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이미지 2 / 이종수 시인
노란 참외를 떠올려보자. 골목이나 아파트단지로 들어온 노란 트럭(참외 이야기를 하다 보니 감염이 된 모양이다)을 보며 한바탕을 결전을 치를 것처럼 흥분된 시인에게서 나는 맛과 향기를 읽어보자.
노란 참외를 볼 때마다 나는야 살짝 흥분, 노란 참외를 잔뜩 쌓아놓고 파는 트럭을 지나갈 때마다 나는야 살짝 멈칫, 노란 참외 향기는 진하고 노란 참외 향기는 달콤해 노란 참외 향기는 진하고 노란 참외 향기는 매혹적이야 한 덩어리 참외 향기의 마취, 한 덩어리 참외 향기의 황홀, 노란 참외를 잔뜩 쌓아놓고 파는 트럭을 지나갈 때마다 나는야 노란 참외 수류탄을 움켜쥐고 멀리 던지고 싶어 노란 참외 안전핀을 뽑아쥐고 던지고 싶어 그러면 씨앗들이 흩어지겠지 그러면 씨앗들이 터져 달아나겠지 누군가는 씨앗에 맞아 죽고 무언가는 씨앗에 맞아 폭파되겠지 그러면 행복, 그러면 박수, 짝짝짝, 오늘도 나는 노란 참외가 가득 실린 트럭 앞을 지나갈 때마다 살짝 종횡무진 삶의 중앙선을 넘고 지그재그 법의 중앙선을 넘어 노란 참외가 가득 실린 트럭을 몰고 아수라 아수라 노란 참외를 가득 쌓아놓고 파는 트럭 앞을 지나갈 때마다 나는야 살짝 흥분,
유홍준, <노란 참외를 볼 때마다>
어느 유럽 어디에선가 수확기의 토마토를 던지며 노는 축제 현장을 떠올려서일까. 노란 먹칠(이번에도 감염!)을 하고 서로에게 노란 웃음을 던지는 모습이 시를 건강하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진정으로 이렇게 자기 자신이 수류탄이 된 듯 꼭 쥐고 있던 안전핀을 뽑고 싶지 않은가? 몇 번이고 트럭 앞을 지나며 도모하고자 했을 노란 참외의 이미지가 생생하게 살아오름을 느끼게 하는 시다.
단순히 말장난이 아닌 간절한 바람이 시에 나타나는 또 다른 경우를 보자.
사람이란 그렇다
사람은 사람을 쬐어야지만 산다
독거가 어려운 것은 바로 이 때문, 사람이 사람을 쬘 수 없기 때문
그래서 오랫동안 사람을 쬐지 않으면 그 사람의 손등에 검버섯이 핀다 얼굴에 저승꽃이 핀다
인기척이 없는 독서
노인의 집
군데군데 습기가 차고 곰팡이가 피었다
씨멘트 마당 갈라진 틈새에 핀 이끼를 노인은 지팡이 끝으로 아무렇게나 긁어보다가 만다
냄새가 난다, 삭아
허름한 대문간에
눈가가 짓물러진 할머니 한 사람 지팡이 내려놓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 바라보고 있다 깊고 먼 눈빛으로 사람을 쬐고 있다
유홍준, <사람을 쬐다>
“쬐다”는 말은 맨 먼저 불기운을 앞서게 한다. 당연히 백석의 모닥불을 떠오르게 한다.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락잎도 머리카락도 헌겊 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깃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門長) 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이도 큰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상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백석, <모닥불>
‘사람을 쬔다’는 것이 동작을 말하면서 함께 섞이지 못한 지난 세월과 흘러갈 세월 앞에 던지는 모닥불로 살아나지 않는가. 무슨 말로 저들의 독거를 이야기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시인은 우리 본연의 마음에 불씨로 살아있는
‘쬐다’를 프로메테우스처럼 가져온 것이다. 우리 말의 쓰임새를 더욱더 깊게 벌려놓은 일이라 할 수 있다. 독거를 다른 이미지로 살려보았다. 그럴수록 ‘사람을 쬐다’는 말이 얼마나 실감나게 다가오는지 느낄 수 있다.
다음에는 다른 경우를 보자.
