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한 뒤 서해안 시골 농촌마을로 내려간 뒤로는 양복과 구두를 입고 신을 일이 없어졌다.
날마다 그냥 허름한 작업복을 입고, 두툼한 양말을 신고, 목이 긴 장화를 신고, 손에는 목장갑을 끼고, 구멍 난 밀집모자를 꾹 눌러 쓰고는 마당가에 붙은 윗밭, 아랫밭으로, 윗밭 하단에 붙은 담부리밭으로 나갔다.
삽으로 땅을 파고, 호미로 풀밭 매려면 깔끔하고 깨끗한 양복을 입고, 구두를 신고서는 작업을 하지 못하기에 아무렇게나 마구 입는 옷이 가장 적격이다. 땀이 흠뻑 배고, 흙이 묻고, 농기계나 낫에 다치고 찔려서 때로는 옷이 찢어져서 너덜거리기도 했다. 낡아서 내다버려야 할 헌 옷이라도 더 오래 입으려고 하는 나와는 달리 아내는 헌 옷, 헌 양말 등을 눈치껏 쓰레기봉지에 쑤셔 넣어서 없애버리곤 했다.
시골사람이 다 된 나한테는 모든 게 다 아깝다.
조금 더 오래 사용할 수 있고, 정말로 낡고 삵아서 못 쓸 지경이라도 다른 다른 용도로 재활용하려고 한다.
물건을 만들고 판 사람의 정성을 생각하고, 아직은 쓸만하고, 아깝다는 생각을 지녔기에 시골집의 여러 창고, 헛광, 안사랑방, 바깥사랑방에는 수십 년이나 된 온갖 허접한 물건들이 잔뜩 들어찼다.
'생각만 바꾸면 버릴 게 아무 것도 없다, 다 쓰자'는 생각때문에 시골집 구석은 조금은 쓰레기장 같다.
농사를 짓는 데에는 많은 농자재들이 필요하다.
농기구도 오래 쓰면 낡고, 날이 무뎌지고, 녹이 슬고, 부러지고, 고장이 난다. 헌 농기를 쓰면 작업능률이 다소 떨어진다. 이럴 때에는 버려야 더 경제적이지만 다른 용도로 재활용하면 어떤 가치를 만들어 낸다.
예컨대 밭 매다가 나온 숱한 돌맹이들도 모아 두면 나중에 쓸 곳이 생긴다. 흙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두둑 가생이에 쌓아두고, 전정한 과일나무의 곁가지도 모아 두었다가 말뚝으로 활용하고, 헌 비닐 등은 비를 가릴 때, 겨울철 눈이 내릴 때 식물 위에 덮어서 활용한다.
심지어는 탑새기, 검불 등을 억센 잡초 위에 쌓아 두면 잡초를 잡을 수 있고, 나중에 썩으면 거름으로도 활용한다. 부산물을 많이 준 땅은 푸석거려서 작물재배가 훨씬 낫다.
구멍이 난 헌 양푼, 플라스틱류 그릇은 쇠꼬챙이로 불에 달궈 구멍을 더 크게 낸 뒤에는 화분으로 쓸 수 있다. 찌그러지고, 으그려지고, 구겨졌어도 양은냄비가 플라스틱 그릇보다 훨씬 실용적이다. 덜 깨지고, 더 오래 사용할 수 있다.
두툼한 헌 옷은 겨울철에는 보일러, 가스렌지통을 덮어 보온하는 데에는 아주 적절하고, 날이 무뎌서 더 이상 쓸 수 없는 부엌칼은 봄 가을철에 풋나물을 캐는 데 활용한다. 먹고 마신 뒤에 버리는 작은 약병(패트병)들도 시골로 가져 가서는 작은 씨앗(종자)를 담아 보관하는 데에 활용한다.
어떻게 하면 재활용하고, 응용할 수 있는지를 곰곰히 생각하면 그에 합당한 활용처가 나온다.
그런데 서울 잠실 재래시장 가까운 아파트에 사는 아내한테는 이게 더럽고, 불결하고, 하등의 가치도 없는 쓰레기로만 여겨서 시골에 내려오면 얼른 내다버리거나 불 태워서 없애려고 한다.
