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덕도를 둘러
어제 방학식을 마치고 동료들과 통영 투어를 다녀온 십이월 다섯 째 토요일이다. 전세버스 두 대로 통영으로 가 국제음악당을 둘러보고 요트로 한산도로 건너가 제승당을 답사했다. 귀로에 해저터널 가까운 횟집에서 싱싱한 생선회를 맛봤다. 일부 동료들은 차수를 변경한 여흥을 보낼 계획을 세울 때 서둘러 자리를 일어나 거제로 복귀했다. 방학식 이튿날 뭍으로 가야할 형편이었다.
이른 새벽 와실서 전날의 여정을 기록으로 남겨두고 창원으로 가져갈 빈 반찬통과 옷가지를 챙겼다. 고현으로 나가질 않고 하단으로 가는 2000번 첫차를 탔다. 토요일 이른 아침임에도 그 버스를 타는 승객은 많았다. 부산 신항이나 녹산공단이 일터인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난 거가대교 지난 가덕도 성북 나들목에서 내렸다. 가덕도 사는 작은형님을 뵙고 산책을 함께할 일정이다.
날이 덜 밝아온 아침 작은형님을 차를 몰아 마중을 나와 주었다. 형님과는 며칠 전 성탄절에 거제에서 대봉산 해변 경관 길을 같이 걷기도 했다. 형님은 곧장 댁으로 향하지 않고 동선 새바지 일출을 보러가자면서 그곳으로 차를 몰아갔다. 다대포와 몰운대가 뻗쳐나간 바깥바다 일출은 때가 이르고 붉은 기운이 퍼져가는 수평선이었다. 몇 어부는 새벽에 건져 올린 그물을 살펴봤다.
눌차만에서 가까운 형님 댁에 드니 형수님은 떡국을 끓어 놓고 맞아주었다. 일출을 보느라 시간이 지체되어 떡국이 식어가고 있어도 든든하게 잘 먹었다. 아침 식후 형님이 미리 마음에 그려둔 경로로 산책을 나섰다. 형님은 교직 은퇴 후 가덕도에 살면서 여라 갈래 갈맷길을 산행 산책하고 있었다. 한때 건강을 잃어 주변에서 염려가 많았으나 이젠 예전처럼 회복해 마음이 놓인다.
눌차만 동선 새바지로 나가니 아침밥을 먹고 온 사이 아까 감돌던 붉은 기운은 사라지고 해가 떠올라 있었다. 방파제엔 어부가 건져 올린 생선을 맛보려는 갈매기와 고양이들이 몇 마리 보였다. 강이나 호수에 흔한 여름철새 왜가리는 바닷가까지 진출에 먹이를 찾고자 했으나 성공 확률이 낮을 듯했다. 추운 날씨 날갯죽지를 늘어뜨리고 갯바위에서 움츠리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해변 벼랑 기도원으로 나아가질 않고 눌차만 방조제를 따라 외늘마을 방향으로 갔다. 인공으로 쌓은 방조제가 아니고 가덕 본섬과 눌차도를 잇는 자연 방조제에 콘크리트로 방파제가 만들어졌다. 방파제가 끝난 곳에 김해에서 온 낚시꾼이 한 명 보였다. 아직 손맛을 보지 못한 듯했다. 등산로를 따라 오르니 자연인처럼 살려는 사람이 지어 놓은 움막이 있었으나 인기척은 없었다.
가덕도는 주봉인 연대봉이 유명해 외부에서 찾는 산행객으로 모두 그곳으로 가기에 다른 등산로는 묵혀지다시피 했는데 그나마 형님이 다녀 사람 다닌 흔적이 남아 있었다. 예전 해병 초소가 있던 자리로 나가니 모래섬 진우도 앞태가 드러나고 명지 아파트와 다대포 몰운대가 가까웠다. 고기잡이배가 빠른 속도로 달리니 하얀 포말을 일으켜 멋진 풍광을 보여주어 사진으로 남겼다.
정거마을 벽화거리를 지나 항월마을을 앞둔 잘록한 고개로 올랐다. 외벽 페인트색이 바래가는 폐교된 초등학교가 나왔다. 3층 건물이니 한때 학생 수가 상당했지 싶었다. 폐교를 지나 희미한 길을 따라 산언덕으로 오르니 신항이 훤히 드러났다. 꼭대기는 어촌에서 볼 수 있는 고목과 돌담이 둘러친 당산이었다. 정갈하게 청소가 되어 있고 누군가 소원을 빌고 간 과일이 몇 개 보였다.
산언덕을 내려와 내눌마을에 이르니 눌차만은 만조를 맞아 해수가 찰랑찰랑 채워지고 있었다. 선창을 지나 성북을 드니 근래 좁은 도로가 확장되어 주거 환경이 개선되었다. 노인복지관과 주민자치센터가 덩그랬다. 때가 일렀다만 형님과 마주앉아 돼지국밥으로 점심을 들었다. 나는 맑은 술도 한 병 곁들였다. 형님 댁에 이르니 형수님은 시금치와 배추를 챙겨주어 짐을 두 손에 들었다. 19.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