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썩인다. 라는 표현이 맞겠지
인구 사천만의 반도하나가 들썩일 만큼, 대한민국의 오늘은 그 어느때보다 뜨겁게 울렁이고 있다.
.
.
.
“ 속보입니다. ”
라는 말로 시작된 여기자의 목소리는 곧이어 나온 '투신'과 '자살'이란 단어에 좀더 격앙된 톤으로 전파를 울렸다. 아니나다를까 인터넷엔 이미 그녀를 향한 추모 댓글과 기사들로 북적였고, 그 덕분에 '박호수 사망'은 정식보도가 끝나기도 전에 실시간 검색어 1위로 무섭게 치고 올라갔다.
“ 박호수 인생은 죽어서도 스포와 루머구나. ”
태연한 말을 전혀 태연하지 않은 얼굴로 뱉으며 TV전원을 꺼버린 남자가 책상 위 모서리에 꾸겨져있는 재떨이용 콜라캔을 집어들었다. 덩달아 곁에있던 담배 한가치를 집어드는 순간
“ 나 오래 보고싶으면 이거랑은 헤어지는게 어때요? 난 그쪽 오래오래 뚫릴때까지 보고싶은데 ”
“ .... ”
반갑지 않은 환청에 남자의 고개가 신경질적으로 돌아갔다. 지킬 생각이 없던 약속에 배신당한 남자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려오기 시작했다.
“ 나쁜년. ”
손에 쥔 담배를 부러뜨리며 때마침 걸려온 전화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곤 행거에 걸려있던 준비를 마친듯한 검은 양복과 타이를 한참 바라보다 이빨과 눈을 동시에 꾸욱 깨물고 깜빡이며 퍼뜩 차키를 집어들었다.
1시간 뒤.
남자가 들어선 곳은 박호수의 시신이 안치된 장례식장이었다. 수많은 기자들의 플래쉬 세례에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까지 떨구는 여느 연예인과는 달리 런웨이에 선듯 당당한 걸음으로 카메라를 향해 손까지 흔들어 보이는 남자의 괴 행동에 장안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 인마! 너 미쳤어? ”
막 조문을 마치고 나온 남자에게 다짜고짜 그의 매니저가 쏘아붙이자 어깨를 으쓱이며 피식 웃어보이기까지 하는 남자.
“ 아이고 어쩌나, 통곡이라도 바란 눈치네? ”
“ 통! ..곡이 문제야 지금? 기자들이 너 미친놈이라고 얼마나 떠들고 다니는지 알아? 이봐 인터넷도 지금 난리야. 너 또라
이라는 둥. 사람은 겉만봐서 모른다는 둥. 너 이제 어쩔거야? 십년간 쌓아올린 니 반듯 이미지 어쩔거냐고! ”
“ 자기들이 만든 이미지 환상 깨지는거야 자기들 탓이지 내탓인가? (귓가에 대고) 형은 알잖아 나 모태 미친놈인거 ”
소리를 지르다가도 혹시나 대화내용이 기자 귀에 들어갈까봐 주변을 살피며 눈가리고 아웅하는 매니저와 달리 남자는 일부러 볼륨까지 더 높이며 매니저 혈압을 올렸다. 뒷목을 잡으며 거품을 준비를 하는 매니저 등을 투덕이며 주차장으로 향하자 그가 다급히 사슴을 불러세웠다.
“ 뭐하는거야, 혹시 이대로 집에 가려고?!!! ”
“ 당연하지. 인간 쓰레기 냄새 때문에, 일초도 더 못 있겠다 형. ”
“ 멍청아! 니가 여기서 그냥 가면 어째! (두리번 두리번) ”
매니저가 그의 곁으로 바짝 다가섰다.
“ 전 애인이 죽었는데, 자리도 안지키고 가겠다는거야 지금?? 기자들 떡밥 주려고 작정했구...! ”
“ 그러니까, 전 애인이니까. 난 그냥 두고보는거야. ”
말은 아무렇지 않게 해도 남자의 눈빛은 매섭게 도사렸다. 일촉즉발의 상황. 냄새를 맡은 기자들이 몰려오는 바람에 간신히 무마됬지만 우여곡절끝에 차에 탄 그들 사이에는 여전히 긴장 전선이 흐르고 있었다.
