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폐기(CVID)
미국은 2003년 8월 27일 개막된 1차 6자회담에서 북핵문제 해결 방안으로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폐기”(Complete, Verifiable and Irreversible Dismantlement: CVID) 원칙에 따른 ‘선 핵폐기’ 조치를 북한에게 요구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보상은 없으며, 핵 폐기 조치가 이루어진 후에 북한이 요구하는 경제지원과 관계정상화 등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같은 미국의 주장에 대해 북한은 강하게 반발하면서, 미국이 체제보장과 경제지원을 해주면 핵 포기를 할 의사가 있다는 ‘일괄타결·동시행동’ 입장으로 맞섰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이 폐연료봉 재처리 등 위협조치의 수위를 높여나가고 미국 내에서 대북 강경책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자, 미국은 3차 6자회담에서부터 CVID 원칙에 대해 완화된 태도를 나타냈다. 미국은 2004년 6월 23일 개최된 3차
6자회담에서 ‘CVID’ 대신 ‘포괄적 비핵화’(comprehensive de-nuclearization)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미국의 태도 변화는 4차 회담에서부터 더욱 구체화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2005년 4차 6자회담 2단계 회의에서 채택된 ‘9·19 공동성명’에서 CVID 원칙은 “한반도의 검증 가능한 비핵화”와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계획을 포기”한다는 표현으로 귀착되었다.
부시 행정부는 2003년 초까지만 해도 북핵 문제 해결의 목표를 설명할 때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폐기(verifiable and irreversible dismantlement)’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는 북한이 처음부터 제네바 합의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믿을 수 없으며, 북한의 핵계획을 영원히 복구불능의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 담긴 것이었다. 그 후 2003년 중반 북한의 고농축우라늄 개발계획이 알려지자 미국은 북핵문제에 대해 더욱 강경한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폐기’에다 ‘완전한(complete)’을 추가한 것은 북한의 고농축우라늄 개발계획을 포함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북한은 미국의 CVID 요구 자체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불가역적’ 표현에 가장 큰 불만을 나타냈다. CVID에 대해 북한이 거세게 반발하자, 미국은 ‘효과적인 검증을 전제로 한 영구적이고 철저하며 투명한 방법에 의한 모든 핵 계획의 철폐(the dismantlement of all nuclear programs in a permanent, thorough and transparent manner subject to effective verification)’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는데, 이 표현은 CVID와 근본적으로 내용이 달라진 것이 없으며 용어가 더 복잡하고 길어졌을 뿐이다.
미국은 2004년 6월 23일 열린 3차 6자회담에서부터 CVID 원칙에 대해 변화된 입장을 나타냈다. 여기에서 CVID 대신에 ‘포괄적 비핵화’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2005년7월 26일부터 개최된 4차 6자회담에서는 CVID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미국의 이 같은 태도 변화에는 이라크 전쟁과 미국 내 대북 강경책에 대한 비판 여론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되었다.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관련 정보가 부정확한 것으로 드러나고 이라크 전쟁이 장기화되는 조짐을 나타내자, 대선을 앞둔 부시 행정부는 북핵문제를 다자협상 틀 내에서 악화되지 않도록 관리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였다. 이와 함께 CVID 개념이 너무 광범위하고 모호한 개념이어서, 합의를 도출하는 것은 물론 검증 등 이행과정도 장기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CVID 원칙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며, 그 후에도 미국 측에서 북핵 해결 및 관계정상화의 조건 등으로 계속 제기되어 왔다. 2007년 5월 30일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는 “CVID가 이뤄져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북·미 관계정상화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2008년 핵 신고 과정에서도 미국은 “완전하고 정확한 신고”(Complete and Correct Declaration)를 요구하며 우라늄 프로그램의 검증이 핵 신고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2008년 미 대선에서 미 공화당은 CVID 원칙을 정강정책에 포함시켰다. 2009년 5월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 개최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가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7월 22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완전하고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에 동의하면 관계정상화를 논의할 용의가 있다”고 말해 CVID를 연상시키는 발언으로 주목을 끌었다.
마이크 폼페이오(사진) 미 국무장관이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의 반대급부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안전보장(CVIG)을 제공하는 방안을 김정은 위원장과 논의했다”고 밝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비핵화이후 체제안전에 대한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영구적 비핵화와 안전보장' 합의를 조약으로 의회에 제출하겠다는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 24일(현지시간) 상원 외교위에 출석해 에드 마키(민주당) 의원 질의에 “나는 김 위원장에게 제공될 안전보장책들에 대해 이야기했다"며 "보장책들은 분명히 우리가 요구하는 영구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검증 가능한 비핵화와 똑같은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똑같은 방식으로 협상을 넘어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안전보장책을 제공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폼페이오는 벤 카딘(민주당) 의원이 ‘북·미 합의가 이뤄지면 상원에 조약으로 제출한다는 얘기냐’는 말에 “그렇다”고 확약했다. 이어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우리가 (합의에) 성공하면 그렇게 하는 게 적절한 일이라 본다”고 덧붙였다. 북·미 정상회담 성공의 핵심이 ‘CVID와 CVIG(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Guarantee)의 맞교환을 전제로 한 일괄타결’이란 점에서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은 주목된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란 핵합의 때 못했던 것(상원 비준)을 함으로써 미국 상원이 헌법상의 적절한 책무를 다하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이날 말했다. 과거 제네바 합의(1994년)와 9·19 공동성명(2005년)은 의회 동의가 없는 행정부 차원의 합의였다. 그는 "북·미 비핵화 합의를 조약형태로 하는 것이 미국을 위해 중요하고, 우리의 헌정 민주주의를 위해 중요하며 아울러 북한 국민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