 이라는 . .것이 . . 참 . .不足 . .하다는 . .것을 . .느끼면서 . . 謙遜 . .해지는 . .사람은 . .비로서 . . 철이
.들게 .되고, . . 마침 .내 . . 全能하신 . .하나님 . . 앞에 . .謙虛히 . . 무릎을 . . 꿇게 . . 되는 것 . .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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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無神論者 . 이어령박사 의 . . 感動的인 . .글지요 . .긴글 . .읽어 . . 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말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어제나 함께 해주셔서 .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