“ 니 둘, 조금은 특별한 사이가 아니었을까. . 생각했었다. 그래서 오늘 니 태도. . 납득이 안가 ”
납득이 안가는건 세상도 마찬가지였는지, 박호수의 죽은 몸이 이승에 머물다간 3일동안 매스컴은 공사슴을 완소남에서 배신남으로 완벽하게 바꾸어 놓았다. 길거리만 지나가도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고, 방송국에 나가도 팬들의 시끄러운 함성소리대신 안티들의 차가운 야유소리가 더 진하게 들려왔다. 하지만 그럴수록 남자의 태도는 과감해져갔다. 10년간 펑크한번 낸적 없는 근면성실을 자랑하던 그가 펑크는 밥먹듯이 지각은 다반사였다. 이쯤되자 사람들 눈에는 남자가 욕먹고 싶어 안달난 미친놈으로 비치기 시작했다. 결국 들어왔던 모든 시나리오들이 회수선에 올랐고, 얘기가 잘 진행중이던 광고들마저 그에게서 등을 돌리고 말았다. 이제 남자에게 남은건 이번 사태에 따른 공식 기자회견 하나뿐이었다. 기획사로부터 그에게 주어진 마지막 시나리오에 의하면 이 회견을 끝으로 남자는 만성 조울증과 우울증이라는 그럴싸한 변명으로 자신의 행동을 포장함과 동시에 연예계 한시 은퇴를 선언, 몇개월간 홀연히 사라지는 것이었다.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남자. 멀끔하게 차려입은 그의 입가에선 내내 비웃음이 떠날 줄 몰랐다.
“ 고인과는 정확히 어떤 관계였나요? ”
를 필두로,
“ 철저한 비즈니스 관계였다는데 사실인가요? ”
“ 충격으로 조울증 치료를 받고 있다는데 이또한 여론몰이를 위한 일종의 장치가 아닌가요? ”
“ 고인의 부고소식이 있기 며칠전 함께 있었다는데 사실인가요? ”
.
.
.
남자는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
.
.
“ 박호수씨 호스트바 출신 미혼부의 자식이라는게 사실인가요? ”
“ 얼마전 운명을 달리한 고 선혜영씨와는 어떤 사이였습니까? 생모가 맞습니까? ”
“ 고인의 죽음에 박호수씨 아버님의 협박 종용이 있었다는게 사실인가요? 말씀 좀 해주시죠! ”
소녀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한참 뒤 굳게 다문 입이 열린다.
.
.
.
“ 전부 사실입니다. . .그리고, ” “ 전부 거짓이지. ”
“ 또 ”
“ 그 거짓을 그럴싸한 사실로 만드는건 당신들과 이 세상이고. 그래서 난, 댁들이 무서워. ”
.
.
.
3일전.
“ 그 부탁을 내가, 들어줄거라고 생각해? 싫어, 안해. 못해!! ”
“ 사슴씨... ”
“ 그런 얼굴로 봐도 소용없어. 안되는건 안되는거야. 다른 사람도 아닌 널 담보로 쇼하는거 생각만해도 끔찍해 ”
“ 난 괜찮아. 이 일 아니더라도 행복하게 살수 있어. 확신해! 그러니까 나한테서 버려진 척 해줘, 까짓거 기자들앞에서 연
기한다고 생각하면 되잖아. 응? ”
“ 그 연기, 니가 해 그럼. 내가 나쁜놈 될게, 다 내가 하면 되잖아! ”
“ 사슴씨.. 제발.. 이젠 다른 방법이 없어.. ”
“ 죽어도 안돼, 절대 안돼, 아무리 쇼라도 난 너 못버려 안버려! ”
말은 씨가 되어 죽음의 꽃을 피웠다. 내 사랑을 지키자고, 그녀를 죽이고 말았다. 유난히 높은 곳을 무서워하고 유독히 아픈 것을 싫어하는 그녀였다. 어쩌면 그녀를 절망의 끝으로 내몬건 바로 내 자신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미쳐버릴 것 같다. 숨쉬고 있는거 자체가 고통이고 죄악이다. 하지만 그녀가 죽어서도 난 내 생각 밖에 할줄 모른다. 날 살리기 위해 태워버린 그녀의 목숨을 난 철저히 무시해버리기로했다. 역시 내가 나쁜놈 되는게 속편해.
“ 댁들이 상상력을 조금만 덜 발휘했어도 박호수한테 그런 루머는 들러붙지 않았을거고, 나도 나 살자고 박호수 버리는
일은 없었을거야. 그래, 말이 나와서 말인데, 분명 며칠전에 걔가 날 찾아왔었어. 자기한테 버려진척 해달라고 사정을
하더라고 지가 다 떠안고 나쁜년 되주겠데. 얼마나 고마운 소리야? 덥썩 물까하다가 곧 고민에 빠졌지. 국민들은 바보가
아니야, 더군다나 당신들 눈치는 염라대왕 비장도 뚫을 정도잖아. 안그래? 이거 괜한짓 벌였다가 나까지 불똥 튀는거 아
닌가 싶더라고 그래서 이젠 죽는거 밖에 수가 없다는 그 애한테 소리쳤지, 차라리 죽으라고, 그 멍청한 게, 그렇다고 진
짜 죽을줄이야..계산 밖에 일이 터졌고,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된거지. . .자, 이제 질문 끝? ”
기자들은 타이핑 칠 생각조차 망각한건지 남자의 속사포처럼 터진 발언에 정신을 못차리고 아직까지 헤메고 있었다. 곁에 있던 매니저와 기획사 사람들 조차 벌린 입을 다물줄 몰랐다. 5분간 정적이 계속되자 남자는 흥미를 잃은 듯 회견장을 홀로 빠져나와 버렸고, 탑승한 자가용의 속력을 높히며 중얼거렸다.
