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6일 오후 3시, 대한민국 백성의 한 사람이 뉴스 속보에 허탈해진다.
안철수 교수에 대한 인신털이 내용이 비열하기 그지 없다. 정말로 치졸하고 비겁하고 비열하다.
금태섭 변호사는, 송호창 변호사는 이러한 비열한 행위가 여권의 비일비재한 부정행위에 대한 꼬리자르기로 밀어붙이고 개인의 사적인 일로 몰아갈 것이다 고 얘기 했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4시경에 정준길 위원이 바로 친구끼리의 개인적인 충고에서 나온 충정어린 얘기였다 고 바로 얘기를 언론에 발표했다.
며칠 전에 얘기한 내용이 있지만, 개인의 사찰문제, 국민 백성에 대한 사찰문제가 그 주요 문제인데 지금 언론에서는 대통령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사람에 대한 사찰로 보고있는 시각과 또하나 친구간의 사적인 내용의 대화로 보는 시각이라는 의견으로 분분해지고 있다.
그러나 내 생각은 정준길 위원 박근혜 선대위의 공보위원이고 검찰출신이었던 사람의 얘기, 그것도 아침 벽두 7시 57분에 차안에서 전화로 친구에게 얘기했다. 그것도 대선캠프의 상대편에게 도와주기 위해 조언했다? 참으로 우정어린 얘기로 받아들여야 할까?
참으로 우스운 코미디이다.
며칠전 박근혜 후보와 이명박 대통령이 만나서 서로 협조해달라는,물론 현 정부의 여러가지 어려운 서민의 고토에 대한 정책적 배려를 부탁했다는데 국민의 시각은 그 얘기만 했겠느냐? 대선후보와 여권의 협조얘기도 있을 수 있지 않겠나? 그러니까 현 대통령이 대선에서 편파적인 선거개입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어났던 것이다.
자, 우려한 것은 이러한 중요한 여권 대선 선대위 공보위원 자리에 있는 사람이, 그것도 머리가 똑똑한 서울대 나왔고 고시를 통과한 검사출신이라는 사람이 이러한 협박성 말을 했다면 머리속이 복잡해진다.
과거 정권의 독재행위에 의한 민주 헌정의 파괴행위, 그리고 민간인 사찰과 공안정국, 그리고 모든 정보라인, 공안라인이 총동원되던 시절의 행태가 연상되는, 심장이 덜컥 떨어지는 듯한 심정이다.
우리서민 백성은 참으로 슬프다. 50년, 100년 뒤로 가는 역사를 어찌해야 할 것인가?
박 근혜후보 주변의 인물들이 하는 행태는 아버지 시대의 독재 정권 주변이 했던 행태와 어찌 그렇게 똑같이 반복되고 있는지....
언론은 참으로 관대하다. 모두다 친구들끼리하는 얘기인데 너무 과장하는 것 아닌가? 라는 시각이다.
참으로 걱정이 앞선다.
야권이 하는 잘못은 아주 신랄하게 비난하고, 여권이 하는 실수는, 박근혜후보의 선대위의 공보위원이고 검찰출신이었던 사람의 실수라고? 아니 어떤 의도된 협박인지 모르겠지만,,,
아니 민주헌정을 파괴하고 역사를 뒤로 돌리고 있는 일을 해도 뭐 그럴 수 있는 것이지...
이를 어찌 해석해야 할지?
국가의 최고의 공복인 대통령은 혼자서 국가를 다스리는게 아니질 않는가?
그 주변의 사람들, 특히 대선 선거 캠프에 참여한 사람들의 공신대우를 무시하지 못하는 인지상정이라는 측면에서 이러한 사건을 보면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
답답한 가슴이 먹먹해 온다.
이것이 여권의 대선 후보 박근혜후보에 대한 세멘트 고정지지라는 것인가?
참으로 슬픈 시대에 백성 서민은 어디에 마음을 두고 감동을 바라다 보아야할까?
99% 백성은 언제쯤 감동의 역사를 맞이 할 수 있을까?
