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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 교회에서의 사역
사도행전 19:1-20(신p.220) 찬송 446장 / 찬송 206장 20250327
오늘도 사도행전 19장에 기록된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우리가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사도행전 19장 말씀에는 바울의 3차 전도여행과 에베소교회에서 사역을 했던 내용들을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어제도 말씀을 들으셨지만, 바울은 2차전도여행 때 에베소에 잠깐 들었을 때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라고 약속을 했고,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실 때 정말 바울은 에베소로 떠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의 3차 전도여행의 출발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8:23절 말씀에 보시면
바울은 2차 전도여행을 끝내고 안디옥에 돌아왔지만 “얼마 있다가 떠났다…” 라고 말씀을 합니다.
바울의 3차전도 여행의 목적은 “에베소지역을 전도하는 것입니다”
당시 에베소는 아시아의 최대의 항구도시였고, 또 소아사아의 수도로 문화와 예술 뿐만 아니라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사도행전 19:1절 말씀에 보시면, 바울은 에베소에서 도착하자 말자 제자들을 만나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에베소에서 바울이 제자들을 만났을 때 제일 먼저 물어본 것은 성령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 때 에베소에 있는 사람들은 성령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고, 세례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구약의 말씀을 통해 회개하는 정도였다는 것입니 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제자들에게 세례요한이 온 것은, 예수님을 소개하 러 온 것이고, 성령을 통해 예수를 믿고 죄사함을 받아야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을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5절 말씀에 보시면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기 성령이 각 사람의 마음에 임함으로 방언의 표적이 나타나게 된 것은, 오순절에 유대인들에게 처음 성령이 임할 때 언어가 하나되는 방언의 표적이 나타났던 것처럼 똑 같은 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언어가 다른 이방인들이 알아듣게 되는 그런 표적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예언이라는 것은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깨닫게 될 때 풀어서 설명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 말씀에 고넬료가 이방인으로 처음 성령을 받을 때도 방언의 표적(언어를 알아듣게 되는 표적이) 나타났고, 여기 세번째로 에베소에서 언어가 다른 이방인들이 있을 때 언어가 하나되는 표적이 나타남으로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바울은 에베소에서 성령의 사역으로 12명의 성도들이 처음 예수를 믿게 되었고, 이 에베소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울은 8절 말씀에 보시면 “회당에 들어가서 3개월을 하나님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했다”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기 강론은 철저히 가르치는 것을 말하고, 권면은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서 말씀을 강론했다는 것은 유대인들을 전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유대인들은 바울에게 마음을 열지 않습니다.
9절 말씀에 보시면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져서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했다…”라고 말씀을 합니다.
예전에 바울은 이렇게 유대인들이 반대를 하고 바울을 대적하게 되면 그곳을 떠나거나 다른 곳에 가서 복음을 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에베소에서는 좀 달랐습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작정을 하고 이 에베소에 왔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 작은 무리들이지만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라는 서원을 빌려서 날마다 하나님 의 말씀을 강론했다(철저히 가르쳤다)”라고 말씀을 합니다.
두란노 서원은 두란노의 스콜레, 두란노의 학교라는 뜻입니다.
이 두란노라는 사람은 당시에 철학이나 수사학을 가르치는 학자이거나 유대의 율법을 가르치는 학자였을 것으로 추정을 합니다.
바울이 이 두란노서원을 세를 주고 빌려서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매일마다 3년을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게 됩니다.
바울이 3년을 가르쳤다는 것은 구약성경을 가르친 것입니다. 사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게 된다는 복음은 3년을 가르칠 내용이 없습니다.
바울은 이 때 구약의 성경을 통해, 죄인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바로 예수님이고, 이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것을 가르쳤을 것입니다. 이 때 바울은 바울의 신학을 정리하고 복음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학문적으로 정리를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 중에 로마서나 에베소서 같은 편지를 통해서 복음이 무엇인지, 교회가 무엇인지를 정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10절 말씀에 보시면, 바울은 이렇게 2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체계적으로 가르치게 될 때, 에베소 지역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주의 말씀을 들었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선교정책의 변화 입니다.
바울은 1차 2차 전도여행을 할 때는 땅끝까지 복음을 전해야 된다는 사명감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쁘게 계속 다녔습니다.
