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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세 지파의 계수
민 1:38-54
38 단의 아들들에게서 난 자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그 명수대로 다 계수하니
39 단 지파에서 계수된 자는 육만 이천칠백 명이었더라
40 아셀의 아들들에게서 난 자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그 명수대로 다 계수하니
41 아셀 지파에서 계수된 자는 사만 천오백 명이었더라
42 납달리의 아들들에게서 난 자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그 명수대로 다 계수하니
43 납달리 지파에서 계수된 자는 오만 삼천사백 명이었더라
44 이 계수함을 받은 자는 모세와 아론과 각기 이스라엘 조상의 가문을 대표한 열두 지휘관이 계수하였더라
45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그 조상의 가문을 따라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이스라엘 자손이 다 계수되었으니
46 계수된 자의 총계는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이었더라
47 그러나 레위인은 그들의 조상의 지파대로 그 계수에 들지 아니하였으니
48 이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49 너는 레위 지파만은 계수하지 말며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 계수 중에 넣지 말고
50 그들에게 증거의 성막과 그 모든 기구와 그 모든 부속품을 관리하게 하라 그들은 그 성막과 그 모든 기구를 운반하며 거기서 봉사하며 성막 주위에 진을 칠지며
51 성막을 운반할 때에는 레위인이 그것을 걷고 성막을 세울 때에는 레위인이 그것을 세울 것이요 외인이 가까이 오면 죽일지며
52 이스라엘 자손은 막사를 치되 그 진영별로 각각 그 진영과 군기 곁에 칠 것이나
53 레위인은 증거의 성막 사방에 진을 쳐서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 진노가 임하지 않게 할 것이라 레위인은 증거의 성막에 대한 책임을 지킬지니라 하셨음이라
54 이스라엘 자손이 그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였더라
민 1:38-54 / 단의 후손 가운데에서 전쟁을 하러 나갈 수 있는 20세 이상된 남자들을 각 씨족과 집안별로 그 이름을 일일이 불러 가면서 등록시켜 그 수를 세었다. 39) 단 지파에서 병적부에 오른 남자의 수는 6만 2700명이었다. 40) 아셀의 후손 가운데에서 전쟁을 하러 나갈 수 있는 20세 이상된 남자들을 각 씨족과 집안별로 그 이름을 일일이 불러 가면서 등록시켜 그 수를 세었다. 41) 아셀 지파에서 병적부에 오른 남자의 수는 4만 1500명이었다. 42) 납달리의 후손 가운데에서 전쟁을 하러 나갈 수 있는 20세 이상된 남자들을 각 씨족과 집안별로 그 이름을 일일이 불러 가면서 등록시켜 그 수를 세었다. 43) 납달리 지파에서 병적부에 오른 남자는 5만 3400명이었다. 44) 이들은 모두 모세와 아론 그리고 이스라엘 각 지파를 대표하는 우두머리들이 함께 조사하여 병적부에 등록시킨 사람들이다. 45) 이렇게 이스라엘에서 각 집안별로 전쟁에 나가 싸울 수 있는 20세 이상된 남자의 수를 세어 보니 46) 모두 60만 3550명이었다. 47) [레위인에 대한 특별 규정] 레위인들은 각 집안별로 병적부에 등록시키지 않았다. 4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같이 말씀하신 까닭이다. 49) `레위 지파 사람들은 병적부에 올리지 말고 이스라엘 인구 수에도 넣지 말아라. 50) 그들은 계약궤를 모셔 둔 성막과 그 안에 딸려 있는 여러 기구들을 보살피는 일을 맡아보게 하여라. 진영을 이동할 때마다 그들이 성막과 그 안에 딸려 있는 여러 기구들을 운반하고 어떤 곳에 진을 치든 그들은 성막에서 일을 보아야 한다. 레위인들은 성막 주위에 천막을 치고 살아야 한다. 51) 진영을 옮길 때마다 성막을 걷고 치는 일은 반드시 레위인들만이 해야 한다. 레위인 이외에 다른 사람이 성막에 다가오면 반드시 처형하여라. 52) 이스라엘 각 지파 사람들은 저마다 속해있는 각 부대의 깃발 아래 천막을 쳐라. 53) 하지만 레위인들은 성막 주변에 천막을 치고 성막을 보살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성막에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막아 여호와의 진노가 내리지 않도록 하여라. 레위인들은 계약궤를 모셔 놓은 성막을 지키는 책임을 맡은 사람들이다.' 54)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시행하였다.
모세와 아론이 열두 명의 두령들과 함께 먼저 르우벤을 비롯하여 아홉 지파의 장정들을 계수한 후에, 뒤이어 단 지파로부터 세 지파의 장정들을 소개합니다.
단, 아셀, 납달리 지파의 계수(38-46) 단 지파를 비롯하여 아셀, 납달리 지파는 이스라엘의 광야 여행 중 가장 끝 대열의 후미를 살피는 역할을 합니다. 가장 뒷부분에 있다고 해서 다른 지파보다 열등하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62,700명의 단 지파와 41,500명의 아셀 지파, 그리고 53,400명의 납달리 지파는 용맹성과 정의로운 기질로 인하여 이스라엘 공동체에 여러 공헌을 했습니다. 그러나 단 지파는 가나안 정착 이후에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로부터 떨어져 나와 우상을 쫓고 하나님을 떠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훼손하기도 했습니다(삿 18장). 그러나 아셀 지파는 “아들들 중에 더 복을 받는 지파로서 그들이 받을 땅이 비옥할 것이며, 그들이 사는 곳은 철과 놋으로 지은 요새처럼 튼튼할 것이므로 길이 평안을 누릴 것”이라는 예언의 축복을 받은 지파입니다(신 33:24-25). 또한 납달리 지파는 은혜가 풍성하고 여호와의 복이 가득하며, 서쪽과 남쪽을 차지하는 지파입니다. 이는 풍요로움의 축복으로 가나안 땅의 젖줄인 갈릴리 호수 일대의 비옥한 지역을 차지하였습니다(신 33:23).
레위 지파의 계수와 임명(47-53) 레위 지파는 성막 봉사의 일로 온전히 헌신되었기 때문에(출 32:26-29) 전쟁을 위한 계수에서는 빠지고 후에 따로 계수합니다(3:39). 이들은 이스라엘의 각 가정의 장자들을 대신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기 때문에 선민 집단 중에 선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3:12-13). 이처럼 레위 지파는 자기의 기업을 받지 못함으로써 온 이스라엘에 흩어져 살았으나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들에게 축복이 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순종의 결과(54)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레위인을 제외한 모든 지파의 인구조사를 하였으며, 그 결과 20세 이상 군인으로 계수된 전체 수가 603,550명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대로 다 행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 가나안으로 가는 어렵고 힘든 광야의 여정이었지만 말씀 앞에 순종했습니다. 이처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하늘로 가는 천로역정의 순례자로서, 삶의 현장에 힘들고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적용: 단 지파의 우상 숭배는 하나님을 떠난 삶의 결과입니다. 당신은 믿음으로 살고 있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떠나 세속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것이 있습니까?
인구조사의 결과는 모든 지파가 하나이며, 하나님께 선택받았고, 하나님 군대의 일원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을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성된 공동체 안에서 자신들의 자리를 확인했을 것입니다.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주님 안에서 한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주시는 한 마음을 품고, 한 뜻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진정한 하나님의 군대로써 승리하는 삶을 살 것입니다.
< 설 교 >
특별히 세움을 받은 사람들
민 1:45-54 / 이영택 목사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 모든 성도들께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특별히 세움 받은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교회의 구성을 이루고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죄에서 구원받게 하시고 영생을 얻게 하시려고 부르시고, 택하시고, 주께로 오라하심의 은혜를 입은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신 14:2)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택하여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삼으셨느니라
(대하 6:6)다윗을 택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였노라 하신지라
(대상28:6)내가 그를 택하여 내 아들로 삼고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될 것임이라
(눅 6:13)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심
(요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다 하심
1. 세움받은 사람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부터 시작하여 열두 아들이 이스라엘의 지파를 이루게 됩니다.