자꾸만 추워지는 늦가을인데도 오늘도 서울 송파구 잠실 석촌호수로 산책 나가려고 아파트 현관에 나섰다가 쓰레기장 빈 터에 버려진 화분 하나를 보았다. 흰 도자기 형태로 제법 크고 묵직하다.
깨지고 금이 간 곳이 곳이 있는지를 확인하고는 화분 속의 부엽토가 쏟아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두 손에 들었다. 아파트로 들고 온 뒤에 수돗물로 닦았더니만 보기에도 제법 그럴 듯 했다. 나중에 화초를 심거나 시골로 가져 가야겠다.
내가 이따금 쓰레기장에서 주워온 도자기 화분이 서너 개나 된다. 또 남이 쏟아서 버린 화초(다육식물)를 주워서 심었고, 증식도 한다. 중형의 아파트 베란다가 자꾸만 비좁아지는 이유이다.
'물건은 다 쓰자'는 생각을 지닌 나.
달마다 어떤 월간문학지를 받으러 갈 때에는 집에서 두꺼운 옷감(천)으로 만든 손가방이나 종이백을 들고 가기 시작했다. 내가 조금만 수고하면 문학사무실에서 책 담아주는 일회용 종이봉투를 절약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아내가 택배로 배달된 홍시(단감)에 곰팡이가 슬었다며 껍질을 벗겨 4등분해서 작은 스푼과 함께 식탁 위에 올려놨다. 속이 빨갛게 잘도 익었다.
맛 있게 먹고는 길죽한 감씨 네 개를 뱉어서 티슈로 닦았다. 앞으로도 열댓 개 쯤 더 발라서 나중에 시골로 가져가 텃밭 한 귀퉁이에 묻어야겠다. 운 좋게도 내년에 싹이 터서 자라면 몇 년 뒤에는 그럴 듯한 감나무 묘목이 될 수도 있다고 미리 예상도 한다.
감씨(종자)에는 다양한 유전자가 숨어 있어서 지금처럼 큰 감만 열리지는 않는다. 종자가 좋은 묘종이 나올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못난이가 나올 확율이 더 많다. 그거야 먼 훗날의 일이고 당장은 감씨를 모우는 일이 먼저이다.
홍시 한 알에서 나온 감씨 네 개를 화장지에 닦아서 보관하는 것도 저장강박증일까? 아닐 게다. 감씨로 묘목을 생산하려는 생각을 지닌 엉터리농사꾼이며, 건달농사꾼의 단면이기에 그렇다.
지난 10월 초순에 시골 텃밭에서 따 온 밤이 제법 있다.
일전 산링조합중앙회 건물 앞에서 임산물을 팔기에 밤을 조금 샀다. 집에 가져 온 뒤에 밤톨이 큰 것만을 골랐다. 종자하려고. 며칠 전 잠실 새마을시장에서도 밤을 샀다. 또 종자하려고. 오늘 확인하니 산림조합중앙회가 건물 앞에서 임산물 이벤트로 판 것보다 잠실 새마을재래시장에서 사 온 밤이 훨씬 굵고 크다. 밤톨 모양새가 충남 공주밤(부여)으로 여겨진다. 시골로 가져가서 텃밭 한 귀퉁이에 묻어서 싹을 틔워야겠다.
이런 것도 넓은 의미의 저장강박증일까? 나는 아니다며 고개를 흔든다.
나는 1949년 1월 생이다.
당시 내가 자란 시골은 사방이 낮은 산으로 둘러싸인 산말랭이에 있기에 마을 안에는 논밭이 아주 적었다. 마을사람들 대부분이 무학력자이고, 빈농이었고, 모두가 가난하게 산 탓일까. 시골사람들은 손수 물건을 만들어 쓰고 자급자족했다. 머슴할아버지가 지푸라기로 짚신을 만들어 신는 생활을 보면서 자란 나는 은연중에 물건을 아껴야 한다는 생각이 길들여졌나 보다. 눈에 띄이는 모든 것들이 다 소중하다는 경험을 지녔다.
