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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 1: 21. 여호와께서 징벌하셨다 - 룻 1: 22. 보리 추수 시작할 때
룻 1: 21. 여호와께서 징벌하셨다 -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칭하느뇨? 하니라. )
1]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이 말에 대한 해석으로는 다음 두 가지가 있다.
Ⓐ 엘리멜렉의 가정이 지방 귀족 가문으로서, 그들이 모압을 향해 떠나던 당시에는 베들레헴에서 널리 알려질 정도로 부유하였다(David Atkinson, Leon Moris).
Ⓑ 나오미가 풍족하게 나갔다는 말은 재산이나 명예의 풍부가 아니라, 든든한 남편과 두 아들로 풍족하게 나갔음을 의미한다(Keil, A. C. Hervey).
본 장의 전후 문맥을 살펴볼 때 우리는 위의 두 가지 내용이 모두 함축되어 있다고 본다. 즉 나오미가 떠날 때 '풍족했다'는 표현은 분명히 사람뿐 아니라 재물도 포함된다.
그렇지만 나오미가 돌아올 때 남편과 자식들이 없이 빈손으로 돌아온 것에 초점을 맞추면 두 번째의 주장도 타당하다. 사실 충족한 재산을 가지고 이방 땅에 가서 재난으로 망하지 않았다면, 그곳에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었을지라도 재물까지 잃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오미와 룻이 베들레헴에 정착하여 생활한 형편을 보면(2: 2), 재물까지 잃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나오미가 떠날 때 풍족했다는 표현을 쓴 것은 위의 두 가지 모두를 포함한다고 본다.
2]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1)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 하셨다.
'징벌하다'에 해당하는 '아나'(히)는 눈 밖에 난 자를 비천하게 만들어 결국 괴롭게 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2)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다.
'괴롭게 하다'에 해당하는 '라아'(히)는 하나님의 징계로 괴로움을 당할 때 사용되는 말이다. 나오미가 본 절에서 이 두 단어를 반복하여 사용한 것은
① 자기의 고통스러움이 분명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
② 그 징벌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겸손히 받아들인다는 회개의 의미로 설명될 수 있다.
3]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자신을 철저하게 회개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바울도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니라.(고전 9: 16)'고 고백한다.
모압 땅에 내려갔다가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뜻이요, 빈손으로 돌아오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뜻이요, 룻을 동행케 하신 것도 하나님의 뜻임을 알았기에 자신을 나오미로 부르지 말라고 고백한다.
환난 중에 나와야 한다.
나오미는 이방 며느리 룻과 함께 초라한 모습으로 10년만에 베들레헴으로 돌아왔다. 어느새 온 성읍에 엘리멜렉의 아내 나오미가 돌아왔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녀가 10년 전 베들레헴을 떠날 때 만해도 그 이름만큼이나 기쁨과 행복으로 모든 사람에게 자랑스러웠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지 10년만에 다시 나타난 나오미는 예전의 아름답고 도도한 자태는 찾아볼 수 없고 늙고 남루한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놀랐다. “아니 당신이 10년 전에 우리를 떠났던 엘리멜렉의 아내 나오미가 아니요?”
나오미는 고향 사람들의 환영하는 것에 자신이 추하고 부끄러워졌다. 하나님께 돌아왔지만 부끄러운 것뿐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부끄러움을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룻 1: 20)
그러나 다행히 나오미는 그 모진 환난 가운데서도 부끄럽지만 하나님께 나왔다. 오늘 이 자리에 고난과 풍파로 늘 괴로움을 당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왜 하나님은 나를 이토록 치실까? 나오미처럼 「하나님에 대한 공포 의식」에 싸인 분이 계십니까?
끝이 없는 고통과 아픔의 세월 속에 하나님의 존재조차 의심할 정도로 신앙에 어려움을 겪는 분이 계십니까? 남들은 모두 평탄한 길을 가는데 나는 왜, 이토록 어려운 시련을 주시는가 이해할 수 없어 의심에 빠진 분이 계십니까? 두려움과 의심을 떨쳐 버리고 하나님께 나갑시다. 나오미처럼 끝까지 환난 중에도 선을 베푸시는 하나님께 나옵시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환난 가운데 소망을 주신다. (20).