(창 49:28)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고 하신 지파는 fb²ve shebet 쉐베트 어린가지라는 뜻인데
(민 1:4) 각 지파의 각 조상의 가문의 우두머리 한 사람씩을 너희와 함께 하게 하라고 하신 ‘지파’란 “hF²m' matteh ‘가지’‘막대기’‘지팡이’ 란 뜻으로 어근은 hf;n: natah‘뻗다’(앞으로, 밖으로)뻗치다. 로서 나무로 말하면 이스라엘은 열두 가지로 뻗어나가는 백성들입니다.
교회로 말하면 구약교회는 12지파로 구성된 교회입니다. 이것이 구약의 율법교회입니다.
신약의 교회는 12사도로 세워진 교회입니다. 12사도는 예수님이 세운 12제자입니다.
구약의 12지파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구약교회는 성인 연령 20세 이상으로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이었습니다. 이 인구수까지 걸린 연수는 430년입니다. 그러나 이 숫자는 이십세 미만의 아이들과 여성들과 노인들이 빠진 숫자입니다. 이 숫자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는 정확이 알 수 없습니다. 대략 삼백만이라고 하지만 삼백만이란 숫자는 성경에 없는 숫자입니다.
그런데 개역성경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개역성경(민 10:36) 궤가 쉴 때에는 가로되 여호와여 이스라엘 천만인에게로 돌아오소서 하였더라
개역개정성경 (민 10:36) 궤가 쉴 때에는 말하되 여호와여 이스라엘 종족들에게로 돌아오소서 하였더라
개역성경(민 31:5) 매지파에서 일천 인씩 이스라엘 천만인 중에서 일만 이천 인을 택하여 무장을 시킨지라
(민 31:5) 각 지파에서 천 명씩 이스라엘 백만 명 중에서 만 이천 명을 택하여 무장을 시킨지라
“천 만인”이란 “ #l²a² hb;b;rÒ eleph r@babah "‘풍성함’(수가 정확하든지 안하든 지간에)많은, 백만, 만만, 을 표현한 것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을 말할 때 천만인 이라고 한 것은 지나친 과장법을 사용하였다고 보이지 않습니다. 근사치로 보는 것이 본문에 더 가까이 접근하는 것이고 백만인이라고 번역한 것도 그다지 무리한 것이 아닌 이유가 백만이라고 원어에는 기록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이 숫자를 논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나와서 인구조사할 때 이십세 이상 전쟁에 나갈 수 있는 장정들은 조사하였을 때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이었는데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다시 인구조사를 했는데 (민 26:51) 이스라엘 자손의 계수된 자가 육십만 천칠백삼십 명이었습니다. 천팔백이십명이 줄었습니다.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광야에서 이 숫자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보호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십세 이상은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생명들이 그 수를 유지하고 있었으니 하나님께서 여전히 함께 하시며 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중에 이십세 이상 인구 조사할 때 레위지파는 빠졌습니다. 레위지파는 전쟁에 나가서 싸우는 일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성막 일에 봉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민 1:47) 그러나 레위인은 그들의 조상의 지파대로 그 계수에 들지 아니하였으니
(민 1:48) 이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민 1:49) 너는 레위 지파만은 계수하지 말며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 계수 중에 넣지 말고
레위지파는 요즈음 우리나라 군대로 말하면 레위지파는 보충력 대상도 아니고 민방위 대상입니다.
영적인 면에서 보면 이는 교회의 성도 역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같은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이 숫자는 힘 있는 장정들입니다. 젊은이들입니다. 일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전쟁에 나가 적과 싸울 수 있는 젊은이들입니다.
교회는 나이고 젊고 늙음을 떠나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영성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전도할 수 있는 영성의 사람, 기도할 수 있는 영성의 사람, 봉사할 수 있는 영성의 사람, 섬길 수 있는 영성의 사람들은 영적으로 젊은 사람에 해당한 영성의 사람입니다.
아무리 교회에 사람이 많아도 믿음 없고 은혜 없고 영성이 없는 사람은 뒷방 신세는 노인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교회는 젊어야 합니다. 믿음과 은혜로 충만해야 합니다. 이 소리한다고 연세 높은 성도님들 우리는 뒷방노인네 취급한다고 오해는 하지 마세요,
하나님 믿는 성도는 예수님앞에 나이 말하면 안됩니다. 예수님이 B.C 4년경에 탄생하셨는데 금년이 2014년입니다. 예수님의 육신의 나이는 지금까지 계산하면 2018살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아무리 나이 많아서 80,90이라도 예수님 앞에는 새파랗게 젊은 나이입니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수 14:10)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 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수 14:11)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 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수 14: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수 14:13)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수 14:14)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 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
주의 나라를 위하여 이 땅에 부지런히 심고가야 합니다. 일하고 가야 합니다. 힘써야 합니다. 최선을 다하다 가야 합니다. 충성하다 가야 합니다.
2. 구별받은 이들의 역할
구별받은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민 1:50) 그들에게 증거의 성막과 그 모든 기구와 그 모든 부속품을 관리하게 하라 그들은 그 성막과 그 모든 기구를 운반하며 거기서 봉사하며 성막 주위에 진을 칠지며
(민 1:51) 성막을 운반할 때에는 레위인이 그것을 걷고 성막을 세울 때에는 레위인이 그것을 세울 것이요 외인 이 가까이 오면 죽일지며
(민 1:52) 이스라엘 자손은 막사를 치되 그 진영별로 각각 그 진영과 군기 곁에 칠 것이나
(민 1:53) 레위인은 증거의 성막 사방에 진을 쳐서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 진노가 임하지 않게 할 것이라 레위인은 증거의 성막에 대한 책임을 지킬지니라 하셨음이라
성막관련 모든 기구와 부속품을 이동하는 일에 세심한 주의와 조심성있는 운반 훼손에 주의해야 하는 임무가 있습니다. 광야의 성막교회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이동하기 때문에 매사에 주의를 기울려야 합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란 모든 것이 구별된 성물입니다.
그리고 헌금으로 이루어지고 헌금으로 세워가고 헌금으로 경영하는 성물입니다.
주의가 필요합니다. 내 물건 다루듯 하는 것이 아니라 구별된 성물의 대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성물은 개인에게로 갈 수는 없는 것이 성물입니다.
성물의 개념은 구별입니다. 개인용도나 임의로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구별된 이들이 성막을 치고 걷고 설치하는 일에 일반인들이나 아이들은 접근할 수 없습니다.
성막주변에 구별된 레위인들이 장막을 치면 그 다음에는 군대막사가 설치되고 그 다음에는 일반 백성들의 막사가 설치되도록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구별된 자들 외에는 성막교회 접근을 금지하였습니다.
금지하신 이유는 “성막을 운반할 때에는 레위인이 그것을 걷고 성막을 세울 때에는 레위인이 그것을 세울 것이요 외인이 가까이 오면 죽일지며” “레위인은 증거의 성막 사방에 진을 쳐서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 진노가 임하지 않게 할 것이라 레위인은 증거의 성막에 대한 책임을 지킬지니라 하셨음이라”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노여움과 진노에 죽음과 화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 금지시킨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는 금한 것은 금한 것으로 지켜야 복이고, 행할 것은 행하는 것으로 지켜야 복이고, 순종할 것은 순종하므로 복이 됨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쉽게 생각하는 좋습니다. 어렵게 생각하는 것이 좋은 게 아니고 쉽게 생각해야 할 수 있습니다.
