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영웅전설'의 등장인물은 약 660명을 헤아린다. 그 외에도 지명 등을 포함하면 사전에는 실려 있지 않은
고유명사들이 얼마나 될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숫자만 많다면 사실 별문제될 것이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외래어 표기법'이라는 것이 있고 그에 따라서 표기하면 그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름들 하나 하나가 독일어이거나 심지어는 인도의 어느 지방 이름 등등 무언가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데 있다. 이렇게 되면 그 이름의 유래나 어느 나라 언어에서 유래된 발음인가를 일일이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엉뚱한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이순신 장군을 일본어로 표기한 것을 이순신이라는 실제 인물이 있음을 모르는 사람이
우리나라의 '외래어 표기법'에만 따라 옮기게 되면 '리슨신' 이나 '이슨신'이 되어 버린다. 실제로 그와 같은
예가 해적판의 번역에서는 비일비재했다. '왈큐레'라든가, '얀 웬리'라든가 하는 것은 모두 그 단어의
근원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글자만을 옮겨 놓았기 때문에 생긴 잘못들이다.
이런 잘못들은 비교적 최근에 한국에 소개된 은하영웅전설 관련물들에도 여전히 남아있다. 그러한
무원칙하고 무책임한 번역들은 국내 팬들에게 많은 혼란을 가져다 주었다. 실제 작품이 나오기도 전에
'은영전 매니아'들로부터 제대로 번역해달라는 요청이 직접 간접적으로 수없이 들어온 것도 그런 면에서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번역자로서 원작자인 다나카 선생의 주목과 우리 독자들의 관심과 애정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기
위해 이름을 번역하는 데에도 다른 작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시간과 노력을 들였지만 '그게
아니다'라고 다른 의견을 주장할 수 있는 부분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출간 전에도 그러했으니만큼
책이 나온 후에도 매니아들의 의견이 분분할지도 모른다.
그런 토론을 가볍게 해 준다는 의미에서 매니아들의 요청에 따라 은하영웅전설의 고유명사 번역 기준을 공개하고자 한다.
**
1) 실제 존재하는 이름은 그대로
'알타일(アルタイル) 성계'처럼 실제로 존재하는 이름(Altair-견우성)들이 소설에 그대로 사용된 경우에는
우리나라에서 널리 쓰이는 대로 표기했다.
또한 '헤르텐(ヘルテン)'처럼 실제로 존재하는 지명(Herten)을 그대로 따 붙인 이름의 경우나 인명, 신화
속의 각종 이름 등 실제로 쓰이는 이름을 그대로 붙인 것들도 우리나라의 통상 표기나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표기대로 번역하였다.
2) 원어 발음 우선
일본어의 통상 표기가 원어의 발음과 다른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Siegfrid'가 그 경우인데, 일본에서는
흔히 '지크프리드(ジ-クフリ-ド)'라고 쓴다(우리나라에서도 '지그프리트'라고 잘못 쓰이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이를 독일어 원어의 발음 기호를 바탕으로 우리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하면 '지크프리트'가
된다. 이렇게 원작자가 일본어 통칭으로 표기한 경우에는 원어를 규명하여 원어의 발음 기준으로
표기하였다.
3) 발음이 다른 경우 원작 표기를 우선
같은 철자라고 해도 나라 별로 그 발음이 다른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양 웬리의 기함
'휴베리온(ヒュ-ベリオン)'은 자료에 따르면 그 철자가 'Hyperion'임을 알 수 있다. 이는 '히페리온'
등으로도 읽히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널리 쓰이는 통칭이 없으며, 소설 원문에는 그리스어식 발음
표기를 쓰고 있으므로 원작자의 뜻을 살려 번역 표기에도 원작의 그리스어식 발음 표기를 그대로 살려
'휴베리온'이라고 표기했다.
4) 창작된 이름은 원작의 표기에 따름
소설 속의 이름 중 '이제르론(イゼルロ-ン)'에 가장 가까운 실존 이름은 독일의 한 지방인 'Iserlohn'이다.
하지만 그 지방 이름은 우리나라에서나 일본에서나 독일어 발음에 충실한 '이저론(イザ-ロ-ン)'으로
표기된다. 또한 신화나 역사상의 인물 등 다른 어떤 자료를 찾아 봐도 '이제르론'에 맞아 떨어지는 것을
찾을 수 없었다.
이렇게 원작의 이름과 딱 맞아떨어지는 실존 고유명사가 없으며 특별한 의미를 지닌 명사와의 분명한
연관성도 보이지 않을 경우, 그 이름은 원작자가 실제 이름을 참고로 순수하게 창작한 이름으로 보고
일본어의 표기를 그대로 우리말로 옮겨 표기함을 원칙으로 삼았다.
