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면목견지(何面目見之) – 무슨 면목으로 사람들을 대하겠는가
[어찌 하(亻/5) 낯 면(面/0) 눈 목(目/0) 볼 견(見/0) 갈 지(丿/3)]
얼굴과 눈(面目)은 자신을 남에게 보여주는 첫 번째 신체기관이다. 자기도 남의 됨됨이를 얼굴과 눈으로 평가한다. 사람이나 사물의 겉모습만 본다는 위험이 있으나 우선 보이는 것이 얼굴이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을 모르고 염치가 없으면 ‘얼굴이 두껍다’고 하고 죄인의 얼굴에 먹줄로 죄명을 새기는 黥(경)을 가장 무서운 형벌로 여겼다. 그래서 면목은 남을 대하기에 떳떳한 도리나 얼굴인 체면과 같이 인격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면목이 들어간 말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무슨 낯이 있어(何面目) 남을 보겠는가(見之)란 이 성어다. 실패하고서 고향에 돌아갈 수 있겠는가 하며 項羽(항우)가 남긴 최후의 말에서 나왔다. 無面渡江(무면도강), 無面渡江東(무면도강동)이라고도 한다.
중국 秦始皇(진시황, 기원전 259~210)이 죽은 뒤 혼란의 와중에 빠진 천하는 항우와 劉邦(유방)의 楚漢(초한) 쟁패로 좁혀졌다. 초기엔 ‘힘이 산을 뽑는(力拔山/ 역발산)’ 항우가 기세를 떨쳤으나 5년이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유방에 몰리게 되었다.
垓下(해하)에서 四面楚歌(사면초가)로 기력을 잃은 항우군이 참패를 당한 뒤 800여 기병을 이끌고 포위망을 뚫었다. 정신없이 쫓기는 중에 한 농민이 길을 잘못 가르쳐줘 수천의 추격군에 몰린 초군은 烏江(오강)에 이르렀을 때는 26명만이 남았다.
오강에서 배를 준비하고 기다리던 亭長(정장)이 항우에게 건너기를 권했다. 강을 건너기만 하면 처음 군사를 일으킨 江東(강동)이니 그곳에서 다시 왕업을 도모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항우는 웃으면서 하늘이 자신을 버렸는데 강을 건널 수 없다고 했다. 강동의 자제 8000명과 함께 이 강을 건넜는데 지금 돌아갈 자는 아무도 없다면서 말한다.
‘설령 강동의 부형들이 나를 불쌍히 여겨 왕으로 삼아준다 한들 내가 무슨 면목으로 그들을 볼 수 있겠는가(縱江東父兄憐而王我 我何面目見之/ 종강동부형련이왕아 아하면목견지)?’ 이렇게 말하고는 烏騅馬(오추마)를 정장에게 주고 칼로만 대적하다 옛 부하였던 呂馬東(여마동)을 보자 현상금을 가지라며 목을 찔러 31세의 생을 마감했다. ‘史記(사기)’ 항우본기에 실린 내용이다.
누구나 잘못을 알고 있는데 자신만 모르는 얼굴 두꺼운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완벽한 사람은 없는 만큼 실수할 수는 있어도 그 잘못을 남에게 전가하거나 숨긴다면 더 큰 화가 돌아온다. 항우처럼 목숨을 던질 일이 아니l라면 잘못을 인정하고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 옳겠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