오직 순종 Only obey
오직 믿음 Only faith
오직 행함 Only works
이것은 머리로 복잡하게 생각하려고 하지 말고 가슴으로 믿어야 합니다. 마음으로 믿으면 쉽습니다.
구약교회시대는 특히 성막교회 시대는 엄격히 구별되고 제한되었기 때문에 그 시대는 그렇게 믿고 순종해야 복이었고 지금 이 시대는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이 복이 아니고 가까이 하는 것이 복입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면 진노와 심판의 대상이고 가까이 하면 복이 되고 은혜가 되고 사랑을 입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을 만나시기 위해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독생자 예수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사 55:5) 보라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네가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로 달려올 것은 여호 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음이니라 이는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사 55: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사 55: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 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사 55: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 55: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잠 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결론:
복음시대는 주를 가까이하는 사람 하나님께 나오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구약의 율법시대 교회는 성전과 백성들 사이에 가까이 갈 수 없는 구별이었다면 복음시대는 성도와 세상사이의 구별입니다.
세상을 향한 빛이 되어야 할 위치에 있는 것이 성도의 위치입니다.
본문 54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그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였더라. 고 하심 같이 모든 것이 주님의 뜻에 순종하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선택된 자의 5대 책무
민수기 1장 47-54절 / 이한규 목사
< 선택된 자의 5대 책무 >
모세는 시내산에서 1차로 20세 이상으로 싸울 수 있는 남자를 계수했다. 총 숫자가 603,550명이었다(46절). 가장 많이 계수된 지파는 유다 지파로 74,600명이었고(27절), 가장 적게 계수된 지파는 므낫세 지파로 32,200명이었다(35절). 레위 지파는 병역 의무에서 제외되었기에 인구 계수에서도 제외되었다. 그들은 놀고먹었는가? 하나님의 일로 선택되었기에 더욱 막중한 책무가 주어졌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선택된 사람의 책무는 무엇인가?
1. 하나님의 일에 전념하라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해서 레위 지파만은 계수하지 말고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 계수 중에 넣지 말라고 하셨다(47-49절). 그 이유는 금송아지 숭배 때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해서(출32:26-29) 하나님의 일만 하도록 성별되었기 때문이다. 레위인들은 초태생을 하나님께 바치는 규례(출 13:2,13)에 근거해 하나님께 바쳐진 존재로 간주되어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로는 계수되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일에 전념해야 한다는 암시다.
2. 하나님의 거룩성을 보호하라
많은 성막의 성물들이 금으로 만들어졌다. 그런 성물들이 도둑맞지 않도록 레위인들은 성막을 지켰고 짐승도 드나들지 못하게 했다. 또한 번제단에 불이 꺼지지 않게 하고 촛대에서 빛이 그치지 않게 하고 떡상 위에 거룩한 떡을 만들어놓고 물두멍에 물을 채우는 일 등도 레위인들의 책임이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생활 중에 수시로 이동하면서 성막을 운반할 때 성막을 걷고 세우는 일은 레위인들이 했고 레위인 이외의 외인이 성막에 접근하면 하나님의 거룩성을 보호하려고 죽였다(51절). 그처럼 하나님의 거룩성을 힘써 보호하라.
3. 하나님 중심적으로 살라
당시 이스라엘의 12지파는 성막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3지파씩 각각 그 진영과 군기 곁에 막사를 쳤다(52절). 그리고 성막 바로 주위 사방에는 레위인들이 진을 쳐서 이스라엘의 각 지파가 성막을 침범함으로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지 않게 했다(53절). 이스라엘이 성막을 중심으로 사방에 군기를 세우고 막사를 친 것은 하나님 중심적으로 사는 공동체라는 뜻이고 이스라엘 군대의 통수권이 만군의 하나님께 있다는 암시다.
4. 책임적인 성도가 되라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군 면제까지 하면서 선택된 레위인들에게 성막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한 것은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일을 잘 해야 할 책임이 있고 그 책임 이행을 위해 어떤 희생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실제로 레위 지파는 성막 시대에는 성막을 떠나지 않고 성막 주변에 살며 성막을 지키고 하나님의 일을 했다. 다만 성막에 대한 무한 책임 의식을 가진다고 해서 가정을 등한시하고 늘 성막에서 지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레위인들은 가정을 잘 돌보는 책임도 있었다.
5.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했다는 사실을 두 번 반복해서 기록한 것(54절)은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의 중요성을 잘 나타낸다. 모세는 위대한 리더이면서도 신실한 하나님의 종이었다. 하나님의 공동체에서 리더는 늘 하나님의 종이라는 의식을 가져야 하고 팔로워는 리더에게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최대한 순종해야 한다. 또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확산되도록 힘써야 한다. 그처럼 말씀 안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권면하고 전해서 영적인 멸망으로 빠지지 않게 하라.
인생관리, 레위부터 배워라
민 1:47-53 / 강문호 목사
현대를 가르켜 관리시대라고 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려면 관리하여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집관리, 자동차 관리, 건강관리, 돈 관리, 인격관리 등 관리하여야 할 것이 많습니다. 그런 관리를 우리는 레위로부터 배울 수가 있습니다. 대학은 한번 떨어지면 다시 붙으면 됩니다. 농사는 한번 실패하면 다시 하면 됩니다. 그러나 인생은 지우개가 없는 연필입니다. 한번 할 때마다 잘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레위지파에게 성막의 모든 기구와 모든 부속품 관리를 맡기셨습니다. 본문에는 성막 부속품만 맡기셨지만 성경 전체적으로 보면 레위지파에게 관리를 맡기신 것이 많습니다. 이스라엘은 모두 13 지파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유독 레위 지파에게만은 많은 관리를 맡기셨습니다. 레위 지파는 하나님이 맡기신 관리를 잘 해 낸 지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관리를 레위 지파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레위 지파가 관리를 맡은 것들을 성경적으로 찾아 순례하려고 합니다. 1. 물질 관리 물질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는 그 사람 평가에 대단히 중요한 점입니다. 이스라엘 탈무드에 보면 세 가지를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금방 알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는 분노하였을 때 어떻게 하는가? 둘째는 위기를 당하였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가? 세 번째는 돈을 주었을 때 어떻게 사용하는가? 레위인들은 물질관리를 철저히 하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에서 400년, 광야에서 40년 살다가 가나안 땅으로 와서 전쟁을 통하여 그 땅을 다 점령하였습니다. 그리고 땅을 분배할 때에는 12 지파에게는 골고루 나누어 주면서 레위 지파에게만은 땅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온 백성들이 소득의 십분의 일을 내어 레위 지파에게 주라고 하나님께서 명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였습니다. 레위 지파는 온 백성들로부터 십일조를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십일조의 십일조를 반드시 떼어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는 레위인에게 고하여 그에게 이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취하여 너희에게 기업으로 준 십일조를 너희가 그들에게서 취할 때에 그 십일조의 십일조를 거제로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민18;26) 여기에 십일조의 십일조라는 말이 나옵니다. 하나님께 드릴 것과 자기가 사용할 것을 정확하게 구별하였습니다. 철저한 물질관리입니다. 한신 교회 이 중표 목사님 이야기입니다. 한 번은 권사님이 만나자고 하여서 나갔습니다. 그 권사님이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목사님, 남편이 오랫동안 시청에서 근무하다가 퇴직하였습니다. 그런데 퇴직금을 십일조도 안 바치고 다 썼습니다. 그 후 너무 마음이 불편하고 괴로웠습니다. 