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기분 나쁘게 했다고 아동학대로 신고하거나 신고 위협을 가하는 학부모들…. 다른 일터였다면 제지됐을 법한 인신공격도 학교라는 이유로 방치되고, 고통은 고스란히 일선 교사의 몫이 된다. ‘갑질’하는 학부모는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다. 보통의 학부모들도 초등학교 교사의 인권과 교육자로서의 고유권한을 종종 무시한다. 모든 교육활동이 대학입시를 기준으로 평가되는 한국사회에서 초등학교 교실의 붕괴는 어쩌면 이미 예고된 미래였는지도 모른다.
“선생님도 교사생활 오래 하셔야 하지 않겠어요?” 다양한 학부모를 만나왔다고 생각했는데 대놓고 보복을 시사하는 유형은 16년차 초등학교 교사인 A씨에게도 충격이었다. 발단은 세 아이의 다툼이었다. 또래보다 몸집이 큰 B는 한 학년 위 C, D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학원에서 B가 C, D의 가방을 자꾸만 다른 곳에 던져 놓는 일이 있었고 다음날 C, D는 B에게 수업 교구인 꽃삽을 들이밀며 말했다고 한다. “자꾸 괴롭히면 참지 않을 거야.”
교사인 A씨가 보기에는 ‘다툼’이었지만, B의 부모는 자신의 자녀가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했다. B의 부모는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를 열어달라면서 교사에게 이런 요구를 했다. “C, D가 우리 아이를 해할 목적으로 흉기를 집에서부터 가방에 숨겨왔다고 증언해 달라. 그렇지 않으면 물품(꽃삽) 관리 소홀로 학교를 고소하겠다.” C, D의 잘못을 부풀리기 위해 거짓증언을 하라는 얘기였다. 교직에 오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보복을 암시하는 발언은 이 과정에서 나왔다. B의 부모는 이런 말도 했다. “선생님이 학교생활 하기 피곤할 만큼 민원을 제기할 수 있다.”
서울 서초구의 서이초등학교에서 2년차 교사가 숨진 사건이 알려지면서 교사들의 분노가 들끓고 있다. 지난 7월 22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5000여명의 교사가 ‘서이초 교사 추모 및 진상규명 촉구 집회’를 연 데 이어 29일에도 2차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숨진 교사를 향한 뜨거운 추모 물결은 무엇을 말하는가. A씨는 “서이초 교사가 사망하기까지 겪은 일은 당장 나의 일일 수도 있었다. 교사를 자기 입맛대로 휘두르려는 학부모들이 마음을 먹으면, 우리는 그들의 괴롭힘을 피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초등학교 교사는 어떤 방식으로 폭력적 상황에 노출될까. 교사들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사례는 ‘정서적 아동학대’ 고소 위협이다. 19년째 서울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E씨에겐 녹음 습관을 갖게 해준 학부모가 있다고 했다. “처음엔 자녀를 괴롭힌다고 생각하는 아이를 학교에 들어와서 한참 동안 노려보고 가셨는데 제가 그 행동을 제지했어요. 나중에는 왜 아이가 학교에 가면 머리가 아프다고 하느냐 등 이해할 수 없는 문제 제기를 하시더라고요. 쉬는 시간에 교실에 들어와서, 제 귀에 대고 아동학대로 신고하겠다고 소리치기도 하셨고요. 그런 위협을 자주 당했기 때문에 저도 나름대로 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E씨는 자신이 겪은 일을 일지로 남기고, 해당 학부모·학생과 대화할 때마다 녹음했다. 학부모의 태도로 괴로웠던 것은 교사만이 아니었다. 부모의 우려와 달리 선생님과 사이가 좋았던 그의 자녀는 부모가 교실로 들어와 소리를 높일 때마다 벽에 머리를 찧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E씨는 고소를 당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위협은 그를 위축시키기에 충분했다.
‘수업 시작하자’는 수준의 지도로 아동학대 고소를 당하는 일은 실제로 있다. 7월 22일 보신각 앞에서 열린 서이초 교사 추모집회에서 한 교사는 단상에 올라 “발령을 기다리며 기간제 교사로 일하던 시기, 첫날 첫교시 수업이 끝나자마자 아동학대로 신고당한 경험”을 말했다. 그는 “책을 가져오라는 지시를 무시하고 저를 노려보던 아이에 대해 다른 아이들이 쟤는 원래 저렇다며 앞다퉈 말했는데 그 상황이 아이의 기분을 상하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첫 수업 이후 아동학대 신고를 당하자 학교는 그 학부모가 법을 잘 안다며 곧바로 저와의 계약을 해지했다”고 설명했다. 이 교사는 이어 경찰·검찰,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조사를 거쳐 3개월 후 ‘혐의없음’으로 최종 종결되기까지 매 순간 지옥이었다면서 그들이 저를 죽였다고 말했다.