“ 죽어도 안됀다는건... 너더러 죽으라는 소리가 아니었잖아... 죽을만큼 제발 살아달라는 뜻이었잖아. 젠장!!...... ”
부우아아앙..............
끼이이익............
콰앙.................
.
.
.
“ 마주오던 차량의 중앙성 침범 사고로 지난 26일 중태에 빠졌던 배우 공사슴씨가 오늘 오후 7시 갑작스런 호흡곤란으
로 결국 사망하였습니다. 고인은 최근 붉어진 고 박호수씨와 관련된 논란으로 인해 많은 구설수.. ”
.
.
.
“ 어쩌냐. . 니 계획 다 망쳐버려서 ”
“ . . 멍청이 ”
“ 말도없이 혼자 가더니, 미련 남아서 나 보러 온거냐. 막상 떠나려니까 내 잘생긴 얼굴이 그리워서? ”
“ . . . ”
“ 다신 이러지마, 나 혼자두고 너 어디 갈 생각하지마. 니 영혼에 위치추적 달아놓은지 오래라 어딜가도 넌 내 손바닥안이
거든, 니가 위로 가던 아래로 가던 니가 남긴 발자취는 내 이정표야, 그러니까 . . . 데리고 가라, 나 좀 ”
“ 그게 사실이야? ”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매니저의 어깨를 사정없이 흔들어대는 김 대표, 묻고 묻고 또 물었지만 결국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하고, 결국 쇼파로 자신의 몸을 내동댕이쳤다.
“ . . . 기가 . . 차네. . 눈물겨운 사랑이야 아주,! ”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보았지만 그 역시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 의식도 없던 놈이 제 손으로 제 호흡기를 떼더란 말이지? . . 이거야말로 정감독 다음영화 시나리오로 제격이네. 더욱이
실화라니, 관객몰이로도 손색없겠어 . . 하하. . 나 참. . 이 새끼는 끝까지 말썽이야. . 하하. . . . . . . 에이. . 염병할 놈. ”
.
.
.
“ 나요. 한번 반짝하고 마는 별똥별 될 생각 없거든요. 그래서 치열하게 뛰는거에요. 열심히 달리고 달려서 뒤에 딱 돌아
봤을때, 버거워서 헉..헉.. 숨은 거칠지언정, ..내 인생한테 부끄럽고 싶진 않으니까요 ”
절대 누굴 겨냥하고 쓴 글은 아니구요.
그냥 싱숭생숭한 기분이 들어서요...스타는 영원히 우리 가슴속의 스타이거늘,
하지만 정작 그들은... 별똥별처럼 사라지고 마는게.... 너무 안타깝잖아요.
그들도 사람이고, 그들 나름대로의 스토리가 있을텐데...
자기들 마음대로 억측하고, 상상하고...그게 그들 마음을 아프게 찔렀을테고..
무관심보다 무서운게 지나친 관심이라는거...
뼈저리게 느끼는 요즘입니다...
아무튼 연이은 안좋은 소식에 마음이 너무 안좋네요.
▶◀
며칠 터울로 고인이 된 두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걱정없는 그곳에서 행복하게 지내시길 바래요.
※ 이 소설 또한 제 상상일 뿐이에요. 결국 표현의 한계를 느끼고 짧게 줄이고 말았지만, 짧은 시간에 배설하듯 쏟아부은거 같아요. 그러니 잘썼다 못썼다를 떠나 1%라도 제 느낌이 전달됬으면 하고 바래봐요. ※
첫댓글 말캉말캉님과 마음이 같습니다. 확실한 근거도 없이 지어낸 루머로 우리와 다를바 없는 한 사람을 상처 입히고, 벼랑으로 내몰고, 결국 그것이 죽음으로 이어지는 것…… 이건 뚜렷한 가해자는 없지만 엄연한 살인이라고 생각해요 전. 한동안 이 문제에 대해서 넋 놓고 있다가 말캉말캉님의 단편을 읽고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낍니다. 좋은 소설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추천^.^*
읽을만한 소설을 찾다가 우연히 제목에 끌려 보게 되었어요. 짧지만 강한 인상을 주네요.저도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