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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수] 제3의 고향(2)
그러다가 어느 날 저녁때였다. 영신의 신변을 노상 주목하고 다니던 순사가 나와서, 다짜고짜,
“주임이 당신을 보자는데, 내일 아침까지 주재소로 출두를 허시오.”
라고 한마디를 이르고는, 말대답을 들을 사이도 없이, 자전거를 뒤짚어 따고 가버렸다.
‘무슨 일로 호출을 할까?’
‘강습소 기부금은 오백 원가지 모집을 해도 좋다고, 허가를 해주지 않었는가?’
영신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웬만한 일 같으면 출장 나온 순사에게 통지만 해도 고만일 텐데, 일부러 몇십 리 밖에서 호출까지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이 붙은 일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영신이가 처음 내려오던 해부터 이 일 저 일에 줄곧 간섭을 받아왔었지만, 강습소 일이나 부인친목계며 그 밖에 하는 일을 잘 양해를 시켜오던 터이라, 더욱 의심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별별 ㅅ애각이 다 나서, 영신은 그날 밤 잠을 잘 자지 못하고, 이튿날 새벽 밥을 지어 달래서 먹고는 길을 더났다. 이십 리는 평탄한 신작로지만, 나머지는 가파른 고개를 넘느라고 발이 부르트고 속옷은 땀에 젖었다.
…….영신과 주재소 주임 사이에 주고받은 대화나, 그 밖의 이야기는 기록하지 않는다. 그러나 호출한 요령만 따서 말하면,
‘첫째는 예배당이 좁고 후락해서 위험하니, 아동을 팔십 명 이외에는 한 사람도 더 받지 말라는 것과, 둘째는 기부금을 내라고 돌아다니며, 너무 강제 비슷이 청하면, 법률에 저촉이 된다.’
는 것을 단단히 주의시키는 것이었다. 영신은 여러 가지로 변명도 하고 오는 아이들을 아니 받을 수는 없다고, 사정사정하였으나,
“상부의 명령이니까 말을 듣지 아니하면 강습소를 폐쇄시키겠다. “
고 얼러메어서, 영신은 하는 수 없이 입술을 깨물고 주재소 문밖을 나왔다.
그는 아픈 다리를 간신히 끌고 돌아와서, 저녁도 아니 먹고 그날 밤을 꼬박이 새우다시피 하였다.
‘참자! 이버덤 더한 것도 참어왔는데, 이만헌 일이야 참지 못하랴.’
하면서도 좀 더 시원하게 들여대지를 못하고 온 것이, 종시 분하였다. 그러나 혈기를 참지 못하고 덧들렸다가는, 제한받은 수효의 아이들마저 가르치지 못하게 될 것을 생각하고, 꿀꺽 참았던 것이다. 아무튼 어길 수 없는 명령이매, 내일부터 일백삼십여 명 중에서 팔십 명만 남기고 오십여 명을 쫓아내야 한다. 저의 손으로 쫓아내야만 한다.
“난 못하겠다! 차라리 예배당 문에 못질을 하는 한이 있드래도, 내 손으로 차마 그 노릇은 못하겠다!”
하고 영신은 부르짖으며, 방바닥에 가 쓰러져버렸다. 한참 동안이나 엎치락뒤치락하며 홀로 고민을 하였다.
그는 불을 끄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그러나 이제까지 갖은 고생과 온갖 곤욕을 당해가면서 공들여 쌓은 탐을, 그 밑동부터 제 손으로 허물어트릴 수는 없다. 청석골에 와서 몇 가지 시작한 사업 중에, 가장 의미 깊고 성적이 좋은 한글 강습을 중도에서 손을 뗄 수는 도저히 없다.
‘어떡허면 나머지 오십 명을 돌려보랠꼬?’
‘이제까지 두말없이 가르쳐오다가, 별안간 무슨 핑계로 가르칠 수가 없다고 한단 말인가?’
거짓말을 하기는 죽어라고 싫건만, 무어라고 꾸며대지 않을 수도 없을 사세다. 아무리 곰곰 생각해보아도 묘책이 나서지를 않아서, 그는 하룻밤을 하얗게 밝혔다.
창밖에 새벽별이 차차 빛을 잃어갈 때, 영신은 소세(머리를 빗고 낯을 씻음)를 하고 나와서 예배당으로 올라갔다. 땅 위의 모든 것이 아직도 단꿈에서 깨지 않아, 천지는 함께 괴괴하다.