5) 원작 소설을 우선
일본에는 '은하영웅전설'에 관련되어 애니메이션 만화 게임, 그 외의 관련 자료들이 많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 원작은 소설이므로 그 외의 것들은 참고 자료로 간주하였다. 그러므로 참고 자료 간에 서로
차이가 나는 경우, 원작의 표기나 원작자의 직접 인터뷰 자료 등을 우선하여 표기를 결정하였다.
예를 들어 '양 웬리(ヤン ウェンリ)'의 경우 기타 자료들 중에는 'Yang', 'Yan' 등으로 표기가 엇갈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일본의 잡지('SF 어드벤처' 증간호)에서 작가 자신이 양 웬리의 한자 이름을 '楊
文理'라고 직접 밝힌 자료가 있음에 따라 그 중국어 발음과 원작자의 일본어 표기를 참고로 하여 번역
표기에는 '양 웬리'라고 하였다.
덧붙여 현재 우리나라에서 번역 발간된 기타 자료들(만화 게임 해적판 소설 등)은 무원칙하고 충분히
조사되지 않은 경우다 대부분으로, 참고적 가치 또한 현저히 낮다고 보아 일체 참고하지 않았다.
6) 독일어 발음 우선 적용
은하제국인들, 특히 귀족 계급의 이름 중에서 철자는 독일인들에게 널리 쓰이는 이름이지만 원문의 발음
표기는 일본어의 외래어 표기 관습에 따라 영어식으로 표기된 경우가 있다. 이것은 은하제국의 시조인
루돌프 황제가 '옛 게르만풍의 성을 하사했다'는 원작의 서술에 따라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참고 자료들의
철자를 표준 독일어 발음으로 파악하여 그것을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번역 표기하였다.
예를 들어 원작에는 '쇤코프'의 이름은 '월터(ワルタ- )'라고 쓰여 있지만 참고 자료에 따르면 철자는
Walter von Sch nkopf이다. 이때 Walter를 영어식을 읽으면 월터가 되기도 하지만 독일어의 [v] 발음에
대한 일본어의 관용적 표기와 해당 인물이 원래 제국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하여 번역 표기 시에는
이름과 성을 모두 독일식 발음을 채택하여 '발터 폰 쇤코프'로 썼다.
또 다른 예로는 뮐러의 기함이 있다. 이 책에서는 '파르치발'로 번역해 놓았는데, 이는 원탁의 기사로
유명한 '퍼시발'과 동일 인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영국식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일본어 소설
원문에도 독일식 발음이 사용되었으므로 다소 생소한 감이 들더라도 원작을 존중하여 독일어식
철자(Parzival)의 표준 발음으로 표기하였다.
물론 독일식 이름이라고 해도 경우에 따라서는 예외가 있을 수 있으므로 무조건 독일식 발음을 적용한 것은
아니다.
7) 원작의 의미를 중시
미터마이어의 기함의 경우처럼 원문의 일본어 표기를 발음하자면 '베이오울프(ベイオウルフ)'가 되지만
그에 해당하는 적절한 독일어나 영어가 없을 뿐더러 일본에서 나온 관련 자료들도 Beowolf, Beiowolf,
Beowulf, Biowolf 등등 서로 달랐다. 하지만 원문에 人狼(늑대인간)이라는 토가 달려 있다는 것과 제국군
함정 이름이 거의 독일어라는 것을 중시하여 늑대인간에 해당하는 독일어 - '베어볼프(werwolf)'라고
번역하였다.
이처럼 원작의 일본어 표기와는 다소 차이가 나더라도 원작자가 소설에 밝힌 이름의 의미가 있다면 그것을
중시하여 의미에 맞는 단어를 찾아 그 발음을 표기하였다.
8) 기타
- 기타 자료에 나온 철자의 발음에 따라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표기가 매우 부적절한 경우 원문의 표기와
원어 발음에 입각하여 약간의 수정을 가했다.
- 원작 소설은 일본에서 출간된 가장 최신판을 기준으로 삼았다.
**
이렇게 저렇게 이름 하나 가지고 씨름한 것이 얼마나 될까? 사람 이름 하나, 지명 하나 간단히 붙인 것이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거기에 일일이 설명을 붙이자면 한 권의 '은하영웅전설 해설판'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출간이 늦어진 대부분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변명해도 이해해 주시리리고 믿는다.
그러나 그러나...
장미는 장미라는 이름이 아니더라도 여전히 아름다울 거라는 셰익스피어의 말이 떠오르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 '양 웬리'든 '얀 웬리'든, 그 광대하고도 현란한 원작의 매력은 절대 사라질 수 없다는 데 모든 '은영전'
매니아들과 다나카 요시키 팬들은 동감할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끝으로 제대로 된 번역판을 내는 데 많은 도움을 준 한국과 일본의 매니아들에게 감사의 마음과 함께
출간이 늦어진 데 대한 사과의 뜻 또한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