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은 기자회견에서 변명과 거짓말로 일관했다.
언론과 국회를 불신하고 두려워하는 대통령은 더 이상 국가와 국민을 위해 존해할 필요가 없다.
기자회견은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정권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역설하고 역사를 위한 길이다.
대통령제에서 기자회견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국회 출석을 하지 않는 대통령은 신문·방송의 여과 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시민에게 전할 수 있다. 시민은 자신이 뽑은 대통령이 무슨 생각을 하고, 기자의 질문에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직접 볼 수 있다.
그래서 1913년 3월 우드로 윌슨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첫 회견을 연 이후, ‘기자회견’은 대통령과 시민을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소통 수단이 됐다.
윌슨 대통령의 첫 기자회견은 비보도(오프 더 레코드)였다. 이 관행은 1950년대까지 이어졌다. 이건 대통령에게 매우 유리했다. 1950년 해리 트루먼은 기자회견 중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매카시 상원의원은 소련의 보물”
이라고 말했다가 문제가 될 것 같자 기자들에게 발언 삭제를 요청했다.
기자회견이 긴장감에 휩싸인 건 1960년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 때부터다. 케네디는 처음으로 기자회견을 생방송으로 진행했다.
마침 1960년 5월 미 공군의 유투(U2)기가 소련 상공에서 격추된 뒤 처음엔 스파이 비행이 아니라고 기자들에게 거짓 브리핑한 게 들통나면서 기자단과 백악관의 관계가 싸늘해졌다.
케네디와 기자들은 날 선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았고, 텔레비전 시청률은 치솟았다. 그 이후 생방송 기자회견이 대통령 회견의 전형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각본 없는 기자회견’은 대통령에겐 정치적 부담이 되기도 한다. 기자회견 싫어하기로 유명했던 조지 부시는 취임 첫 2년간 7차례만 단독 회견을 했다. 취임 첫 2년간 29회의 단독 회견을 한 빌 클린턴이나, 버락 오바마(첫 2년간 21회)에 비해 현저히 적다.
그나마 부시는 임기 말로 갈수록 기자회견 횟수를 많이 늘렸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이후 2년간 한 기자회견은 12일의 신년 회견까지 단 두 차례다. 1년에 한 번꼴이다. 횟수도 적지만, 긴장감도 없다.
이래선 대통령 ‘쌩얼’을 그대로 드러내는 기자회견의 묘미가 사라진다.
윤석열은 기자회견이 겨우 4회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