영신은 이슬이 축축이 내린 예배당 층계에 엎드려,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렸다.
‘주여, 당신의 뜻으로 이곳에 모여든 귀엽고 사랑스러운 어린 양들이, 오늘은 그 삼 분의 일이나 목자를 잃게 되었습니다. 다시 어둠 속에서 헤매일 수밖에 없이 되었습니다!
주여, 그 가엾은 무리가 낙심하지 말게 하여주시고, 하나도 버리지 마시고, 다시금 새로운 광명을 받을 기회를 내려주시옵소서! 하루바삐 내려주시옵소서!
오오 주여, 저의 가슴은 지금 미어질 듯합니다!’
영신은 햇발이 등 뒤를 비추며 떠오를 때까지, 그대로 엎드린 채 소리없이 흐느껴 울었다.
월사금 육십 전을 못 내고 몇 달씩 밀려오다가, 보통학교에서 쫒겨난 아이들이, 그날도 두 명이나 식전에 책보를 들고, 그 학교의 모자표를 붙인 채 왔다.
“얘들아, 참 정말 안됐지만, 인전 앉을 데가 없어서 받을 수가 없으니, 가을버텀 오너라. 얼마 있으면 새집을 커다랗게 지을 텐데, 그때 꼭 불러주마, 응.”
하고 영신은 그 아이들의 이름을 적고는, 등을 어루만져주며 간신히 돌려보냈다. 그러고는 다른 아이들이 오기 전에 예배당으로 들어갔다.
잠 한숨 자지를 못해서 머리가 무겁고 눈이 빡빡한데, 교실 한복판에 가서 한참 동안이나 실신한 사람처럼 우두커니 섰자니, 어찔어찔하고 현기증이 나서, 이마를 짚고 있다가 다리를 허청 떼어놓으며 칠판 앞으로 갔다.
그는 분필을 집어가지고 교단 앞에서 삼 분의 일가량 되는 데까지 와서는, 동편짝 끝에서부터 서편짝 창 밑까지 한일 자로 금을 주욱 그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예배당 문을 반쪽만 열었다. 아이들은 여느 때와 조금도 다름이 없이 재깔거리며 앞을 다투어 우르르 몰려들어 온다.
영신은 잠자코 맨 먼저 온 아이부터 하나씩 둘씩, 차례차례로 분필로 그어놓은 금 안으로 앉혔다. 어느덧 금 안에는 제한받은 팔십 명이 찼다.
“나중에 온 아이들은, 이 금 밖으로 나가 앉어요. 떠들지들 말구.”
선생의 명령에 늦게 온 아이들은, 영문도 모르고,
‘오늘은 왜 이럴가.’
하는 표정으로 선생의 눈치를 할끔할끔 보며, 금 밖에 가서 쪼그리고 앉는다.
아이들에게 제비를 뽑힐 수도 없고, 하급생이라고 마구 몰아내는 것도 공평치가 못할 듯해서, 영신은 생각다 못해 나중에 오는 아이들을 돌려보내려는 것이다. 나중에 왔다고 해도, 시간으로 보면 불과 십 분 내외의 차이밖에 나지 않지만, 그렇게 하는 도리 이외에 아무 상책이 없었던 것이다.
영신은 아이들을 다 들여앉힌 뒤에, 원재와 다른 청년들에게, 그제야 그 사정을 귀띔해주었다. 그런 소문이 미리 나면 일이 더 복잡해질 것을 염려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 말을 듣는 청년들의 얼굴빛은 금세 흙빛으로 변하였다.
“암말두 말구 나 허라는 대루만 장내를 잘 정돈해줘요. 자세헌 얘긴 이따가 헐게…..”
청년들은 영신을 절대로 신임하는 터이라,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침통한 표정을 지을 뿐이다.
영신은 찬찬히 교단 위에 올라섰다. 그 얼굴빛은 현기증이 나서, 금방 쓰러지려는 사람처렴 해쓱해졌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무슨 말을 허시려구 저러나.’
하고 저희들 깐에도 보통 때와는 그 기색이 다른 것을 살피고는, 기침하나 아니하고 영신을 쳐다본다.
