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주님 세례 축일이자 연중 제1주일입니다. 끝은 시작입니다. 성탄시기의 이벤트 축제도 오늘로써 끝나고 이젠 평범한 연중시기의 시작이요 예수님의 본격적 공생애의 시작입니다. 옛 현자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결과를 두려워하기 전에 먼저 시작하라. 모든 시작은 위대하다.”<다산>
늘 새로운 시작의 삶을 사는 이들에게는 영원한 청춘입니다. 바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한결같은 삶이 그 좋은 증거입니다.
“지극히 어려운 일도 쉬운 일에서 시작되고, 세상의 큰 일도 그 시작은 미약하다.”<도덕경>
그러니 시작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은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말씀하시며 우리와 함께 하시며 격려하십니다. 어제 2025년 희년을 맞이한 연중 첫 토요일, 교황님은 바오로 6세 홀에서 8000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주신 말씀도 이와 일맥상통합니다.
“희년은 우리에게 다시 시작하도록 초대한다.”
“희망하는 것은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To hope is begin again)”
시작의 위대함을, 늘 새로운 시작을 강조하는 교황님입니다.
오늘 주님 세례 축일 미사중 화답송 후렴도 참 흥겨웠습니다. 주님의 세례 축복과 동시에 세례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의 축복도 연상되어 힘이 났습니다.
“하느님이 당신 백성에게 평화의 복을 주시리라.”
방금 노래한 화답송 후렴입니다. 오늘 주님 세례 축일 자체가 우리에게는 ‘평화의 복’이란 하느님의 참 좋은 선물입니다. 세례 받은 우리 또한 평화의 복으로 살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오늘 주님 세례 축일, 우리는 예수님의 세례를 통해 네가지 진리를 배웁니다.
첫째, 겸손입니다.
어제도 강조했지만 겸손입니다. 자기를 아는 겸손이 바로 지혜입니다. 요한도 예수님도 겸손의 대가입니다. 정말 겸손한 이들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축복입니다. 아니 겸손 자체가 축복이니 겸자무적입니다. 요한이 자기를 아는 겸손한 고백이 감동적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오신다. 나는 그분의 신발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다.”
이런 요한에게 자신을 낮추어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 역시 겸손한 분이십니다.
둘째, 기도입니다.
루카복음은 기도의 복음이라 할 정도로 유난히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강조합니다. 정말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기도요 사랑처럼 기도에도 늘 초보자라는 생각입니다. 하늘 보고 기도하라고 언제 어디나 눈들면 하늘이요, 기도하지 않으면 일상에 묻혀 자기를 잃어버리기 십중팔구입니다. 다음 대목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시는데 하늘이 열리며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분 위에 내리셨다.’
이제 예사 하늘이 아닙니다. 세례를 통해 하늘길이, 하늘문이 열린 것입니다. 하느님과 생명과 사랑의 소통이 바로 기도입니다. 알면 알수록 모른다는 사실에 저절로 겸손하게 되고 기도하게 됩니다. 기도할 때 살아나는 영혼이요 기도하지 않으면 시들어 죽는 영혼입니다. 살아있다 다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기도할 때 비로소 살아있다 할 수 있습니다.
셋째, 신원입니다.
예수님의 세례 축일은 바로 우리의 세례 축일을 생각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의 복된 신원이 세례를 통해 확연히 드러납니다.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아버지의 말씀입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우리 또한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났습니다. 예수님께 주신 말씀은 그대로 나로 바꿔 읽어도 무방합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딸), 내 마음에 드는 아들(딸)이다.”
그대로 제1독서 이사야서 ‘주님의 종의 첫째 노래’에서 보다시피 예언자 이사야의 예언의 실현임을 봅니다.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세례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도 그대로 해당됩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는 존엄한 품위의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하는 의무와 책임입니다.
넷째, 사명입니다.
묵묵히 사명을 수행하시는 온유하고 겸손하고 자비롭고 지혜로우신 주님의 모습을 이사야가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그대로 보고 배워야 할 참 아름답고 매력적인 모습니다.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껴저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이어지는 말씀도 그대로 예수님의 사명수행을 통해 입증됨을 봅니다. 세례 받아 하느님 자녀가 된 우리들 역시 ‘주님의 빛’이 되어 예수님의 사명수행에 함께 참여함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의무이겠습니다.
“주님인 내가 의로움으로 너를 부르고 네 손을 붙잡아 주었다. 내가 너를 민족들의 빛이 되게 하셨으니,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주기 위함이다.”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해방자 예수님이요 이런 주님을 닮아 주님과 함께 이웃을 무지의 질곡에서 해방시켜 자유롭게 하는 일에 전념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베드로 역시 사도행전에서 예수님께서 사명 수행에 충실하셨음을 고백합니다.
“이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시고 악마에 짓눌리는 이들을 모두 고쳐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주님 세례 축일에 배우는 가르침이 참 유익합니다. 참으로 믿는 이들에게는 매일이 주님 세례 축일이요 우리 세례 축일이니 초발심의 자세로 새롭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겸손과 기도, 신원과 사명을 새롭게 확인하고 실천하며 주님과 함께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도록 하루하루 온힘을 다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