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불교에서 배우는 불교 현대화 방안
달라이라마 스님의 감화력으로 인해서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과거의
우리나라 불교인 가운데 티베트불교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분들이 적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출가하여 독신으로 생활하며 수행하는 것이
부처님 이후 모든 스님들의 삶인데 티베트의 사원에는 남녀가
앉은 자세로 부둥켜안고 성교를 하는 모습의 불상이 모셔져 있다.
얍윰(Yab Yum) 또는 부모존(父母尊)이라고 불리는 합체존(合體尊)이다.
참으로 외설적이고 흉측하고 볼썽사납다.
"身體髮膚(신체발부) 受之父母(수지부모) 不敢毁傷(불감훼상)이
孝之始也(효지시야)."라는 공자님의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고,
부관참시(部棺斬屍)를 치욕의 형벌로 생각하던 유교문화권에서 살아온 우리가
보기에, 풍장(風葬) 또는 조장(鳥葬)이라고 불리는 티베트의 장례의식은
불경스러운 것은 물론이고 엽기적이기까지 하다.
장례식을 마무리 하면서 스님들이 시신을 메고 산 위로 올라가 냄새가
진한 향을 피운다. 수백 년간 장례식 때 마다 피워온 그 냄새를 맡고
독수리 떼가 몰려온다. 스님들은 칼로 시체의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고
팔과 다리, 목을 툭툭 잘라서 독수리 먹이로 준다.
시신이 깔끔히 정리되면 스님들은 가사와 손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산을 내려온다. 티베트불교의 전통적인 장례의식이다.
티베트밀교에서 스승이 제자의 귀의를 받는 관정의식은 무속인들의
'내림 굿'과 다를 게 없고, 티베트사원을 가면 우리나라의 성황당에서
보던 오색찬란한 깃발들이 바람에 나부낀다.
외설, 엽기, 무당, 미신 등 티베트 불교의 외형만을 본 많은 사람들은
이런 단어들을 떠올리면서 거부감을 넘어서 혐오감조차 느낄 수 있다.
그러나 티베트인들이 이러한 외형에 부여한 의미를 알고 나면
우리는 그들의 지혜에 감탄하게 된다.
합체존은 원래 힌두밀교에서 우주창조를 상징하는 존상(尊像)이었다.
앉아 있는 남존은 파괴의 신인 쉬바(Siva)이고 여존은 성력(性力)을 의미하는
샤끄띠(Sakti)였다. 쉬바와 샤끄띠의 합체는 우주창조를 상징하였다.
인도불교 말기에 힌두밀교에서 성적인 종교의례가 널리 퍼지면서 불교사원에고
이런 합체존이 모셔진다. 그러나 불교인들은 이에 대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였다.
남존은 '자비의 방편'을 의미하고, 여존은 '반야의 지혜'를 의미하며,
합체존의 오르가즘은 '깨달음의 대락(大樂)'을 상징한다.
힌두밀교의 합체존이 '지혜와 자비를 갖춘 깨달음'의 상징으로 변신한 것이다.
티베트고원은 추운 곳이라서 시체가 썩지 않는다.
화장을 하려고 해도 나무가 귀하다.
그래서 피치 못하게 시신을 독수리에게 먹이로 주는 조장,
또는 풍장의 풍습이 있었는데, 불교가 전래된 후에도 이 풍습을 바꿀수는 없었다.
티베트의 불교인들은 이런 장례의식을 그대로 계승하면서 새롭게 두 가지
의미를 부여했다. 하나는"나의 시체를 배고픈 중생을 위해 보시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몸이 언젠가 독수리의 밥이 될 것을 알기에 집착에서
벗어난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의미부여로 인해서 티베트의 전통적인 조장(鳥葬)이
자비심을 키우고 탐욕을 제거하는 불교수행의 한 방편으로 재탄생했던 것이다.
근대화 이후 물밀듯이 들어온 서구 문물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불교를 현대화하고자 할 때, 티베트인들이 불교 밖의 문물과 의례를 불교적으로
변형시켰던 방식이 좋은 참고가 된다. 새로운 의미부여! 티베트인들이 힌두밀교의
합체존이나 전통적인 조장풍습에 대해서 그렇게 했듯이, 서구에서 들어온
문물과 제도의 외형에 불교적 의미를 부여하여 이를 널리 보급하는 것이
바로 우리 사회에서 불교를 현대화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김성철교수의 불교하는 사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