영신은 입술만 떨며 얼른 말을 꺼내지 못하고 섰다. 사제간의 정을 한칼로 베어내는 것 같은, 마룻바닥에 그어놓은 금을 내려다보고, 그 금 밖에 오십여 명 아동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무슨 무서운 선고나 내리기를 기다리는 듯한, 그 천진한 얼굴들을 바라볼 때, 영신은 눈두덩이 뜨끈해지며 목이 막혀서 말을 꺼낼 수가 없다. 한참 만에야 그는 용기를 내었다. 그러다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여러 학생들 조용히 들어요. 오늘은 선생님이 차마 허기 어려운 섭섭헌 말을 헐 텐데…….”
하고 나서 다시 주저하다가,
“저……..금 밖에 앉은 아이들은, 오늘버텀 공부를…….시킬 수가……없게 됐어요!”
하였다. 청천의 벽력은, 무심한 어린이들의 머리 위에 떨어졌다. 깜박깜박하고 선생을 쳐다보던 수없는 눈들은, 모두 꽈리처럼 똥그래졌다.
“왜요? 선생님, 왜 글을 안 가르쳐주신대유?”
그중에 머리가 좀 굵은 아이가, 발딱 일어나며 질문을 한다.
영신은 순순히 타이르듯이 ‘집이 좁아서 팔십 명밖에는 더 가르칠 수가 없게 되었다는 것과, 올가을에 새집을 지으면 꼭 잊어버리지 않고, 한 사람도 빼어놓지 않고 불러주마’고 빌다시피 하였다.
“그럼 입때꺼정은 이 좁은 데서 어떻게 아르쳐주셨시유?”
이번엔 제법 목소리가 패인 남학생의 질문이 들어왔다. 영신은 화살에나 맞은 듯이, 가슴 한복판이 뜨끔하였다. 그 말대답을 못 하고, 머리가 핑 내둘려서 이마를 짚고 섰는데, 금 밖에 앉았던 아이들은 하나둘 앉은 채로 엉금엉금 기어서, 혹은 살금살금 뭉치면서 금 안으로 밀려들어 오다가,
“선생님! 선생님!”
하고 연거푸 부르더니, 와르르 교단 위까지 뛰어 오른다.
영신은 오십여 명이나 되는 아이들에게 에워싸였다.
“선생님!”
“선생님!”
“전 벌써 왔세요.”
“뒷간에 갔다가 쪼금 늦게 왔는데요.”
“선생님, 난 막동이버덤두 먼첨 온 걸, 저 차순이두 봤세요.”
“선생님, 내 낼버텀 일쯕 오께요. 선생님버덤두 일쯕 오께요.”
“선생님, 저 좀 보세요, 절 좀 보세요! 인전 아침두 안 먹고 오께, 가라구 그러지 마세요, 네, 네.”
아이들이 엎드러지며 고꾸라지며 앞을 다투어 교단 위로 올라와서, 등을 밀려 넘어지는 아이에, 발등을 밟히고 우는 아이에, 가뜩이나 머리가 영신은 정신이 아찔아찔해서 강도상(강대상. 교회에서 설교를 하는 대) 모서리를 잡고 간신히 서 있다. 제 몸뚱이로 버티고 선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포위를 당해서 쓰러지려는 몸이, 억지로 떠받들려 있는 것이다.
“선생님!”
“선생님!”
아이들의 안타까운 부르짖음은, 귀가 따갑도록 그치지 않는다. 그래도 영신은 눈을 내리감고,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 뿐……
“내려들 가!”
“어서 내려들 가거라!”
“말 안 들으면 모두 내쫓을 테다.”
하면서 영신을 도와주는 청년들이, 아이들을 끌어내리고 교편을 들고 얼러메건만, 그래도 아이들은 울며불며, 영신의 몸에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서 죽기 기 쓰고 떨어지지를 않는다.
영신의 저고리는 수세미가 되고, 치마 주름까지 주르르 트뎌졌다. 어떤 계집애는 다리에다가 깍지를 끼고 엎드려서 꼼짝을 못하게 한다.
영신은 트뎌진. 치마폭을 휩싸 쥐고 그제야,
“놔라, 놔! 얘들아, 저리들 좀 가 있어. 온 숨이 막혀서 죽겠구나!”
하고 몸을 뒤틀며 손과 팔에 매어달린 아이들을 가만히 뿌리쳤다. 아이들은 한 번 떨어졌다가도, 혹시나 제가 빠질가 하고 다시 극성스레 달려붙는다.
이 광경을 본 교회의 직원들이 들어와서, 강제로 금 밖에 앉았던 아이들을 예배당 밖으로 내몰았다.