쓴 환난은 인생의 약이다. 나오미는 베들레헴 사람들에게 자기를 「나오미」라고 부르지 말고 「마라」라고 불러 달라고 했다. 이유는 전능자가 자기를 심히 괴롭게 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모압 생활 10년만에 남편을 잃고 두 아들을 잃고 가산을 다 잃었다. 정말로 감당할 수 없는 괴로움이다. 「마라」→(괴로움, 쓰다) 라는 뜻이다.
여기서 우리는 출애굽기 15장으로 돌아가 「마라」의 샘을 생각해 봅시다.
* 출 15: 23-24 – 23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24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모세의 인도 아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진입하였다. 수르 광야에서 3일 길을 걸었지만 마실 물이 없어서 고통 중에 반갑게 만난 샘의 물을 마셨더니 너무 써서 마실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샘물을 「마라」라고 칭하며 모세를 원망하였다.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은 한 나뭇가지를 물속에 넣게 하였고 그 나무를 넣자, 물이 달아져서 모든 백성들이 갈증을 해결했다. 하나님은 그 쓴 물로 인도하시고 나뭇가지로 물을 달게 한 사건을 통하여 중요한 메시지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셨다.
* 출 15: 25-26 – 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26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쓴 물을 단물로 치료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의를 행하며 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생의 쓴 고난이 닥칠 때 해결 방법은 하나님과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 마음대로 살아도 꿀송이 먹는 것 같이 살게 되면 하나님을 영영히 잊게 된다.
인생의 고초가 심할 때야말로 하나님의 부르시는 손길임을 알아야 한다. 말씀으로 돌아갑시다. 여호와 하나님을 가까이합시다. 쓴 물이 달아질 것이다. 아이가 병이 들 때 엄마는 아이가 약을 싫어해도 강제로 먹이는 것은 병을 물리치고 건강하게 하기 위함이다.
나오미의 모압 생활이 쓴 괴로움의 고초가 있었기에 전능자 하나님을 찾아 나오게 된 것이다.
* 사 55: 6-7 – 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2) 치신 것은 다시 싸매주시기 위함이다.
나오미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다」고 고백한다. 하나님이 성도들을 정말 치실까요? 그러면 물어봅시다. 여러분은 자녀를 매로 때린 일이 있습니까? 왜 때립니까? 죽으라고 미워서 때립니까? 잘되라고 때리는 것이지요.
* 잠 13: 24 -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 히 12: 5-6 – 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의 징계에 대한 잘못 된 두 가지 태도가 있다. 하나는 하나님의 매를 우습게 여기는 태도이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매를 노엽게 여기는 태도이다. 하나님의 매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참 아들이라는 증거이다.
* 히 12: 8 -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돌아온 나오미는 이제 하나님의 다시 싸매 주심으로 위로를 받게 되었다. 저의 종아리를 치고 제가 잘 때에 종아리에 약을 발라 주며 우셨던 어머니의 추억이 새롭다. 그 종아리의 회초리가 없었던들 오늘의 제가 있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돌아오십시오. 몸만 오지 마시고 마음으로 돌아오십시오. 하나님은 다시 싸매 주신다.
(3) 비웠으나 채워 주신다. (21).
그들이 빈털터리로 베들레헴에 이르렀을 때는 보리 추수가 시작할 때, 풍성한 수확의 때였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은 그들의 빈 그릇을 다시 채워 주시기로 작정하셨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을 떠난 풍성함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이다. 하나님을 떠나서 빈 그릇 되는 것이 축복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에게 풍성히 채워 주시기 원하십니다.
* 창 27: 28 -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풍성히 채움을 받으려면 그릇을 준비해야 한다. 깨끗한 그릇이 되어야 하겠고, 바로 놓은 그릇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나오미의 마음의 그릇이 깨끗하고 바로 놓이기까지 비게 하셨다. 여러분의 주머니가 비어 갑니까? 가계부에 적자가 납니까? 마음의 그릇을 준비합시다. 깨끗하게 바르게 준비할 때에 비로소 채워 주신다.
(4) 하늘의 축복을 채워 주시기로 작정하셨다.