그래서 가정에서 복음을 전하고 또 예수를 믿는 사람이 생기면 제자들을 굳게 하고 또 다른 곳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복음만 전하고 교회를 세워도 교회에 지도자가 없으니까 교회가 자꾸 변질되고, 이단들 때문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는 것을 바울이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에서는 두란노서원을 통해 제자를 양육하게 됩니다.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예수님의 가르침을 바로 깨달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게 와서 배우라! 라고 말씀하셨고, 제자들을 보낼 때도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바울은 예수님께서 왜 3년 동안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을 했는지!, 그 가르침에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매일같이 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게 될 때 사람들의 삶이 변화 되기 시작하고, 또 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 많은 하나님 나라의 표적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 11절 말씀에 보시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했다”고 말씀을 합니다.
“병든 사람이 낫기도 하고 악귀도 떠나가는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런 표적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게 될 때 죄의 모습이 사라지고 귀신들이 떠나게 되는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표적입니다.
그런데 13절 말씀에 보시면, 어떤 유대인들 마술사가 바울을 따라서 흉내를 내게 됩니다.
여기 “마술사는 엑솔키스테스, 영어로는 엑소시스트 즉 귀신을 쫓는 자, 우리 식으로 말하면 무당”입니다.
이 마술사가 예수를 믿지도 않으면서 바울처럼 흉내를 한번 내 봅니다.
여러분 13절 말씀에 보시면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14절 말씀에 보시면, 그들 중에 “스게와의 일곱 아들”이 있었는데 귀신이 이 사람이 예수를 믿는지 안 믿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하면서 이 귀신들이 달려드는 바람에 옷을 벗고 도망을 갔다! 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이렇게 귀신도 이 사람이 예수를 믿는 사람인지, 안 믿는 사람인지를 귀신같이 안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 말씀을 깨달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사람이 하나님의 법대로 귀신을 쫓아내면 귀신도 안다는 겁니다. 그런데 말씀도 모르고,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가 없는 사람이 흉내를 내면 이 귀신은 도리어 대들고 달려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 나라의 표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이지, 어떤 능력이 내게 와서 행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주문을 외워서 소리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고 회개한 심령에 성령이 오셔서 우리의 영혼을 새롭게 하고, 육신도 회복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에베소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표적을 보고 자기 죄를 고백하고 예수를 믿게 되었고, 우상을 섬기던 마술사들도 자기가 귀신들에게 메여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19절 말씀에 보시면 “마술을 행할 때 쓰는 책들을 다 불태우고 예수를 믿게 되는 그런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때 불태운 책이 은 오만이나 되었다! 라고 말씀을 합니다. 은 오만이면 오만 드라크마, 우리 돈으로 약 50억이나 되는 돈입니다.
이렇게 바울이 에베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게 될 때 우상에 메여 있던 자들도 돌아오고, 에베소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는 변화의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20절 말씀에 보시면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그 말씀이 사람들의 마음에 깨달아지고 말씀대로 순종할 때 삶의 열매들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그것도 한 두 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정도가 아니라 3년동안 매일 같이 이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고 가르치게 될 때 그 말씀이 우리 속에 역사하게 되고 또 사람들이 변화 되기 시작하고 도시 전체가 변화 되어지는 그런 역사가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이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여러분 지금 교회를 다니는 성도들에게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이 66권의 이 하나님의 말씀을 설명해보라고 하면 아무도 못할 것입니다.
심지어 목사들도 66권의 말씀을 다 설교하라고 하면 힘들어 할 겁니다. 그만큼 교회가 전체 말씀을 배우지 않고 부분적으로 한쪽으로 치우치게 말씀을 보게 될 때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 그냥 막연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말씀을 알지 못하니, 제대로 된 믿음을 가질 수 없고, 믿음이 없으니 말씀대로 살 수도 없고, 말씀대로 살지 않으니까 변화도 없고 역사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교회에 오래 다녔다는 것 때문에 모른다고는 할 수는 없고 아는 척, 또 하는 척 하면서 외식적인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성도가 시간이 지나게 되면 말씀을 믿지 않게 됩니다. 말씀은 말씀이고, 현실은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생각이 지배하게 될 때 말씀도 배우지 않고, 바른 믿음도 없이 그냥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다가 시간을 허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정말 바른 믿음을 가지고, 바르게 복을 받으려면, 내가 성경을 모른다는 것을 인정을 하고, 다시 성경을 배우고, 진짜 이 성경에 기록된 복을 받아 누리는 그런 지혜로운 성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짧은 인생을 살면서 시간을 허비하기 보다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차근 차근 잘 배워서 이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이 땅에 있는 동안 영적인 열매와 육적인 열매를 맺는 지혜로운 성도가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저와 여러분이 이런 결심을 한번 하면 좋겠습니다.