하루종일 중얼거리기만 하는 사람 최경서씨는 정신병원 안정실에 갇혀 있다네 똥오줌도 그냥 옷에다 칠칠 밥풀도 마찬가지 입술 주위에는 또 무엇이 잔뜩 돋아서 울듯불긋 솔직히 나는 저 입 속에 약을 넣어주는 일이 싫어 투약시간이 싫다네 아무리 안 묻히려고 해도 결국에는 묻히고야 마는 최경서씨의 타액이 싫어 더러워 하루빨리 퇴원을 하든지 죽든지 했으면 좋겠네 골칫덩어리 골칫덩어리 오늘은 약의 함량을 조절하기 위해 환자들의 몸무게를 다는 날 제 몸조차 가누지 못하는 도대체 정신이 없는 최경서씨를 안고 최경서씨의 몸무게를 다는 방법은 단 한 가지 최경서씨를 안고 최경서씨를 보듬고 저울 위에 직접 올라가는 것 그래서 거기에서 내 몸무게를 빼는 것 더러운, 냄새나는, 하염없이 침 흘리고 오줌을 싸는 최경서씨를 안고 한 평 반 안정실에서 나는 낑낑
유홍준, <몸무게를 다는 방법>
문태준의 ‘가재미’와는 또 다른 이미지를 가져다 준다. 하루종일 중얼거리며 똥오줌도 못 가리는 최경씨만큼이나 화자 또한 공격적이다. 자기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최경서씨는 병자가 아닌 줄도 모른다. 아무튼 정신 없는 최경서씨의 몸무게에서 화자의 몸무게를 더는 방법이 화자에게는, 아니 읽은 이에게는 다르게 울리는 것 같다. 최경서씨가 누구인지는 따지지 않더라도 화자와 아주 다른 세상에 있는 이를 대하는 마음에서 모질게 죽었으면 하는 마음을 빼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정황속에서 몸을 부리고 있는 또 다른 화자를 느끼게 해준다. 그렇다면 약의 함량은 몸무게를 달 때마다 다르지 않을까.
이번에는 수암골을 걷거나 모충동 오래된 골목을 걸을 때 집집마다 떠오르는 이미지를 떠올려보자. 어떤 모습으로 그릴 것인가.
좋은 사이들이 말을 할 때 가만히 눈매를 바라보는 것처럼
손끝으로 입을 가리는 것처럼
겨드랑이를 쿡 찌르고 깔깔대는 것처럼
우리 동네 집들이 말을 한다
파란 대문 집은 아직 아버지가 바다에서 돌아오지 않아서
외등을 켜고
군불 때는 집은 쇠죽 끓이는 소리로 오래된 말을 한다
옥상에 노란 수조가 있는 집은 취직시험 볼 삼촌이 있어서
옥탑방이 하얗게 말을 한다
오랫동안 살을 맞댄 이웃집들은 오래된 부부처럼 닮아간다
된장 맛이 같아지고 김치 맛이 같아지다가
우리 담장 허물까 한다
그러다가 한방 쓸까 한다
돌아설 수밖에 없는 어려운 처지에서는 등으로 말을 한다
뒤란으로 말을 한다 거기 목련 한 그루 심어둔다
골목 하나 사이에 두고 마주한 집들은
활짝 열린 입술로
키스할까 말까 오랫동안 망설인다 문을 열고 사람이 나와
골목을 쓸면서
잘 잤어? 하는 것은
사람이 집의 혀이기 때문이다
집들이 하는 말 중에 가장 달콤하게 들리는 것은
우리 불 끌까? 이다
밤에 집이 하는 말을 들으려고 옥상에서 귀를 기울이면
응, 거기 거기 하는데
우리 동네 밤하늘이, 반짝반짝 별들이 그런 밤에는 불끈불끈 자란다
우리 동네 집들은 다른 동네 집들보다 조금 크게 말을 한다
바다에서는 목청껏 말해야 파도 소리를 넘을 수 있기에
그런 어부 새벽마다 낳아야 하기에
배에 힘 가두고 출렁이듯 말을 한다
박형권, <우리 동네 집들>
집들이 골목이 말을 한다면, 스스로 자기 역사를 말한다면 오히려 집들에 대한 이미지가 훨씬 더 뚜렷하게 그려질 것이다. ‘사람이 집의 혀’이기 때문이다. 지금 앞에서 두 사람이 꽃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어떻게 하면 벌이 든 물봉선 이미지를 잘 그려낼까 생각해 보면 획일적인 묘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오세암은
대학시절, 글을 쓰던 후배들이 자취하며 살던 달방이다
'ㅁ'자 집 마당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이어달리기로 꽃이 피고
진짜 예불이라도 드리는 듯 새벽이 아름답던
만날 라면 아니면 막걸리로 배를 채우던 오세암
난 그들을 먹여 살릴 셈으로 딸딸이에 김치며 쌀,
어쩌다 몸보신이라도 하라고 삼계탕거리를 싣고
꼭 신도마냥 오르막길을 오르던,
암자 아닌 암자였던 오세암
이종수, <오세암>
다른 추억으로 수암골을 떠올려 본 시다. 꽃밭을 가운데 두고 ‘ㅁ’ 자취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이른바 시 쓰고 소설 쓴다는 식객들로 북적이던 오세암(설악산 어디에 있다는 오세암을 따서)이 수암골 골목 어느 벽에 그려져 있다. 그 시절을 공유하던 사람이라면 그들을 먹여 살리려고 삼계탕거리를 싣고 올라가던 마음을 이해하리라. 그때의 골목에서, 지금은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집에서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알 것이다. 그런 것을 끌어내는 것 또한 시가 해야 할 일이지 않겠는가.