21세기인 지금에는 물자가 넘쳐난다.
나는 퇴직한 뒤 엄니와 함께 시골에서 살다가 그 엄니 땅에 묻고는 서울로 올라와 사는 요즘이다.
대형 롯데마트가 바로 건너편에 있고, 잠실 새마을시장이 바로 코앞에 있는 아파트 주민들은 넘쳐나는 물자에 그다지 아끼지 않고는 잠깐 쓰고는 쓰레기 하치장에 내다버린다. 쓰레기장에 나온 물건들을 보면 나는 무척이나 아까운 생각이 부쩍 난다. 그렇다고 해서 그 크고 묵직한 가구들을 아파트로 끌고 올 바는 아니로되 아쉬운 생각은 늘 꿈틀거린다. 모두 시골로 가져갔으면 싶다. 작은 자가용에 실을 재간이 전혀 없기에 그저 마음뿐이다.
물자가 풍부한 세상이다. 대량생산체제, 대량소비체제, 일회용 소비시대에서는 물자절약은 한편으로는 궁상떠는 행위로 해석된다. 생산업체, 유통업체, 판매자의 시각에서 보면 상품을 빨리 대량 소비해서 없애야만 공장 가동율이 촉진되며, 회사의 이익창출이 훨씬 높아진다.
나는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이기에 개인적인 측면에서 해석한다. 더군다나 직장에서 퇴직한 지가 10년째인 백수이기에 자꾸만 가난해지고 궁색한 판에 돈 한푼이라도 아쉬운 세월에 와 있다. 가진 게 적기에 개인차원에서 절약한다. 크게는 국가와 사회적인 물자절약으로 대자연의 자원을 아끼고 보존하는 방법 가운 데 하나가 덜 쓰고, 아껴 쓰는 것이라는 생각도 한다.
내가 밤과 감 씨앗을 흙에 묻어서 싹은 튀워 묘목을 만들어 텃밭에 심는다고 해도 그게 제대로 커서 열매를 맺으려면 오랜 시간이 지나가야 한다. 내년 일흔한 살인 내가 그것들을 심어서 키운다고 해도 내 당대에는 제대로 따 먹을런지가 예상되지 않는다. 다만 훗날 자식이나 이웃사람들이나 맛을 볼 게다. 나는 그저 오늘에만 충실하면 되고 내일(나중)의 일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내가 자꾸만 늙어서 지쳐가는 마당에 좋은 씨(종자)를 확보하려는 이런 생각도 지나친 것일까?
아껴 쓴다는 생각이 지나친 것일까?
남이 내다버린 화분을 주워서 아파트 안으로 들고와서 재활용하려는 나는 저장강박증에 걸린 것일까?
저장강박증은 물건집착증이다. 심리적으로는 외롭다, 불안하다고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나는 아직은 아니다. 농사 짓는데 보다 요긴하게 사용하려는 마음에 불과하니까. 그냥 버리느니 '한 번 더 쓰자'는 주의이다. 내다버리면 쓰레기이지만 재활용하면 물자절약이 된다. 더군다나 외롭다거나 물건이 없어서 불안하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다. 단지 '더 오래 쓰자'는 생각이다. 예컨대 이렇다. 아들이 피자 한 판을 배달해서 먹으면 박스를 묶었던 줄이 하나 나온다. 아내가 재래시장에서 무나 쪽파를 사오는데 이들한테서 묶은 줄이나 철사끈이 나온다. 이들 줄끈을 시골로 가져가면 아주 요긴하게 쓴다. 채소 모종, 꽃 모종을 할 때 지주대, 막대기를 꼽고는 이 줄끈으로 8자 고리로 적당히 묶어주면 아주 편리하다. 서너 차례 재활용할 수 있다.
저장강박증은 정신병의 일종이다. 내 이런 절약이 설마하니 생활물건 저장강박증일까?
나도 미리 정신병원에 가서 진단받아야 할까?
아직은 아니라고 자가진단하지만 혹시 모르겠다. 더 늙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저장강박(Compulsive hoarding).
저장 행위를 호딩(Hoarding)이라 일컬으며, 이러한 행위를 하는 사람을 호더(Hoarder)라 부른다.
