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승당으로
한 해가 저문다. 십이월 넷째 금요일은 방학에 드는 날이다. 삼십여 일 보내고 설 쇠고 이월 초 개학해 일주일 나와 졸업식과 종업식을 끝내면 학년도가 끝난다. 오전에 방학식 후 학생들은 하교했다. 교직원들은 전세버스 두 대로 통영으로 워크숍을 떠났다. 점심을 들고 요트로 한산도로 건너가 제승당을 답사하고 통영 국제음악당을 둘러보기로 되었다. 횟집 저녁식사도 예정되었다.
교직원 수가 많다 보니 전제 친목회 행사가 쉽지 않았다. 초봄 전입교사 환영회에 나가곤 이후엔 한 번도 자리를 못했다. 길흉사가 있어도 경조금은 간접으로 전하고 말았다. 방학 들면서 그간 못다 쓰고 밀려둔 친목회 회비를 써야하는 입장이었다. 나는 창원으로 바로 복귀하지 않고 행사에 기꺼이 동참했다. 한 해를 보내면서 거제와 가까운 통영은 시외버스로 한 번 스쳤을 뿐이다.
시내를 비켜 지나 통영대교를 건너 통영고등학교 앞에서 삼계탕으로 점심을 들었다. 평소 급식소서만 자리를 하다가 학교 바깥 식당에서 오붓하게 한 자리 앉았다. 동료교사들은 물론 행정실과 급식소 조리 종사원도 함께 식사를 들었다. 점심 식후 요트로 제승당으로 건너가기로 예정했는데 시간에 여유가 있어 순서를 바꾸어 마리나 리조트 곁 통영국제음악당 투어를 먼저 하게 되었다.
옛 관광호텔 자리에 지은 통영이 낳은 세계적 음악가 윤이상을 기린 음악당이었다. 건물 바깥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나니 마침 교장과 연이 닿는 음악당 관계자가 나와 반갑게 맞아주었다. 음악당을 설계하고 운영까지 책임진 실무자였다. 내부로 들어 분장실을 물론 무대 위에도 서 보는 행운을 누렸다. 스피커로 음량을 키우지 않은 육성의 자연음이 그대로 객석 청중에 전달된다고 했다
콘서트홀 로비엔 윤이상과 동시대 화가였던 전혁림 화백의 원색이 강렬한 그림이 타일로 제작되어 붙여져 있었다. 관계자자 안내한 분장실은 창밖으로 바다가 보여 연주자를 위한 편안하고 아늑한 공간이었다. 음악당을 둘러본 후 요트를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내려갔다. 간단한 안전교육을 받은 후 요트 넉 대에 나누어 타고 제승당을 향해 떠났다. 요트는 푸른 바다를 넘실넘실 갔다.
젊은 날 몇 차례 들린 기억이 아슴푸레한 한산도 제승당이었다. 그때는 여객선을 타고 닿은 제승당이었다. 요트가 바다로 나아가자 우리가 떠나온 통영항의 모습이 새롭게 보였다. 동료들이 탄 다른 요트들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 나아갔다. 날씨는 조금 쌀쌀했다만 미세먼지가 없는 쾌청한 날이라 요트를 즐기기엔 좋았다. 곳곳에 굴인지 홍합인지 모를 양식장 부표가 떠 있었다.
계류장에 닿아 탐방로를 따라 제승당으로 향했다. 관리사무소를 지나 계단을 올라 제승당 경내로 들었다, 한산도 앞바다가 조망되는 곳에 세워진 수루에 다가갔다. 이순신이 읊은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시조가 편액으로 걸려 있었다. 기둥엔 그 시조를 한시로 바꾼 칠언 절구가 주련으로 걸려 있었다. 새내기 여교사가 그게 뭐냐고 물어와 시조를 한시로 바꾼 내용이라 했더니 감탄했다.
경내는 고목인 느티나무를 비롯한 활엽수들은 나목이라도 주변의 숲은 울창한 솔숲이었다. 수루에 올라 부서별로 사진을 남기고 충무사에 들려 참배하고 다시 요트를 탔다. 조직의 인화를 세심하게 배려는 하는 교장은 요트 선상에서 들 샴페인을 준비해 분위기를 살렸다. 젊은 동료들은 새우깡으로 갈매기를 유인해 요트를 계속 따라오게 했다. 석양에 비친 푸른 바다는 윤슬로 빛났다.
이제 사전 예약된 저녁자리가 기다렸다. 운하 해저터널 가까이 야경을 조망하기 좋은 5층 횟집이었다. 거제에서 맛보지 못한 싱싱한 생선회가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 기간제와 행정실 직원 이동에 대한 인사를 나누고 술잔을 채워 식도락을 즐겼다. 다찌로 불리는 안주는 술잔이 비우기 바쁘게 나왔다. 몇몇은 유목민처럼 자리를 옮겨 술잔을 권했다. 난 차수가 바뀌기 전 일어났다. 19.1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