하- 하아하아 하월곡동 산동네에 올라 보신 적이 있는지요 청국장 졸아붙은 냄새 맡으며 올라 아무 데라도 고개 돌리면 머리 위에 별들을 쓸어 모아 아무렇게나 흩어버린 듯 제법이지요 문득 난 하늘을 이고 또 밟고 선 듯 곳곳엔 십자가 빨갛고요 언뜻언뜻 꼬리를 달고 발빝으로 흐르는 불빛들은 멀고 또 빠르네요 꼭대기라 바람이 많아 난 흔들리며 또 흔들리지 않지요 가래 끓는 소리 담벼락에 부딪쳐 벼락처럼 취한 사내 비틀 저런! 넘어지며 저 사내 더하기로 보였을까요 이건 아니다 이런 게 아니다 쓰러지는 저 아래 먼 십자가 구부러진 생애의 틈 사이로 은총 총총한 하늘을 가는, 아아니 오는 그 넓은 우주를 식음 전폐 달려 이제 내 앞을 지나는 저 저 아 저것,
별똥별의 긴 발자국이 휘익-
나의 가장 안쓰러운 때를 떠올려 성호를 긋는 사랑아
사랑아 우리가 바라고 사랑할 세상은 여기이고 또난 저기가 아닐는지요
사랑아 닳고 닳은 사람아
김진완, <산동네 풍경>
하늘에서 제일 가까운 동네라서
눈도 제일 먼저 온다
깁고 꿰매고 때워 누더기가 된
골목과 누게막과 구멍가게 위에
눈은 쌓이고 또 쌓인다
때로는 슬레이트 지붕 밑을 기웃대고
비닐로 가린 창틀을 서성대며
남 볼세라 사랑놀음에 얼굴도 붉히지만
때와 땀에 찌든 얘기
피멍든 노래가 제 가슴 밑에서
먹구렁이처럼 꿈틀대는 것도 눈은 안다
이 나라의 온갖 잘난 것들 모여들어
서로 찢고 발기고
마침내 저네들 발붙이고 사는
땅덩이마저 넝마로 만든
장안의 휘황한 불빛을 비웃으면서
눈을 내리고 또 내린다
하늘에서 제일 가까운 동네라서
눈도 제일 오래 온다
신경림, <산동네에 오는 눈>
이번에는 냄새와 소리까지 넣어서 느껴보자.
구수한 냄새 양이 바다슈퍼 천막에 앉아 조개를 굽는다
강아지처럼 침 흘려 군이 얼굴을 내밀고
거참 먹음직스럽다 씨가
뒤이어 들어온다
슈퍼주인, 올 줄 알았어 씨가 간장과 깻잎을 들고 들어오고
오늘 같은 날 소주 두 병 씨가 술잔을 돌린다
구수한 냄새 양은 조개를 뒤집느라 손이 바쁘고 초록초록 비까지 내린다
맛있는 냄새가 선창 끝에까지 번져서
배 묶어놓아 씨 달려와 합석을 한다
보글보글 지글지글 조개 속의 바다가 끓고 있을 때
마지막 등장 인물
니들 뭐 해 씨가 아들, 나도 좀 줘의 손을 잡고 들어온다
이 장면을 멀리서 망원경으로 보던
조개 캐서 먹고살아 씨가 쾌재를 부른다
도대체 뭔데 그래 이리 줘봐 여사는
나와 대체 어떤 관계일까
이름이 좀 길긴 하지만
‘너의 조개밭 조개가 이 손에서 저 손으로 대구로 서울로 멀리 일본으로 중국으로 미국으로 가노니 처음부터 관계 바로 맺어라’ 씨께서
하늘에서 이 파티를 묵묵히 지켜보고 계시다
박형권, <관계>
이름부터 관계지향적인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조개를 굽고 소주를 마시는 이 광경을 하느님은 직답을 내린다. 관계란 원초적인 것을 떠나서 한 마을의 역사를 보여주는 야담(?)이지 않은가. 누구라도 끼어들 여지가 넘쳐나는 관계인 것이다. 바다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무엇으로 말하기 어려운 질퍽한 관계가 그대로 묻어나는 것이다. 소리까지 곁들여 술 한 잔 권하는 저 풍경을 어떻게 살려낼 것인가 묻게 하는 대목이다. 말끝마다 뭐라 뭐라 하는 저 사람들처럼 우리 곁의 군상들을 만인보처럼 그려볼 차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