사내아이, 계집아이 할 것 없이, 어머니의 젖을 억지로 떨어진 것처럼, 눈이 빨개지도록 홀짝홀짝 울면서, 또는 흑흑 흐느끼면서 쫓겨나갔다.
장로는 대머리를 번득이며 쫓아나가서, 예배당 바깥문을 걸고 빗장까지 질렀다. 아이들이 소동을 해서 시끄러워 골치도 아프거니와, 경찰의 명령을 듣지 않다가는 교회의 책임자인 자기의 발등에 불똥이 튈까보아, 적지 아니 겁이 났던 것이다.
아이들의 등 뒤에서 이 정경을 바라보던 영신은, 깨물었던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영신은 그 눈물을 아이들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소매로 얼굴을 가리며 돌아섰다. 한참이나 진정을 하고 나서는, 저희들 깐에도 동무들을 내쫓고 공부를 하게 된 것이 미안쩍은 듯이, 머리를 떨어뜨리고 앉은 여든 명을 정돈 시켜놓고, 차마 내키지 않는 걸음걸이로 칠판 앞으로 갔다.
그는 새로운 과정을 가르칠 경황이 없어서,
“오늘은 우리 복습이나 허지.”
하고 교과서로 쓰는 <농민독본>을 펴들었다. 아이들은 글자 모으는 법을 배운 것을, 독본에 있는 대로,
“누구든지 학교로 오너라.”
“배우고야 무슨 일이든지 한다.”
하고 풀이 죽은 목소리로 외기를 시작한다.
영신은 그 생기 없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듣기 싫은데, 든 사람은 몰라도 난 사람은 안다고, 이가 빠진 듯이 띄엄띄엄 벌려 앉은 교실 한 귀퉁이가 훠언한 것을 보지 않으려고 유리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창밖을 내다보던 영신은 다시금 콧마루가 시큰해졌다. 예배당을 에두른 야트막한 담에는, 쫓겨난 아이들이 머리만 내밀고 조옥 매달려서, 담안을 넘겨다보고 있지 않은가. 고목이 된 뽕나무 가지에 닥지닥지 열린 것은 틀림없는 사람의 열매다. 그중에도 키가 작은 계집애들은 나무에도 기어오르지를 못하고, 땅바닥에 가 주저앉아서 홀짝거리고 울기만 한다.
영신은 창문을 말끔 열어젖혔다. 그리고 청년들과 함께 칠판을 떼어, 담밖에서도 볼 수 있는 창 앞턱에다가 버티어놓고 아래와 같이 커다랗게 썼다.
“누구든지 학교로 오너라.”
“배우고야 무슨 일이든지 한다.”
나무에 오르고 담장에 매어달린 아이들은 일제히 입을 열어, 목구멍이 찢어져라고 그 독본의 구절을 바라다보고 읽는다. 바락바락 지르는 그 소리는, 글을 외는 것이 아니라, 어찌 들으면 누구에게 발악을 하는 것 같다.
그러한 상태로 얼마 동안을 지냈다. 그래도 쫓겨나간 아이들은 날마다 제시간에 와서, 담을 넘겨다보며 땅바닥에 엎드려 손가락이나 막대기로 글씨를 익히며 흩어질 줄 모른다. 주학과 야학으로 가르고는 싶으나, 저녁에는 부인 야학이 있어서 번차례로 가르칠 수도 없었다.
“집을 지어야겠다. 무슨 짓을 해서든지 하루바삐 학원을 짓고 나가야겠다!”
영신의 결심은 나날이 굳어갔다. 그러나 그 결심만으로는 일이 되지 못하였다. 그는 원재와 교회 일을 보는 청년들에게, 임시로 강습하는 일을 맡기고는, 청석학원 기성회 회원 방명부를 꾸며가지고, 다시 돈을 청하러 나섰다. 짚신에 사내처럼 감발(발감개)을 하고는, 오늘은 이 동리 내일은 저 동리로, 산을 넘고 논길을 헤매며, 단 십 전 이십 전씩이라도 기부금을 모으러 다녔다. 푹푹 찌는 삼복중에 인가도 없는 심산궁곡(깊은 산속의 험한 골짜기)으로 헐덕거리며 돌아다니자면, 목이 타는 듯이 조갈이 나는 때도 많았다. 논 귀퉁이 웅덩이에 흥건히 고인 물을 손으로 떠서 마시기도 하고, 어던 때는 긴긴 해에 점심을 굶어 ㅓ시장기를 이기지 못하고, 더운 김이 후끈후끈 끼치는 풀밭에 행려병자와 같이 쓰러져서, 정신을 잃은 때도 있었다. 촌가로 찾아 들어가면, 보리밥 한술이야 얻어먹을 수가 없는 것은 아니건만, 굶으면 굶었지 비렁뱅이처럼,
“밥 한술 줍쇼.”