보통의 일터였다면 어떻게든 제지됐을 누군가의 ‘비상식적 행동’이 학교에선 방치되고 교사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기도 한다. 3년 전 초등학교 4학년 담임을 맡았던 10년차 초등학교 교사 F씨는 학급 학생들과 교환일기 겸 상담일기를 썼다. 학생들이 담임선생님인 E씨에게 자유 주제로 반 페이지 분량의 글을 쓰면, 나머지 반 페이지는 F씨가 답장 형식으로 채워줬다. 대개 ‘○○이는 그렇게 생각했구나. 선생님은 ◇◇◇라고 생각해’와 같은 글을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날 학생·학부모와의 소통창구로 사용하고 있던 애플리케이션 게시판에 한 학부모가 이 일기를 문제 삼으며 적의가 가득 찬 글을 올렸다. ‘내 딸을 마치 너의 양딸인 양 대하는 태도가 역겹다’는 내용이었다.
이 학부모는 이후 학교생활과 관련 없는 내용의 인신공격성 문자 수백 통을 보내기 시작했다. F씨가 대화하기 위해 전화를 하면 받지 않았고,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 만나고자 했지만 나타나지 않았다. F씨가 문자를 차단하자 이 학부모는 자녀가 교사에게 제출하는 알림장 여백에 ‘네가 공권력으로 학부모를 짓밟으려 하느냐’ 등의 막말을 쓰고 F씨의 이름을 빨갛게 칠했다. 자신의 문자를 스팸 처리했다며, 교무실에 스팸(통조림햄)을 쏟아놓고 사라지기도 했다. “자신의 모습은 끝까지 드러내지 않는” 인물의 이해할 수 없는 증오에 노출됐던 F씨는 공황장애·우울증에 시달리다 병가를 냈다. 한때 자해 충동으로 폐쇄병동에 입원하기도 했다. F씨는 “교권보호 책임자인 교감은 저에게 벌어진 일이 관심이 없었다”면서 “학교에도 기댈 수 없다는 사실이 저를 더욱 절망케 했다”고 말했다.
심각한 갑질은 ‘일부’ 학부모가 저지르지만 보통의 학부모 역시 교사의 인권과 교육자로서의 고유권한을 존중하지 않을 때가 많다. 13년간 서울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다 그만둔 G씨는 “특별한 사건을 계기로 그만둔 것은 아니었고, 초등학교 교사직이 ‘침몰하는 배’라는 걸 느끼게 한 권한 침해는 정말 많았다”고 했다. G씨가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례는 이랬다. 학교 행사 때문에 오전 내내 체육수업이 있던 날이었다. 아파트로 둘러싸인 이른바 ‘초품아(초등학교 품은 아파트)’ 단지의 초등학교에서 일했던 G씨는 교실로 돌아오자마자 이런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제가 다 봤는데, 왜 우리 애 안 챙겨요?” 한 학부모가 운동장이 보이는 아파트 베란다에서 체육수업을 계속 지켜봤던 것이다.
단순히 기분을 상하게 한 것도 때로는 민원의 이유가 된다. 서울 강남에서만 11년간 일한 초등학교 교사 H씨는 “수업 결손이 많은 학생의 교외체험학습 신청서를 반려했다가 기분을 상하게 한 죄, 이른바 ‘기분상해죄’에 걸린 적이 있다”고 자조했다. 교외체험학습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사실 자체에 기분이 상한 학부모는 지속적으로 H씨 개인번호로 민원전화를 반복했다. 뚜렷한 근거 없이 ‘학교폭력이 있는 것 같은데 왜 손을 놓고 있느냐’고 몰아붙이는 식이었다.
교사들은 특히 저연차 여성 교사일수록 고유권한을 무시당하다는 일이 잦다고 말했다. G씨는 “저연차 미혼 여성 교사들을 향한 ‘선생님 결혼했어요? 자식 없으니까 모르시죠? 애 키워봤어요?’ 같은 공격은 매우 흔하다”면서 “서이초의 경우, 부모 개입이 심한 1학년은 베테랑도 힘겨운데 2년차 교사에게 맡겼다는 점이 이해되지 않았고, 교사들의 민원까지 받아야 하는 나이스(NEIS) 업무까지 맡겼으니 최악(1학년 담임)과 최악(나이스 업무)을 준 것”이라고 말했다.
서이초 교사 사망사건을 계기로 초등학교 교사들의 집단행동이 이어지자 교육부와 교육청은 대책 마련에 나섰다. 그러나 일선 교사들은 현실에 발붙이지 않은 ‘정쟁성 대책’이 중심적으로 거론되는 데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좋은교사운동의 현승호 대표는 “교육부가 8월 중 마련한다고 하는 ‘생활지도 고시안’은 학교 현장의 정당한 생활지도가 어디까지인지를 판단할 중요한 기준인데 정부가 이 법령을 학생인권조례 개정을 끌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접근하고 있다”면서 교사들이 가장 바라는 생활지도 유형은 정상적인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을 잠시 분리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으로, 이런 요구는 학생인권조례와 아무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첫댓글 학부모 민원은 교장선생님이 처리 하시도록 하면 어때요?
그리고 학생이 말썽 피우면 학생부모님을 학교에 오라고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