몇 개월 지났지만 십일조를 준비해서 그 동안 바치지 못한 이자까지 하나님 앞에 바치는 기쁨을 얻었습니다.” 이것이 정확한 물질관리입니다. 어떤 성도가 십일조를 바치므로 여섯 번 놀랐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첫째는 십일조를 바치므로 자기 신앙이 더 확고해져서 놀랐습니다. 두 번째는 십일조를 바치고도 나머지로 넉넉하게 살아가는데 놀랐습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 그렇게 많은 돈을 낼 수 있다는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놀랐습니다. 네 번째는 십일조를 내보니 더 낼 수 있는 담력이 생겨서 놀랐습니다. 다섯 번째는 십일조를 내면서 생활이 물질적으로 부유해지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여섯 번째는 이런 축복을 진작 받을 것을 하면서 후회하면서 놀랐습니다. 물질관리를 잘 하여야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김 익두 목사님이 재령읍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수많은 병자들이 몰려 들었습니다. 김 목사님에게는 신유의 은사가 강하였습니다. 그래서 병자들이 일열로 앉아 안수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병이 없는 건강한 사람이 한 명 안수를 받겠다고 앉아 있었습니다. 김 목사님은 “당신은 몸도 건강한 데 무슨 안수를 받으려고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분이 대답하였습니다. “십일조 안수를 받으려고 합니다.” “당신 이름은 무엇인가요?” “정 찬유입니다.” 이 때 김 익두 목사님은 주머니를 하나 주면서 말했습니다. “평생 이 십일조 주머니를 가지고 헌금하시오. 십일조가 생기면 이 주머니에 넣었다고 하나님께 드리시오. 하나님이 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 후 정 찬유 성도는 십일조가 생기면 그 주머니에 넣었다고 하나님께 꼭꼭 드렸습니다. 후에 그는 얼마나 축복을 받았는 지 한국 교회사에 남는 장로님이 되었습니다. 단독으로 교회도 지어 바칠 정도로 물질적 축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물질 관리를 잘 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축복하십니다. 2. 사명 관리 하나님은 우리를 놀이터로 보내지 않고 일터로 보내셨습니다. 사람마다 다 사명이 있습니다. 하다 못 해 해변가에 모래알까지도 각각 사명이 있습니다. 어느 선교사가 해외에 나가 선교하다가 어려운 일만 많으니까 포기하고 고국으로 돌아 가고 싶은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는 우울한 마음으로 해변가를 거닐고 있을 때 모래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한 줌 집어 가려는 데 모래가 말하는 것같았습니다. “선교사님! 내가 이 해변에 있어서 이 해변이 아름답습니다. 나를 가지고 가면 안 됩니다” 이런 영의 음성을 듣고 선교사님은 <내가 여기에 있는 사명이 무엇일가? 그렇다. 하나님이 나를 이 곳으로 보내실 때에는 뜻이 있으셨다. 이 곳을 벗어나면 안 된다” 모래를 통하여 영의 음성을 듣고 그는 다시 선교에 열정을 쏟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람마다 사명이 있습니다. 사명을 받은 날은 출생한 날보다 중요한 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레위인들에게 특별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세상 일을 하지 말고 성전 관리와 온 백성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일을 맡기셨습니다. <레위 지파만은 너는 계수치 말며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 계수 중에 넣지 말고 그들로 증거막과 그 모든 기구와 그 모든 부속품을 관리하게 하라 그들은 그 장막과 그 모든 기구를 운반하며 거기서 봉사하며 장막 사면에 진을 칠지며 장막을 운반할 때에는 레위인이 그것을 걷고 장막을 세울 때에는 레위인이 그것을 세울 것이요 외인이 가까이 오면 죽일지며>(49-51) 성막을 관리하는 사명을 레위인들에게 주셨습니다. 레위인들은 생명을 걸고 이 사명을 감당하였습니다. 이 사명을 감당한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많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봅니다. 제2성전 시대에 일어났던 은혜의 이야기입니다. 로마가 성전을 둘러 싸고 <성전 번제단에 불을 피우기 위하여 나무를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보초를 길목에 세우고 성전안으로는 나무가 들어가지 못 하도록 엄격히 지켰습니다. 심지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사람들까지 가방속을 삿삿히 뒤졌습니다. 도저히 번제단으로 나무를 나를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일은 번제단의 불이 꺼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불 을 꺼뜨리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불을 피우지 말라는 황제의 명령보다 강하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번제단위에 불이 꺼지지 않은 비결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몹시 두려워 하는 가문이 있었습니다. 그는 벌레가 먹지 않은 온전한 나무를 잘라서 사닥다리 옆에 감쪽같이 붙였습니다. 그리고 사닥다리를 메고 당당하게 들어갔습니다. <멈취라! 그 사닥다리는 무엇이냐?> 보초가 소리를 지르며 따라왔습니다. <우리 집 나무 위에 새 집을 놓으려는 것이요. 사닥다리 없이는 도저히 새 집을 놓을 수가 없소이다> 태연하게 말하는 유대인을 로마군인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성전으로 들어간 그는 사닥다리 옆에 붙어 있는 나무를 떼어냈습니다. 그 후 번제단 불속에 넣었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가문은 브나이 샬마이(Bnai Salmai)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사닥다리 가문(The Ladder Family)이라는 의미입니다. 진설병에 대하여서도 이런 이야기가 전해 내려 오고 있습니다. 탈무드 BT Yama 38;A 에는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떡은 안식일마다 새 것으로 갈아 놓고 이미 놓았던 진설병은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동안 두어도 따끈따끗함이 식지 않았다고 합니다. 가르모 가문에서 떡굽는 일을 맡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기술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방인들이 돈을 싸들고 와서 그 기술을 팔라고 하였습니다.가르모가 말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주신 기술이기에 하나님만을 위하여 사용하여야 합니다.나는 이 기술을 우리 가정을 위하여도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며 결코 진설병 만드는 기술을 팔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전이 무너져서 가르모는 할 일이 없어졌습니다. 돈도 벌 수가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굶다시피 하며 살고 있을 때 이방인들이 돈을 싸들고 와서 그 기술을 이제는 팔라고 유혹하였습니다. 그러나 팔지 않았습니다. 제사장들은 가르모가 하나님이 주신 기술을 팔았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방인을 몰래 따라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만든 떡을 먹어 보았습니다. 가르모가 만든 떡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곧 식어 버렸습니다. 제사장이 돌아와 보고 하였습니다. 제사장 회의에서 이런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저렇게 믿음을 지키며 굶으면서도 진설병 만드는 특수한 기술을 팔지 않은 가르모 가정에 월급을 두 배 주도록 한다> 그래서 가르모는 놀면서 일할 때보다 두 배나 많이 받았습니다. 믿음을 지킨 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보상이었습니다. 분향단에 대하여서도 이런 이야기가 전해 내려 오고 있습니다. 분향단위에 향은 아브티누스 가문이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기술을 주셔서 그 향에 불을 붙이면 언제나 곧장 위로만 타올랐습니다.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좌우로 흔들린 적이 없었습니다. 항상 기둥같이 타올랐습니다. 로마 인들이 아브티누스 가정으로 들어 와서 이 기술을 가르쳐 달라고 하였습니다. 아브티누스는 거절하였습니다. 오른 팔을 잘랐습니다. 그래도 거절하였습니다. 왼팔을 자랐습니다. 그래도 물론 거절이었습니다. 로마인들은 아브티누스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같이 레위인들은 자기가 맡은 사명을 생명을 걸고 준행하였습니다. 사명 관리에 철저하였습니다. 특별히 레위는 제사장 가문으로서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 중심으로 연합하게 하는 데 충성하였습니다. 사람은 이름대로 됩니다. 특별히 성경의 이름은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데 그렇게 되었습니다. 사라는 열국의 어머니라는 의미입니다. 정말 그렇게 되었습니다. 요나는 비둘기라는 뜻입니다. 비둘기처럼 니느웨성에 기쁜 소식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데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가나안 온 땅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에스더는 별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별과 같이 빛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아론은 고상하다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중에 최고로 고상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아간은 말썽군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아이성 싸움에서 물건을 훔쳐 감춤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게 하는 말썽을 일으켰습니다.