무엇보다 나오미와 룻에게는 먹는 육신의 양식보다 더 고귀하고 기쁜 것이 있다. 환난 가운데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는 기쁨을 채워 주셨다. 하나님을 떠난 죄를 용서받는 기쁨을 채워 주셨다. 죽었던 엘리멜렉의 가문을 다시 일으키시는 기쁨을 채워 주셨다.
무엇보다 이방 여인 룻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인 복음의 구원자이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품에 모시게 되었다.
* 룻 4: 17 -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 마 1: 1-6 – 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4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룻 1: 22. 보리 추수 시작할 때 -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의 며느리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 자부 모압 여인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
1]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의 며느리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 시기
가나안 지방에서는 일반적으로 보리를 가을에 파종하여 이듬해 봄에 추수한다(2: 23). 그리고 보리 추수가 끝날 무렵에는 밀을 수확한다. 보리 추수는 보통 4월 말경에 시작하나(수 3: 15) 고원 지대에서는 5월 또는 6월 초순이 되어야 시작한다.
보리는 가나안 지방에서 생산하는 주산물 중 하나로서 주로 말이나 노새의 먹이로 경작되었으나,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양식으로 사용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보리 수확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바치고 봉헌하기 위해 '초실절'(初實節)을 절기로 지킨다(레 23: 9-14).
본 절은 나오미가 자기 고향 땅에 풍년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6절), 곧바로 모압 땅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왔음을 보여 준다.
사도 바울의 개종도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사흘 동안을 보지 못하였으나 아나니아를 통하여 다시 보게 되고,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였다. (행 9: 1-22)
* 딤후 4: 2 -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2]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예수님은 농사의 비유를 많이 가르치셨다. 이 비유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농부가 씨를 뿌림은 추수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도 최후의 심판을 목적으로 보내셨다.
세례 요한은 이렇게 증언했다.
* 마 3: 11-12 – 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주님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 마 19: 28-29 –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29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나오미가 언제 돌아왔는가? 보리 추수할 때 돌아왔다. 은혜 받을만 한 때에 돌아온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도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사 55: 6)고 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할 때도, 봉사하는 일도, 기도하는 것도 영적으로 좋은 때가 있다. 그 때를 알 수 있어야 한다.
본 장의 교훈을 정리해 보자.
첫째, 하나님을 떠나면 실패한다.
나오미 가정의 실패 원인은 모압으로 이주한 데 있었다. 본 장에는 ‘모압’이라는 단어가 일곱 번 나온다(1, 2, 4, 6, 6, 22, 22절).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떠나 모압 땅에 내려가 거주한 것은 하나님의 뜻에 배치되는 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와 그 가정을 치셨고 심히 괴롭게 하셨다(13, 20, 21절).
그의 남편과 두 아들들은 거기서 죽었다. 그는 풍족하게 나갔지만 빈손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를 떠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바른 교회를 선택하여 거기에 속하고 그 교회를 떠나지 말고 그 교회에 충실해야 한다.
둘째, 하나님은 회복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기근으로 고생했던 자기 백성을 돌아보셨고 유다 땅을 기근과 고통으로부터 회복시키시고 평안을 주어 모든 것을 잃고 빈손으로 고향에 돌아온 나오미가 그를 끝까지 따라온 착한 며느리 모압 여자 룻을 통해 회복을 얻게 하셨다.
룻은 믿음 있고 착하고 효심 있는 며느리이었고 시어머니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은혜와 긍휼로 우리를 구원하셨고 지금도 인도하신다.
셋째,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 자를 사용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모압 여인 룻이 구약성경의 한 책의 책 이름과 그 책의 중심 내용이 되게 하셨다.
룻은 모압 땅에서 태어난 모압 여인 즉 이방 여인이었고 육신적으로는 아브라함의 복과 상관없는 자이었으나 그를 이스라엘 나라에 편입되게 하셨고 복되게 하셨다.
하나님의 뜻은 온 세계에 예수 그리스도의 소식이 전파되어 택함을 받은 이방인들이 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얻는 것이다.
세계 복음화는 하나님의 뜻이다. 우리도 그 이방인들 중에서 구원 얻은 자들이다. 우리는 이 일을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 복음을 온 세상에 널리 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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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별일 없이 사는게 큰 행복입니다.
오늘도 순탄한 시간 되시고 늘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