안 철수 측 "박근혜 측, 대선 불출마 협박" 대선 불출마 종용 7분간 통화 --->뇌물과 여자문제로 안 원장 측 협박... 박근혜 측은 전화한 적응 있지만 "사실무근"이다고 발표
[2신: 6일 오후 4시 52분]정준길 새누리당 공보위원이 6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원장의 대선 불출마 종용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그는 "여러 기자 분들과 시중에서 나도는 얘기를 말하며 제대로 검증 안 되면 출마하시더라도 쉽지 않을 것이란 취지의 얘기를 한 게 전부"라며 "일개 공보위원에 불과한 제가 불출마를 종용하거나 협박할 입장이나 지위를 갖고 있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1신 기사대체 : 6일 오후 3시 43분]안철수 서울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측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측에서 안 원장의 '뇌물과 여자문제'를 폭로하겠다며 불출마를 종용했다고 밝혔다. 안 원장을 향한 의혹을 해명하는 창구인 페이스북 '진실의 친구들'을 운영하고 있는 금태섭 변호사는 6일 오후 프레스 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 9월 4일 오전 정준길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대선기획단 공보위원 전화를 해, 안 원장이 대선에 출마할 경우, 뇌물과 여자문제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하며 대선 불출마를 종용했다"고 밝혔다. 폭로하겠다는 내용은, 안랩(구 안철수 연구소) 설립 초창기인 1999년 산업은행으로 투자 받을 당시 투자팀장인 강아무개씨에게 주식 뇌물을 공여했다는 의혹이다. 또, 안 원장이 목동에 거주하는 음대 출신의 30대 여성과 사귀고 있었다는 내용이다. 금태섭 "정보기관·사정기관의 조직적 뒷조사 새누리당에 전달됐나, 의심"금 변호사에 따르면, 정 공보위원은 "우리가 조사해서 다 알고 있다, 그걸 터트릴 것이기 때문에 (대선에) 나오면 죽는다"라고 말하며 출마하지 말라고 여러 차례 협박했다고 한다. 금 변호사는 "안 원장에게 확인한 결과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있지도 않은 사실을 가지고 폭로하겠다고 협박하면서 불출마를 종용하는 것은 국민과 헌법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고 말했다. 안 원장에게 이 같은 협박 사실을 전하자 안 원장은 "정말인가요"라며 사실 여부를 재차 확인했다고, 금 변호사는 전했다. 그는 "최근 보도된 경찰의 안 원장에 대한 사찰 논란 및 '조사해서 다 알고 있다'는 정씨의 언동에 비추어 볼 때 정보기관·사정기관의 조직적인 뒷조사가 이뤄지고 있고, 그 내용이 새누리당 측에 전달되고 있지 않느냐는 강한 의심이 든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 같은 의혹에 대해 수사기관에 의뢰할 예정이냐는 질문에 금 변호사는 "여러 사람과 상의해서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근거 없는 유언비어의 근원지와 조직적 유포에 대한 제보가 속속 이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새누리당 대선기획단은 국민에 사과해야 한다"며 "이러한 범죄 사실에 대해 사전에 알고 있었는지 공모했는지 공식적으로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기자회견 자리에는 강인철·송호창·조광희 변호사가 함께했다. 민주통합당 의원이기도 한 송호창 변호사는 "국회에서 진행될 예정인 민간인 불법사찰 국정조사 진상조사 특위 민주당 의원으로 이 자리에 참석했다"며 "박근혜 캠프에서 가진 정보가 어느 기관이나 집단이 조사했는지 국정조사를 통해 철저히 규명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 야권의 유력한 대선후보로 주목받고 있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측 금태섭 변호사가 6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새누리당 공보단 정준길 공보위원이 안 원장의 뇌물비리와 여자문제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하며 대선불출마를 종용했다"고 폭로하고 있다
박근혜 측 "친구사이 의례적 통화... 안 원장에 대한 의혹 잘 대비하라는 취지"
정준길 공보위원은 "금태섭 변호사와 통화를 한 적은 있지만 대학 친구로서 의례적인 통화였고, 안철수 교수에 대한 시중에 떠도는 여러가지 의혹을 이야기하면서 잘 대비해야 한다는 취지로 통화를 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YTN에 따르면 정 공보위원은 "만약 안 교수가 출마한다면 새누리당 공보위원의 입장에서 여러 의혹에 대해 언급을 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니, 친구 사이에 그런 부분은 이해해달라는 이야기를 한 것이 전부였다"고 말했다.
