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면사포를 쓴 신부는 관세음보살
불교적인 결혼예식
참으로 엄망진창이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치러지는 결혼식 대부분이 그렇다는 말이다.
서양의 성당이나 교회에서 치러지던 기독교 방식의 결혼식이 그대로 이식되었기에,
목사나 신부(神父)의 역활을 대신하여 주례가 있고,
신랑은 검은 양복을 입고 신부(新婦)가 하얀 드레스에 면사포를 쓴다.
이 이외의 절차는 서양의 것도 아니고 우리의 것도 아니다.
결혼식장이 위치가 어떻든 간에 주례가 선 곳을 '북쪽'으로 간주한다.
객석에서 주례를 바라보면서 우측은 동쪽이고 좌측은 서쪽에 해당한다.
동아시아의 음양(蔭陽) 이론에 부추어 볼 때 신랑 측의 하객은 양의 방향인
동쪽인 우측에 앉아야 하고, 신부 측의 하객은 음의 방향인 서쪽인 좌측에 앉아
야 한다. 서양의 기독교식 결혼식의 경우도 하객의 자리배치는 이와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예식장 대부분에서는 신랑의 하객을 좌측에
신부 하객을 우측에 앉힌다. 예식장의 책임자가 '남좌여우(男左女右)'라는
말은 들은 적이 있고, " 어디에 앉아야 하는지?" 묻는 사람이 대부분 하객들이기
에, 얼떨떨결에 남좌여우 방식의 자리배치가 정착한 것으로 짐작된다.
예식이 시작되면 신랑과 신부의 어머니가 촛불을 밝힌다.
화촉(華燭)의 순간이다. 그런데 양가(兩家) 어머니의 치마와 초의 색갈이
뒤바뀌어 있다. 파란색 치마를 입은 신랑의 어머니가 파란색 초에 불을 붙이고,
붉은색 치마를 입은 신부의 어머니가 붉은색 초에 불을 붙인다.
그러나 음양 이론에서 파랑은 음(陰)인 여성의 색깔이고 빨강은 양(陽)인
남성의 색이기에 붉은 색은 신랑, 파랑색은 신부 쪽에서 사용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결혼식 대부분에서 색깔을 이와 반대로 적용한다.
파란색은 '씩씩한 남자'의 색, 빨간색은 '다정다감한 여자의 색'이라는
'이 시대의 심미안'이 '전통의 음양 이론'을 제압했나보다. '의미 있는 결혼예식'이
되려면 하객들이 앉는 좌석의 배치나 양가 어머니가 입는 한복의 색깔,
화촉에 사용하는 초의 색깔 모두 음양의 이치에 맞게 되돌려야 것이다.
그러면 불교인들은 어떻게 결혼식을 치러야 할까?
사찰에서 스님의 주례로 치를 수도 있겠지만, 스님이 남녀의 짝을 맺어주는 것은
원칙적으로 율(律)에 어긋나는 일이기에 사찰결혼식을 보편화하기는 힘들다.
또 서구 문화에 젖은 젊은 연인들 가운데 전통사찰에서 결혼식을 치르려고
하는 사람 역시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여기서 우리는 티베트인들의 불교수용 방식을 참조할 수 있다.
티베트의 불교인들이 힌두밀교의 합체존(合體存)과 전통적인 조장(鳥葬)에
대해 살펴보면, 그 외형은 그대로 두고 그 의미만 불교적으로 변형시켜서
불교의 존상과 의례를 사용해 왔듯이, 현재 우리 사회에서 치러지는
결혼예식의 외형은 그대로 두고서 그 의미만 불교적으로 변형시키면 된다.
결혼식장을 극락정토라고 생각한다.
주례는 극락정토를 주관하시는 아미타부처님이다.
검은 예복을 입은 신랑은 아미타불의 우보처인 대세지 보살이고
신부는 좌보처인 관세음보살이다.
하얀 면사포를 쓴 신부를 백의(白衣)관음라고 부르면 더 좋을 것이다.
결혼식은 아미타불과 대세지보살과 관세음보살의 미타삼존이 출현하는
장중한 예식이다. 주례사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넣는다.
"신랑은 대세지보살과 같은 지혜로 가정을 잘 이끌고, 신부는 관세음보살과
같은 자비로 가족을 감싸기 바랍니다." 신랑과 신부는 앞으로 가정을
극락과 같이 꾸려가겠다고 다짐한다. 지금의 결혼식 외형을 그대로 두고서,
불교적 결혼예식으로 바꾸는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김성펄 교수의 불교하는 사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