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여행길과 관람은 아이러니하다.
기분이 상쾌하면서 아련한 감상에 젖어 든다.
슬픔과 기쁨이 묘하게 공존하는 이유를
시인 도종환은 ‘단풍 드는 날’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시인은 시구를 ‘방하착(放下着)’이라는 말로 이어간다.
‘마음을 비워라, 마음을 내려 놓아라”라는 말로 해석되는 불교 용어다.
그렇다. 단풍이 아름다운 것은 제 몸을 온전히 비워냈기 때문이다.
슬픔이 담긴 아름다움이기에 더욱 오래 잔상이 남는다.
이렇게 우리는 ‘비움의 미학’을 단풍나무에서 배운다. 저무는 것은 아름답다.
한 해의 저물어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10월, 그 하순을 달리는 길목,
아름다운 가을에 단풍에 물들고 억새에 반하는 유혹에 젖는다.
10월, 우리나라 전역의 산하는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아름답게 치장된다
금년 여름은 늦게까지 유례없는 긴 폭염과 늦게까지의 여러차례 태풍,
그리고 좀 일찍 온 일교차로 더욱 진한 붉고 누런 형형색깔로 가라입은
단풍은 설악산을 시작으로 중부지방과 지리산에는 10월 초부터 중순,
남부지방에서는 10월 10~20일부터 절정기의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한다.
노랗고 빨갛게 물든 단풍과 함께 가을 여행과 관람을 풍요롭게 만들며
유혹하는 것은 눈부시게 하얀 꽃을 피워내는 억새다.
그리고 해지는 강가를 갈색으로 물들이는 갈대 역시 가을 길의 좋은 동반자다.
1년 내내 같은 모습으로 하늘거리는 듯 보이는 억새와 갈대지만
자세히 보면 가을이 깊어지면서 큰 변화를 겪는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그것이다.
9월이 되면 억새의 가지 사이에 움츠려 있던 꽃대가
힘차게 올라오면서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꽃잎은 없고 암술과 함께 노란 꽃밥이 주렁주렁 달린 수술을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꽃이 필 때는 꽃차례가 자주 빛을 띠고 있고
열매를 달기 시작하면 서서히 은빛을 띠기 시작한다.
그것은 꽃 가루받이가 끝나고 열매를 퍼뜨리기 위해 씨앗을 바람에
날리기 위해 수염 같은 은빛의 날개를 달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억새 꽃이 피었다고 하지만
사실은 꽃이 지고 열매를 맺는 모습이다.
이에 비해 흔히 ’갈꽃’이라고도 부르는
갈대꽃은 억새 꽃보다 좀 늦게 피어서 11월 말쯤 만개한다.
그런데 갈대꽃이 바래지거나 역광을 받아 하얀색을 띠게 되면
억새 꽃과 비슷해 보이는 경우도 있다.
갈대꽃은 억새 꽃보다 크고 야무져서 예전엔 방 빗자루로 만들어 썼다.
시인들은 꽃의 모양을 살펴, 희고 부드러운 여성을 닮은 억새 꽃과
거칠고 투박한 남성을 닮은 갈대꽃으로 구분하기도 했다.
가을이 다 가기 전, 단풍에 물들고 억새와 갈대에 반하는 가을 유혹을
이기지 못하여 가족이나 친한 벗들과 또는 동호인 모임에 끼어,
주위에서 여행과 관람해 보기를 권하는 곳이 서울근교에도 많다.
자료를 찾아보니 금년에 추천하는 우리나라 아름다운 곳이 아래 있는데,
바쁜 일상에서 짬을 내어 이 가운데 적어도 두어 곳은 꼭 찾아보길 권한다.
최고의 단풍절경으로 꼽히는 설악산의 남설악이라 부르는 홀림골과 주전골.
꽃 무릇 진 곳에 화려한 단풍 피어나는 전북 고창 선운산.
그 옛날 현인들의 가을 산책길인 동두천 소요산.
신묘한 낯선 풍경에 물드는 청송 주왕산과 주산지.
은빛 억새의 바다를 이루는 울산 신불산.
한강 야경과 은빛축제가 한창인 서울 월드컵경기장 하늘공원 억새 밭.
서울근교 광주시 곤지암의 잘 꾸며진 단풍관람과 각종 나무와 꽃길의 화담숲.
스카이큐브의 이색경험을 할 수 있는 순천만 갈대자연생태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