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나귀 모노라니/안 정
전 나귀 모노라니 서산이 일모로다
산로가 험하거든 간수나 잔잔커니
풍편에 문견폐하니 다왔는가 하노라
[현대어 해석]
절름발이 나귀를 몰고 가니, 서산에 해가 저무는구나.
산길이 험하거늘, (믿을 것이라곤) 지팡이 하나 잔잔히(조심조심) 짚으며 가는데,
바람결에 개 짖는 소리 들려오니, 목적지에 다 왔는가 하노라.
안빈낙도와 유유자적의 삶
해질녘 험한 산길을 절름발이 나귀와 지팡이에 의지해 넘어가는 화자의 여정을 그렸다. '전 나귀'와 '지팡이'는 결코 넉넉하지 않은 가난한 처지를 암시하지만, 화자는 험난한 길에서도 조바심을 내지 않고 여유를 유지한다. 바람결에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문견폐)로 목적지에 도달했음을 감지하는 대목에서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소박한 삶의 멋과 속세를 벗어난 한정(閑情)이 절묘하게 드러난다.
안정(安定, 1500~?)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시인이다. 벼슬길에 나아갔으나 훈구파와 사림파 간의 정쟁이 치열하던 당시의 복잡한 정치적 현실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 은거하며 유유자적한 삶을 즐겼다. 그의 시조는 세속적 야망이나 명리(名利)를 탐하지 않고, 자연 속에서 느끼는 소박한 정취와 안빈낙도(安貧樂道)의 태도를 담백하고 은은한 문체로 노래한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