말썽을 일으킨 다음에 아간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아닙니다. 이름을 그렇게 붙였습니다.이름에는 예언적인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레위는 연합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레위는 온 형제들을 연합하게 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사람을 연합하게 하는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레위인들은 사명관리를 잘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축복하십니다. 3. 영 관리 레위인들은 물질 관리를 잘 하였습니다. 사명 관리도 잘 하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 관리를 잘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 때 헌금도 안 했고, 동참도 하지 않았던 지파가 레위지파 하나뿐이었습니다. 우상을 만드는 데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모세가 40일 금식기도를 한 후 십계명 두 돌판을 들고 산밑으로 내려 왔습니다. 그랬더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절하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화가 나서 두 돌판을 금송아지에 던져 깨뜨려 버렸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출32;26) 이 때 모세 앞으로 우르르 몰려 나온 지파가 바로 레위지파입니다. 레위지파는 금송아지를 만들 때 헌금도 하지 않았고 봉사도 하지 않았습니다.모세는 레위인들에게 다시 명령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그 친구를, 각 사람이 그 이웃을 도륙하라>(출32;27) 레위인들은 모세의 말을 따라 3,000명을 죽였습니다. 3,000명의 피흘리는 형제들 시체앞에서 모세가 장자 제사장을 레위 제사장으로 바꾸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각 사람이 그 아들과 그 형제를 쳤으니 오늘날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날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출32;29) 그래서 하나님은 레위지파를 제사장 지파로 임명하게 되었습니다. 레위인들이 영 관리에 생명을 걸었다는 증거를 우리는 성경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애급에서 바로의 명령과 하나님의 말씀이 다를 경우에는 순교적인 각오를 가지고 하나님의 명령을 지킨 지파가 레위 지파였습니다. 다른 지파는 세상과 타협하고 살았습니다.그러나 레위인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킴으로 순교자가 가장 많았습니다. <레위 족속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들었더니 그 여자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아 그 준수함을 보고 그를 석달 동안을 숨겼더니>(출2;1-2) 레위 남자는 아므람입니다. 레위 여자는 요게벳이었습니다. 당시 아들을 낳으면 바로왕은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거냥 두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 백성보다 많아질 것처럼 번성할 때였기 때문입니다. 다른 지파 사람들은 왕의 명령이 무서워서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레위인인 이들은 준수함을 보고 죽이지 않았습니다. 준수하다는 말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죽이지 말라고 영감을 주신 것입니다. 왕의 명령과 하나님의 영감 사이에서 부부는 목숨을 걸고 모세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만일 들키게 되면 아들도 부모도 모두 사형이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키는 이들이 레위인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레위인을 하나님이 사용하신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론이었습니다. 레위인들은 영관리를 잘 하였습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나타나 있지 않고 미드라쉬에 나타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앞으로 온 자손들은 아들을 낳으면 낳은지 8일만에 할례를 거행하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지파 사람들은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레위 지파는 애급 생활 400년 내내 이 율법을 지켰습니다. 레위 지파는 영관리를 잘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같이 물질 관리, 사명 관리 그리고 영관리를 잘 하는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이렇게 관리를 잘 하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이야기 하나 드리고 마치렵니다. 313년 동안 지하의 종교였던 기독교가 A.D.313년 콘스탄틴 대제의 칙령으로 지상의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지상으로 올라온 기독교는 로마의 국교로 되었습니다. 그런데 국교가 되던 그 당시 로마 인구 중 크리스천의 비율은 9%밖에는 되지 않았었습니다. 그렇다면 9%밖에 되지 않았던 소수가 어떻게 국책을 바꾸고 국교를 바꾸었겠습니까? 그것은 크리스찬이 모든 국책, 정책을 결정하는 중요 자리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당시 로마제국의 귀족들, 고관들, 부하들은 모두 다 윤리적으로 문란해서 아기를 나으면 다 코가 없는 아이들, 눈이 없는 아이들, 지능적으로 모자란 아이들을 낳게 되니까 아무리 좋은 가정 교사를 대도 그 아이들이 좋은 자녀로 자랄 수 가 없었습니다. 거기에 비해 크리스천 가정은 히브리서13:4 말씀을 근거로 살았습니다.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그래서 우수한 아이들을 낳았습니다. 그래서 소수의 크리스챤들이 다수의 국민을 지배할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같이 자기 관리를 잘 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축복하십니다.
책임은 아름다워라
민 1:47-54 / 강문호 목사
어느 모임, 어느 공동체에서든지 책임지는 사람이 기둥입니다.
나라를 책임지는 사람이 나라의 사람입니다. 교회를 책임지는 사람이 교회의 사람입니다.
가정을 책임지는 사람이 가정의 사람입니다.
책임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두 가지 이야기로 열겠습니다.
책임 첫 이야기
이 철환 작가가 쓴 <연탄길>은 아직도 책 분야에서 인기가 대단합니다. 제 3편까지 나왔습니다. 제2편에 실린 글입니다.
<아빠는 우리 가정의 지붕>이라는 글이었습니다.
회사에서 퇴출 당한 후 가정이 점점 가난하여졌습니다. 그 동안 벌어 놓은 돈이 없어서 다 까먹고 나니 이제는 거지같았습니다.
아들이 학교에서 다녀와 말했습니다.
<아빠! 내 친구들이 내 신발을 보면서 거지 신발이래.>
그 날 밤에 비가 억수로 쏟아졌습니다. 집이 새어서 안방이 물투성이었습니다.
아빠가 잠깐 나간다고 나갔는 데 밤 1시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집안식구는 무슨 일인가 걱정이 되어 밖으로 찾아 나섰습니다. 그러나 찾지 못 하고 돌아오는 데 지붕 위에 검은 그림자가 보였습니다.
우산을 받쳐들고 있는 남자는 분명히 아빠였습니다. 놀라서 아빠를 부르려고 하는 데 엄마가 말했습니다.
<부르지 말아라. 아빠가 가장으로서 자기 책임을 못 다 하니까 저렇게 라도 하여 책임을 지려고 하는 마음을 꺽지 말아라. 아빠의 보람을 망가뜨리지 말자. 아빠는 우리 가정의 우산노릇을 하려고 하고 있다.>
가슴 뭉클한 이야기입니다.
책임지는 사람 이야기입니다. 책임을 지는 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책임 두 번째 이야기
일본 사무라이 정신은 책임지는 정신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가게 주인이 손자를 데리고 할아버지에게 왔습니다. 학교에서 돌아 오는 길에 이 아이가 가게 빵을 훔쳐 먹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했습니다.
<당신 손자가 우리 가게와 들어와서 빵을 훔쳐 먹었습니다.
그리고 안 먹었다고 거짓말을 뻔뻔스럽게 합니다. 빵값을 내시오. 그리고 교육도 시키십시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물었습니다.
<너 정말 빵을 훔쳐 먹었니?>
손자가 말했습니다.
<훔쳐 먹지 않았어요. 나 학교에서 돌아 오는 길이라 배고파요. 그러나 훔쳐 먹지 않았어요. 친구가 훔쳐 먹었어요. 난 절대로 안 훔쳐 먹었어요.>
그러나 가게 주인은 막무 가내였습니다. 분명히 이 아이가 훔쳐 먹었다는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몇 번 물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할아버지는 화가 치밀어 칼을 가지고 와서 손자의 배를 갈랐습니다.
빈 속이었습니다. 주인이 멍하게 보고 있을 때 칼을 주면서 말했습니다.
<이 아이를 죽인 책임을 지고 죽으시오.>
그 주인은 사무라이 정신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죽게 한 책임, 의심한 책임을 지고 자살하였습니다. 할아버지도 두 명을 죽게 한 책임을 지고 자살하였습니다.
이것이 사무라이 정신입니다.
책임지는 정신입니다.
오늘 성경으로 들어갑니다.
레위인들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레위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중심이 되었고 기둥이 되었습니다.