가능하면 시간 시간마다 모임에, 예배에 참석해서 빠른 시일내에 66권의 성경을 이해하고 깨달아서 이 말씀이 내 삶에 실천되어지는 그런 성도가 되도록 여러분 결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여러분을 도와 주실 겁니다. 그리고 성령을 따라 살게 되면 내가 상상하지도 못하는 일들을 경험하게 되고, 또 내가 생각지도 않은 놀라운 일들이 여러분의 인생에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배우지 않고,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도 그냥 그대로 어린아이와 같은 그런 신앙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도 50, 60,70이 되어도 어린아이와 같은 그런 신앙생활을 그대로 하게 됩니다.
나이가 들어도 분을 참지 못하고, 사람들을 미워하고, 질투하고, 험담하고, 거짓말하는 삶이 변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이나 온유나 절제나 오래 참는 것이나 화평의 열매들은 없는 겁니다.
여러분도 바울이 왜 이렇게 선교정책을 바꾸었는가? 잘 생각해 보시고, 교회에 다니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배워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아름다운 성도의 모습으로 변화되고 성숙되어 가는 믿음 있는 성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이렇게 1차 2차 전도여행의 부족함을 깨닫고, 3차 전도 여행부터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말씀을 가르치게 될 때 놀라운 이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나중에는 에베소 도시전체가 변화가 되어서 “우상을 섬기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은 신이 아니다”하면서 우상을 만들어 파는 공장이 망하게 될 정도로 도시 전체가 변화 되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23절 말씀 이하에는 “에베소에 있는 아데미라는 신상을 만드는 우상 공장의 사장들이 모여서 데모를 하게 됩니다” 바울 때문에 우리가 망하게 되었다! 하면서 우상장사들이 데모를 하게 됩니다.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우상을 없앤다고 변하는 것이 아니라, 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가르치게 될 때 변화된 그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변화되어지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들을 감옥에 보낸다고 세상이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또 다른 사람이 악을 행하게 됩니다. 말씀으로 변화된 사람들 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듣고 배워서 말씀대로 순종함으로 인격이 변화 되고, 인생이 변화되는 그런 체험을 하시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 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이런 신앙의 모습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바울은 에베소에서 3년 동안 말씀을 가르치면서 고린도교회에서 온 사람들을 통해 고린도교회 소식을 듣게 됩니다.
아볼로가 고린도에 가서 사역을 하는 동안 많은 문제점들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 고린도전서 1:11절 말씀에 보시면, 글로에 집사람들이 에베소에 와서 고린도 교회 소식을 전했다! 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를 읽어 보면 “바울파 아볼로파 그리스도파 게바파”와 같이 신앙의 칼라를 따라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따르는 자들 때문에 교회 안에 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불신자들과 이방의 종교를 섬기는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왔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게 되니까! 옛 습관 그대로 또 미신을 섬기는 습관대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게 될 때 교회가 도리어 변질 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음행을 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성도들끼리 서로 다투어서 세상의 법정에 서는 사람도 생기고, 우상을 섬기는 습관 때문에 우상의 제물을 먹어야 되느냐 말아야 되느냐 논쟁이 벌어지고, 또 무당들이 하는 습관대로 이방의 방언을 하는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와서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이상한 방언을 하게 되면서 교회를 어지럽히기도 하고, 또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이런 문제들이 왜 생겼느냐?
그냥 교회 와서 예수 믿으면 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세상의 모습 그대로 신앙생활하고 세상의 습관 그대로 예배를 드리니까 마치 교회가 시골동네 마을 회관처럼 되어버린 겁니다. 미신을 믿듯이 예수를 믿는 곳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런 여러가지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서 편지를 쓰게 되는데 그 편지가 바로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입니다.
이 고린도 전서와 후서는 우리 한국 교회에서 반드시 참고해야 할 성경입니다. 왜냐하면 이 고린도교회가 우리 한국교회와 가장 비슷한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음 시간부터는 바울이 에베소에서 썼던 고린도전서 말씀을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이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게 되면, 이 교회는 교회 대로 혼란스러워지고, 성도들은 바른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시간을 허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성도에게는 이 66권의 이 하나님 말씀을 바로 가르치고 또 배우고 깨닫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여러분 인식 하시고, 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배우시고 그 말씀을 따라 신앙생활하시고 또 그 말씀대로 기도하고 말씀대로 복을 받아서 이 땅에 있는 동안 정말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위해 예비해 놓으신 풍성한 은혜와 복을 다 받아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의 이런 영적인 삶의 모습이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기도문
합심기도
1. 오늘도 생명의 말씀,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을 잘 받아서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이 있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2. 나라와 민족과 섬기는 교회와 여러분의 가정과 자녀들의 믿음을 위해서
3. 개인의 기도제목을 따라 기도하고 오늘 하루 삶을 또 시작하겠습니다.