정 공보위원은 이어 "친구 사이의 의례적인 통화 내용까지 공개하면서 협박 운운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2012.09.06 오마이뉴스 권우성,이주연 기자==
노래를 듣는 순간 '동작 그만'... 그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 박용수선생 사진첩에서, 노태우 정부 시절 노동운동탄압을 규탄하는 시위
햇살 푸른 교정의 맑은 봄날에 그를 처음 만났습니다. 1988년. 제대를 하고 복학생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돌아 온 학교는 어수선했습니다. 6월 항쟁으로 직선제를 쟁취했지만 어처구니없게 노태우에게 권력을 빼앗긴 탓에 무력감이나 패배감이 학교 전체를 누르고 있는 느낌이었어요. 제대 후 새롭게 시작해 보려는 내 희망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죠. 게다가 학생운동의 내용과 형식도 입대 전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2년 반, 학교를 떠나있어야 했던 기간 동안 애타게 그리워했던 시간을 보상 받으려는 듯 열정을 다해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막 얼굴을 트기 시작한 후배들과 친해져야 했고 학생운동을 하는 복학생들이 많지 않았던 터라 적응하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 시절 윤민석을 만났습니다. 총학생회실에 대자보를 쓰러 갔다가 처음 만났습니다. 기타 반주 위로 흐르는 중저음의 노래 소리와 함께요. 처음 듣는 노래였는데, 나를 '동작 그만' 하게 했습니다. 곡도 좋았지만 목소리가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렇게 만나서 금방 친해졌어요. 그의 매력에 빠진 내가 총학생회실을 자주 찾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윤민석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이 두 가지입니다. 기타와 중저음. 그 시절에 그는 기타로 작곡을 했죠. 가끔은 디지털 건반을 쓰기도 했지만 주로 기타를 퉁기며 작곡을 했고 완성된 후에 곡을 들려줄 때도 주로 기타를 쳤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윤민석의 노래는 <전대협진군가>나 <결전가>처럼 행진곡풍의 노래보다는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 <편지> 같은 서정적인 포크곡들이었습니다. 그 노래들이 그의 목소리와 잘 어울렸어요. 윤민석은 작곡가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내게는 싱어송 라이터, 어쩌면 그보다 가수 윤민석이 먼저입니다.(아, 그의 노래를 듣고 싶어요!) 그와 친한 덕분에 새 노래가 만들어지면 누구보다 먼저 들을 수 있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위로를 받고 싶을 때, 용기가 필요할 때, 때로는 그냥 넋 놓고 싶을 때 그가, 그의 노래가 친구가 되어주었습니다. 그는 나보다 한 학번이 아래인 후배였어요. 재수를 해서 나이는 같은데, 나를 형이라고 불렀죠. 하지만 우린 고민이 비슷한 함께할 게 많은 친구였습니다. 오히려 그가 형처럼 나를 위로할 때가 많았죠. 그가 학교를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노래운동에 뛰어들면서 자주 만나지 못했습니다. 커밍아웃 했기에... 그를 만나기가 두려웠다내가 학생운동을 정리하고 개인적인 고민에 빠져 있을 무렵, 그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그와 가끔 연락을 주고받다가 소식이 끊긴 지 몇 달째 되던 때였죠.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의 산하 단체인 '애국동맹'에 가입하여 반체제운동을 했다는 혐의를 받았습니다. 그 근거로 북한을 찬양하는 노래를 만들었다고 했고 3년 형을 받았습니다. 한달음에 면회를 가야했지만 그렇게 하지를 못했습니다. 그가 3년을 교도소에 있는 동안 단 한 번도 면회를 가지 않았습니다. 그를 만나는 게 두려웠습니다. 나도 같이 휘말릴까봐 두려워서는 아니었어요. 내가 게이 정체성을 스스로 인정하고 활동을 하려던 시기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민족해방계열이었던 우리는 같은 학교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던 동지였지만, 내가 게이라는 걸 드러내면서 건널 수 없는 강을 사이에 둔 것 같았어요. 그와 그런 얘기를 한 적은 없지만 다른 후배에게 커밍아웃을 했다가 험한 소리를 들었던 터라 그를 대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내가 상처 받을까봐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나는 감옥에 있는 그에게 나까지 고민거리가 될 수는 없다는 핑계를 대면서 마음을 접었습니다. 비겁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그와 멀어져 갔습니다. 가끔 그가 생각났지만 그의 노래를 흥얼거리는 걸로 만족해야 했죠.