<레위인은 증거막 사면에 진을 쳐서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 진노가 임하지 않게 할 것이라. 레위인은 증거막에 대한 책임을 지킬지니라 하셨음이라.>
하나님은 레위인에게 책임을 맡기셨습니다.
증거막은 성막입니다.
성막을 짓고 동서남북에 각각 세 지파씩 12 지파가 진을 치고 살았습니다.
레위는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게르손, 고핫 그리고 므라리입니다.
성막 문 앞에는 모세와 아론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큰 아들 게르손은 성막 서편에 진을 치고 살았습니다.
둘째 아들 고핫은 남쪽에 집을 쳤습니다.
막내 아들 므라리는 북쪽에 진을 치고 살았습니다.
이들은 책임이 있었습니다. 무슨 책임이 있었습니까?
1. 하나님에 대한 책임.
레위 자손들이 하나님을 향한 책임은 하나님의 집인 성막을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짐승들이 쓸 데 없이 드나들지 못 하게 하였습니다. 성막에 있는 성물들은 거의 값비싼 금으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성물들이 도둑맞지 않도록 지키는 일도 하였습니다.
번제단에 불이 꺼지지 않게 하는 일,
등대에서 빛이 그치지 않게 하는 일,
떡상에 떡을 만드는 일,
물두멍에 물을 채우는 일,
성막에 관계된 일은 모두 레위인들의 책임이었습니다. 레위인들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향하여 주신 책임을 목숨을 걸고 책임졌던 자랑스러운 지파입니다.
레위는 연합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이름대로 됩니다. 특별히 성경의 이름은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데 그렇게 되었습니다.
사라는 열국의 어머니라는 의미입니다. 정말 그렇게 되었습니다.
요나는 비둘기라는 뜻입니다. 비둘기처럼 니느웨성에 기쁜 소식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데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가나안 온 땅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에스더는 별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별과 같이 빛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아론은 고상하다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중에 최고로 고상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아간은 말썽군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아이성 싸움에서 물건을 훔쳐 감춤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게 하는 말썽을 일으켰습니다. 말썽을 일으킨 다음에 아간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아닙니다. 이름을 그렇게 붙였습니다. 이름에는 예언적인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레위는 연합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레위는 온 형제들을 연합하게 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사람을 연합하게 하는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에 대한 책임을 잘 감당하여야 합니다. 성가대, 주일학교 교사, 각부 일들 모두 하나님의 일에 충성스러운 책임을 감당하여야 합니다.
레위인은 하나님에 대한 책임이 주어져 있었습니다. 책임지는 사람이 기둥입니다.
2. 사람들에 대한 책임
사람마다 하나님에 대한 책임이 있고 사람들에게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레위인들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책임은 막중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 대한 책임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레위인은 증거막 사면에 진을 쳐서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 진노가 임하지 않게 할 것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노가 임하지 않게 하는 책임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키는 파숫군의 사명이 있었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사해에 들어가 수영을 몇 번 하였습니다.
그런데 수영을 하는 곳에는 망대가 있습니다.
그 곳에는 망을 보면서 수영하는 이들의 생명을 지키는 이들이 있습니다. 조금 멀리 나가면 호르락을 요란하게 불어 댑니다.
더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10분 이상 물속에 있으면 몸이 졸아 든다고 나오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이들이 사해에서 수영하는 이들의 생명을 지켜 주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레위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명을 지켜 주는 책임을 지고 있었습니다.
성막 중심으로 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감시하였습니다.
이들은 늘 하나님의 울타리 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벗어나지 않도록 지키는 책임을 지고 있었습니다.
제2성전 시대에 일어난 일입니다.
로마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공부를 절대로 금하고 있었습니다.
만일에 토라공부를 하는 이가 발견이 되면 사형이었습니다.
그러나 랍비 아키바는 누가 무어라고 하여도 태연하게 토라를 가르쳤습니다.
한 유대인이 물었습니다.
<랍비님은 로마인들에게 사형당하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까?>
걱정스럽게 물어 보는 유대인에게 랍비는 말했습니다.
어떤 여우가 지나가다가 보니 물고기가 물속에 놀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잡아 먹고 싶었으나 물속에 있는 물고기를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어부가 오더니 그물을 치고 물고기들을 잡으려고 고기들을 그물속으로 몰고 있었습니다.
여우가 물고기들을 보고 친절하게 말했습니다.
<물고기들아! 어부들이 너를 잡으려고 한단다. 빨리 마른 땅으로 나와 나와 같이 살자. 나와 친한 친구가 되자.>
이 말을 들은 물고기들이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어리석은 여우야! 우리가 곧 그물에 잡히게 될 것은 뻔하다. 그러나 우리가 물속에서 나가면 당장 죽는다. 그물에 잡힌다고 하더라도 네게 갈 수가 없다.>
이 말을 하면서 아키바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율법 밖으로 나가면 곧 죽고 마는 민족입니다. 잡히더라고 당장 죽는다고 하더라도 율법공부를 멈출 수는 없습니다. 율법을 향하여 가다가 죽을 수는 있어도 율법을 피하다가 죽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래서 로마인이 무서워도 할 수 없이 율법 공부는 계속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율법공부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생명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책임이 레위인에게 주어졌습니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죽습니다. 안식일을 꼭 지켜야 합니다.>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물질을 도적질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리지 않으면 농사를 지어도 황충이가 먹습니다. 월급을 많이 받아도 구멍 뚫린 전대에 넣은 것 같아서 다 새어 나갑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말하면 하나님의 저주가 임합니다.>
늘 잘못 가게 되면 호르라기를 불어대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위험한 지역에 가지 못 하게 하는 책임을 레위인들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영적인 레위인입니다. 우리 주변 사람들이 죽음을 향하여 가고 있을 때 막아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온 세계인이 지옥을 가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사람들을 향한 책임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3. 가정에 대한 책임
레위인들은 하나님을 향한 책임은 철저히 지켰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향한 책임도 생명을 걸고 지켰습니다. 그리고 가정을 위한 책임도 잘 지고 나가는 이들이었습니다.
레위인들은 24 반차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일주일에 1,000명씩 교대를 하였습니다(대상 23;4)
그리고 일년에 네 절기 즉 유월절, 칠칠절, 대속죄절 그리고 초막절에는 모두가 같이 근무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레위인들은 일년에 6주 성전에서 일하고 나머지 46주는 집으로 돌아가서 생활을 하였습니다.
가정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증거입니다. 레위인의 가정이 불행하였다는 이야기가 성경에는 한 구절도 없습니다.
레위인의 가정에 문제가 생긴 일을 기록한 것이 없습니다.
가정을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레위인들은 가정에 대한 책임을 성실히 준행하였습니다.
나는 한신대 교수이신 정 태기 교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는 이런 인상깊은 이야기를 하여 주었습니다.
삼양동에 자기가 잘 알고 계시는 장로님이 계십니다. 그는 현대건설 현장 소장님이십니다.
그가 한번 공사 소장으로 나가면 몇 년이 걸립니다. 큰 건물 하나를 완성할 때까지 현장 감독을 하여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부산에 현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2년 가량 걸리는 공사입니다. 한번 나가면 보통 6개월에 한번씩 집에 오곤하였습니다.
하도 오랫동안 오지 않으니까 아내가 중학교 2학년 된 딸을 아버지에게 보냈습니다.
옷도 보내고 필요한 것을 보내려는 것이었습니다.
