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 블라우스를 입은 소녀 외 2편
박길숙
단추 세 개를 다 채우면 이 시간은 금방 사라질 거예요
어머니 너무 슬퍼 마세요
문밖은 전쟁이에요
안으로 어서 들어가세요
나는 봄을 파는 소녀
군인들은 내 위에 올라선 화르르 봄을 무너뜨리고 있어요
나비가 바덴산 너머 경계에 앉았어요
구름은 시간을 몰고 가고 저녁은 물소리를 내며 내려앉아요
물비린내가 저녁을 물들이고 있어요
아래 단추 두 개만 남았어요
저녁의 수염 위로 고양이가 내려앉아요
균형을 잃은 저녁이 기울어지고 있어요
동쪽부터 깊어지는 저녁의 온도, 이제 단추 하나가 남았어요
아직 블라우스는 다 입지 못했는데 동생들 눈에서 비린내가 나요
나비가 나타나 안대처럼 눈만 가려도 좋겠어요
나는 봄을 파는 처녀, 저녁에도 겨울에도 봄을 팔고 있대요
검정 블라우스를 입은 소녀
어머니, 나를 위해서 울지 말아요 마지막 단추를 채울 때까지
달 꼬리를 물고 가는 어둠 속으로
지붕 위 놀란 고양이들이 사라지고 있어요
탕, 타앙, 타아앙
내가 말했잖아요 문밖은 전쟁이라고
어서 문 안으로 들어가세요
이제 단추는 그만 채워도 되겠어요
브로콜리 숲으로 가요
누가 내려준 것입니까 여왕이라는 칭호
앞치마를 두르고 카레여왕을 젓습니다
양파는 말이 없고 당근은 길듭니다
브로콜리를 산 채로 집어넣자 양말도 신지 않고 달아납니다
대리석에 얼룩이 남았습니다
무엇으로 지워야 할까요 오늘의 기억은
루마니아산 초록 드레스를 입고
에나멜 붉은 구두를 신습니다
달아난 브로콜리를 잡으러 숲으로 가요
구두 굽은 자라나고
스커트 안으로 모여든 바람에 몸이 날아오릅니다
목주름을 감추려 구름을 두릅니다
구름을 흔들어 눈을 내리면
눈길을 걸어가는 발자국이 있습니다
흰 체육복이 얼굴보다 붉게 물들어 버린 날
휴지 뭉텅이를 돌돌 말아 아랫도리에 꼭 여민 아이
젖은 바지 속에서 불안은 번져 가는데
아이가 지나가는 눈 위에는 동백꽃이 피어납니다
굴 같은 울음을 뭉텅이로 쏟아 내면 악몽은 더 이상 자라나지 않아
초록 드레스를 벗어 열두 살 어린 나에게 입혀 줍니다
숲에서 누군가 울고 있다면
그건 누구도 아닐 거예요
동백꽃 얼룩 위를 달리고 있는
브로콜리 가쁜 숨소리일 겁니다
방범창
작은 창에는 창살이 있네
우리 대화가 새어 나가지 못하게
언덕 위 허물어지는 해바라기가 있네
언니야 나 저 꽃이 갖고 싶어
언니는 언덕을 붙잡고 시든 해를 꺾어 오네
언니가 만든 빨래집게가 양은 밥상 위 시간을 붙잡고 있네
돈 많이 벌면 예쁜 엄마와 친절한 학교를 사 줄 테야
은색 고리로 은귀걸이를 만들고 빨간 집게로 비행기를 만들지
파란 집게를 연결하면 기차처럼 시간은 늘어지네
얼룩, 얼룩, 울 언니는 자주색 가죽가방
언니가 새로 생긴 무늬를 보여 주며 스케치북을 내미네
괜찮아, 아프지 않아
나는 창에 기대어 침을 뱉지
나보다 먼저 무럭무럭 자라는 창살
파스텔 색깔이 곱게 퍼진 눈 위로 찢어지지 않기 위해 물이 드네
언니의 낮달이 눈썹처럼 걸렸네
나는 까만 크레파스로 검은 달을 만드네
판다가 된 언니, 웃네 울 언니가 웃네
해를 꺾어 시든 밤
언니는 지퍼를 열고 나를 담네
— 박길숙 시집, 『아무렇게나, 쥐똥나무』 (시인의 일요일/2024)
박길숙
부산 출생. 2017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삶에 저항하는 예술’과
‘삶이 되려는 예술’ 사이를 횡단하는 시인
동일자적 사유는 모든 사물과 현상이 본질적으로 하나이며 서로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강제한다. 파시즘은 이러한 동일자적 사유를 통해 국가와 민족을 하나의 유기체로 파악하고, 국가의 통일과 안정을 위해 모든 구성원의 복종과 희생을 요구한다. 역사적 파시즘은 종식되었으나, 동일자적 사유의 폭력은 파시즘의 뿌리로 여전히 이 세계에 잠복되어 있다. 동일자적 사유의 집단화는 개별자의 욕망을 집단화된 주체의 욕망을 승인하기 위한 거수기로 전락시킨다. 이 시집의 도처에는 개별성을 말살하는 동일자적 폭력에 대한 경계심이 포진하고 있다.
이 시집의 모던한 이미지들은 자본주의의 환등상에서 비롯되고 있지만 역으로 환등상에 미세한 균열을 낸다. 자본주의의 주술 속으로 걸어 들어가 그 주술을 내파하는 언어를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환등상을 내파하는 시인의 힘은 “상자에서 태어난 인형”, “피와 살이 없는 너는 마론 인형”, “바닥부터 알아채는 눈치 빠른 인형”(「상자들」)과도 같은, 자본주의의 주술이 닿지 않은 원초적 과거의 기억에 뿌리내리고 있다. 시인은 과거의 원초적 이미지로써 현재(자본주의)의 주술을 정지시키는 변증법의 언어를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집은 여전히 이 세계를 지배하는 동일자적 사유의 폭력을 넘어서고자 하는 시적 기획이다. “나에겐 걸어도 된다는 면허가”(「적도에서 온 남자」) 요구하는 세계, “여자 얼굴을 익반죽하는”(「맨홀」) 남근주의적 폭력이 자행되는 세계를 넘어 모든 개별자들이 “제목이 있는 블라우스를 입고/ 무릎이 나온 문장에 밑줄을”(「연꽃잎의 소매를 단 블라우스」) 그을 수 있는 세계, “각자 주어에 밑줄을 긋고 자신에게 질문을 던”(「모호로비치치의 연설문」)지는 세계를 소망한다. 그 세계는 “최소한 같은 곳을 보고 몸을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세계, “담벼락을 넘어가는 능소화”(「가족사진」)가 마주하는 세계다. 시인의 시는 “누수를 앓던 방”(「나의 우주선」)을 벗어나 그러한 세계를 견인하고자 하는 발랄하고 모던한 시적 고투라고 할 수 있다.
— 출판사 책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