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목 북단으로
성탄절이 수요일이라 공휴일인데도 주중 거제에 머물렀다. 미리 구상해 놓길 시간이 걸릴 트레킹을 나설 요량이었다. 거제와 인접한 가덕도에 사는 작은형님과 동행하기로 했다. 형님과는 지난번 수능으로 하루 쉬게 되던 날 구조라에서 학동까지 걸었던 적 있었다. 이번엔 장목 대봉산 해변 경관길을 걸으려고 지도 검색을 해 놓았다. 형님은 2000번 버스를 타고 거제 연초로 건너왔다.
나는 연초삼거리로 나가 김밥과 곡차를 준비해 형님을 마중했다. 정한 시간에 형님을 만나 삼거리 정류소에서 고현을 출발해 구영으로 가는 31번 버스를 탔다. 버스는 다공리에서 덕치고개를 넘어 하청과 장목을 지나 관포고개를 넘었다. 농소 해안에서 하유 상유을 지나 구영을 돌아 황포를 앞둔 양지마을에서 내렸다. 대봉산 해변 경관길 이정표에서 마을을 지나 산기슭으로 올라섰다.
날씨가 그리 춥지 않고 미세먼지가 적어 산행하기 좋았다. 혼자라도 가려고 했던 대봉산 해안 경관 길을 형님과 같이 걸으니 마음이 든든했다. 등산로 들머리 산기슭 양지바른 자리 김수로왕 후손 문중 묘지가 조성되어 있었다. 거제 섬에는 각 씨족끼리 경쟁적으로 조상 산소를 잘 꾸며놓은 모습을 더러 보았다. 거제 최북단이라선지 내가 마무는 연사리 일대와 다른 토양과 식생이었다.
낙엽 진 가랑잎이 덮인 흙살이 토실한 임도를 따라 걸었다. 소나무가 간간이 섞인 낙엽활엽수 혼효림 지대였다. 억새 군락지를 지날 땐 색이 바래가는 억새가 아침나절 햇살의 역광에 눈이 부셨다. 아스팔트와 시멘트 바닥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가랑잎이 부스럭거리는 흙길을 걸을 수 있음은 발품 팔아 나선 이에게 돌아온 운치이고 덤이었다. 경사가 비탈지지 않은 오솔길을 제법 걸었다.
산등선을 따라가니 맞은편에서 괭이를 들고 배낭을 둘러맨 정정 둘이 내려왔다. 우리가 지나온 양지마을에 사는 사람인 듯했다. 그들 말고는 산책로가 잘 다듬어진 곳에 인적이 없었다. 비탈을 오르니 대봉산 통신대가 보였다. 다른 곳에서 봤던 통신대보다 규모가 크고 높았다. 통신대를 앞둔 쉼터에서 가져간 곡차를 한 병 비웠다. 야콘과 김밥을 사면서 마련한 삶은 계란을 안주했다.
자리에서 일어날 즈음 산행객 둘이 내려왔다. 인사를 나누니 그들은 아랫마을 황포에 귀촌해 사는 부부였다. 부산에서 고위 공무원으로 퇴직해 고향마을에 정착해 노후를 보내는 이로 나이보다 훨씬 젊어보였다. 그들을 보내고 우리는 대봉산 정상까지 올라 통신대를 둘러보고 되돌아 와 앞으로 나아갔다. 이제 점차 진해만 바다가 본격적으로 드러났다. 미세먼지가 적어 시야가 좋았다.
거제 최북단이라 나목 사이 진해만이 훤히 드러났다. 불모산과 안민고개 산등선이 둘러친 진해 시가지 일부가 드러났다. STX조선소 크레인과 명동지구 솔라타워가 보였다. 더 동쪽으로 신항만과 가덕도가 가까웠다. 낮이 되니 기온이 높아져 장갑을 벗고 잠바 지퍼를 열어야할 정도로 날씨가 포근했다. 너럭바위가 드러난 곳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면서 준비해간 김밥과 곡차를 비웠다.
점심을 들고 산등선을 따라 가다 비탈로 내려서니 산중에 아이들 소리가 들렸다. 거기는 글램핑장으로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이었다. 몽골텐트 게르도 여러 채 보였다. 잘록한 산허리에서 다시 산비탈로 오르니 맹족죽 대숲이 나왔다. 맹종죽은 하청 일대에 많이 자라는데 대통이 굵고 마디가 촘촘한 대나무였다. 노장산 산마루를 따라가니 진해만과 거가대교가 한눈에 들어와 장관이었다.
임도를 따라 가니 볕바른 자리 산불감시원이 무료한 시간을 보내 잠시 말벗이 되어주었다. 산불감시원을 뒤로 하고 농소마을로 내려섰다. 거가대교 건너 장목터널을 빠져나온 교각이 높았다. 농소 해안 풍광 좋은 자리엔 리조트가 들어섰고 몽돌이 깔린 해변이 길게 이어졌다. 몽돌밭을 걸어 간곡마을까지 가 고현으로 나가는 30번 버스를 탔다. 형님은 도중 관포에서 가덕도로 돌아갔다. 19.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