딸이 부산에서 일하고 있는 아버지 집에 갑자기 들이 닥쳤을 때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습니다. 아버지가 젊은 여자와 밥상을 차려놓고 희희낙낙하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모두가 놀랐습니다. 그 날 밤 아버지는 딸을 데리고 호텔로 갔습니다. 그 곳에서 아무 말없이 하룻밤을 지내고 딸을 서울로 보냈습니다. 딸을 서울로 보내면서 한 마디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내일 서울 집으로 간다.>
이제는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서울로 풀이 죽어서 올라 왔습니다. 어떻게 딸을 대하고 아내를 만날지 걱정이 태산입니다. 대책이 서지 않았습니다. 무조건 집으로 들이 닥쳤습니다. 뜻밖이었습니다. 아내가 너무나 반갑게 맞는 것이었습니다.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아내가 말했습니다.
<여보! 딸이 부산갔다 와서 이야기하는 데 혼자 사느라고 고생이 말이 아니라면서요.... 미안해요....고마워요...>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밤새 한 잠도 못 자고 혼자 훌쩍거리며 울었습니다. 그리고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기특한 딸....>
딸이 결혼하던 날 아버지는 흐느끼며 울었습니다. 그리고 혼자 말했습니다.
<너는 내 스승이자, 너는 내 은인이다. 너는 딸이자 내 보호자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습니다.
책임지는 사람이 기둥입니다.
레위인은 하나님에 대한 일을 책임지고, 백성에 대한 일을 책임지고, 가정에 대한 일을 모두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4. 자기에 대한 책임
하나님에 대한 책임도 중요하고 아릅답습니다. 사람들에 대한 책임도, 가정에 대한 책임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에 대한 책임입니다.
수신제가 치국 평천하(修身諸家治國 平天下)라고 하였습니다.
자기의 영관리를 잘 하여야 했습니다. 자기 인격관리, 자기 행동관리, 자기 몸관리가 중요하였습니다.
그래서 레위인들은 성전에서 지낼 때면 골방에서 골몰하였습니다
<또 찬송하는 자가 있으니 곧 레위 족장이라. 저희가 골방에 거하여 주야로 자기 직분에 골몰하므로 다른 일은 하지 아니하였더라>(대상 9;33)
레위인들은 자기 일에만 골몰하였지 다른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순수한 자기 관리의 표본입니다.
켄터키 주립대 정신병원에 지난 3년간 입원한 환자 가운데 목사가 7명이 있었습니다. 목사가 다른 사람의 정신을 책임지고 있으면서 정신병원에 들어 온 이유를 분석하여 보았습니다.
기도도 열심히 하고, 영적생활을 철저히 하면서 하나님과 사람들과 가정에게 책임을 다 하며 열심히 살다보니 자기 관리가 소홀하였습니다.
점잖을 빼느라고 잘 놀지도 않았습니다. 잘 웃지도 않았습니다. 목사라는 강박관념에 빠져 감정을 털지 못 한 분들이었습니다.
웃고, 즐기고, 화도 격할 때에는 내기도 하는 소탈한 성격을 가지고 못 하고 있는 이들이었습니다.
모든 책임을 다 잘 하였어도 자기 관리 책임에 소홀히 하면 안 됩니다.
레위인들은 항상 자기 관리에 정성을 다 하였던 이들이었습니다. 일년 6주는 일에 골몰하지만 나머지 46주는 가정으로 돌아와 자기 할 일을 하였던 이들이었습니다.
레위인들이 자기에 대한 책임을 잘 지킨 결과가 확실하게 들어난 사건이 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40일 금식기도하고 십계명 두 돌판을 가지고 내려 왔습니다. 아론을 중심으로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절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 하시는 것은 우상이었습니다. 모세는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두 돌판을 금송아지에게 던졌습니다. 돌판도 깨지고 금송아지도 깨졌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외쳤습니다.
<금송아지를 만든 사람들을 죽일 사람은 나오라. 금송아지를 만드는 데 헌금하지도 않고, 금송아지를 만드는 데 동참하지 않은 사람들은 나오라>
그 때 모세앞으로 나온 지파가 레위 지파였습니다. 이들은 우상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절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 모세가 선포하였습니다.
<오늘 날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출32;29)
그 때부터 하나님은 레위 지파를 하나님의 일군으로 선택하셨습니다. 레위 지파는 자기 관리를 잘 하고 있었음을 확실하게 들어내 주고 있습니다. 그 지파가 하나님의 일군으로 부름받았습니다.
서울 시장을 지낸 김 상돈 씨를 우리를 어렴프시 기억할 것입니다. 그는 LA에서 80세에 돌아 가셨습니다. 그가 중년에 그렇게 건강하였던 비결을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나는 장로입니다. 새벽 5시면 꼭 새벽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공원을 여기저기 다니면서 깡통, 그리고 휴지를 주웠습니다. 아침마다 팔아서 동아일보 꿈나무 장학금에 기부하곤 하였습니다.
좀 힘들 때가 있습니다. 일어나기 싫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것을 줍기가 창피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나는 내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가난한 아이들 한 명이 더 공부하는 데 하는 마음이 들어서 열심히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내 건강이 좋아졌습니다. 내 믿음도 유지되었습니다. 휴지를 줍고, 폐지를 모으는 일은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자기의 영을 지키고, 건강을 지키려는 자기를 위한 책임을 성실히 수행하신 분이십니다.
그렇습니다.
레위인은 책임질 줄 아는 이들이었습니다. 네 책임을 지고 있었습니다.
1. 하나님에 대한 책임
2. 사람들에게 대한 책임
3. 가정에 대한 책임
4. 자기에 대한 책임
결론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이 네 가지 책임을 책임지시는 데 본보기가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책임을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다 하셨습니다. 온 인류가 멸망되지 않도록 책임을 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가정도 30세까지 돌보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으러 가시면서까지 제자들에게 어머니를 부탁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책임지신 본보기이십니다. 네 가지에 책임을 아름답게 지신 분이 예수님이셨습니다.
책임은 아름답습니다.
왜 책임이 아름다운 것일가요?
1. 책임 자체가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만큼 능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개미 허리에 쌀가마를 올려 놓지 않습니다. 그런 책임을 맡았다는 말은 그 만큼 능력이 있다는 이야기입나다. 책임없이 사람은 사람은 허전한 사람입니다. 허탈한 사람입니다. 누구도 인정하여 주지 않는 사람입니다.
2. 책임에 충성할 때 아름다운 것입니다 골방에서 골몰하는 레위인의 모습은 아름다운 모습니다. 충성하여야 합니다.
3. 책임을 완성하면 더더욱 아릅다운 것입니다. 이번 부흥회를 위하여 다음과 같은 책임을 완성하십시오.
(1) 금식기도
(2) 두 명 전도
(3) 확실한 성령 체험
그러면 부흥회의 책임을 완성한 아름다운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임재
민 1:47-54 / 윤봉원 목사
1. 민수기 소개
민수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서 모압 평지까지 가는 동안 광야에서 생활한 것과 추가로 받은 언약의 율법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역사적 기간으로는 애굽에서 나온 세대 모두가 죽은 40년입니다.
민수기를 통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앞으로 알게 될 것입니다.
약속의 땅을 군사적으로 정복하기 위한 준비, 땅과 관련해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언약을 충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는 데 거듭 실패하는 이스라엘(거듭되는 원망),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지도력과 모세의 지도력 확증,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와 거기서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한 준비, 요단강 동편 땅을 정복하고 정착함.
2. 하나님 나라의 군대로 부름 받은 우리(1-19)
2.1.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시내 산에서 여호와와 언약관계를 맺고 나서 이재 가나안은 향한 출정(出征)을 앞두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2, 3절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 전쟁에 나갈 장정들의 수를 세라고 명하십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가나안으로 인도하기 위해 그들을 여호와의 군대로 편성하고, 앞으로 닥칠 거룩한 전쟁에 대비하여 군사조직을 강화하려는 것입니다.
2.2. 하나님께 하나님 나라의 군사로 부름 받은 우리
민수기 서두부터 전사와 군대에 대해 말씀하시는 의도를 묵상해 보십시오. 또한, 광야 같은 세상에서 영적인 전쟁에 나갈 만한 사람의 수를 세시는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어떻게 응답하고 있습니까?
