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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시골 우리 집에 큰 농우 (農牛) 한마리가 있었다.행랑 체서 농사
를지어주는 농막이 기르지만 심심하면 牛끌고 뒷골 풀밭에 메어
놓기도 하고 풀을 뜯기기도 한다.
뿔이,
굵게 휘어진 골격이 우람한 누렁 황소는 달구지 끌었던 경험이
있는 소 (牛) 인데 싸움하면 동내에서 우리소를 당해낼 소가 없
었던 것이다.
잘 생긴,
힘센 황소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덩치 큰 황소가 보기보다 아
주 영리했다.행랑아범이 뽕나무 밑둥치에 메어놓은 소 타래기를
풀고 소 등에 가볍게 올라탔다.평소 고분고분 잘 태워주던 소가
그날따라 귀찮은지 서마지기 밭을 타넘고 경사진 언덕배기로 줄
달음질친다.
은철이,
(행낭아범아들)이가 소고삐 잡으려고 달려오니 소는 더욱 빠른
걸음으로 내달린다 그 바람에 잔등에서 미끄러져 소(牛)머리 타
고 공중회전 한바퀴하고 牛 앞에 털썩 나뒹굴러졌다. 뜀박질 하
는 소 (牛) 발에 밟히면 곧바로 황천행이다.
달리던,
牛가 영리하게 급제동으로 큰 덩치가 버텨서면서 앞발이 갈비뼈
바로 옆에서 탁 멈춘 것이다 잘 생기고 힘 좋으니 암소가진 주인
들은 은근히 우리 牛 를 탐내며 황소 한번 빌려 우수한 품종으로
송아지를 낳고 싶어 한다 빌리는 소관은 주인집이 아니라 전적
으로 행낭아범이 결정하는 것으로 다음 날 논 갈일 있으면 힘 빠
진다고 빌려주지를 않는다.
한번,
빌려주면 암소 주인은 황소 몫으로 막걸리 한됫병하고 삼(麻)으
로 꼰 소 타래기 몇 발을 행랑아범에게 가져오는 것이다.암소를
끌고 와서 퇴비장 가까이 있는 배나무에 메어놓고 얼굴 마주보며
정들기를 기다렸다가 고삐 풀어주면 큰 등치끼리 불붙는다.
시골에,
별다른 구경꺼리가 없었던 시절 암소 황소 불붙는 것도 볼거리
중 하나였다 牛 를 기르는데 없어서는 안 될 축산 연장으로 소죽
통,소죽바가지 작두 모탕 덕석 이 있다.그중에도 꾸밈없는 질박
한 소죽통 (粥桶) 에서 옛 향수를 더듬어 추억어린 그때를 회상
(回想)해 본다.
질 좋은,
박달나무를 생긴 대로 잘라서 자귀와 끌로 홈을 파면 훌륭한 여
물통이 된다.우리 집 행낭 체 마구간에 걸려있던 커다란 소죽통
은 100리터는 족히 되고도 남는다 牛 가 여물을 먹어 소죽통 언
저리는 닳아서 반들반들 윤이 났다.인사동 골목을 지나다보면
꾸밈없는 순박한 소죽통(粥桶) 이 편하게 눈에 들어온다.
소죽통 (粥桶) 사진은 처음본 선후배님을 위하여 작년 안동 하회
마을에서 찍은 것입니다.
단 결~!!
첫댓글
牛 를 기르는데 없어서는 안 될 축산 연장으로
소죽통 (牛粥桶) 牛죽바가지 작두 모탕 덕석이 있고.
그중에도 꾸밈없는 소죽통은 향수를 자아낸다
질 좋은 박달나무를 생긴 대로 잘라서
자귀와 끌로 홈을 파면 훌륭한 여물통이 된다.
어릴 때 행낭체 마구간에 걸려있던 커다란
소죽통은 40리터는 족히 되고도 남는다.
牛가 여물 먹다 소죽통(牛粥桶) 언저리는 닳아서
반들반들 윤이 나지요ㅎㅎ
소 외양간에 창을 만들어 소 여물통 모습이 정겹습니다
그당시는 소가 재산목록 1호였으며 사람은 굶어도 소는 늘 따끈하게 소죽을 끓여서
주곤 했지요 물론 소 없는 집이 대 다수였지만.
그 옛날 시골 생활의 추억이 아련히 떠오르네요
우직한 소울음 소리와 정다운 시골풍경을 다시한번 회상해 봅니다
마초님 고맙습니다~^^**
하회마을 둘러보니 어릴 때 보아온 꾸밈
없는 순박한 소죽통 (牛 粥桶)이 눈에
뒨다 모탕 덕석은 순우리말인데 모탕은
장작 팰 때 손작두로 여물 썰때 받치는
둥근 나무토막 덕석은 추운 겨울날 牛등에
씌우는 짚으로 촘촘히 엮어 만든 도구
이지요
늘 항구여일(恒久如一)로 살가운 댓글
주심을 많은 감사를 드립니다
제주도는 牛 보다 馬이 많았지요.
그래도 소 외양간에는 한 마리는
집집마다 키웠죠.
밭일이나 소 달구지용으로.
바다섬이라 늘 땔감이 부족해
중산간에 올라가 솔잎을 긁어
새끼 줄로 단단히 묶고
달구지에 싣고는 해변 마을로 끌고 왔지요.
우리집은 소가 없어 늘 솔잎 짐을
등에 지고 몇 리를 걸어 왔었는데
참 고단했던 옛날이었죠.
우리모두 그당시 굴곡진 삶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으리오 그래도 그런 추억이 있다는 것
많으로도 이제는 위로를 삼아야 되겠지요
노벨문학상 수상자 펄벅여사는 한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진귀한 풍경을 목격하지요 황혼(黃昏) 무렵
牛달구지에 볏단을 싣고 가던 농부의 모습을요
우리에게는 흔히 볼 수 있는 익숙한
풍경이지만 그녀에게는 신선했던 모양으로
외국 같았으면 牛달구지에 농부의 짐과 자신도
올라탔을 것이다.하면서
하지만 한국의 농부는牛 의 짐을 덜어주고자
자신의 지게에 볏단을 지고 牛와 함께 귀가하는
모습을 보면서 전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는
일화가 있지요
늘 고운 댓글 주심에 고마움을 표합니다
오늘도 굿럭으로요
사진으로나마 여물통 오랫만에 봤습니다
어릴 때 행낭체 마구간에 걸려있던 커다란
소죽통은 40리터는 족히 되고도 남지요
그러나 지금은 민속촌(民俗村)이나
박물관(博物館)에 가야 구경할 수가 있지요
관심주심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