하기까지는, 자존심이 허락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가는 저녁까지 굶고 눈이 하가마(예전에 기생이 머리에 쓰던 쓰개. 가운데가 움푹 들어가 있다)가 되어서, 캄캄한 밤에 하늘의 별만 대중해서, 방향을 잡고 오는 날도 겅성드뭇하였다.
집에까지 죽기 기 쓰고 기어들어와 턱 눕는 것을 보면, 원재 어머니는,
“아이고 채 선생님, 이러다간 큰 병 나시겠구려. 사람이 성허구서야 학원 집이구 뭣이구 짓지, 온 가엾어라. 아주 초죽음이 되셨구료.”
하고는 영신의 다리팔을 주물러주고, 더위를 먹었다고 영신환(계피나무 껍질, 박하유, 대황, 삽주 따위로 만든 환약)을 얻어다 먹이고 하였다.
그렇건만 기부금을 적은 명부를 펴 보면, 하루에 사십 전 오십 전, 끽해야 이삼 원밖에는 적히지를 않았다. 원재 어머니는 이태 동안이나 영신이와 한집에서 살고 밥을 해주는 동안에, 글을 깨치고 쉬운 한문자까지도 알아보게 된 것이다. 그는 영신의 감화를 받아 교회의 권사 노릇까지 하게 되었고, 영신이가 와서 발기한 부인친목계의 서기 겸 회계까지 보게 되었다. 그래서 영신과 정도 들었거니와, 그를 천사와 같이 숭앙하고 친절을 다하는 터이다.
청석동 강습소가 폐쇄를 당할 뻔하였다는 것과, 기부금을 모집하러 다닌다는 소식을, 영신의 편지로 안 동혁은,
“건강을 해치도록 너무 무리하게는 일을 하지 마십시다. 우리는 오늘만 살고 말 몸이 아니기 때문이외다. 그저 칡덩굴처럼 줄기차게 뻗어나가다 황소처럼 꾸준하게만 우리의 처녀지를 갈며 나가면 끝나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하고 몇 번이나 간곡히 건강을 주의하라는 편지가 왔다. 그러나 그러한 편지는, 도리어 달리는 말에게 채찍질을 하는 듯, 영신으로 하여금 한층 더 용기를 돋우게 하고, 분발케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는 생각다 못해서, 기부금을 십 원이고 이십 원이고 적어놓고, 이 핑계 저 핑계로 내지 않는, 근처 동리의 밥술이나 먹는 사람들을 다시 한 번 찾아다녔다. 그중에도 번번이 따고(찾아온 사람을 핑계를 대고 만나지 않다) 면회를 하지 않는 한낭청이란 부잣집에는,
‘어디 누가 못 견디나 보자.’
하고 극성맞게 쫓아가서는, 기어이 젊은 주인을 만나보고 급한 사정을 하였다. 그러나.
“여보 이건 빚 졸리기버덤 더 어렵구려. 글쎄 지금은 돈이 없다는데 바득바득 내라니, 그래 소 팔고 논 팔아서 기부금을 내란 말요? 온, 우리 집 자식들이 한 놈이나 강습손가 허는 델 댕기기나 허나!”
하고 배를 내민다. 영신은 참다 못해서 속으로
“에에끼 제 배때기밖에 모르는 놈 같으니, 그래두 술담배 사 먹는 돈은 있겠지.’
하고 사랑 마당에다가, 침을 탁 뱉고 돌아선 때도 있었다. 이래저래 영신은 근처 동리의 소위 재산가 계급에게는 인심을 몸시 잃었다.
“어디서 떠들어온 계집이 그 뻔새야. 기부금에 병풍상성(병에 시달려 본성을 잃어버림)을 해서 소댕기니. 온, 나중에 ㄴ별꼴을 다 보겠군!”
하고 귀먹은 욕을 먹었다. 그와 동시에 주재소에서는, 주의를 시켰는데도 또 기부금을 강청(무리하게 억지로 청함)한다고 다시 말썽을 부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