▼ 2004년 3월 27일 저녁 광화문 네거리에서 '탄핵무효, 민주수호' 촛불집회가 8만 여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되어 국민들이 거리로 달려 나왔을 때 그를 다시 만났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그의 노래가 사람들을 하나로 만들었던 아스팔트에서 그를 다시 만났습니다. "형" 그는 여전히 나를 형이라고 불렀고 사람 좋은 웃음을 보였습니다. 그 뒤로 몇 번 전화 통화를 하거나 문자를 주고받았지만 88년 교정으로 돌아가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예전 그대로였는데 난 너무 멀어져 있었죠. 힘들 때마다 위로가 되고 용기를 주었고 기쁠 때 함께 웃어주었던 그였고 그의 노래였는데, 난 그걸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기억은 했지만 모른 척 했습니다. 한 때 동지였던 사람들이 나를 벌레 취급하는 게 싫었고 그가 나를 그렇게 대할까봐 두려웠습니다. 그 뒤로 또 한동안 그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이제 윤민석에게 달려가려고 합니다
▼ 김조광수 감독
그의 소식을 다시 들은 건 얼마 전이에요. 그의 아내가 암과 싸우고 있고 그 곁을 지키고 있다고 했습니다. "아내를 살리고 싶습니다." 트위터에 오른 그의 글. 그 글이 두려움에 비겁하게 그에게서 멀어졌던 나를 때렸습니다. 그가 내민 손에 많은 분들도 화답을 했습니다. 공연 연출을 하는 김정환은 '윤민석 음악회'를 열자고 했습니다. 9월 15일에 윤민석의 모교, 나의 모교인 한양대 노천극장에서 윤민석의 노래를 부르자고 말이죠. 이제 나도 그에게 달려가려고 합니다. 그에게 진 빚이 누구보다 많기 때문입니다. 비겁하게 뒤돌지 않겠습니다. 더 이상 그에게 미안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받았던 위로, 용기, 행복의 10분의 1이라도 갚기 위해 달려갑니다. 못하는 노래지만 그에게 들릴 수 있게 노래도 힘차게 불러야겠습니다.
윤민석 음악회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 |
○ 일시 : 2012년 9월 15일(토요일) 저녁 6시 30분~9시 ○ 장소 : 한양대 노천극장 ○ 출연진 : 윤민석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자발적 참여로 열려있습니다. ○ 홍보 : 윤민석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트윗과 페이스북 등으로 알려나갑시다. ○ 분위기 : 윤민석의 노래 부르며, 윤민석과 대화하듯, 사랑 넘치게. ○ 결과 : 윤민석을 사랑하며, 우리 모두를 사랑하며, 윤민석 후원금 많이 모읍시다. ○ 모금 방식 : 당일 공연장에서 모금과 인터넷 생중계를 통한 모금.
※ 페이스북에서 '윤민석음악회'로 검색하면 더욱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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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광수 기자는 영화 감독입니다.
<인터넷 오마이뉴스에서 퍼온 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