2107. 11. 14. 월요일.
첫댓글 저장 강박증 무서운 병이더군요 버릴줄 몰라서 집이 온통 짐이 가득한게 테레비서 본적이 있답니다
TV에서 보는 만큼은 아니어도 조금은 엇비슷하겠네요.그런 게 많다는 거.. 무척이나 그렇네요.
시골집 뒷켠에 가면 헌 동이(항아리)가 금이 가고 깨지고... 물이 샐 터인데도 그냥 놔두었네요. 전혀 쓸 데가 없는데도
예전 엄니와 시집 가기 전의 누나가 썼던 물건이라서... 옛집의 흔적으로 남겼네요.
예전 농가에서 썼던 물건들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요?
물건 저장강박증이 문제이듯이 물건을 사고는 금새 내다버리는 요즘의 젊은 사람의 행태도 문제이겠지요.
과잉생산, 과소비(조금만 사용하다고는 내다버리는 것)도 문제고요.
댓글 고맙습니다.
위 글 한참 더 다듬어야겠습니다.
@곰내 네 지긍 젊은애들은 물건 귀한줄 모르는게 탈이지요
어쩌면 저와 이리도
정반대실까요.
저는 버리기강박증이 심하답니다.
버릴 때의 그 희열감.
그 홀가분함.
자유로움.
허락받은 게으름.
이런 느낌을 어쩌지요.
저도 정신과에 가봐야 할까요.
혹시 책이 있으면 저한테 알려주시면 제가 싸악... 해 드리겠습니다.
님이 잘 아는 알로니아 담금주 등도 좋고요. 그거 오래 둬봐야 곰팡이만 슬 터.
나는 티브이 세상에 이런일이를 보면서 우째 저럴 수가 있을까 했는데 그런 병이 있었네요^^
이번주에 소개된 영감은 무려 백톤의 쓰레기를 집안팎에 쌓아두고 살았더군요 경악했어요!!
다들 버리고 나누고 홀가분하게 사는 세상인데 아깝게 느껴져도 집착마시길요
가족들도 돌아섭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님의 글은 독특해서 재미나면서도 현실을 살짝 꼬집대요.
물건, 아직은 병적으로 집착할 정도는 아니고요.
예, 님의 조언대로 더러는 버려야겠습니다.
내 아내가. 곰내님과. 비슷한데
가까운곳에 농가주택이. 있으면
옮겨놓으면 쓸곳이 많겠지요.
시골생활을. 접었으면. 과감하게
습관을 바꿔야 합니다.
예. 댓글 고맙습니다.
도시와 시골에서는 많은 차이가 있겠지요.
버릴 줄 알아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지요.
과소비가 낭비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기술과 문화발전을 이끄는 길도 되겠지요.
모두 양면성을 지녔기에...
낭주님의 댓글 내용이 무척이나 결단력이 들어 있군요. 거듭 고맙습니다.
저는 계절 바뀔 때마다 헌옷들 골라서 망상 바닷가 농사짓는 이들에게 보냅니다
여러집 것 들 모아서 그렇게 해달라고 우리집에 쌀대어주는 분이 부탁해서지요
헌옷은 농사짓는데 쓸모가 있다네요
뭐든 안버리는 게 아니라 쓸만한것을 지혜롭게 보는
눈썰미가 있어야 겠지요
예. 님의 눈이 예리하군요.
헌 옷은 농사 짓는데 제법 쓸모가 있지요. 겨울철 나무 밑을 덮어주면 동해도 줄이고, 잡초발생도 억제하지요.
님. 존경합니다. 또 책을 내셨다니 박수 보냅니다.
강박증 증세는 여러가지 특히 분리수거 하시는 분들에 집착은 옆사람들까지 피해
아까워 마시고 버릴건 버리는 습관이 필요~^^
예.
아껴쓰는 것과 내다버리는 것에는 양면성이 있겠지요.
저한테는 아무래도 어린시절의 궁핍했던 생활의 흔적이겠지요.
줄이는 데에 더 노력하겠습니다.
댓글 예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