5-16절 각 지파를 대표할 수 있는 두령 한 사람씩을 친히 선정하십니다. 이는 직접 군대를 조직하고 이끄시겠다는 여호와의 의지와, 이 전쟁이 여호와께 속한 것임을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은 인간 지도자의 뜻에 따라 조직되고 움직이는 나라가 아니라 오직 여호와의 뜻과 명령에 따라 조직되고 움직이는 여호와의 나라요, 여호와의 군대입니다.
2.3. 그리스도에게만 순종해야 할 우리
여기서 우리는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영역으로 주신 것들을 정복하는, 하나님 나라의 전투적인 측면을 봅니다. 천국을 향해 나가는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로 모집된 자들임을 기억합시다.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 2:3-4)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군사로 부름을 받은 나와 우리 교회는 누구를 바라보며 누구의 명령을 따르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군사로 나가는 자는 자신의 소속을 분명히 알고, 자기 지도자가 누군지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종족, 계통에 대한 분명한 인식 없이 싸움에 임한다면 큰 혼란에 빠질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군사로 부름을 받았다면 먼저 우리의 소속(所屬)이 그리스도 안인지를 확실히 확인하고 나가야 할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 의심하는 자는 전쟁에서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전투(戰鬪)에 임하는 군사(軍士)는 임의로 행동할 수 없습니다. 군사령관의 말에 그대로 따르는 것만이 살 길 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대장이신 그리스도의 명령을 즉각 따르고 있습니까? 따라서 우리는 천성을 향해 나아가는 하나님의 거룩한 군사들로 오직 주의 명령만 따를 수 있는 은혜를 구해야 하겠습니다.
3. 신실하신 하나님(20-46)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인구조사를 실시한 결과 20세 이상 전쟁에 나갈 수 있는 자만 603,550명에 달했습니다. 애굽에 내려갈 때는 70명이었던 작은 집단이 짧은 기간에 이렇게 번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큰 민족을 이루도록 하셨습니다(참조. 창 12:1). 야곱의 아들들이 애굽에 내려갈 때 그 가족들은 고작 70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출 1:5). 그런데 가나안을 향해 출발하려는 지금, 20세 이상 장정만 60만 명이 넘고, 여자와 노인, 20세 이하의 인구를 포함한 전체 인구는 2, 3백만 명에 이르는 큰 민족을 이루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대로(창 15:14; 17:1-8) 이스라엘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내신 것입니다. 이 많은 인구를 광야에서 40년 동안 먹이시고 가나안까지 인도하신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이었습니다. 이토록 신실하신 하나님이 오늘 우리 삶을 붙들고 계심을 확신한다면 광야의 삶이 아무리 힘들고 볼품없어도 결국은 승리의 찬가(讚歌)를 부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다 성취된 것은 아닙니다. 주시겠다고 약속했던 땅에 대한 약속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백성에게 출발선(出發線)에서 먼저 70명의 집단이 603,550명에 이르도록 이스라엘을 번성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확인(確認)시키십니다. 이는 앞으로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도 반드시 주실 것을 믿게 하시려는 특별한 배려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약속을 이루실 뿐만 아니라 그 백성들이 약속을 향해 나가서 결국은 약속을 누리도록 격려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질서 정연하게 조직되었습니다. 먼저 지파를 다스릴 족장들이 선정되었습니다. 또 각 지파는 성격이 유사한 지파들끼리 네 지파군(르우벤-시므온-갓, 유다-잇사갈-스불론, 에브라임-므낫세-베냐민, 단-아셀-납달리)으로 모였습니다. 이것은 한 공동체 속에 다양한 요소를 공유한 모임들이 가진 차이를 오히려 하나 나라의 다양성(多樣性)을 형성(形成)하는 것으로 적용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각 진영의 배열에서 우리는 임마누엘의 복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임재는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고 약속하신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 또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계 21:3)라는 말씀을 상기시켜 줍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삶에 베푸신 주의 신실(信實)하심을 기억하며, 앞으로 이루실 일을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의 배려(配慮)를 보면서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約束)이 도저히 이뤄지지 않을 것 같아 실망(失望) 중에 있지는 않은지요?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고 바라보는 자들이 되도록 은혜를 구합시다.
4. 레위 지파의 임무(47-54)
4.1. 부르심의 목적을 파악하고 충성하라
이스라엘의 군대 조직에 레위 지파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레위 지파의 역할은 전투가 아니라 하나님이 거하시는 증거막과 관련된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레위 지파를 전투 병력에서 제외하신 하나님은 그들에게 다른 역할을 주십니다. 증거막의 모든 기구들을 관리하고 봉사하며 증거막과 이스라엘 사이에 포진하여 백성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지 않도록 하는 일입니다. 이스라엘의 각지파들이 전투에 임하여 외부(外部)의 적과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레위 지파처럼 이스라엘 공동체와 하나님의 관계를 완전하게 만드는 일도 중요합니다(49-53).
오늘날도 하나님 나라의 영적인 전투에서 각 사람을 부르신 목적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부르심의 모양이 어떠하든지 공통적인 임무(任務)는 부르심에 합당(合當)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고전 7:17)
‘형제들아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고전 7:24)
4.2.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유지하라
가나안 정복을 앞둔 이스라엘에게는 한 명이라도 더 군사를 모집하는 일이 시급(時急)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특별히 한 지파 레위 지파를 구별하여 제사장들은 증거막에서 봉사하는 일과 장막과 모든 기루를 운반하게 하는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완전한 관계를 맺는 것이 모든 일의 기초임을 보여 줍니다. 아무리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가 그 초석이 되지 않는다면 영적인 전투에서 핵심(核心)을 잃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에서는 각 지파 사이의 구별(區別)이 사라져버립니다. 대신에 보편적인 제사장 직분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계 20:6)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긴다’(계 22:4)
이러한 교훈을 통하여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시급한 일 때문에 하나님과 만나는 영적인 일이 뒤로 밀리지 않도록 계속해서 우선순위를 점검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 시간 이후부터 우리는 우리 자신들을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적을 분명히 찾고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충성할 수 있도록 성령의 인도 하심을 구하고 순종하는 경건의 연습(練習)을 계속 합시다.
4.3. 함께 하시며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라
‘주여 내가 주께 은총을 입었거든 원컨대 주는 우리 중에서 행하옵소서’(출 34:9)
하나님은 레위 지파에게 증거막을 해체하여 이동하게 하시고 다시 세우게 하심으로써 이스라엘과 함께 행군하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 생각대로 함부로 접근하다가 죽지 않도록 가까이 오지 못하게 경계(警戒)하십니다. 거룩하신 여호와께서 이런 방비책을 통해 죄 많은 백성과 동행(同行)하신 것입니다(51-53).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레위 지파의 역할처럼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보가 되셔서(딤전 2:5) 언제나 하나님의 임재(臨在) 속에 사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가까이하면서도 진노를 받지 않도록 우리를 완전케 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5. 언약 이행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믿고 그의 인도와 명령에 순종만 해라.
우리는 전적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하나님 나라의 군사로 부름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의 소속은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군대입니다. 하나님의 목적 완성을 위해 부름 받은 자들이라는 신분을 항상 기억하여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를 부르신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삶만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담대히 우리의 소명을 감당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매우 신실하시고, 능력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맡기신 임무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모든 재료와 능력을 공급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를 부르신 주님과 교제하며 우리가 해야할 임무를 성령을 통해서 전달받고 즉시 순종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주님은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하리라’고 말씀하신 대로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과 교제하는 삶을 통해서 광야에서 다 죽은 출애굽 일 세대처럼 원망하지 말고 그저 그분과 교제하며 명령하시는 대로 순종만 하면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순종 생활의 계속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 확장에 도우미가 되지 말고 주인공이 됩시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